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리는 소녀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와 마찬가지로, 이 책 '시간을 달리는 소녀' 한 권에 단 한 가지 이야기가 아닌 세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길고 맨 처음에 나오는 이야기가 '시간을 달리는 소녀'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다치바나 다카시가 이 책을 쓴 츠츠이 야스타카에게서 영향을 받았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는 모른다. 어쨌든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에서 다치나바 다카시가 자세하게 이야기한 인류 지성사 개관과 예측을, 서기 2660년에서 온 후카마치 가즈오가 요시야마 가즈코에게 그대로 들려준다.

 

평범한 여학생 요시야마 가즈코는 어느 날 과학실에서 라벤더 향기를 맡은 뒤 정신을 잃는다. 깨어난 뒤 그녀에게 시공간을 뛰어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는데……과연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나름대로 재미있고, 여운을 남기는 결말이 특히 강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텔레포테이션(Teleportation), 포스 배리어(Force Barrier), 타임 리프(Time Lift), 텐션(Tension)……서기 2600년을 넘어선 미래에 개발되는 시공간 이동 기술을 설명하는 데는 아예 영어로 도배를 해 놨는데, 이건 번역한 사람이 우리말로 좀 더 깔밋하게 옮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악몽>

 

인간 심리가 얼마나 신비로운 것인지 깨달을 수 잇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마사코는 동생 요시오가 분명히 봤다고 주장하는 손에 가위를 든 여자 귀신과 피 묻은 남자 머리가 왜 나타나는지 밝혀내고, 자기가 왜 반야 가면과 난간을 싫어하는지도 무의식 속에 숨어있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더듬어가며 조금씩 깨달아간다.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모든 것이 분명해지고 마사코가 꾸던 악몽도 사라진다.

 

 

<The Other World>

 

다원우주, 그리고 동시존재.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연속된 시간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역사를 가진 세계를 한 가닥의 날실로 본다면, 시간이라는 것은 그 날실을 무수히 가로지르는 수없이 많은 씨실이라 할 수 있다.

 

한 장의 직물을 생각해 보라.

 

그 작물은 무수한 날실과 무수한 씨실로 짜여 있다. 그 씨실이 바로 시간이다. 우리의 일생, 혹은 세계의 역사,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무한히 잘게 나누고 있는 것이 바로 시간이다.

 

그리고 날실 중 한 가닥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많은 날실들은?

 

그것은 또 다른 세계, 다른 공간에 있는 우주, 그리고 다른 우주에도 지구가 있고 당신이 있다.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당신이…….

 

이것이 다원우주라는 개념이다.

 

서로 이웃한 두 가닥의 날실은 거의 비슷하다. 바로 옆에 있는 시간, 씨실끼리 서로 비슷한 것처럼……. 일 초 전의 이 세계와 일 초 후의 이 세계가 거의 비슷한 것처럼…….

 

이웃한 두 가닥의 날실에 있는 두 명의 당신은 역시 거의 비슷하다. 둘 다 같은 직업일 것이고, 만약 당신의 손에 상처가 있다면 또 한 명의 당신도 똑같은 곳에 상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무 가닥, 서른 가닥, 그리고 수백 가닥 떨어진 날실에 있는 당신은? 거기에 있는 당신은 학생일 수도 있고 발명가일지도 모른다. 또는 총리대신일 수도 있다.

 

이것이 동시존재라는 개념이다.

 

……

 

노부코가 도착한 세계. 그곳은 노부코가 내심 이러이러했으면 좋겠다고 바라왔던 세계였다. 사고가 났을 때 노부코가 바라던 세계가 원래 세계에서 밀려나온 노부코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것이다.

 

……

 

 

평범한 학생이었던 노부코가 서기 3921년에서 일어난 광자 대량 생산 장치인 베라트론이 폭발하는 사고 때문에 자기가 있던 세계에서 다른 세계(The Other World)로 이동하고 만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노부코는 다원우주에 있는 수없이 많은 노부코라는 동시존재 가운데 한 명일 뿐이다.

 

 

이 책을 쓴 츠츠이 야스타카는 어릴 때부터 영재 교육을 받았다고 하고, 그가 지금까지 쓴 모든 작품마다 천재성이 번득인다고 했다. 그러나 이 책만으로는 그 말을 인정하기 힘들다. '파프리카', '베트남 관광 공사', '은령의 끝' 같은 다른 작품을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새로운 우주론을 아주 얄팍하게나마 더욱 자세히 이해할수록 내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더욱 커지는데, 그 물음표 속에 담겨 있는 수많은 모호한 이미지는 나중에 글로 확실하게 정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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