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색기행 - 나는 이런 여행을 해 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 어떤 주제를 정한 뒤에 그에 관한 것을 취재한 뒤 쓴 글을 묶으면 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보통 기자들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다치바나 다카시라는 '지(知)의 거인'이 한 일이라서 그런지 색다르게 다가온다. 그가 쓴 글 가운데 책에 관한 글을 모았더니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라는 책이 되었고, 여행에 관한 글을 모았더니 이 책 '사색기행'이 되었다.
'뇌를 단련하다. 도쿄대 강의 ①-인간의 현재'를 읽은 뒤 다치바나 다카시라는 인물에게 홀딱 빠져버린 나는 '뇌를 단련하다. 도쿄대 강의 ②-진화의 코스몰로지'가 나오기만 목이 자라처럼 변하도록 기다렸다. 그러나 이 책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나오지 않아서 나를 안타깝게 했다. 그 책이 나오기만 기다리다가, 기왕이면 이 사람이 쓴 모든 책을 사서 읽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계획을 실천하다가 몇 권은 돈이 없어서 결국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와서 매우 안타깝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한국에 번역되어 나오지 않은 책들도 있다는 겅시다. 일본어를 전혀 모르니 일본어 원서를 살 수도 없고, 이 사람이 지은 책 가운데 상당수가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나온 책이라서 절판된 것도 좀 많다고 하니 통탄할 일이다.
어쨌든 지금까지 산 책을 대충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저자는 모두 다치바나 다카시이므로 쓰지 않는다).
이규원 옮김. '사색기행'
박연정 옮김. '청춘표류'
윤대석 옮김. '임사체험' 상, 하권
전현희 옮김. '우주로부터의 귀환'
이언숙 옮김.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여기에서 '사색기행', '청춘표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만 읽었다. 모두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 가운데 이 책 '사색기행'이 특히 재미있었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와 비슷한 '나는 이런 여행을 해 왔다'라는 부제도 붙어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 같이 위대한 인물은 과연 어떤 여행을 했을지 너무 궁금해져서, 만약 이 책을 못 사면 속이 터져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토록 벼르고 또 벼르다가 드디어 내 손에 책을 쥐었다. 부지런히 읽은 뒤에 요즘 유행하는 말로 '낚였다'고 생각했다.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이 류비셰프가 쓴 일기장을 본 뒤에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다음 글을 보자.
나는 일기장을 뒤적여보았다. 1916년의 일기, 1917년의 일기, 1940년과 1941년의 일기를 살펴보았지만 다 똑같았다. 이건 일기라 할 수가 없었다. 하루 동안 한 일을 간단하게 나열하고 시간과 분을 계산한 후에 옆에 다시 알 수 없는 숫자를 적어두었다. 전쟁 이전의 일기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시시콜콜 적고 자기 생각을 풀어 내려가는 보통의 일기와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지음. 이상원, 조금선 옮김.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41쪽
어쩌면 내 생각과 저렇게 같을 수가 있을까? 나는 책을 뒤적이기도 하고 꼼꼼하게 읽기도 하면서, 이 책을 끝까지 보았다. 이 책에 나온 글은 내가 생각했던 기행문이 아니었다. 어디에 갔고 어떤 것이 좋았고……이런 내용을 시시콜콜 쓴 평범한 기행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쩌면 평범한 기행문이라는 말도 적절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보고', '독점 특종- 텔아비브 사건', '뉴욕 1981', 'AIDS의 황야를 가다'와 같은 글은 기행문이 아니라 취재 보고서이다. '무인도에서 보낸 엿새', '가르강튀아 풍의 폭음폭식 여행', '유럽 치즈 여행' 따위가 그래도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여행기에 좀 가깝지만, 그래도 '지의 거인'이라는 대단한 칭호(?)답게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꽉 차 있다.
'낚였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책은 대단히 재미있었다. 과연 한평생 진리만 좇으며 살아온 진정한 지식인이라는 칭송을 받을만 했다. 특히 '유럽으로 반핵 무전여행을 떠나다'에서 나오는 젊은 다치바나 다카시를 보고 나는 온몸을 옥죄는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다. 젊은 다치바나 다카시는 피가 끓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진정한 젊은이였다. 솔직히 혼자서 외국에 나가기는 겁이 나서 역시 우리나라가 좋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나와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났다. '대기만성'이라는 고사성어로 자기를 애써 위로하고 있던 나를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라는 속담이 진짜임을 증명한 젊은 다치바나 다카시가 때려눕힌 셈이다. 매우 아팠다.
좀 아프기는 해도, 다른 글에서 재미를 느끼면서 달걀을 굴릴 수 있었다. '무인도에서 보낸 엿새'는 읽은 뒤에도 자꾸 읽고 싶을 정도로 군침을 삼키게 했다. '가르강튀아풍 폭음폭식 여행'과 '유럽 치즈 여행' 같은 글은 아예 침을 질질 흘리도록 했다. 실제로 '가르강튀아풍 폭음폭식 여행'을 읽을 때는 배가 한창 고플 때여서, 보다가 나도 모르게 이불에 침을 흘리고 말았다. '기독교 예술 여행'을 읽으면서 그가 말하는 기독교 예술이 지닌 아름다움은 어떤 것인지 직접 느끼고 싶어졌다. 그러다가 라틴 아메리카를 침략한 유럽인들이 원주민들을 철저하게 학살한 만행을 폭로한 글을 보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놀랍게도 여기에 실린 글은 상당히 오래된 글인데도 전혀 생명을 잃지 않은 듯 했다. 특히 '팔레스타인 보고'가 그렇다.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나 일본 사람들이나 팔레스타인이라고 하면 일단 테러범과 이슬람 원리주의자를 떠올린다. 그런 편견은 9.11 테러,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라크 침공 따위가 터지면서 미국이 열심히 선전한 정보 때문에 더욱 심해졌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국제정치 흐름을 읽을 수 없다고 다치바나 다카시는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을 미리 예측했다고 내가 짐작하게 할 정도로, 팔레스타인 사태에 관한 핵심만을 뽑아 '팔레스타인 보고'를 썼다. '팔레스타인 보고'를 읽으면서 지금까지 일어난 중동 또는 아랍과 관련된 사건을 생각해 보면, 좀 부풀려서 그것들이 모두 '팔레스타인 보고'라는 줄기에 매달린 고구마인듯 하다.
그리고 이 책에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또 한 가지는 다치바나 다카시가 설명하는 여행을 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는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에서 밝힌 오토마톤 구조와 같은 원리를 여행이 중요한 까닭을 설명하는데서도 응용한다. 곧 새로운 자극을 얻으려면 여행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이다.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어떤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고, 뇌는 익숙한 것은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되도록 적응한다는 것이다. 또 몸이 직접 가야만 느낄 수 있는 것도 있으니 여행을 다녀야 할 까닭은 더욱 분명하다.
달콤한 치즈를 씹고 포도주를 맛보고, 큰 교회에서 음악을 듣다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그의 입 안에서 녹아내린 치즈, 그의 입 안에 향기를 가득 채운 포도주, 웅장하고 진중한 음악에서 나오는 감동을 머금은 눈물이 문체에 묻어나는 듯 하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구축한 끝이 보이지 않는 독특한 세계는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유혹이다. 너무 많은 정보를 끝없이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좋지 않다는 비판을 잠재울 만큼 그 유혹은 대단하다. 나는 이미 그 유혹에 단단히 넘어가버렸다.
이 책에 단 한 가지 불만이 있다면 번역 문제다. 이규원 씨가 '뇌를 단련하다. 도쿄대 강의 ①-인간의 현재'도 좀 지저분하게(?) 옮겼는데, '사색기행'에서도 그와 같은 일이 벌어져서 좀 짜증이 났다. '살아있는 역사'를 한국어로 옮긴 김석희 씨보다는 확실히 실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일본말이 한국어를 좀 많이 오염시켜서, 일본말을 우리말로 옮길 때 문제가 많다고 한글학자들이 매우 많이 지적했다. 그런 형편인데도 이 사람이 옮긴 책에는 일본어 번역투가 여전히 많이 보였을뿐만 아니라, 충분히 한국어로 옮길 수 있는 영단어도 그냥 놔두는 바람에 글을 읽기가 좀 껄끄러웠다. 지금까지 번역한 경력을 보아하니, 다치바나 다카시가 쓴 책이 새로 나오면 이 사람이 또 옮길 듯 하다. 다음에는 좀 더 깔끔한 번역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