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의 아이들 - 양장본
가브리엘 루아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교육열만큼은 이 세상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대한민국 부모님답게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내가 5살일 때 유치원도 아닌 유아원에 나를 입학시키셨다. 석유 냄새 풀풀 나는 주유소 뒤 언덕에 자리잡은 유아원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봐도 나는 그 유아원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찌나 선생님 말을 안 들었는지 도저히 안 되겠다고 선생님과 부모님 사이에 이루어진 합의에 따라 여섯 달도 못 채우고 그만뒀더란다.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유아원에 관한 기억이라고 하면 쪼글쪼글한 건포도가 여러 개 박힌 달콤한 황갈색 머핀, 유아원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 수업을 한답시고 선생님이 앞에 계셔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 탁자 밑으로 기어들어가 몸을 바짝 붙였던 바닥에 깔린 부드러운 양탄자, 이 세 가지이다.

 

어쨌든 그 세 가지가 나에게 남아 있다면, 그 유아원 선생님에게는 나에 관한 매우 곤란한 기억이 매우 남아 나를 분명히 특이한 아이로 인식하기에는 충분했을 것이다. 그런 현상은 유아원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처럼 어머니와 함께 노래에 맞춰 신나게 율동을 하지 못하고 삐져 있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어떤 여자 아이가 글씨 좀 더 크게 써 달라고 부탁한 걸 가지고 칠판에 글씨 쓰는데 귀찮게 한다고 화를 내는 바람에 대판 싸워버리고, 독후감 숙제를 해 오랬더니 나름대로 삽화를 덧붙여서 아예 신국판 이야기를 만들고, 수학경시대회에서 성적은 시원찮으면서도 다른 아이들이 아무도 못 푼 문제를 나 혼자 풀었다는 까닭으로 온갖 근거 없는 소문에 휘말리고, 다른 아이들이 스타크래프트에 정신없이 빠졌을 때 오락은 안 하고 혼자서 공상 소설 쓰는데 집중하고……이런 식으로 늘어놓자면 밑도 끝도 없다.

 

유치원에서든 초등학교에서든 중학교에서든 어디에서든 나는 어딘가 모르게 남들과 다른 생각과 행동으로 어떻게든지 독특한 놈으로 알려졌던 것 같다. 그건 어릴 때부터 신앙심이 워낙 뛰어나서 축일에는 어머니 젖도 먹지 않았다는 니콜라이 성인과 같은 그런 경건하고 정제된 독특함이 아니었다. 일그러진 유치함이 미약하게 뿜어내는, 하지만 미숙한 정신을 조금씩 무너뜨릴 수 있는 그런 광기였다. 대부분 사람들이 지니고 있기 마련인 유년기에 서리는 자기만의 독특하고 끔찍한 어둠과 본질은 같지만 농도가 훨씬 짙다고 보면 적절할 것 같다.

 

나는 그런 짙은 독특함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마음에 들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도 끔찍했다. 유치한 정신으로도 그것이 끔찍하다는 걸 알아차린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었지만, 알아차리기만 했을 뿐 거기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었다. 유치한 행동은 계속 이어지면서 순수하고 아름다웠다고 기억하고 싶은 내 어린 시절에 숱한 얼룩을 남겼고, 그 때문에 어린 시절로 다시는 되돌아가고 싶지 않고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과거는 곧 후회다'라는 자조 섞인 말에 얼마나 깊이 공감했는지 모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대부분 아이들이 다니는 보통 학교에 들어가지 않고 집에서 가정교육을 받거나 대안 교육을 받는 식으로, 좋든 싫든 낯선 아이들과 어른들과 함께 지내야 하는 의무에서 자유로웠다면 과연 내 삶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소설가 박완서는 유년기를 물들인 어둠과 학교에 처음 갔을 때 느끼는 그 낯선 공포와 두려움과 떨림과 설렘 따위 온갖 감정은 다시는 생각하기 싫으면서도 한편으로 인생을 밝혀 긍정할 수밖에 없는 '빛이 남긴 기록'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무릎과 이마를 탁 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생활기록부에 적혔던 활발하다는 평가와는 다르게 수줍음을 매우 많이 타는 성격이었던 내가 안락한 집에서 벗어나 거칠다면 너무나도 거친 학교에 갔을 때 느꼈던 그 까닭 모를 흥분과 두려움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지적했기 때문이다. 또래 남자아이들과 서로 싸우고 공을 차고 티격태격했고 여자아이들 앞에서는 어쩔 줄을 몰랐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막무가내로 좋아했던 광기와 순수함이 뒤섞인 알 수 없는 모순교호집합같은 그 모호함 말이다.

 

그 모호함은 나에게 끔찍한 기억을 수도 없이 남겼지만, 그래도 나는 학교에 적응한 뒤에도 그것을 버릴 수 없었다. 집과는 전혀 다른 그 거칠고 순수하고 유치한 또 다른 세상에서 나는 아이들과 어울리고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으면서 무럭무럭 자랐고, 한 사회에서 아무 이상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어엿한 인격체가 되는 길을 밟았다. 낯선 것에서 불안과 혼란을 느끼다가 그 속에 숨어 있는 질서를 깨달았고, 싸우고 화해하며 말뿐만이 아닌 마음으로 통하는 방법을 익혔고, 아무 까닭 없이 좋아하면서 손을 잡으며 신비로운 사랑에 남몰래 눈을 떴다. 지금은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는 분명한 실체인 시간에 투영된 온갖 일그러진 기억을 되새기며 심하게 비틀어져 전혀 진실 같지 않아 보이는 진실을 애써 찾아내 한 땀 한 땀 한 가닥 실에 꿰어 맞추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가끔씩 나도 모르게 이 책 '내 생애의 아이들'에 나오는 아이들과 같은 그토록 돌아가기 싫어하던 짙은 독특함이 밴 시절로 되돌아갔다. 작가 평론에 나오는 설명을 그대로 옮기자면, 플랑드르 억양을 버리지 못한 로제 베르헤겐, 소용돌이처럼 이탈리아말로 어린 애정을 쏟아놓으며 '마늘과 라비올리와 감초 냄새'를 물씬 풍기는 빈센토, '약간 흐릿하고 쓸쓸한 상아색을 띠는 여린 빛으로 절어 있는' 오래된 아일랜드산 손수건을 뒤늦은 선물로 들고 온 클레르, 폴란드계 유태인 출신인 프티-루이, 이름부터 다른 나라 사람 같은 니콜라이, '모국어'로 노래 부르는 우크라이나 출신인 닐, '자기가 지닌 힘을 넘어서는 어떤 힘, 옛날에는 신비스러우며 무한하며 집단에서 드러내던 것이었던 어떤 열정'으로 글씨를 쓰는 어린 드미트리오프, 프랑스 오베르뉴 출신인 아이들, 프랑스에서 가져온 리넨 시트를 꺼내어 선생님의 침상을 마련하는 앙드레, 인디언 혼혈인 메데릭……

 

그러면서 주인공 가브리엘 루아와 같은 젊은 여선생님을 아이로서 새롭게 만났다. 빈센토처럼 그녀를 막무가내로 끌어안고 키스를 퍼붓고, 메데릭처럼 그녀에게서 사랑을 얻지 못해 안달하다가 그녀를 떠나보내며 들꽃으로 만든 꽃다발을 안겼고, 앙드레처럼 집에 찾아온 그녀에게 말없이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는 어린아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강인한 힘과 향긋한 커피를 끓이고 빵을 굽는 섬세한 정을 한꺼번에 보여주었다. 내가 살아온 현실과는 전혀 다를지언정 나는 현실 같은 환상 속에서 그 아이들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나 또한 그들과 같은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어느 정도'라는 말을 붙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금 내가 다시는 생각하기도 싫은 유치함을 보였던 어린 시절을 통과한 청년이자,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희망에 부풀어 있는 예비교사로서,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아이들이 보여준 그 다양한 느낌을 마땅히 그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그런 유치함과 순수함은 나에게서 거의 사라졌고 세상살이와 먹물에 찌들면서 나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아무리 나도 모르게 무의식 속에 깊이 잠겨도 풋내기 교사들과 티 없는 아이들이 공유하는 순수를 듬뿍 담아낸 이 대서사시를 온전히 그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들이는 공은 앞으로 내 삶에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아이들을 아무 가식 없이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는 가브리엘 루아가 품은 불안과 떨림을 이해할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고 있다. 임용고시에 당당히 합격해 처음으로 교단에 서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이 책을 완벽하지는 않지만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다가오는 2008년 새해는 그 가슴 벅찬 순간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할 때이다. 그 시작을 빛내는 것은 내 몫이다. 알았으면 움직여야 할 의무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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