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1
김진명 지음 / 해냄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2005년 말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한 황우석 교수 파문은 대한민국에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노벨상 후보로까지 거론되었던 황우석 교수가 밑도 끝도 없이 추락하는 모습을 바라본 사람들은, 혹시가 설마로, 설마가 진짜로 변하자 크게 실망했다. 난치병 환자들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까지 막연하게 품고 있던 희망을 크게 꺾어버린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번 파문은 대한민국 안에서 곪았던 모든 것들이 터졌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수많은 문제를 드러냈다. 과학, 정치, 사회, 문화 따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 사태를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굉장히 어려울 듯 하다. 그래도 문제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문제가 터졌는데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터졌다가 잠깐 잠잠해진 상처는 다시 곪아 또 터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거센 비판을 받아야 할 사람은 당연히 2005년 논문에 제 1 저자로 나와 있고 그동안 온갖 혜택과 영예를 누렸던 황우석 교수다. 2004년 논문에 이어 발표한 2005년 논문이 말하는 것은 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드는데 성공할 확률이 크게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동안 세계에서 70여 개 특허 신청이 나올 정도로 줄기세포 기술은 많이 발전했다. 그러나 기술은 있어도 그 기술에 따라 줄기세포를 배양하는데 성공할 확률이 낮아서, 어느 기술도 뚜렷하게 훌륭하다고 인정받지는 못했다. 황우석 교수 연구팀이 내놓은 발표 성과에서 확률이 중요한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2004년 논문에서는 천 개가 넘는 난자를 써서 겨우 줄기세포 1개를 만들었다면, 2005년 논문에서는 난자를 180여 개 정도만 썼는데 줄기세포를 11개나 만들었다는 것이다.

 

영롱이, 스너피, 2004년 논문, 2005년 논문……성과가 계속 나오면서 황우석 교수에게 쏟아지는 찬사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최고 과학자로 선정된 뒤 대통령급 경호, 보통 과학자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연구비 따위 온갖 혜택을 누렸다. 최재천 교수, 김병종 교수와 함께 쓴 '나의 생명 이야기'도 불티나게 팔렸고, 교과서에 황우석 교수가 이루어 낸 업적들이 실렸다. '황우석 증후군'이라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였다. 

 

그런데 PD 수첩에서 감히 위대한 황우석 교수를 비판했다. 황우석 교수가 줄기세포 연구를 하면서 쓴 난자를 얻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PD 수첩 편을 들어주는 진영은 완전히 묻혀야 했다. PD 수첩을 맡은 한학수 PD 가족들은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에 시달려 집 밖에도 못 나갔고, 한학수 PD는 인터넷에서 난자당했다. 누리꾼들은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황우석 교수에 관한 어떠한 비판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했다. 

 

MBC는 그야말로 파탄으로 치닫는 듯 했다. 뉴스데스크에 광고가 끊기고 PD 수첩은 방송을 그만뒀다. 얼마 뒤 YTN이 MBC가 취재 윤리를 어겼다는 보도로 MBC에 치명타를 먹였다. 주주 총회가 열려 방송사 전체가 위기에 빠져 있다고 평을 내릴 정도로 MBC는 추락했다.

 

MBC와 같은 노선을 걷는 한겨레,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따위를 조중동 같이 세상 흐름을 타는데만 익숙한 수구 언론들은 언론으로서 자격이 없다면서 비난했다. MBC를 비난하는데 집중하기는 했지만, 항상 그들과 대립해 온 여러 인터넷 언론들과 한겨레도 그런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런데 그토록 비난이 심했는데도 황우석 교수를 비판하는 움직임은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갈수록 커졌다. 젊은 생명공학자들이 모인 BRIC에서 논문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MBC와 같은 언론들은 도를 넘어선 비난에도 고개를 절대 숙이지 않았다. MBC는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도 언젠가는 자기들이 옳다고 밝혀질 것이라고 믿었다.

 

결국 걱정했던 일이 터졌다. 황우석 교수가 그토록 말이 많던 2005년 논문을 철회했다. 황우석 교수는 생명윤리를 위반했고 논문을 조작했다고 인정했다. 설마 했던 일이 사실로 드러나자 수많은 사람들이 충격에 휩싸였다. 핵폭탄이 터지면서 나오는 열선, 열풍과 같은 폭풍이 대한민국을 휩쓸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황우석 교수와 황우석 교수를 무작정 지지하는 사람들, 소위 '황빠'들을 비판하며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한 MBC, 한겨레 따위 언론은 지옥 문턱까지 몰렸다가 살아났지만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황우석 교수를 영웅으로 만들면서 이치에 맞는 비판을 잠재우는데 힘썼던 조중동도 완전히 태도를 바꿔서 흔히 말하는 '황까'가 되어 버렸다. 

 

황우석 교수가 끝없이 추락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여러 가지 반응을 보였다. 그 가운데 내가 가장 가당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바로 PD 수첩이 윤리 문제를 제기했을 때부터 황우석 교수에 대한 어떤 비판도 막아버리려고 작정한 골수 '황빠'들이다. 그들은 황우석 교수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한 뒤에도 황우석 교수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강변하면서, 이치에 맞는 비판도 아예 듣고 자기들한테 이로운 말만 골라 들었다. 내가 한 때 심하게 논쟁을 벌였던 청사모(청주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과 어쩌면 그렇게 똑같을까.

 

그들이 보이는 추태를 여기에서 일일이 다 쓸 필요는 없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그들이 제기하는 음모론이었다. 황우석 교수 파문을 둘러싸고 연세대 음모론, 삼성 음모론, 북한 주사파 음모론, 프리메이슨 음모론, 미국 음모론 따위 온갖 음모론이 제기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끈질기게 제기되는 것이 미국 음모론이다. 섀튼 교수가 미국에 파견되어 있는 우리나라 줄기세포 연구원들을 미국에 남도록 권유하고, 그 뒤 줄기세포 기술을 특허 신청을 냈다는 소식이 뜬 뒤 미국 음모론이 대세로 자리잡었다.

 

그 뒤에 벌어진 이야기, 그리고 빠진 이야기들은 여기에서 굳이 쓸 필요가 없을 듯 하다. 다른 글에 써도 충분하다. 나는 그저 '미국 음모론'을 이야기하려고, 지금까지 이렇게 긴 이야기를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황우석 교수 파문에 관한 생각을 정리할 목적도 있었으니 돌 한 개로 두 마리 참새를 잡은 셈이다. 혹시 이 글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독후감을 쓰는 독특한 방식이라고 생각하면서 그저 넘어가 주면 대단히 고맙겠다. 독후감을 어떻게 쓰라는 정확하고 엄격한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미국이 위대한 대한민국 과학자 황우석을 죽이려고 한다. 황우석 교수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사진을 실수가 아니라 일부러 잘못 집어넣고 줄기세포를 바꿔치기한 노성일 이사장이 죽일 놈이다. 미국 시민권이 있는 노성일 미즈메디 병원 이사장이 미국에서 사주를 받고 황우석 교수를 죽이기 이미 윤리 문제가 불거지자 섀튼 교수가 발을 빼려고 한 것은, 섀튼 교수도 동반자가 아닌 미국 앞잡이일 뿐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엄청난 국익을 선사하고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황우석 교수를 매장하려는 모든 세력은 미국이 사주한 매국노다."

 

미국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이 책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자연스레 떠올렸다.

 

깡패들이 웬 남자를 죽이는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단순한 살인 사건으로 여겨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런데 권순범이라는 젊은 기자가 관심을 가지고 의문점을 집요하게 파고들기 시작한다. 이용후를 살해한 이야기를 해 줬던 조폭 두목 박성길이 교도소 안에서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권순범은, 그 남자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며 그 죽음 뒤에는 뭔가 거대한 것이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죽은 남자가 천재 핵물리학자인 이용후라는 것을 안 뒤 의심은 확신으로 바뀐다.

 

박정희 대통령을 모셨던 고급 요정 마담 신윤미, 이용후의 친딸 이미현, 이용후와 같이 미국에서 연구하다가 고국인 인도로 돌아간 핵물리학자 라프르 간다……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사건에 휘말려 때로는 목숨을 잃을 뻔 하면서, 권순범은 그 살인 사건 뒤에 숨어 있는 거대한 음모를 밝혀낸다. 그 음모는 미국이 꾸민 것이었다.

 

"세계 속에 우뚝 선 강한 대한민국을 꿈꾸던 박정희 대통령이 이용후 박사를 설득하여 핵무기를 개발했다. 지하 핵실험만 남겨놓은 상황이었는데 이것을 알아챈 미국이 이용후 박사와 박정희 대통령에게 마수를 뻗쳤다. 이용후 박사는 미국이 사주한 깡패들에게 살해당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인 박정희 대통령은 지하 핵실험을 강행하려고 하다가 미국이 사주한 김재규에게 총을 맞고 서거했다."

 

그는 그 음모를 밝혀낸 뒤, 대통령에게 핵무기 개발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대통령은 남북 합작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시도하지만, 정부 기관 안에 숨겨진 미국 앞잡이 때문에 모든 것이 들통날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미국으로 가려던 매국노 이한수를 권순범이 비행기 안에서 처단하여 위기를 넘긴다.

 

남북은 힘을 합쳐 드디어 핵무기를 개발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국방부에서는 핵무기를 마련한 한국군에게 필요한 전쟁 시나리오를 모집한다. 권순범이 쓴 원고가 1등을 차지하고 국방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원고 내용이 흘러나오면서 소설은 끝난다.

 

문체도 어떤 생각을 드러내는 부분에서는 '~가?'라는 의문형 종결 어미를 많이 써서 심금을 울리게 했고, 내용 자체도 애국심을 자극하다 보니까 사람들은 소설에 정신 없이 빠져들 수 있었다. 그런 장치를 마련하는 솜씨는 칭찬받을만 하다. 그 솜씨 덕분인지 몰라도 이 책은 약 450만 부나 팔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대박이 터진 소설 가운데 하나인 '퇴마록'이 약 800만 부가 팔렸다고 하니 그와 견주어 볼 때 나름대로 크게 성공한 셈이다. 대박이라는 말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 까닭을 나름대로 알아봤는데, 내가 알아본 바가 맞다면 참 우울하다.

 

이 소설이 성공하여 김진명이 떼돈을 벌었을 때인 1990년대에 조문 파동이 일어나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골수 극우파인 박홍 신부가 주사파들이 이번 조문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내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하여,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운동권 세력이 된서리를 맞았다. 전경들이 연세대 도서관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일까지 벌어졌고, 수많은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끌려갔다. 수구 언론은 그토록 강조했던 국가 안보를 더욱 열심히 선전했고, 드디어 어느 정도 햇빛을 보기 시작했던 학생 운동도 다시 싸늘한 분위기 속에서 뭇매를 맞기 시작했다.

 

수구 세력이 원하는 대로 남북 관계가 얼어붙으면서, 사람들은 언제까지 북한에 시달려야 하는지 모른다고 불만을 품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박정희 대통령을 다시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군사 독재라도 상관없으니 대한민국을 세계 속에 우뚝 서도록 한 영웅인 박정희 대통령이 다시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주장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그 주장은 참여 정부가 나라를 잘 이끌지 못하고 휘청거리면서 더욱 강해기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권력을 쥐고 있을 때 반공과 국가 안보를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이순신과 같이 나라를 지키거나 강하게 만든 영웅을 그리워하도록 만들었다. 그 덕분에 차관에 의존해서라도 경제를 빠르게 개발하여 자기도 영웅으로 국민들 의식에 뿌리내릴 수 있었다. 그러면서 독재 권력을 정당한 것처럼 만들고, 부당한 독재 권력에 대항하는 민주 운동가들을 철저하게 탄압할 수 있었다. 남한 사람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빨갱이들이 추종하는 김일성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마르크스 경제학에서 나오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서 성립하는 '적대적 의존성'이라는 개념을 박정희와 김일성 사이에서는 '적대적 공범자'라는 개념으로 바꾸어 적용할 수 있다.

 

어쨌든 아직도 박정희 대통령 같은 독재자가 또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별로 달갑지 않다. 심지어 민주화 운동이 대한민국 발전에 매우 큰 걸림돌이 되었으며, 한국 사람들은 역시 국민성이 낮아서 민주주의는 아직 이르다는 주장도 나오는 것을 보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런 주장이 오히려 형편없이 낮은 사람들 의식 수준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영웅을 아예 무시해서는 안 된다. 유신사관도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자연과학사와 인문사회사는 분명히 다르다. 인문사회사에서 유신사관을 사람들이 널리 받아들일 정도로 강한 힘을 지닌다면 곤란하다. 설사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폭군과 같은 독재자는 영웅이 될 수 없다. 설사 독재에 맞서 사람다운 삶과 정당한 권리를 얻어내려고 싸운 민중이 있었기에, 역사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발전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천재 수학자는 이론을 제시하고 실력 있는 수학자는 그 이론을 증명한다는 말이 있다. 천재 수학자도 중요하지만, 실력 있는 수학자도 역시 중요하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발전한 원동력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던 개인 수완보다 피땀과 눈물을 쏟았던 민중들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아예 무시하려는 것인가? 왜 그토록 박정희 대통령에게 집착하는 것인가? 그토록 영웅에 열광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 1조를 단순한 법조문이 아닌 현실로 바꿔놓은 힘은 바로 민중에게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 법조문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그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가, 아니면 애써 무시하는 것인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그때만 하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착착 감기는 조청과도 같았다. 북한과 힘을 합쳐 핵을 개발하여 민족 공조를 높인다는 내용은, 언제까지 북한과 원수로 살아야 할지 걱정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강한 대한민국과 겹쳐 희망을 키웠다. 그리고 미국이 심어놓은 매국노를 처단하고 핵무기를 만드는데 성공하는 내용도, 자기들은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NPT를 이용하여 다른 나라가 핵무기를 가지지 못하게 하는 미국에 대한 불만을 잠시나마 푸는데 한 몫 단단히 했다. 게다가 마지막에 핵미사일을 발사하여 일본을 무릎 꿇게 하는 장면에서, 사람들은 대단한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그런 대단한 일을 실현하려고 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사람들에게 어떤 인물인가? 당연히 잿더미에서 대한민국을 일으킨 영웅이지 않은가!

 

원래 자기가 존경하는 인물을 깎아내리면 사람들은 화를 내기 마련이다. 그렇게 화를 내는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자기들에게 위대한 인물을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치에 맞는 논리로 지적하지 못하는 것과, 그들이 화를 내는 까닭이 문제인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을 숭상하는 사람들은,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경제학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일갈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일군 단 하나뿐인 성과로 그들이 내세우는 경제 성장을 꼼꼼하게 뜯어보면, 그들이 그토록 강변하는 것처럼 완벽한 방법이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라면 경제학자들은 모두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견해가 엇갈린다. 물론 나는 박정희 대통령이 이룬 경제 성장을 수구 세력처럼 철저하게 긍정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박정희 대통령을 숭상하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 사람들이 과연 대한민국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독재 권력에 빌붙어 단물을 빨아먹고 살았던 기득권 수구 세력이지 않은가? 그들이 주장하는 바가 과연 지금 이치에 맞는가? 이념 논쟁을 포기하면 나라가 망한다면서 빨갱이를 척결하고 적화 통일을 막아내자는 구호를 그와 전혀 상관없는 사립학교법 따위에 적용하는 낡아빠진 사고가 과연 그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우리 조국 '대한민국'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그들이 과연 정당한 비판을 받아들이는가?

 

그들과 황우석 교수를 무작정 지지하는 광신도(?)들이 무엇이 다른가? 사이비 교주, 줄기세포교, 파시즘이라는 말이 아무 까닭 없이 그저 황우석 교수를 매도하려고 나온 말인가? 처음에 난자 윤리 문제를 제기했을 때부터 그들은 황우석 교수를 비판하는 모든 시도를 차단하려고 했다. 난자 윤리 문제를 걸고 넘어지면 자기는 얼마나 깨끗하게 살았냐는 이상한 말로 받아쳤다. 젊은 생명과학자과 소장파 교수들이 논문을 의심하고 검증을 주장하자, 황우석 교수처럼 논문도 내 본 적이 없는 것들이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느냐고 비난했다. 마음에 드는대로 끼워맞추면 그만이었지 이성에 따른 바른 논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논문 조작이 사실로 드러나고, 2004년 논문마저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황우석 교수를 무조건 믿는 사람들은 기가 꺾이지 않았다. 온갖 음모론을 쏟아내면서 황우석 교수를 무작정 감싸기에 바쁘다. 황우석 교수에게 불리한 보도가 나오면 무조건 편파 보도이고 잘못되었다고 우긴다. 이런 사람들이 과연 정상이라고 볼 수 있는가? 과학은 끝없는 의심과 철저한 검증으로만 발전시킬 수 있으며, 그렇게 나온 결과만이 진정으로 국익을 창출할 수 있다. 그 기본 원리마저 무시하는 저들이 스스로 국익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며 애국자라는 착각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면 기가 차다. 

 

그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황우석 교수가 끝도 없이 추락하는 모습을 본 광신도들은 그들이 그토록 숭상했던 영웅이 추락하는 모습을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식이 죽었다는 말을 애써 부정해서 위안을 얻으려는 어머니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황우석 교수를 살려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그들에게 김진명이 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매우 큰 영향을 주지 않았는지 의심스럽다. 이휘소 박사(이 소설에서는 이용후 박사)와 황우석 교수를 그들은 같은 선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덤으로 황우석 교수를 무작정 지지하는 사람들이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영웅(?)을 그리워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다면 내 생각이 완전히 들어맞는 셈이다. 그런 사고를 불러일으키는데 김진명이 기여했다면, 그는 내 관점에서는 대한민국에 매우 큰 죄를 지은 셈이다.

 

한국에서 우익이라고 설치는 세력이 정체성이 썩어 문드러졌다고 일갈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형편 속에서, 김진명은 그나마 건강한 우익으로 평가받는 편이다. 이 소설에서도 북한과 협력하는 모습에 공을 들인 것을 보니까, 극우 세력과는 그나마 다른 사람인 듯 하다. 그리고 이 책이 매우 재미있어서 새삼스럽게 흥미를 느꼈다.

 

그러나 나는 이 소설을 읽은 뒤 몇 년이 지나서야 독후감을 쓰면서, 김진명이라는 사람을 그다지 좋지 않게 보기 시작했다. 이화여대에 다니는 어느 여학생이 쓴 김진명 소설을 비판하는 보고서를 읽으면서 그 말이 옳다고 믿었다. 김진명에 관한 수많은 자료를 읽으면서도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그가 쓴 다른 소설을 사 보고 싶다는 생각도 어느새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갑자기 이문열이 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떠오른다. 내용은 그다지 상관이 없다 하더라도 제목만큼은 딱 알맞다. 황우석 교수와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다. 일그러진 영웅을 감싸려고 발버둥치면서 이치에 맞는 비판을 모조리 거부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갑자기 맥이 탁 풀려버리도록 하는 이 소설 끝부분을 떠올릴 때 왜 그 두 인물이 겹치면서 떠오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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