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여행 + TAPE
김영우 지음 / 정신세계사 / 199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매우 어릴 때부터 나는 삶에 관하여 사람들이 반드시 생각해 보기 마련인 온갖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예를 들자면 전생이 있는가, 천당과 지옥이 있다면 과연 어떤 모습인가, 윤회는 얼마나 타당성이 있는가, 영혼은 실체가 무엇인가, 뭐 이런 것 말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과학책보다는 여러 가지 교리를 설명한 종교책을 뒤적거리는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대개 자연과학은 그런 근본에 가까운 문제들에 관해서는 연구 영역 밖이라면서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는 워낙 어려서 수준도 매우 낮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책을 읽으며 진지하게 문제를 파고들며 비판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교리를 접하면서 느끼는 혼란도, 진지한 고민 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그런 혼란과는 거리가 멀었다. 집에 있는 여러 가지 책이 다루는 교리라고는 기껏해야 천주교와 불교뿐이었고, 그 두 가지만 해도 설명이 뚜렷하게 차이가 많이 나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역시 그 때 나는 좀 더 다양한 교리를 폭넓게 공부할 수준에는 전혀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의식이 사그라지지는 않았고, 그 혼란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대학교에서 자유 전공을 선택한 뒤 들을 과목을 고르면서도 그 생각을 현실로 옮기지는 못해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문제의식을 순식간에 억눌러버릴 정도로 공부하고 싶은 것이 많았고, 내가 원하는 분야를 다루는 종교철학과 심령현상에 관한 전문 강좌는 철학과에서마저도 개설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일이 그렇게 됐으니 어쩔 수 없이 혼자 어떻게든지 찾아보면서 공부해야 했다. 예전에 어른들과 나눴던 이야기와 그동안 인터넷에서 읽은 이런저런 자료를 되새기면서, 일단 '종교철학이란 무엇인가'와 '임사체험 1, 2권'을 샀다. 철학 기초를 2학년 여름방학 때 어느 정도 공부하기는 했으니, 그 지식을 토대로 '종교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읽어서 문제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기본 지식을 갖춘 뒤, '임사체험'을 읽어 사후 세계와 후생을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다.

 

나름대로 시간을 내서 차근차근 준비를 하기는 했지만, 전생에 관한 책을 사서 볼 생각은 일단 접어두고 있었다. 사후 세계와 후생을 이해하려면 전생을 반드시 함께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런 생각이 저절로 떠오른 까닭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 해답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까지 '윤회'라는 개념을 나도 모르게 계속 생명과 영혼에 관한 문제를 고민할 때 기본 가정으로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후 세계와 영혼 문제에 관해서는 그야말로 온갖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윤회설(Transmigrationism)'이라는 개념을 일단 그런 문제에 관한 모든 판단을 내릴 때 기본 잣대로 삼았을까? 어렸을 때 참 재미있게 읽었던 '만화로 보는 불교 이야기' 때문인가? 그 내용이 내가 알고 있는 종교 지식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그런가? 곧 공부가 매우 부족한 탓일까? 단순하게 따지자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 '전생여행'에서 저자 김영우가 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건 공부를 많이 했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당연한 일이다.

 

흔히 우리가 어떤 대상이나 관념에 관하여 생각하다 보면,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이든 간에 어떻게든지 똑같이 나오는 결론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결론을 우리는 흔히 상식(common sense)이라고 한다. 이런 상식은 흔히 경험에서 우러나오거나 최신 대뇌생리학 지식으로도 밝히지 못한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도출되다 보니까 논리 근거가 빈약해 보인다. 과학철학이 발전하면서 유물론과 실증주의가 갈수록 입김이 강하다 보니까, 상식도 그 속성 때문에 끊임없는 검증을 요구받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윤회설은 검증을 많이 거칠수록, 과학 법칙을 적용하여 온갖 초자연 심령 현상을 설명하는데 더없이 훌륭한 이론이라는 사실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기가 어디에서 왔고 그 까닭은 무엇인가?', '생명은 죽으면 과연 어떻게 되는가?' 따위 이성을 넘어서는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물음에 누가 봐도 이치에 맞게끔 대답해 줄 수 잇는 가설로 윤회설만한 것이 없다. 세상에서 나름대로 뚜렷한 교세를 보여주었던 모든 종교는, 교리 안에 윤회에 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곧 윤회설은 종교를 뛰어넘는 보편성을 지닌 대단히 뛰어난 이론이었던 것이다.

 

원래 기독교 경전인 성경에서도 윤회 사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서기 335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그 어머니가 정치 목적 때문에 신약성경에 나와 있는 윤회에 관한 가르침을 일부러 지워버렸다. 신권과 왕권을 일치시켜 권력을 강하게 하여 시민들을 장악하려고 했던 황제에게, 윤회설은 영원한 생명을 지닌 신과 한정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 사이 간극을 없애버리다시피 하는 성가신 논리였던 것이다. 그 뒤 서기 553년에는 제 2차 종교 공의회에서 윤회설이 이단으로 규정되어, 윤회설은 서양에서는 한동안 거의 아무런 지지도 얻지 못하게 되었다.

 

'프린키피아'가 출간되어 모든 자연 운동을 과학 법칙에 따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눈덩이처럼 부풀어 오르면서, 자연스레 유물론과 실증주의가 강한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 때문에 유럽 과학자들은 성직자들과 다르게 믿음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그동안 그들이 믿었던 신과 영혼을 과학으로 설명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하지만 성직자들은 과학이 침범하는 영역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고, 서양에서 오랫동안 굳건히 내려온 성경 교리는 진화론도 절대 인정하지 못했다. 사정이 그랬으니 신과 영혼을 과학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에는 극약을 받은 죄인과 같은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진화론과 창조론을 놓고 서양에서 몇 백 년 동안 신학자들과 과학자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고, 과학 발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서양 철학사에서도 유물론과 생기론(물질만으로는 생명이나 초자연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이론) 사이에 극심한 대립이 나타났다. 자연과학이 지닌 한계라고 여기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왕성한 탐구열을 지닌 과학자들은 그럴 수 없었다.

 

끝없는 논쟁에 지친 서양 과학자들은 자연과학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고자 동양 종교철학과 신학에 관심을 지니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불교를 만났고 앞에서 설명했듯이 성경 속에도 분명히 있었지만 고의로 지워져 그동안 알 수 없었던 윤회라는 가르침을 다시 발견했다. 사람을 몸과 마음이라는 두 가지 에너지가 융합된 존재로 보고 몸과 마음 사이 관계를 연구하는 양자의학은, 첨단 과학 이론과 접목하는데 가장 적절한 윤회설 덕분에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다. 모든 심령 현상을 필요하는데 필요했던 것은 생기론을 극복하는 일이었다. 윤회설을 주창한 불교는 사람이 보여주는 모든 감정을 에너지로 가정하고 그에 따라 온갖 물리학 법칙을 적용하여 심령 현상을 설명하는 혁신 시도를 이룩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과학자들에게는 그런 시도마저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현대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생기론을 완벽하게 무너뜨릴만한 연구 결과는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다. 지금은 입자물리학자들이 쿼크보다 더 작은 입자가 있을 것이라는 가정 아래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영혼을 과학으로 설명하는 일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감정을 에너지로 가정하고 그에 따라 물리학 법칙을 적용하여 심령 현상을 설명하는 건, 절대 믿음을 강조하는 종교와는 정반대로 끝없는 의심을 강조하는 과학에서는 그야말로 완벽하게 검증되지는 못한 한 가설일 뿐이다. 눈으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실험 결과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는 표현마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적다.

 

눈에 보이는 실험 결과를 내놓으라면서 초자연 심령 현상을 헛된 것으로 단정해 버리는 유물론자들은 이 책을 쓴 저자에게는 반드시 비판해야 할 대상이다. 그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심령 현상을 설명할 때 과학은 방법론을 제시하는 데에 그쳐야 한다. 유물론으로 무장한 과학은 비판을 철저하게 차단하며 믿음만을 강조하는 독선에 빠진 종교와 다를 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서문을 매우 알차게 써서 누구든지 이 책이 보여주려고 하는 바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한 저자는, 현대 과학이 발전하여 유물론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에 깊숙이 뿌리내리면서,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인정할 수밖에 없는 초자연 심령 현상을 너무 쉽게 무시하는 경향이 온 세상에 퍼졌다고 비판한다. 초자연 심령 현상에 관한 실증 자료도 그를 반박하는 자료만큼이나 많이 쌓이고 그에 관한 논문도 한 해에 수 백 편씩 발표되고 있는데도, 오로지 유물론만 꼿꼿하게 고집하며 버티는 건 지독한 아집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저자가 전공으로 삼고 있는 심리치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작가는 현대 과학과 심리학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을 보여주는 환자들 때문에 고민하다가, 최면술이 정신병 환자 치료에서 보여주는 효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최면술이 보여주는 효과는 현대 과학과 심리학이 제시하는 이론만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온갖 방법을 써도 치유할 수 없었던 이들이 최면에 빠진 뒤 자기 전생을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게 기억해내고, 그 순간 모든 증상이 사라졌다.

 

그렇게 효과가 분명한데도 유물론에 빠진 현대 의학자들 대부분은 새로운 진실을 보고 인정하려고 하지 않고, 도저히 학문을 하는 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현대 과학과 심리학 영역을 지키는 데만 집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그 현실을 꼼꼼하게 비판하면서 전생, 사후 세계, 업보, 환생 따위 심령 현상을 설명하는데 필요한 온갖 개념들을 과학 방법론으로 접근하여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 의학과 심리학 지식을 갖춘 전문의가 빠질 수 있는 한계에서 과감히 벗어나고자 그는 심령과학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했고, '전생퇴행요법'이라는 최면술에 근거한 심리치료 방식을 우리나라에 보급하는데 앞장서며 심령과학과 최면술 분야에서 선구자로서 활약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떤 내용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자 힘썼다. 절대 마음을 놓고 편안하게 읽을 수가 없을 정도로 이 책에 담긴 모든 것은 한 결 같이 엄청나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들, 곧 유물론과 실증주의에 사로잡힌 과학이 처한 한계, 그 한계를 벗어나고자 서양 과학자들이 시도한 것들, 최근 심령과학 연구 동향, 뭐 이런 것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주의 깊게 읽어야 할 것은 서문이 아니라 본문이다. 본문에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전생퇴행요법으로 치료한 저자가 원종진이라는 환자에게 전생퇴행요법을 적용하면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낱낱이 기록한 결과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원종진이라는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모르는 어떤 초자연 존재들이 들려주는, 인류가 지금까지 발달시킨 이성마저도 보잘것없을 정도로 굉장한 지혜가 담긴 이야기이다. 보통 환자들은 전생을 기억해내는데 그쳤지만, 이 남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지혜로운 존재가 들려주는 목소리를 쏟아내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1996년 현재 나이가 26세인 원종진이라는 남자는 전생퇴행요법으로 수많은 전생을 기억해냈다. 조선시대 비구니, 14세기 스페인 농부, 인도에서 귀족이었지만 깨달음을 얻고 집에서 나와 거지가 된 삶, 스코틀랜드 양치기, 마사이 족 전사……전생은 그가 지금 한국 사람이라고 해서 동북아시아라는 영역에 한정되지 않았다. 온 세상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 다양한 삶을 일일이 기록하면서 저자는 평소에 고민했지만 풀리지 않았던 심령과학에 관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저자가 내놓은 답안은 한 치 거짓도 없는 기록 중간 중간에 주석처럼 덧붙어 있다. 지혜로운 목소리를 전달하는데 좀 더 많이 집중했기에 덧붙어 있다는 표현히 적절해 보인다.

 

이 책 내용은 1부와 2부와 부록으로 나뉘어 있다. 1부가 바로 앞 두 문단에서 설명한 내용을 담고 있다. 거기에 있는 중요한 깨달음을 여기에 일일이 요약해 정리하는 것만 해도 몇 장은 충분히 될 테니, 차례 일부분을 적어보겠다. 간단한 제목만 봐도 이 안에 들어있는 내용이 얼마나 방대하고 지혜로운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네 번째 만남 - 죽은 후의 세계와 미래의 예언들"

 

"다섯 번째 만남 - 여덟 번째 삶과 교훈, 그리고 예언들"

 

"여섯 번째 만남 - 나의 전생, 원종진과의 관계, 교훈과 예언들"

 

"일곱 번째 만남 - 제 3의 방, 이 만남의 의미, 내 문제들, 빙의 현상과 예언들"

 

"여덟 번째 만남 - 동물의 영혼, 사랑, 정치지도자들의 비밀, UFO, 정신병의 원인"

 

"아홉 번째 만남 - 이집트에서의 삶과 죽음, 사랑과 겸손, 자기만족, 인구증가와 심판에 대한 가르침"

 

"열 번째 만남 - 고통의 의미, 진정한 수행, 전쟁과 평화, 예언과 교훈들"

 

"한일(韓日) 관계과 우리 사회에 대하여"

 

……

 

 

1부에 이어지는 2부에는 '남은 이야기들'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1부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곧 1부에서 저자와 원종진이 경험한 놀라운 것들에 관한 모든 생각을 저자는 차분하게 2부에 글로 썼다. 2부 마지막 장을 넘기는 그 순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어릴 때부터 삶과 관련된 근원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저자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방향을 잡고 공부를 하게 된 계기부터, 최면술로 환자들을 치료하고 숱한 깨달음을 얻으면서 자기가 어떻게 변하고 그 깨달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며 느낀 것들까지 그야말로 거의 모든 것이다.

 

결국 이 책이 주는 온갖 알찬 정보 가운데 사람들에게 반드시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은, 물질문명 때문에 피폐해진 인류를 구원할 방법은 정신문명뿐이라는 것이다. 최면에 빠진 원종진을 빌어 나타난 지혜로운 존재들은, 사랑과 영혼 같은 정신계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고 무시하는 물질문명과 과학기술 때문에 극도로 혼란스러워하고 고통 받는 인류는 한계에 이르렀다고 한다. 지금 같이 심령과학이나 초과학 같은 학문이 격렬한 논쟁에 휩싸여 있는 현실은, 지금이 물질문명에서 정신문명으로 나아가는 과도기라는 사실을 증명하며, 격렬한 논쟁과 대립 속에서 결국 지금까지 일어났던 어떤 변혁보다도 훨씬 강하고 큰 변혁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신문명으로 나아가는 그 변혁은 어느 특정한 집단들이 이루어나가는 것이 아니다. 한 이성이자 인격체인 사람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진리인 사랑과 용서와 포용 같은 분명한 진리를 인식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이 일부러 의식하지 않아도 그들이 내뿜는 힘이 지구뿐만 아니라 온 우주를 변하도록 하여, 지금 인류가 처해 있는 극심한 위기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 좀 더 정확하게 말해서 2부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양자의학개론 수준에서 윤회설에 관한 설명을 덧붙이고 그에 비추어 볼 때, '전생퇴행요법'은 어떤 뜻이 있는지 설명한 대목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물론과 생기론 사이 대립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드러나지 않았다. 책을 모두 읽어보면 거기까지는 저자가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기 쉽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토록 많은 깨달음을 얻은 이가 그 정도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 리가 없다. 현대과학이 지닌 한계를 인정하고 생기론을 긍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과학 방법론으로 접근하다 보면 언젠가는 유물론이 주장하는 대로 결국은 물성물리학으로 심령과학을 물리학이라는 기존 과학 영역에 확실히 집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는지도 명확하게 덧붙였으면, 나무랄 데가 없었을 것 같다.

 

이 책에 담긴 모든 내용을 깊이 이해하려고 힘쓸수록, 저자가 이 책을 얼마나 많이 고심했는지 더욱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정말 놀랍고 대단한 책이다. 중대 책꽂이 한 구석, 그것도 아주 깊숙한 곳에 처박혀 있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책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책꽂이를 뒤적거리다가 이 책을 발견했는데, 제목에서 알 수 없는 강한 호기심을 느껴서 꺼내들었다. 혹시라도 '빛 좋은 개살구'일까봐 걱정했는데, 몇 장 넘기자마자 정신없이 빠져드는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동안 매우 궁금했던 것들에 관한 대답이 이토록 풍성하게 많이 들어있을 줄이야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심령과학을 공부하는데 필요한 몇 가지 기초 지식을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이 나에게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데, 그것 말고도 내가 이 책에서 얻은 것은 정말 많았다. 마치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가 있는 방에 직접 들어갔다 온 느낌이 들 정도였다.

 

오랜 시간을 들여 이 글을 썼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 이 책을 읽으며 지금까지 내가 생각한 것을 모조리 밝히는 건, 나에게도 고된 일이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힘들 것 같아서 하지 않겠다. 저자도 밝혔듯이 환생과 윤회를 해설한 이론과, 그 진위를 검증하는 과정과 결과는 그 자체만으로도 책 몇 권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저자는 그 모든 것을 여기에서 다루려고 한 것이 아니라, 원종진이라는 사람이 전생퇴행요법으로서 우리에게 선사하는 수많은 지혜와 가르침과 예언을 나누고 싶은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심령과학을 둘러싼 끝없는 논쟁 현장을 찾아나서, 거기에 끼어들고 공부하고 더 많은 깨달음을 얻는 것은 우리 몫이다. 그리고 지혜로운 목소리가 들려주는 가르침을 받아들여, 풍요로운 물질만으로 만족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물질이 부족할지언정 욕심을 버리고 만족하려고 힘쓰고, 거기에서 작은 평안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도 우리 몫이다.

 

매우 엉뚱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몇 마디만 덧붙이고 이 글을 끝내겠다. 윤회 이론에 따르면, 어쩌면 나는 1972년 8월 31일에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류비셰프가 다시 태어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류비셰프라는 이름과 그가 56년 동안 꾸준히 기록한 시간통계에 관한 정보를 듣는 순간, 혼탁한 영혼이 한순간에 깨끗해진 것 같은 엄청난 충격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동질감을 느꼈던 것이리라.

 

만약 그게 정말이라면 나는 예전과는 견줄 수도 없을 정도로 훨씬 큰 자신감을 얻어 더욱 열심히 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영혼진화론에 따른 생각은 나를 더욱 신바람이 나게 했다. 류비셰프는 러시아 과학자로서 산 삶에서 시간통계법을 개발하여 56년 동안 학자로서 매우 훌륭한 삶을 살았지만, 자기도 어쩔 수 없는 완전하지 않은 사람이었기에 이루지 못한 것도 나름대로 많았다. 그렇기에 그는 지난 삶에서 이루지 못했던 것들을 이루고자 지난 삶에서보다 더욱 강하고 완벽한 인물로 거듭나려고 할 것이다.

 

전역한 뒤에 류비셰프 생가와 묘를 찾아가고자 러시아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지난 삶에서 살았던 곳에 들어가는 순간 환생과 영혼진화론에 따라 내 안에 살아있는 류비셰프는 분명히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 경험을 인지하는 순간 나는 유물론자에서 생기론자로 변할 지도 모른다. 아마 극과 같이 변하는 만큼, 그 덕분에 얻을 수 있는 것도 지금까지 얻었던 것과 차원이 다른 어떤 것일 것이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심령과학에 관하여 더 많은 것을 알고자 공부하며 차분하게 기다려야겠다. 편견을 걷어내고 새로운 진실을 바라볼 준비도 빠뜨리지 말자.

 

 

새로운 진실은 처음에는 조롱당하고, 다음에는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며, 나중에는 마치 처음부터 자명(自明)했던 사실처럼 받아들여진다. -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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