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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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사람들이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야말로 사람들에게 가장 신비로운 존재일 것이라고 과감하게 말한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를 쓴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은 시간은 끝도 없는 심연과도 같으며 그 속에서는 어떤 고명한 철학자도 길을 잃고 만다면서 시간이 얼마나 신비로우면서도 두려운지 밝힌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길을 잃어버리고 끝없는 절망에 빠져버린 철학자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철학자들도 그러하다면, 보통 사람들은 아예 시간에 관하여 깊이 생각할 엄두도 낼 수 없다는 뜻일까? 수많은 사람들이 시간 속에서 살고 있지만, 정작 그 시간이 무엇인지 물으면 거의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 말이 맞는 듯 하다.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생각해 보면 시간에는 물리학과 철학으로 접근할 수 있다. 물리학과 철학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일단 머리를 감싸쥔다. 물리학이라고 하면 일단 모르는 사람들한테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고대 상형 문자로밖에 안 보이는 수학 방정식이 떠오를 것이다. 그 고정 관념이 무조건 틀렸다고 볼 수도 없기에, 물리학에 진저리치는 모습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철학을 굳이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면서 고개를 흔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삶 속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철학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하엘 엔데라는 작가는 물리학보다는 철학에 훨씬 신경을 썼다. 흔히 사람들이 떠올리는 딱딱하고 어려운 철학이 아니라 삶 속에서 간단하게 깨달을 수 있는 진리를 말하는데 힘썼다. 그 결과가 '모모'라는 작품으로 나왔다.

 

어느 마을에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여자아이가 한 명 나타난다. 마을 사람들은 그 아이를 '모모'라고 부른다. 모모가 온 뒤 마을은 훨씬 인간미가 넘친다. 아이들은 모모에게서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을 얻는다. 말이 안 통한다면서 한 치도 양보하지 않고 싸우던 어른들도 모모 앞에서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가 어느새 갈등을 풀고 화해한다.

 

화목한 마을에 어느날 온통 검은 옷으로 차려입은 이상한 사람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을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일벌레가 되어버리고 시간을 아끼는데 집착한다. 나이 든 아들은 병든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젊은이는 애인에게 장미꽃을 사 들고 사랑을 속삭이러 가지 않는다. 

 

이상하게 변하는 마을과 모모를 무시하는 사람들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는 모모는 세상에 시간을 공급하는 신과 같은 존재인 호라 박사를 만난다. 그리고 그들이 죽은 시간에서 태어나는 시간 도둑이라는 사실을 알고 모모만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그 뒤 모모와 시간 도둑 사이에 숨막히는 대결이 펼쳐진다.

 

동화에서 미하엘 엔데가 나타내고자 하는 바는 간단하다. 갈수록 시간을 아껴서 더 많은 일을 하는데만 힘쓰면서, 갈수록 인간미를 잃어가고 차갑고 우울해지는 세상에 경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지금과 시간 도둑에게 사람 냄새 나는 풍요로운 삶에 들어가는 시간을 빼앗긴 마을이 뭐가 다를까? 우리도 무한 경쟁 속에서 보이지 않는 시간 도둑에게 시간을 빼앗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간은 자꾸만 어디론가 흘러가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정신 없이 산다. 그러나 막상 돌이켜보면 무엇을 하느라고 그렇게 바빴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할 때가 수두룩하다. 도대체 왜 그럴까? 이 물음에는 각자 나름대로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시간은 무엇인지 밝히려고 힘썼지만, 지금까지도 명쾌한 답은 나와 있지 않다. 사람이 사는데 시간이 무엇인지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보통 사람들은 한 쪽을 채 읽기도 전에 진절머리를 칠 정도로 어렵다고 하는 '시간의 역사' 따위 책을 읽어서 물리학에서 시간은 무엇을 뜻하는지 꼭 알아야 할 필요는 더욱 없다. 그저 이런 따뜻한 동화에서 말하는 인간미 넘치는 시간이 과연 무엇인지만 알면, 삶은 훨씬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시간을 기록하는 어쩌면 아무 쓸모도 없는 짓을 하면서도, 그 인간미 넘치는 시간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해 여전히 심하게 방황하고 있다. 이런 독후감을 쓰면서도 내가 그런 교훈을 지키지 않고 있으니 도대체 뭐라고 변명을 늘어놓아야 할 지 모른다. 그 변명은 다른 글에서나 실컷 늘어놓아야겠다. 늘어놓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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