캐치-22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6
조지프 헬러 지음, 안정효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I was involved in catch-22 situation yesterday. It means that insanity of the military started to influence me."
 

아마 이 소설 'Catch-22'를 해병대에 오기 전에 읽었더라면, 2006년 2월 7일에 불편한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을 거요. 하긴 해병대 안에 도사리는 광기가 이토록 지독한지 그 때는 미처 몰랐기에, 아마 알고 있었더라도 그렇게 중얼거리지는 않았을 거요. 승파관(勝波館)으로 가는 길에서 차가운 공기를 가를 때부터 내가 그동안 간직하고 있었던 모든 영광스러운 이미지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그건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을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두려움이라고 여기고 마음을 가라앉혔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에게 주어진 임무를 어떻게든지 해내면서, 모든 해병들이 그렇듯이 해병대에 관해 지니고 있던 그런 막연한 이미지가 와장창 박살났소. 대신 군대 안에 도사리고 있는 특수한 집단에서만 통하는 논리와 그에 따른 이치로 포장한 광기가 나를 사로잡기 시작했소. 매우 안타까운 것은 그게 훈련단에서나 실무 부대에서나 마찬가지였다는 거요. 임전무퇴의 기상? 필승의 신념? 명예? 충성? 그 모든 것은 군대 안에 있는 광기를 억누르는 방법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오. 나는 정훈공보처에서 요구하는 수준만큼 정훈 교육 자료를 완벽하게 익히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이 무시무시한 광기에서 자유롭지 못하오. 당신들도 마찬가지 아니었겠소?

 

정훈 교육 자료에서 강조하는 그 군인 정신을 완벽하게 몸에 익힌 이상에 가까운 참된 군인이 말 그대로 이상일 뿐이라는 걸 예비역들이 나에게 몇 번이고 강조했는데도, 나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허상에 빠져 있었소. 그러고 보니 예전에 내가 왕성하게 활동했던 글쓰기 동호회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나와 자주 논쟁을 벌였던 '대성이천수'라는 필명을 가진 학생이 떠오르는구려.

 

그는 보통 중학생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해박한 지식과 매끄러운 논리 전개로 많은 회원들을 감탄하게 했소. 하지만 한 가지 커다란 문제점이 있었으니, 군사 독재 정권이 강조한 전체주의에 물든 애국애족 정신에 너무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다는 거요. 그는 국가를 위해서라면 전쟁터에서 자기 목숨쯤이야 얼마든지 바칠 수 있다고 하면서, 국민을 보호하고 계몽하는 강한 국가와 그를 떠받치는 군대를 찬양했소.

 

그 학생이 이제 몇 살인지 생각해 보니, 이제 대학생이 될 고등학교 3학년이오. 그러면 다음 해에 신체 검사를 받고 곧 군대에 가야 할 것이오. 과연 그가 실제로 군대에서 복무하면서 그 신념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나는 정말 궁금하다오. 물론 그 학생은 이미 전체주의에 물들어 있고 또래들과는 견줄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학식을 쌓았기에 요즘 신세대들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소. 그러니 그토록 찬양하던 군대에도 잘 적응해, 내가 한동안 꿈꿨지만 결국 저버린 이상에 가까운 군인이 될 수 있을 확률도 마찬가지로 높소.

 

그렇다고 해서 말료르카 전래동화에 나오는 오거스틴과 같이 될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소. 하지만 아무리 그 사람이 지닌 가치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그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오. 오거스틴은 도둑이 되고 싶다는 명백히 사회에 해를 끼치는 소망을 품고 있었지만, 그 학생이 품은 애국애족 의식은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에 매우 바람직한 것이기 때문이오. 단지 그 안에 숨어있는 무시무시한 전체주의가 지배한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민중들이 매우 큰 고통을 겪어야 했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경계하는 눈초리를 잠시도 늦추지 않을 뿐이오. 그리고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는 개인이 지닌 고유한 가치관과 신념을 강제로 깨뜨리지 않고 보장해 주는 것이 다원주의와 민주주의 사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미덕이므로, 단지 그 학생이 지닌 그 관념에 군대만이 지닌 광기가 덧붙어 버리는 사태만큼은 제발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오.

 

이야기가 잠시 다른 곳으로 샌 것 같은데, 어쨌든 나는 당신들에게 묻고 싶소. 군대, 특히 해병대 안에 도사리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광기와 전투력 사이에 어떤 관계가 성립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소? 그리고 자기가 바깥에서 기본권과 인권을 보장받는 사회에서 살다 왔다는 것을 인식하고, 군대 안에서 어쩔 수 없이 기본권과 인권을 침해해야 하는 경우 때문에 괴로워해 본 적이 있소? 그저 '해병대가 XX이지', '해병대가 XX하면 되나', 'XX가 XX하면 보기 좋겠느냐', 뭐 이 따위 수준 떨어지는 우격다짐만 내세운다면, 그런 고민과 괴로움 따위는 겪어보지도 않았다고 대놓고 선전하는 것이니 그만하는 게 좋겠소. 예전에 당신들도 그토록 꼴사납고 짜증나는 일을 진저리치게 겪었다면, 나중에 선임이 된 뒤에 후임들에게는 그런 고통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생각을 현실로 옮길 만한 동기가 충분히 생겼을 텐데, 일단 자기가 편해지고 나니까 그런 동기 따위는 아예 완전히 저버린 것이오?

 

이렇게 말하는 나를 보면서 당신들은 이렇게 욕할 거요. 당신들이 군대에 있을 때 모여서 후임들을 비난할 때마다 그랬을 거요. 원래 사람이 자기가 잘못한 것은 잘 모르고 남이 잘못한 것만 잘 보는데, 내가 바로 딱 그런 사람이라고 말이오. 나는 선임들에게 미움을 사는 후임들 가운데 말이 많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로 당신들 사이에서 유명했으니, 정말 개념 없고 인간 같잖은 후임이라고 꼴도 보기 싫다고 말이오.

 

물론 그런 면도 있고 당신들에게 잘못한 것도 많다고 인정하오. 내가 생각하기에도 정말 잘못한 것은 분명히 마음 한 구석에 담아놓고 다른 이들에게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항상 다짐하고, 실제로 그러기가 쉽지 않아서 항상 자책하고 있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들이 내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런 질문을 던질 자격이 없다고 비난할 수는 없소. 내가 말하는 것은 잘못했다는 말이 정당한지 따져보면 실제로는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부조리이기 때문이오. 이성이고 논리고 뭐고 통하지 않는 그 우스꽝스럽고 짜증나는 그 어떤 것 말이오.

 

나는 되도록 당신들을 좋게 보려고 했소. 그리고 해병대다운 군기를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그런 뭔가 이상한 논리도 어떻게든지 이해하려고 했소. 하지만 아무리 고민하고 수많은 간부들과 후임들과 진지하게 토론해 봐도 그럴 수 없었소. 후임들과도 나름대로 합의를 보기는 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소. 계속 논쟁을 벌여봐야 좋은 소리를 못 들을 게 빤할 뿐만 아니라, 논쟁을 벌이면서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한계에 부닥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오. 당신들도 그런 한계에 지쳐서 한 때 했던 생각을 저버렸을 뿐이라고 나름대로 항변할 수도 있을 거요. 그리고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이치에 맞고 그럴듯해 보이지만 뜯어보면 이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닌데도 군대라서 어쩔 수 없다면서 버젓이 벌어지는 그런 일 때문에 당신들도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짜증이 시도 때도 없이 치밀었을 것이오. 병들을 괴롭히는 온갖 악습 또한 논리가 통하지 않는 그런 몹쓸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거요.

 

군대에서 '공부 9단 오기 10단'이라는 책을 읽다가 우연히 알아낸 이 책 'Catch-22'를 보면서 나는 가려운 부분을 살살 긁어주는 그런 짜릿한 느낌을 정말 오랫동안 맛봤다오. 당신들이나 나나 항상 시달려야 했던 군대에서 벌어지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정말 어처구니없는 온갖 일을 그토록 재미있고 자세하게 풍자한 조셉 헬러라는 작가에게 경외심을 품을 정도로 그 느낌은 강렬했소. 조셉 헬러는 피아노사 섬이 너무 작아서 이 소설에 묘사된 모든 사건이 일어날 만한 곳이 아닌 것이 분명하며, 지리 배경과 마찬가지로 주인공들 역시 상상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그가 폭격기를 타고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경력이 있는 만큼 군대에서 온갖 이상한 일을 다 겪었기에 이런 상상을 해낼 수 있었을 것임이 분명하오. 전쟁에 관한 아무 경험도 없이 상상만으로 이 정도 풍자 소설을 써냈다면 조셉 헬러는 정말 엄청난 천재라고 봐야 할 거요.

 

굳이 여러 가지 예를 들 필요도 없이 '공부 9단 오기 10단'을 쓴 박원희가 주목한 단 한 가지 묘한 논리만 살펴봐도 이 소설 전반에 넘쳐흐르는 광기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알 수 있을 거요. 이 소설에서는 모든 것이 밑도 끝도 없이 그저 혼란스럽고 짜증나고 어처구니없는데, 그런 효과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자 문장도 정신이 하나도 없고 앞뒤도 잘 맞지 않으며 누가 진짜 주인공인지도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게 해 놨소. 실제로 이 소설을 우리말로 옮긴 안정효도 머리말에서 '수많은 주인공들'이라는 표현을 썼소. 그 가운데 그나마 가장 핵심 같아 보이는 사람이 요사리안 공군 대위인데, 이 군인이 'Catch-22'(여기에서 'Catch'는 조항(대개 article, stipulation, caluse 따위를 쓰는데, 법이나 규칙에 있는 조항이라는 뜻도 있다고 하오)과 함정(trick, trap 따위로 바꿔 쓸 수 있소)이라는 두 가지 뜻을 품고 있으니, 아주 적절한 표현이오)가 파 놓은 교묘한 함정에 어떻게 빠졌는지 보시오.

 

요사리안은 정해진 출격횟수를 다 채우지만 진급에 눈이 먼 윗대가리들이 실적을 쌓고자 자기 마음대로 출격횟수를 자꾸만 늘려서 전쟁터에서 빠져나갈 수 없게 되고 목숨에 심각한 위협을 느끼오. 그래서 기껏 생각해낸다는 논리가 자기는 정신이상이라서 출격을 할 수 없다는 거요. 더욱 기가 막힌 것은 'Catch-22'에 따르면 자기가 정신이상이라는 것을 아는 건 정신이 온전하다는 걸 증명한다는 것이라고 못박아버리니 할 말이 없다는 거요. 결국 요사리안은 전쟁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절대 제정신이 아닌 온갖 사람들과 해괴한 짓이란 해괴한 짓은 모두 일삼고 다니오.

 

내가 보기에 이는 전쟁 속에서 사람이 겪는 충격과 공포 때문에 생기는 광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소. 당신들이나 나나 마찬가지로 군대 안에서 느꼈던 이상하기 짝이 없는 광기와 딱 들어맞는 것이오. 아무리 군대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군대에 장기 복무하겠느냐는 제의를 받으면 대부분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까닭이 거기에 있소. 그건 정훈 교육 같이 세밀하게 잘 짜인 논리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오. 조국, 민족, 전우 같은 거창한 명목은 상명하복과 엄격한 위계질서를 덕목으로 여기는 숨 막히는 조직 속에서 피어오르는 광기를 승화하고자 만들어낸 신화일 뿐, 그런 모호한 개념 자체가 군대를 휘어잡은 광기를 걷어낼 수는 없소. 그 광기가 이 소설에서처럼 사람들을 제대로 미치게 만들지나 않으면 천만다행이오.

 

 

……군법회의에 회부된 사람은 어째서 자기가 그런 처벌을 받는지도 알 길이 없고, 폭격을 해야 할 폭격수는 목표물이 아니라 지상에서 날아오는 포탄만 관측하느라고 바쁘다. 질서는 없고 혼돈뿐이며, 희망과 꿈은 없고 악몽뿐이다. 인디언 화이트 하프오트 추장이 가는 곳에는 항상 석유가 나와서, 결국 석유 회사들에게 쫓겨만 다니다가 피아노사에 와서야 평화를 찾는다. 낙태 수술로 큰 돈을 벌려다가 징집되어 좌절당한 다네카 군의관은 살았으며 죽어서 죽어버린 자기의 생존 증명을 하려고 발버둥친다. 출격만 나가면 추락을 당하던 기계 미치광이 오르는 결국 일부러 추락 연습을 하다가 탈영했음이 나중에야 밝혀진다. 전 세계를 주름잡는 신디케이트를 운영하는 마일로는 7센트에 사온 달걀을 5센트에 팔아서 모든 목적을 달성하고, 독일군과 계약을 맺어 자기 부대를 폭격한다. 시계처럼 정확한 시간에 밤마다 악몽을 꾸는 헝그리 조는 누드 사진을 촬영하려고 미친 듯 쫓아다니지만 언제나 실패한다. 취사장의 스나크 상등병은 인간의 무지를 혐오해서 고구마에 비누를 짓이겨 넣어 모든 사람이 식중독을 일으키게 한다. 중대장이 못 되어서 질투가 난 블랙 대위는 충성의 맹세를 시키느라고 작전에도 차질을 가져온다. 캐트카트 대령은 하느님이 사병과 장교의 얘기에 똑같이 귀를 기울인다는 사실이 못마땅해서 기도회를 취소한다. 알피는 하녀를 강간하고 나서 창밖으로 던져 죽인 다음에, 수많은 사람이 전쟁에서 죽어 가는데 그까짓 하녀 하나쯤 무슨 관계가 있냐고 조금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창녀를 미칠 듯이 사랑하는 네이틀리와 세상의 모든 외로움을 혼자 누리는 메이저 메이저, 열병식에 환장한 셰이스코프, 요사리안을 죽이려고 끈질기게 추적하는 창녀……

 

무엇이나 다 둘로 보이다가 죽은 사람인 주세페의 대역을 하느라고 죽는 시늉을 해야 하는 요사리안, 병원 안에서의 말끔한 죽음과 바깥의 처참한 죽음, 하얀 군인의 존재에 대한 토론, 클레빈저를 처벌하려는 징계 위원회에서 벌어지는 짜증스럽고 어처구니없는 대화, 미국과 이탈리아의 승리와 패배, 그리고 미국과 개구리를 비교하는 네이틀리와 노인의 역설적인 모순이 담긴 언쟁, 서로 죽이는 것은 자신을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임을 상징하는 듯한 마일로의 폭격과 기총소사, 맥워트의 비행기 프로펠러에 상반신이 잘려 다리만 남고 죽어버리는 키드 샘슨, 군목을 체포해서 지하실에서 버리는 심문, 폭격보다는 회피 동작에 더 열중하는 요사리안……

 

 

이건 옮긴이가 쓴 머리말 일부를 옮긴 건데, 내가 머리를 굴려 쓰는 것도 아니고 타자를 치는 것뿐이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짜증이 저절로 나는구려. 흥미롭게도 이 글을 정신없이 쓰려니 갑자기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안 그래도 낮은 일하는 효율도 더 낮아졌소. 그동안 군대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몰려온 것처럼 아프오. 두통약을 먹어도 해결할 수 없는 두통처럼, 사람을 사람답게 한다는 이성을 아무리 들이대도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모순으로 똘똘 뭉친 이 광기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 같소. 그 때문에 당신들이나 나나 매우 많은 피해를 입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오.

 

이 소설 속에서 군대에 도사리는 광기에서 스스로 구원받는 두 사람이 쓴 방법은 탈영이라는 위법 행위요. 하지만 일단 군대에서 벗어나면 그 안에 도사리는 모든 광기와 부조리에서는 확실히 구원받을 수 있소. 게다가 다행히 전역이라는 법에 어긋나지 않는 구원법이 모든 군인들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오. 그렇기에 당신들도 어떻게든지 참았고 결국은 전역함으로써 구원받았잖소? 이 안에서 너무나도 증오했던 당신들이 민간인으로서 전화를 했을 때 받았더니, 이 안에 있을 때와는 반대로 사람이 매우 달라진 듯해서 뜻밖으로 은근히 반갑더구려. 역시 온갖 논쟁을 벌일 필요가 없이 서로에게 좋게 빨리 모두 군대에서 벗어나 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모든 악연에서 벗어나는 단 한 가지뿐인 방법이었소.

 

그 방법대로 당신들은 이곳을 떠났고 곧 있으면 나도 이곳에서 벗어날 거요. 아무리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한들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다시 군대로 돌아가는 일은 절대 없을 거요. 또 무슨 악연을 만나고 스트레스를 받고 화를 낼 지 알 수 없기 때문이오. 부질없는 말싸움은 그만두고 군대에서 있었던 모든 일은 다 잊어버리는 게 좋겠소. 설사 끄집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 하더라도 혹시나 당신들을 만났을 때 그 앞에서는 절대 들춰내지 않겠소. 서로 괜히 열 받을 필요는 하나도 없으니 말이오. 후임들에게도 지금까지 꾸준히 내 뜻을 전달하기는 했지만, 결국 그냥 꾹 참다가 전역하는 수밖에 없다는 힘없는 결론을 내린 뒤에는 웬만하면 입을 다물고 있었소. 그러다가 이 소설을 읽은 뒤에 결국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은 거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이 소설은 전쟁이 단순히 우스꽝스럽고 부질없는 짓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전쟁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을 낳는 사회도 풍자하고 비꼬고 있소. 근면한 메이저 메이저의 아버지가 일을 하지 않아서 돈을 버는 어이없는 작태와, 화이트 하프오트 추장이 가는 곳에는 무조건 석유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추장을 쫓아다니다가 나중에는 추장이 털썩 주저앉으려는 시늉만 해도 추장을 쫓아내고 그 자리를 파헤치는 석유 회사 소속 시추공자 따위가 있소.

 

굳이 여러 가지 예를 들 필요도 없이 '공부 9단 오기 10단'을 쓴 박원희가 주목한 단 한 가지 묘한 논리만 살펴봐도 이 소설 전반에 넘쳐흐르는 광기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알 수 있을 거요. 이 소설에서는 모든 것이 밑도 끝도 없이 그저 혼란스럽고 짜증나고 어처구니없는데, 그런 효과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자 문장도 정신이 하나도 없고 앞뒤도 잘 맞지 않으며 누가 진짜 주인공인지도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게 해 놨소. 실제로 이 소설을 우리말로 옮긴 안정효도 머리말에서 '수많은 주인공들'이라는 표현을 썼소. 그 가운데 그나마 가장 핵심 같아 보이는 사람이 요사리안 공군 대위인데, 이 군인이 'Catch-22'(여기에서 'Catch'는 조항(대개 article, stipulation, caluse 따위를 쓰는데, 법이나 규칙에 있는 조항이라는 뜻도 있다고 하오)과 함정(trick, trap 따위로 바꿔 쓸 수 있소)이라는 두 가지 뜻을 품고 있으니, 아주 적절한 표현이오)가 파 놓은 교묘한 함정에 어떻게 빠졌는지 보시오.

 

요사리안은 정해진 출격횟수를 다 채우지만 진급에 눈이 먼 윗대가리들이 실적을 쌓고자 자기 마음대로 출격횟수를 자꾸만 늘려서 전쟁터에서 빠젼갈 수 없게 되고 목숨에 심각한 위협을 느끼오. 그래서 기껏 생각해낸다는 논리가 자기는 정신이상이라서 출격을 할 수 없다는 거요. 더욱 기가 막힌 것은 'Catch-22'에 따르면 자기가 정신이상이라는 것을 아는 건 정신이 온전하다는 걸 증명한다는 것이라고 못박아버리니 할 말이 없다는 거요. 결국 요사리안은 전쟁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절대 제정신이 아닌 온갖 사람들과 해괴한 짓이란 해괴한 짓은 모두 일삼고 다니오.

 

내가 보기에 이는 전쟁 속에서 사람이 겪는 충격과 공포 때문에 생기는 광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소. 당신들이나 나나 마찬가지로 군대 안에서 느꼈던 이상하기 짝이 없는 광기와 딱 들어맞는 것이오. 아무리 군대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군대에 장기 복무하겠느냐는 제의를 받으면 대부분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까닭이 거기에 있소. 그건 정훈 교육 같이 세밀하게 잘 짜인 논리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오. 조국, 민족, 전우 같은 거창한 명목은 상명하복과 엄격한 위계질서를 덕목으로 여기는 숨 막히는 조직 속에서 피어오르는 광기를 승화하고자 만들어낸 신화일 뿐, 그런 모호한 개념 자체가 군대를 휘어잡은 광기를 걷어낼 수는 없소. 그 광기가 이 소설에서처럼 사람들을 제대로 미치게 만들지나 않으면 천만다행이오.

 

 

……군법회의에 회부된 사람은 어째서 자기가 그런 처벌을 받는지도 알 길이 없고, 폭격을 해야 할 폭격수는 목표물이 아니라 지상에서 날아오는 포탄만 관측하느라고 바쁘다. 질서는 없고 혼돈뿐이며, 희망과 꿈은 없고 악몽뿐이다. 인디언 화이트 하프오트 추장이 가는 곳에는 항상 석유가 나와서, 결국 석유 회사들에게 쫓겨만 다니다가 피아노사에 와서야 평화를 찾는다. 낙태 수술로 큰 돈을 벌려다가 징집되어 좌절당한 다네카 군의관은 살았으며 죽어서 죽어버린 자기의 생존 증명을 하려고 발버둥친다. 출격만 나가면 추락을 당하던 기계 미치광이 오르는 결국 일부러 추락 연습을 하다가 탈영했음이 나중에야 밝혀진다. 전 세계를 주름잡는 신디케이트를 운영하는 마일로는 7센트에 사온 달걀을 5센트에 팔아서 모든 목적을 달성하고, 독일군과 계약을 맺어 자기 부대를 폭격한다. 시계처럼 정확한 시간에 밤마다 악몽을 꾸는 헝그리 조는 누드 사진을 촬영하려고 미친 듯 쫓아다니지만 언제나 실패한다. 취사장의 스나크 상등병은 인간의 무지를 혐오해서 고구마에 비누를 짓이겨 넣어 모든 사람이 식중독을 일으키게 한다. 중대장이 못 되어서 질투가 난 블랙 대위는 충성의 맹세를 시키느라고 작전에도 차질을 가져온다. 캐트카트 대령은 하느님이 사병과 장교의 얘기에 똑같이 귀를 기울인다는 사실이 못마땅해서 기도회를 취소한다. 알피는 하녀를 강간하고 나서 창밖으로 던져 죽인 다음에, 수많은 사람이 전쟁에서 죽어 가는데 그까짓 하녀 하나쯤 무슨 관계가 있냐고 조금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창녀를 미칠 듯이 사랑하는 네이틀리와 세상의 모든 외로움을 혼자 누리는 메이저 메이저, 열병식에 환장한 셰이스코프, 요사리안을 죽이려고 끈질기게 추적하는 창녀……

 

무엇이나 다 둘로 보이다가 죽은 사람인 주세페의 대역을 하느라고 죽는 시늉을 해야 하는 요사리안, 병원 안에서의 말끔한 죽음과 바깥의 처참한 죽음, 하얀 군인의 존재에 대한 토론, 클레빈저를 처벌하려는 징계 위원회에서 벌어지는 짜증스럽고 어처구니없는 대화, 미국과 이탈리아의 승리와 패배, 그리고 미국과 개구리를 비교하는 네이틀리와 노인의 역설적인 모순이 담긴 언쟁, 서로 죽이는 것은 자신을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임을 상징하는 듯한 마일로의 폭격과 기총소사, 맥워트의 비행기 프로펠러에 상반신이 잘려 다리만 남고 죽어버리는 키드 샘슨, 군목을 체포해서 지하실에서 버리는 심문, 폭격보다는 회피 동작에 더 열중하는 요사리안……

 

 

이건 옮긴이가 쓴 머리말 일부를 옮긴 건데, 내가 머리를 굴려 쓰는 것도 아니고 타자를 치는 것뿐이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짜증이 저절로 나는구려. 흥미롭게도 이 글을 정신없이 쓰려니 갑자기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안 그래도 낮은 일하는 효율도 더 낮아졌소. 그동안 군대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몰려온 것처럼 아프오. 두통약을 먹어도 해결할 수 없는 두통처럼, 사람을 사람답게 한다는 이성을 아무리 들이대도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모순으로 똘똘 뭉친 이 광기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 같소. 그 때문에 당신들이나 나나 매우 많은 피해를 입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오.

 

이 소설 속에서 군대에 도사리는 광기에서 스스로 구원받는 두 사람이 쓴 방법은 탈영이라는 위법 행위요. 하지만 일단 군대에서 벗어나면 그 안에 도사리는 모든 광기와 부조리에서는 확실히 구원받을 수 있소. 게다가 다행히 전역이라는 법에 어긋나지 않는 구원법이 모든 군인들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오. 그렇기에 당신들도 어떻게든지 참았고 결국은 전역함으로써 구원받았잖소? 이 안에서 너무나도 증오했던 당신들이 민간인으로서 전화를 했을 때 받았더니, 이 안에 있을 때와는 반대로 사람이 매우 달라진 듯해서 뜻밖으로 은근히 반갑더구려. 역시 온갖 논쟁을 벌일 필요가 없이 서로에게 좋게 빨리 모두 군대에서 벗어나 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모든 악연에서 벗어나는 단 한 가지뿐인 방법이었소.

 

그 방법대로 당신들은 이곳을 떠났고 곧 있으면 나도 이곳에서 벗어날 거요. 아무리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한들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다시 군대로 돌아가는 일은 절대 없을 거요. 또 무슨 악연을 만나고 스트레스를 받고 화를 낼 지 알 수 없기 때문이오. 부질없는 말싸움은 그만두고 군대에서 있었던 모든 일은 다 잊어버리는 게 좋겠소. 설사 끄집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 하더라도 혹시나 당신들을 만났을 때 그 앞에서는 절대 들춰내지 않겠소. 서로 괜히 열 받을 필요는 하나도 없으니 말이오. 후임들에게도 지금까지 꾸준히 내 뜻을 전달하기는 했지만, 결국 그냥 꾹 참다가 전역하는 수밖에 없다는 힘없는 결론을 내린 뒤에는 웬만하면 입을 다물고 있었소. 그러다가 이 소설을 읽은 뒤에 결국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은 거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이 소설은 전쟁이 단순히 우스꽝스럽고 부질없는 짓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전쟁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을 낳는 사회도 풍자하고 비꼬고 있소. 근면한 메이저 메이저의 아버지가 일을 하지 않아서 돈을 버는 어이없는 작태와, 화이트 하프오트 추장이 가는 곳에는 무조건 석유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추장을 쫓아다니다가 나중에는 추장이 털썩 주저앉으려는 시늉만 해도 추장을 쫓아내고 그 자리를 파헤치는 석유 회사 소속 시추공자 따위가 있소.

 

2006년 2월 6일부터 나를 구속하기 시작한 'Catch-22'는 2008년 2월 3일에 효력을 저절로 잃어버릴 거요. 하지만 군대보다 훨씬 더 크고 복잡한 사회에 나가면 군대보다도 더한 'Catch-22'가 기다리고 있을 확률이 얼마든지 있으니, 군대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절대 마음을 놓지는 않겠소. 앞에서도 말했듯이 광기에서 휩싸인 사회가 태생이 광기를 타고날 수밖에 없는 군대를 더욱 이상하게 만들고, 그 속에서 내 뒤를 이을 젊은 군인들이 미쳐 나갈 테니 말이오. 심지어 군대에 와서야 평화를 찾는 하프오트 추장 같은 사람도 나올 수 있는데, 그런 비극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하오. 군대가 변하려면 사회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으니, 사회에서 어찌 내가 사회 참여 운동을 소홀히 할 수 있겠소?

 

이 글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풀어놓은 것일 뿐이라오. 아마 군 복무 기간을 결산할 때 군대와 사회와 이 소설에 관한 가장 정확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거요. 그 결론을 내리는 그 날까지 당신들 모두 잘 지내기를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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