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소박하게
린다 브린 피어스 지음, 이순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선(禪)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두 수도승이 서로 자기 스승이 더 도통했다고 다투는 이야기가 있다(이 책 '조금 소박하게(원제 Choosing Simplicity - Real People Finding Peace and Fullfilment in a Complex World)' 추천사에도 나온다). 한 수도승이 자기 스승은 도통했기 때문에 강 한쪽 둑에 앉아 맞은편 모래에 이름을 쓸 수 있다고 자랑했다. 그러자 다른 수도승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 한 마디로 다툼에서 이겼다.
 

"그런 건 아무 것도 아니야. 내 스승은 배고프면 잡수시고, 피곤하면 주무시는 분이셔."

 

위 이야기에 나오는 스승처럼 도통한 사람이 요즘 세상에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스승이 사는 방식을 바꾸어 말하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산다고 해서, 무법천지에 딱 어울리는 망나니나 자기가 지닌 부와 권력을 믿고 제멋대로 행동하여 주위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상류층을 연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내가 말하려는 삶은 그런 삶이 아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가치가 있으며 자기가 지닌 특성을 얼마나 정확하고 반영하고 있는지도 명확하게 깨닫고, 그에 따라 꾸준히 그 방식을 실천하여 참된 자유를 얻은 풍요로운 삶을 뜻한다. 곧 자기인식에 이르는 길을 꾸준히 걸어온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삶이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사람들이 진정한 자기인식에 이르도록 절대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씌운 굴레에서 벗어나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생산과 소비가 끝없이 반복되면서 돌아가는 동력원을 유지하기가 너무나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기존 시장이 한계에 이르면 새로운 시장을 찾아나서는데, 그 새로운 시장이라는 거시 결국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서 삶이 지니고 있는 모든 측면을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려고 한다. 현실을 생각해 보자. 지금까지 시장 개척 • 경영 • 유지에 관한 경영학 이론이 얼마나 많이 쏟아져 나왔는가? 그 때문에 우리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자본에 종속되어 버렸는가?

 

자본주의에게 만족이란 없다.  사람들이 지닌 거의 모든 것을 자본으로 거래할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자본에 끌려 다니는 노예로 만들어 놓고도, 여전히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끝없이 발악하며 사람들이 지닌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것들마저 빼앗아가려고 한다. 데메테르에게서 절대 배고픔에서 헤어날 수 없도록 저주를 받은 에뤼시크톤이 자기 집을 뒤덮을 정도로 산더미처럼 음식을 차려놓고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면서도 하인들에게 음식을 더 차려오라고 악을 쓰는 것과 같다.

 

자본주의와 문명은 반드시 함께 발달해야 한다는 논리로 비판을 잠재운 뒤, 문명이 발달해야 궁극으로 인류 복지가 증진된다는 정말 그럴 듯한 논리로 사람들을 생산과 소비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진 동력원에 몰아넣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나타나는 온갖 새로운 것들을 닥치는 대로 이용하여, 사람들이 자기들이 덫에 걸렸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위장했다. 그 위장은 그람시가 밝힌 노동자들이 자기가 착취당하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까닭만큼이나 성기지 않고 치밀하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자본과 연관지어버리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괴물 앞에서 개개인은 너무 나약하다. 이 책에서도 지적하듯이 우리는 더 많은 부와 명예와 권력을 얻으려는 강제에 가까운 앞에서 말한 그 정교한 덫에 걸려 있다. 그 덫에는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품은 온갖 욕망이 덕지덕지 붙어서 서로 뒤엉켜 추하기 짝이 없다.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대로 더 많은 생산품을 내놓고자, 항상 생산성과 효율성을 올리는 방안을 연구하며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을 일에 파묻으려고 한다. 과연 그것이 자기가 정말 원하는 일인지도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말이다.

 

물론 자본주의가 사람들에게서 단물만 쪽쪽 빨아먹은 뒤 내팽겨쳐버린 건 아니다. 생산이 늘어난 만큼 그 풍요로움이 사람들에게 분명히 돌아왔다. 문제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성립하는 '적대적 의존 관계'가 자본주의와 사람들 사이에서도 몇 가지 사소한 차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분명히 비슷하게 성립한다는 것이다. 풍요로운 물질에 관하여 생각해 볼 자유마저 자본주의는 주지 않았다. 생산과 절대 뗄 수 없는 관계인 소비로써 그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들었다. 많이 생산한 만큼 많이 소비해야 자본주의도 계속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산을 늘리고자 자본주의는 사람들이 지닌 거의 모든 것을 자본으로 거래할 수 있는 상품으로 끊임없이 만들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은 돈 없이는 사회에서 살기가 갈수록 어려워졌다. 삶에서 매우 사소한 것들마저 물질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사랑이나 우정 같은 정신 가치도 자본에 얽매이게 되었다.

 

요즘에는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 사람들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온다. 나는 그 때문에 이 자본주의 사회에 크다 못해 극렬하기까지 한 불만을 품고 있다. 이 사회가 쳐놓은 덫에 내 주위 사람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나도 걸려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 너무 역겹고 짜증나서 견딜 수가 없다. 무슨 일만 있으면 돈을 넉넉하게 들여야 하는데, 그러지 않을 수는 없는 걸까? 굳이 어떤 기념일이라고 해서 근사한 연회장에 가서 돈을 펑펑 써가며 성대하게 잔치를 열고 값비싼 선물을 해야 하는 걸까? 그냥 따뜻한 말 한 마디와 보듬어 안아주기, 또는 공들여 쓴 편지로 만족할 수는 없는 걸까? 값싼 요리와 소박한 술상만으로도 특별한 날을 기리며 행복을 누릴 수는 없는가? 돈 없이도 만나서 서로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사랑하고 아낀다는 것을 확인할 수는 없는 걸까?

 

사람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열심히 많은 일을 해내지만, 그럴수록 자기에게 돌아가는 시간은 차츰 줄어든다. 진정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깨닫지 못하고 일에 파묻혀 사는 사람들도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무언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도 제법 많지만, 거기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 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자본주의가 쳐 놓은 왕성한 생산과 소비가 가장 아름다운 덕목이라는 무시무시한 논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풍토에, 사람들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깊이 빠져 있어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기가 너무 어렵다.

 

결국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자본주의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대로 자기 삶을 조직하고 온 힘을 다 쏟으며, 진정한 자기를 말살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그 속에서 자기인식이란 없으며 정신이 물질에 종속되어 황폐해진다. 현대 사회가 지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판단할 능력마저 잃어버린 이들은 자본주의를 살찌우는데 온몸을 바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본주의 때문에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당연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논리를 더욱 정교하게 하는데 적극으로 앞장서기도 한다. 이런 이들이 사회에서 대단히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자본주의 물질문명이 사람들에게 떠맡기는 폐해, 곧 끝없는 생산과 소비 속에서 몸은 몸대로 축나고 소비 욕구는 밑도 끝도 없이 커져 결국 불만으로 가득 차 버리는 비극에서 벗어나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며 만족하는 이들을, 이 괴물 같은 자본주의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인정해 주는가? 검소한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자기들이 사는 방식을 자랑스럽게 내세우지 않으며, 언론에서도 그들을 조명해 주지 않는다. 생산과 소비를 자기에게 알맞게 통제할 줄 아는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칭찬을 받기는커녕 사회에서 교묘하게 따돌림을 당한다. 자본주의에 익숙해진 사람들과 맺은 관계에서 벗어나면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이상한 인식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엄청난 부를 거머쥐어 무엇이든지 누릴 수 있거나, 자본주의 물질문명이 선사하는 안락함에 너무 깊이 물들어 버려 거기에서 헤어 나올 줄 모르는 사람들을 뺀 모든 이들은, 무언가 더 나은 삶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리고 지치고 피곤한 삶 속에서도 다른 일을 할 시간과 힘과 의욕이 약간이라도 남아있는 이들은 그 삶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우리는 물질이 주는 안락함에 길들어져 그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가 정말 바라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하면서도 무슨 일이든지 성취하고 싶어한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치고 괴로워하는 현대인들이 지니고 있는 흥미로운 모순이다. 330여 쪽에 달하는 꽤 두툼한 이 책에 저자는 이 두 가지 모순을 푸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을 풍성하게 담아놓았다.

 

작가 자신도 한 때 매우 잘 나가는 논리정연하고 의욕이 넘치는 변호사였다. 그러나 그 직업은 지갑을 두둑하게 하고 자부심을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뭔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은 없애주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자는 끝없이 이어지는 일과 그에 따른 복잡하고 번거로운 삶이 아닌 단순한 삶에 매력을 느끼고, 변호사라는 직업을 미련 없이 버렸다. 그 뒤 3년 동안 미국 전역에서 211명이나 되는 다양한 직종을 지닌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을 취재하여 이 책을 펴냈다.

 

이 책에 나오는 이들은 정신없이 일에 치여 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물질이 부족해서 숱한 어려움을 겪으며 한탄하지도 않는다.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으며, 그 일을 찾아낸 뒤에는 삶에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집중하여 결코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는다. 시간을 어떻게든지 아끼려고 발버둥치는 이들보다도 훨씬 많은 시간을 지니고 있으며, 그 시간 속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많은 일을 해낸다. 자본주의 물질문명에 포로가 되어버린 이들이 쉽게 잃어버리는 정신 차원에서 느낄 수 있는 온갖 행복을 발견하고, 사람들이 따르는 기준이 아닌 자기만의 독특한 기준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한다. 일과 여가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기에 마음은 평화롭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느끼는 행복에 흠뻑 취해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다. 그 속에서 온갖 깨달음을 얻어 행동거지를 올바르게 하고, 자기가 하는 모든 행동이 이웃과 자연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 도움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피해는 주지 않는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이런 놀라울 정도로 이상에 가까운 삶을 이루어 냈을까? 저자가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말하지만, 이와 같은 단순하고 검소하게 사는 방식을 찾아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오랫동안 철저하게 알아내야 하며, 그에 따라 이 복잡한 사회에서 온갖 변수를 고려하여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일했던 직장을 그만둬야 하고, 사랑하는 친구들과 동료들과도 헤어져야 하며, 때로는 참기 힘든 가난도 견뎡댜 한다. 자기가 생각했던 것이 옳은지도 끝없이 고민해야 하며, 때로는 자기가 좋았던 것이 틀렸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덕으로 생각하는 삶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그렇기에 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은 매우 용감한 사람들이다. 이 책에 소개된 것처럼 건전한 사고방식으로 이상에 가까운 삶을 가꾸려고 행동하기 전에, 일단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들여 자기를 성찰하고 고민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떠나는 길이 옳다고 뒷받침할 수 잇는 논리를 개발해야 했다. 그들이 이미 잘 알려진 세계를 버리고, 더 나은 앞날을 찾고자 알려지지 않은 세계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까닭은 겁이 없는 것이 아니라 겁이 나도 발걸음을 떼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확고한 믿음을 오랜 성찰로서 마련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일단 길을 떠났다고 해서 모든 일이 잘 풀린 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길에 들어서 갈팡질팡하기도 하고, 뜻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계속 상처만 입으면서 절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시련마저 기꺼이 견디면서 그들은 꿋꿋하게 길을 걸었고, 길이 없으면 다른 길을 찾거나 아예 새 길을 만들었다. 이상은 거저 도착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이 증명했다. 그리고 이상을 실현하면 얼마다 큰 행복이 찾아오는지도 분명히 보여주었다.

 

현대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어가는 삶이라고 하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거대한 도시 안에서 버스와 택시를 타고 틈만 나면 시계를 쳐다보면서 햄버거 따위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우고, 매우 정신없이 일하고 움직이는 양복 입은 사람들을 대개 떠올린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지적했듯이 단순한 삶이라고 하면 무조건 도시에서 벗어나 시골이나 바닷가 같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 소박한 집을 짓고, 땅을 갈고 우물을 파서 먹고 마시고, 향기로운 차 한 잔을 즐기며 시를 쓰고 읖조리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삶이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고, 이 책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일 뿐이다. 단순한 삶을 지극히 주관에 따르는 삶이며, 어디에서든지 어떻게든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알맞게 이룰 수 있다. 심지어 자본주의에 철저하게 얽매인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단순한 삶을 살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도시에 환멸을 느끼고 전원으로 들어가 농장을 일구고 단풍 시럽을 만들며, 어떤 사람들은 근교에 정착해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양쪽이 지닌 장점만 누리려고 힘쓴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자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들도 학교에 보내지 않으며, 자연 속에서 스스로 배우고 깨닫도록 하며, 부족한 것들은 자기가 가르쳐 주는 사람들도 있다.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명상과 수행과 봉사 활동에 몰두하는 이들도 있으며, 자기가 하는 일을 마치 놀이처럼 즐기면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와 그 상징인 거대한 도시에 철저하게 적응해 즐겁게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 말고도 큰 감동과 가르침을 주는 수많은 아름다운 사례들이 이 책에 깔끔하게 담겨 있다. 읽다 보면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때로는 수다스러운 이웃집 아줌마처럼, 때로는 당당하고 자신감으로 가득한 청년처럼, 때로는 세상 모든 이치를 깨달은 것처럼 다정하면서도 위엄이 넘치는 노인처럼, 단순하고 소박한 삶 속에서 물질로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안식과 행복을 얻은 여러 사람들은 저자에게 그 사실을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자기를 인식할수록 자기가 아는 것이 너무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하고 자기에게 화를 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덕분에 그렇게 보잘것없는 자기가 그 어려운 과정을 거쳐 지금과 같이 만족스러운 삶을 꾸려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지니고 더욱 당당해질 수 있었다. 그 자부심을 저자는 이 책에 여과 없이 그대로 옮기는데 성공했다. 그 자부심은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큰 감동과 뿌듯함을 준다. 그 자부심으로 가꿔나가는 삶은 자아와 인류와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고 언제나 크나큰 도움이 되는 참된 가치로 가득한 삶이다. 

 

결국 그런 삶이 가져다주는 가장 큰 가치이며 동시에 그런 삶을 가꿔나가는 방법이기도 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우리에게 씌운 굴레를 벗어던지는 것, 곧 물질이 주는 한순간뿐인 안락함에서 벗어나 정신을 풍요롭게 가꾸는 일이다. 물질은 우리 삶을 꾸려나가는데 필요조건은 될 수 있을지언정 충분조건은 되지 않는다. 정신을 올바르게 다듬는 것이야말로 정말 가치 있는 일로 가득한삶을 가꿔나가는 필요조건이다. 자본주의가 만든 물질이 주는 안락함이라는 강한 유혹과도 같은 덫에서 벗어나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분수에 맞게 삶을 꾸려나갈 줄 아는 건전한 사고방식을 지니면, 그동안 자기가 얼마나 많은 헛된 것에 오랫동안 집착하고 있었는지 저절로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수많은 가치에 눈을 뜨고, 그에 따라 정원사가 가지치기를 하듯이 삶에서 가치 없는 부분을 없애버리면 남아있는 것들이 더욱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거기에서 예전과는 견줄 수도 없을 정도로 큰 행복과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책이 말하는 단순한 삶이라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느 정도 충분한 부를 거머쥔 여유로운 사람들만이 찾아 나설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가 취재한 사람들 대부분은 고소득층에 속하지 않는다.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점이라면, 단지 그런 삶을 이루고자 자기가 그동안 살았던 삶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내려고 계속 고민하고, 그에 따라 조금씩 꾸준히 생각과 삶을 바꿔나갔다는 것이다.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기초 여건만 갖추고 잇는 사람에게나, 돈이 넘쳐나 어디에 써야 할 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나 단순한 삶을 이루는데 지켜야 할 원칙은 똑같다. 자기를 정확하게 알고, 온전히 깨달은 자기 모습을 제대로 반영하여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살 수 있도록 삶을 새롭게 조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삶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런 삶으로써 자기 영혼을 고양하고 더욱 깊은 자기인식에 이르며 인류와 자연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 되어야 한다.

 

이 책은 자본주의 자체를 비판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자본주의 때문에 생기는 폐해에서 벗어나는 것이 단순한 삶을 이루는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론 때문에, 나는 서문에서 그토록 자본주의를 맹렬하게 공격했다. 물질이 주는 안락함으로 사람들을 유혹한 뒤 그 안에서 끝없는 생산과 소비와 경쟁을 강요하며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자본주의 때문에, 문명과 인류는 결국 파국으로 치닫을 것처럼 보인다. 그 파국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나는 이 책에서 발견했다.

 

이 책에서 나오는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일단 기본으로 끝없이 늘어나고 있는 생산량과 소비량이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엄청난 자원을 아끼고 매일 쏟아지는 무지막지하게 많은 쓰레기도 줄여, 자연에 끼치는 엄청난 피해부터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수준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때문에 나타난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시도 또는 그 시도를 넘어 제도 자체를 바꾸려는 혁신 운동도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그에 따라 광기에 휩싸인 자본주의가 폭주를 멈출 확률도 높아질 것이다.

 

그 혁명은 러시아 혁명처럼 떠들썩하게 세상을 뒤흔들다가 실패로 끝나서는 안 된다. 조용히 이루어져서 세상을 근본에서부터 천천히 바꿔 정말 완벽하게 성공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참된 가치를 좇는 삶을 사는 것은 자기뿐만 아니라 결국 온 세상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란다. 사람이 모여야 세상이 되지, 세상이 있어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덮으며 항상 엄격한 절제에 따르며 분수를 지키는 검소한 삶을 강조하셨던 부모님을 떠올려 본다. 예전에는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부모님을 존경하려고 애써볼수록 내 부모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증명하는 사실이 계속 드러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부모님을 떠올리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내 부모님도 이 책에 나올 자격이 있는 분이셨다. 나는 과연 부모님과 이 책이 가르쳐 준 진리를 얼마나 깊이 되새기고 실천하고 있는가? 완전한 자아인식에 이르는 그날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도 내 부모님과 이 책에 나오는 이들처럼 그런 삶을 찾아 계속 걸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