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스펜서 존슨 지음, 형선호 옮김 / 청림출판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행복'을 읽은 뒤 바로 이 책 '선택'을 읽기 시작했다. 스펜서 존슨이라는 한 사람이 내놓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선물', '행복'에 사람들은 열광했지만, 나는 그 세 권을 읽으면서 별다른 마음울림을 받지 못했고, 결국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하는 이야기에는 신물이 났다. 내가 글마다 육군사관학교와 군인 이야기를 늘어놓으니까, 그 참을 수 없는 진부함에 신물이 났다면서 좀 다르게 써 보라고 일갈한 어느 사람처럼 말이다. 읽기 싫었지만 그래도 뭔가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서 끝까지 읽었다. 그러면서 두 가지 생각을 했다.

 

그 두 가지 생각을 풀어놓기 전에, 일단 이 책에 나오는 주요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우유부단하지 않으며 중요한 부분이 빠진 어중간한 결정을 하지 않는다. 나는 이 확실한 시스템의 두 가지 부분을 모두 사용해, 곧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으로 지속적으로 더 나은 결정을 한다. 나는 스스로 실제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머리를 써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 개인적인 질문을 던져 내 마음에 묻는다. 그런 후에 나 자신과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 행동한다.

 

정말로 필요한 것만을 추구할 때 더 나은 결정을 더 빨리 할 수 있다. 내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정보를 모아 선택의 폭을 넓히며, 미리 충분히 생각하고 있는가?

 

(필요한) 정보는 사실과 느낌의 집합이다. 다른 사람에게서 정보를 얻을 때는 직접 확인한다. 나를 가르치는 가장 좋은 스승은 과거에 내가 했던 결정이며 거기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며 그저 그것으로서 배우면 된다. 내가 잘못 내린 결정은 그 당시 내가 한 착각에서 비롯되었다. 진실 같은 허구를 찾아내고 그 길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발견하라. 시간이 지나면 명백해지는 진실을 보고 현실을 확인하고 그에 따라 판단하라.

 

지속적으로 더 나은 결정을 하려면 나는 더 좋은 것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하면서 믿으면서 그런 믿음을 바탕으로 행동해야 한다. 결정을 내릴 때 느낌이 좋지 않으면 자기 직관을 믿고 결정을 다시 돌이켜 봐야 한다……

 

 

우리는 살면서 두 가지 또는 두 가지가 넘는 대상을 놓고 선택해야 하는 순간을 시도 때도 없이 맞이한다. 그런 때 모두 나름대로 기준이 있기는 한데, 그 기준이 반드시 논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꼬치꼬치 파고들자면 결국 살아남는데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는가가 기준이 되겠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까지 일일이 따져볼 정도로 한가롭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따져볼 능력도 사실 없다. 그렇게 따져볼 능력은 오로지 순수한 이성으로만 완벽하게 내릴 수 있는데, 애당초 순수한 이성이란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처럼 현실에는 절대 없기 때문이다.

 

첫 번째 생각은 이 책에 나오듯이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가 사실과 느낌으로 이루어진 복합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행복'에 나오는 '최상의 자아(The Intuitive)'라는 개념을 다시 떠올려 보면, '선택'에 나오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그것이 두려워서 내리는 결정인지 아니면 좋아서 내리는 결정인지 생각하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를 것이다. 이는 '행복'에서 나오는 일곱 가지 원칙 가운데 세 번째 원칙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곧 사실과 느낌으로 이루어진 복합체인 정보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정보라는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감정만 앞선다면 당연히 판단을 그르치겠지만, 이성만 너무 지나치게 믿어도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흔히 열심히 공부하고 세상을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진 젊은이들이 그런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높은데, 그런 젊은이들은 사회 경험이 많은 어른들이 내리는 판단이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데도 잘 들어맞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나도 그런 젊은이들 가운데 한 명이다.

 

두 번째 생각은 실제로 쓸모가 있는 것을 찾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각자 자기에게 실제로 쓸모가 있는 것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 물음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인생 자체마저도 바뀔 수가 있다. 각자 나름대로 정의하겠지만, 나는 모든 사람에게 통하는 정의는 자기가 나중에 홀로 서서 한 인격체로서 사회에 공헌하며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으로서 이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실제로 자기에게 쓸모가 있는 것을 찾는데 가장 필요한 자세는 자기가 헛된 욕심이나 거짓에 홀려 있지 않은지 꾸준히 성찰하는 것이다. 이 세상을 혼란스럽고 삐뚤게 만드는 가장 큰 까닭 가운데 한 가지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Need)과 원하는 것(Want)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헛된 욕심이나 거짓 때문에 쓸데없이 원하는 것(Want)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자기를 성찰하는 사람만이, 자기와 다른 사람을 믿을 줄 알고 정말 필요한 것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글을 써 놓고 읽어보니 안타깝게도 내가 그토록 비판하던 당위론에 가깝다. 앞에서 말한 그 두 가지 생각 말고도 뭔가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것이 있었는데, 그게 무엇인지 제대로 표현하지 모해 결국 이 정도밖에 쓰지 못했다. 그 생각을 글로 나타내 정리하려면 '생각의 기술'이라는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 '선택'에 이어 나온 스펜서 존슨이 쓴 최신작인 '멘토'는 읽지 않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