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처럼 생각하기
로버트 베이트먼 지음, 김연수 옮김 / 자유로운상상 / 200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저하게 우파 지식 체계를 따르는 군대에서 실시하는 정훈교육을 상부에서 크게 만족할 정도로 소화해 놓고도, 사색을 더욱 많이 하고 책과 글에 더욱 열심히 파묻힐수록 나는 좌파에 더욱 이끌리고 있다. 객관을 가장해 자기가 주장하는 사상이 뿌리내린 근본에 대한 책임마저 피하려 한다는 비난까지 무릅쓰면서, 다치바나 다카시가 자기를 스스로 규정했듯이 철저하게 구경꾼으로 머무르려고 했지만, 공부가 깊어질수록 그러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심지어 마르크스가 제시한 사회 발전 5단계에서 마지막 단계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산주의 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을 내가 정확하게 예측하겠다고 마음먹기까지 했다. 러시아 혁명사에서 가장 어이없는 역설은, 혁명가들을 탄압하고자 로마노프 왕조가 만든 시베리아 형무소가 혁명가들을 더욱 단단하게 정련하는 용광로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라고 어느 책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내가 바로 그 역설을 증명하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으레 그렇듯이 나는 내가 왜 그렇게 변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렇게 길지는 않은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은 도무지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우파들이 주장하는 대로 세상이 계속 굴러간다면 인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멸망에 이르며, 그 참극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좌파들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는 것뿐이라는, 극단에 치우친 결론이 나왔다. 이는 어느 철학이든 사상이든 이론이든 각자 장점과 단점이 있으며, 그에 따라 항상 그 사실을 인정하고 객관과 중립을 지키려고 힘써야 하며, 오로지 그 안에 들어있는 비판 정신과 창조성만이 객관으로서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견해를 존중하던 나로서는,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오로지 좌파만이 옳고 우파는 그르다는 식으로 한 쪽으로 완전히 기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 '산처럼 생각하기'를 읽으면서 나는 그런 생각에 회의를 느꼈다. 그리고 예전에 '백범일지' 독후감을 쓸 때 그토록 강조했던 모든 논리 아래 깔려 있는 기본 전제인 '삶'을 떠올렸다. 죽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아무 뜻도 없다. 오로지 살아있는 생명에게나 문명과 학문과 사상이 뜻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문명과 학문과 사상은 생명을 죽이는 길이 아닌 살리는 길을 닦아야 한다. 그 길은 지구를, 곧 자연을 보호하는 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광기에 휩싸인 현대 문명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그 길을 만들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뉴턴 역학 덕분에 과학 혁명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은 종교에 억눌려 있던 이성을 새롭게 펼칠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사람들은 자연이 돌아가는 이치를 하나 둘씩 알아내면서 자연에 경외감을 품기보다는, 기계론과 이성 우월주의에 근거하여 자연을 오로지 개발하고 정복할 대상으로만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는 수 백 년이 지난 뒤에야 엄청난 실수로 밝혀졌다.

 

자연과는 상극인 성질을 지닌 인류 문명이 발달할수록 자연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아무리 이성이 발달했단 할지언정 결국 자연을 구성하는 한 생명체이며 그 안에서 삶을 보장받는 사람이, 자연을 그토록 심하게 파괴하면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이익을 주는 조직을 한 구성원이 망쳐버리면, 그 구성원이 그동안 보장받던 이익을 잃업버리는 건 당연하다. 자연과 인류가 그런 관계라는 사실을 모르는가? 그 이익이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정말 모르는가?

 

이 책을 쓴 로버트 베이트먼은 자연을 담은 그림으로 온 세상에서 명성이 꽤 자자한 화가이다. 그는 이미 어릴 때 자연을 벗 삼아 함께 사는 길이야말로 자기가 걸어야 할 길이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는 자연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며 그림을 그렸고,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그 속에 담긴 진리를 수 십 해 동안 누구보다도 뚜렷하게 관찰하고 잘 이해했다. 문명이 주는 이기에만 찌든 현대인들에게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탁월한 깨달음과 혜안이 이 책 전반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생물학을 전혀 공부하지 않았으면서도 자연과 생명이 돌아가는 이치를 훤히 꿰뚫고 있는 한평생 흙을 벗 삼아 농사를 지으며 굵은 땀방울을 흘리셨던 어르신들에게서 듣는 귀중한 말씀과 같다.

 

그가 강조하듯이 자연은 전혀 단순하지 않다. 온갖 다양한 존재를 속에 품고 있고, 그에 따라 별의별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지 얽혀 있다. 그 얽는 방법도 천편일률처럼 단순하고 가짓수도 적은 것이 아니라, 전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무궁무진하다. 그 복잡성과 다양성 덕분에 자연은 어느 부분에 이상이 생겨도 별 탈이 없고, 그 부분도 다른 부분이 영향을 미쳐서 곧 다시 회복된다.

 

복잡성과 다양성이라는 본질을 지니는 자연은 인류 문명이 지닌 단순한 속성에는 절대 부합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 복잡한 자연에 부합하는 문명을 건설하려는 시도는 전혀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자연에 관하여 아는 것이 너무 없었고, 자연에 관한 지식이 쌓일수록 자연이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복잡하다는 사실이 더욱 뚜렷해지면서, 문명을 건설하고 관리하기에도 벅찬 인류에게 자연에 부합하는 문명은 절대 실현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망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망상을 쫓기에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대 과제가 너무나도 다급했다. 

 

수 천 년 동안 자연 속에서 모진 풍파를 견디며 진화한 끝에, 사람들은 험난한 자연 환경을 극복하고 문명을 건설하는 데는 일단 성공했다. 하지만 안정된 삶이 어느 정도 보장된 뒤에도 사람들은 자연과 어울리려고 힘쓸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자연에 관한 지식이 쌓일수록 기계론과 자연 정복설이 더욱 강한 힘을 얻었고, 사람들은 개발 지상주의에 따라 발길이 닿지 않은 자연으로 탐욕스러운 손길을 뻗었다. 오로지 인류가 지닌 이성으로 만들어낸 가장 영롱한 결정체인 문명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만이 가치가 있다는 주장이 갈수록 큰 힘을 얻었다. 문명은 자연과 본격으로 대립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문명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고자 자연을 거침없이 파괴했다.

 

파괴된 자연을 짓밟고 일어선 문명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그럴듯해 보였다. 사람들은 충분히 똑똑했고 그 때문에 자연에서 자연을 긁어모으고 새로운 자원을 발견하여 이용하는 기술도 갈수록 발전하였기에, 문명은 계속 발전하여 그럴듯해 보이는 수준을 넘어 이제는 아주 세련되어 보이기까지 한다. 온 세상 사람들을 충분히 먹여 살리고도 남을 식량을 대량 생산 체제가 발달한 농업 기술로 생산해내며, 온갖 생필품과 편의 물품도 거뜬히 생산해낸다. 수 천 년 동안 발전하여 극도로 풍요로워진 인류 문명 안에서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부족한 것이 전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토록 풍요로운 문명 안에서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피폐해지고 고통스러워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온 세상 사람들을 충분히 먹여 살리고도 남을 식량이 쏟아져 나오면서도 굶어죽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물질이 풍요로워질수록 사람들은 가진 것이 줄어들었다는 이상한 공허감에 시달린다. 그 공허감을 채우고자 더 다양한 것들이 더욱 많이 생산되었고, 그 생산력을 뒷받침하고자 사람들은 더욱 자연을 많이 쥐어짜며 파괴했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곳을 찾아서 눈에 화톳불도 모자라 아예 할로겐 등을 켰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들이 발악해도 물고기 숨을 죄어드는 촘촘한 그물처럼 현대 문명은 사정없이 사람들을 쥐어짰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거대한 역설에 희생당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인 문명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런 괴상한 일이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분명히 뭔가 잘못되고 있기는 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불안에 만성으로 시달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현대 문명이 지닌 문제점이 무엇인지 나름대로 그 까닭을 제시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것은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 비판이다.

 

이미 신자유주의에 관한 비판은 지겹도록 교양을 듣고 사람들과 토론을 벌이고 몇 번이고 여러 글에 그 내용을 썼기 때문에, 여기에서 굳이 자세하게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책에서 작가가 쓴 신자유주의가 낳은 폐해와 그 때문에 벌어지는 이상한 현상을 읽어보는 것만 해도, 신자유주의와 그를 뒷받침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 구조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오로지 효율과 경쟁만 생각하는 이들은 무조건 큰 것을 원하고, 그 때문에 모든 생산 활동은 거대한 자본과 시설에 의존하도록 구조가 개편된다. 그 구조 속에서 나오는 '미친(!)' 현상들은 인류 문명이 자연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너무나 심각한 피해를 입힌다.

 

'미친'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는 지적이 뒤따를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 책에서 '미친'이라는 표현을 떳떳하게 썼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자연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사랑하는 이로서,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뿐어내는 광기를 두 눈 뜨고 똑똑히 목격했기에 당연한 일이다. 이 책에 나오는 온갖 이야기, 이미 공급이 넘쳐나는데도 농장을 버젓이 개간해 모든 것을 망쳐버리는 개발지상주의에 따른 대규모 집단 농업, 정부에게서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아 철없는 어린이들처럼 건설 기계와 전기톱을 장난감처럼 여기는 벌목 회사, 바다 속을 모조리 긁어서 고기뿐만 아니라 다른 생물들까지 깡그리 잡아 몰살시켜버리는 초대형 저인망 어선 군단, 전쟁을 일으키기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기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상에 분쟁을 일으키는 군산복합체와 그를 지원하고 이용하는 강대국 정부들, 개발도상국을 지원한다는 명목 아래 엄청난 돈을 빌려주고 가난한 서민들을 거대 산업체 안에 몰아넣어 비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처참한 신세로 만들어 버리는 국제 금융 기관 따위는 사람과 자연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문명이 낳은 괴물들이다. 그는 이런 '미친' 현상을 나지막하지만 강하게 비판한다. 어조가 격렬하지는 않지만, 그 속에 매우 강한 힘이 있다. 부드럽게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힘차게 뛰는 강력한 운동 기관을 보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로버트 베이트먼을 공산주의 혁명 운동가로 착각하면 안 된다. 그는 새우 요리를 좋아하고, 자동차와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현대 문명이 선사(?)하는 모든 이기를 누린다. 하지만 그 혜택 때문에 자연이 얼마나 큰 시련에 처해 있는지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기에, 그는 자연이 받는 피해를 그만큼 줄이면서도 현대 문명을 유지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곧 '자연에 적합하고 지속할 수 있는 발전(ESSD : Environmentally Suitable and Sustainable Development)'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새우와 같은 해산물을 잡을 때 바다 생태계를 송두리째 파괴할 수 있는 대형 저인망 어선 대신 낚시나 소형 어선을 권장하고, 바이오디젤과 같은 친환경 자동차 연료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현대 문명은 자연과 더불어 발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런 방법은 인류가 수 천 년 동안 진화하면서 자연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이미 터득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잘못된 사상과 관념에 문명이 이끌리기 시작하면서 그 방법을 잊어버렸을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작가가 주장하는 것은 이미 정도를 넘어서서 이제는 자기뿐만 아니라 온 인류를 멸망으로 몰아넣으려고 폭주하는 자본주의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천민자본주의와 같은 말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사람들을 천박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는 광풍에 휩싸인 현대 문명이 낳는 사상은, 더욱 풍요로운 물질과 기술이 많아지는 사회에서 더 많은 이들이 절대 극복할 수 없는 모순 구조 속에서 살벌한 경쟁에 시달리다가 피혜해지고 죽어가는 역설이 당연한 것처럼 뒷받침하는 미친 논리일 뿐이다. 이런 논리를 우파들은 대개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좌파들이 절대 거기에 동의하지 않고 싸우고 있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좌파들에게 끌리지 않을 수가 있으랴.

 

놀랍게도 이 책에서 저자는 내가 예전에 학생회와 문예패에서 활동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가르친 것들과, 그들과 나눈 모든 이야기 속에서 드러난 그들이 지닌 사상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한 해 넘게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들을 모질게 비판하여 차마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다. 하지만 학문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한 사람이라면 그런 정이 학문을 그르치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된다.

 

열병과도 같은 그 갈등 때문에 끙끙 앓다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나마 많이 나아질 수 있었다. 적어도 사회주의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만큼은 확고히 다질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나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이들과 항상 의견 차이로 날카롭게 대립해야 할 필요가 매우 줄어들었다는 사실도 매우 좋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말하는 것들 안에 결국 자연을 살리고 인류를 살리는 길이 들어있다는 깨달음은, 정말 눈물을 흘릴 만큼 가장 기쁜 것이다.

 

솔직히 이건 매우 우스운 일이다. 내가 하는 이런 생각을 하찮게 여기는 이들은 맹렬하게 나를 비난할 것이다. 현실을 제대로 모르는 어줍잖은 인간답게 좌파를 지지하는 까닭도 이성을 따르지 않는다고 말이다. 하지만 피도 눈물도 없이 개발과 진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자연과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끔찍한 문명과 그를 뒷받침하는 잔인한 논리만을 찬양하는 이들은 싫다. 자연과 사람을 살리는 문명을 건설하는 방법을 찾아나서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이 좋다. 때로는 이성이 터무니없는 결론을 내릴 때도 있으며,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직관이나 감정에 따른 판단이 옳을 때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작가가 현대 문명을 비판한다고 해서 사람이 문명 자체를 포기하고 원시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절대 아니다. '산처럼 생각하기'라는 제목을 아무 뜻도 없이 괜히 붙인 것이 아니다.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산이 지니고 있는 그 풍요로움이 인자함을 잘 보여준다는 뜻일 것이다. 산은 아무 말 없이 자기 안에 모든 생명을 넉넉하게 품고 있다. 그 안에서 모든 생명은 스스로 조화와 질서를 이루며 살아간다. 그 조화와 질서는 인류가 만들어낸 것과는 질이 근본으로 다르다. 모든 것이 순환하며 다른 것들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

 

지구에서 이성을 지닌 단 하나뿐인 존재인 인류는 그 사실을 강조하면서 으스대지만, 인류가 그동안 저지른 일을 돌이켜 보면 내가 사람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미칠 지경이다. 그렇게 복잡하면서도 아무 탈 없이 잘 돌아가는 자연보다 인류 문명이 나은 것이 과연 무엇이 있는가? 자연과 상극인 문명을 찬양하는 이들이 자연 법칙을 인류 사회에 적용해 '사회진화론'이나 '약육강식' 따위 논리를 들이대는 자체가 웃긴 일이다. 그토록 자랑스러운 이성으로 지금까지 사람 잡는 세상을 만들었으니,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 잘못한 것을 바로잡고 사람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조화로운 문명을 건설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결코 사회주의를 포기할 수 없다. 완벽한 사회주의는 그야말로 이상일 뿐이라는 사실은 자명하지만, 사회주의를 이루는 그 숭고한 인류애와 사회 정의만큼은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자연과 인류가 함께 사는 길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것은, 이 책을 보면서 적어도 어느 정도는 저절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다 읽은 뒤에 이 글 마지막 부분을 쓰느라 고심하다가 든 엉뚱한 생각이 있다. 이 책은 진중문고로 발간된 책인데, 모든 진중문고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들어 있다.

 

 

'본 진중문고는 장병 정신교육 효과 증진 및 정서 함양 그리고 건전한 민주시민으로서의 기본 소양을 구비하는데 기여하기 위하여 국방부에서 배부하는 도서임'

 

 

이 책은 단순히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자는 초등학생들 수준인 논리에서 만족하지 못한 이들이, 스무 해 넘게 나이를 먹고 그때까지 온갖 교육을 받으며 자란만큼 좀 더 깊이 생각한다면 정신교육에는 매우 해로운 책일 수도 있는데, 어쩌다가 진중문고로 선정되었을까? 이 책을 읽고 감동받은 이들이 과연 정훈교육에서 강조하는 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한미동맹을 더욱 굳건하게 하고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자연을 생각하는 길과 사회주의가 지닌 이상을 연결해서 생각하지 못하는 한계라고 보면 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