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와 악마 1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엄청난 대박이 터진 '다빈치 코드'를 쓴 댄 브라운이 예전에 썼던 '천사와 악마'라는 소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지만 '다빈치 코드'가 크게 성공한 덕분에 불티나게 팔린 책이다. 나는 '천사와 악마'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다빈치 코드'를 읽기 전에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일단 이 책을 샀다.

몇 장을 넘기자마자 나는 이 책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시간이 흐르는 것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정신없이 읽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면 한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아무리 집중해도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 읽고 나면 쉽게 싫증을 내는 나한테는 참 대단한 일이다. 지금까지 소설을 제법 읽었지만, 완전히 빠져 정신없이 읽었던 소설은 '퇴마록',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빼고 별로 없었다. 참 오랜만에 느끼는 즐거움이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엄청나게 잘 짜인 구조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좀 마음을 놓으려고 하면 내가 따라온 길이 잘못되었다고 한 방 먹이는 이야기가 튀어나와서 절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특히 일루미나티가 지니고 있는 이중성에 관한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반전은 너무 충격이 커서 끔찍할 정도이다.

대학교 1학년 2학기 때 교양 과목으로 물리학을 배운 덕분에 반물질(Anti-matter)과 입자 가속기에 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나는 이 소설 처음에 나오는 과학 이야기를 전혀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소설에서 사실이라고 밝히면서 소개하듯이 반물질은 매우 놀라운 물질이다. 현대 물리학에서 뉴트리노 입자, 초끈 이론, 암흑 물질 따위와 더불어 가장 흥미로운 주제이면서도 매우 어려운 주제이다. 이런 어려운 주제를 사람들이 어려워하지 않도록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지닌 능력이 매우 놀라웠다.

반물질을 온 세상에서 처음으로 만들어 낸 레오나르도 베트라 박사를 죽이고, 반물질을 훔쳐 바티칸을 잿더미로 만들려는 무시무시한 음모를 꾸민 일루미나티(Illuminati)를 막아내는 로버트 랭던과 베트라 박사의 딸인 비토리아 베트라. 하버드 대학교 종교기호학 교수인 랭던은 기호학, 미술, 종교에 관한 해박한 지식으로 고대 조직 일루미나티가 만들어 놓은 비밀스러운 길을 찾아내면서 사건을 차근차근 해결한다. 막혀서 어쩔 수 없을 듯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여러 가지 단서를 토대로 생각을 유연하게 바꾸면서 결국 해답을 찾아내는 랭던을 보면서, 머리가 따라가지 않는 나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추리 소설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그런 즐거움과 거의 같았다. 예전에 읽었던 '소년탐정 김전일', '명탐정 코난', '셜록 홈즈 전집', '도둑맞은 편지', '모르그가의 살인사건', '마리로제 살인사건', '보이지 않는 침입자' 따위가 갑자기 읽고 싶었다.

반물질은 에너지 효율이 100%로 핵융합 발전과 더불어 가장 이상에 가까운 동력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이름 그대로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물질과 전기 성질이 반대이기에, 물질과 닿기만 하면 무조건 반응해 사라진다. 그리고 그 반응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엄청나게 크다. 이 에너지를 어떻게 쓰느냐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잘 쓰면 인류는 앞으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끙끙 앓을 필요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잘못 쓰면 핵전쟁보다 더 끔찍한 공포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핵분진과 방사능 따위를 남기는 지저분한 핵무기와 다르게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쓸어버리기에, 어떻게 생각하면 차라리 낫고 한편으로는 더욱 끔찍하다.

앞에서 내가 왜 반물질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이중성에 관해서 말했는가?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 이중성이기 때문이다. 소설 제목인 '천사와 악마'는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천사라는 과학을 탄압하는 종교라는 악마인가? 천국에서 쫓겨난 천사가 악마로 변하기 때문에 천사와 악마는 종이 한 장 차이도 나지 않는 것인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나는 과학과 종교가 맺는 관계에 따라 나타나는 모습을 상징한다고 과감하게 말한다. 그것이 이 소설이 가장 강조하는 것이다.

나름대로 풀어서 설명하겠다. 이 소설 제목인 '천사와 악마'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띠는 가장 기본인 성질 가운데 한 가지인 '이중성'을 잘 나타낸 말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물체가 입자와 파동이라는 절대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두 가지 성질을 동시에 보여주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물리학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고 있는 상식이다. 이런 이중성은 결코 물리학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반물질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가장 이상에 가까운 에너지원이 될 수도 있고, 세상을 통째로 날려버릴 끔찍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이 소설이 궁극으로 말하는 바를 떠올려야 한다. 그것은 바로 "과학과 종교는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올바르게 대답하는 것이다. 그 대답은 무엇인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이 책에 정신없이 빠져버린 더 큰 까닭이 있다. 정말 재미있기도 하지만, 과학과 종교에 관해서 너무 많은 것을 알아내지 못한 나에게 매우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에서 무엇을 얻었는가?

검은 눈동자로 세상을 어둡게 바라보면서 어떤 것이 지닌 장점보다는 단점을 바라보는 버릇이 내가 어릴 때 이미 생겼고 그것이 매우 심하게 굳은 터라, 종교를 바라보는 시각도 그다지 곱지 않다. 특히 기독교과 이슬람 교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다. 9.11 테러는 기독교 원리주의와 이슬람 원리주의가 대립하면서 몰고 올 혼란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기독교 원리주의자 부시와 이슬람 원리주의자 빈 라덴이 충돌한 뒤 그 충돌은 더욱 복잡해지면서 세상은 엄청나게 혼란스럽다. 나는 그 양상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면서 더욱 크게 화가 났다. 그리고 주위에서 나타나는 타락한 종교인들을 바라보면서 분노는 더욱 심해졌다.

그리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면서 과학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렸던 나는 대학교에 들어온 뒤 제대로 과학을 공부하면서 원래 지니고 있던 과학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회복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관심과 종교에 대한 증오가 연결된 것이다. 종교는 이성 따위는 전혀 없는 순전한 믿음으로 구성된 어이없는 존재였고, 과학은 내가 그토록 찬양하는 이성으로 무장한 성스럽고 굉장한 존재였다. 성묵이가 나한테 지적한 것처럼 과학이 나에게 종교가 되어버린 것이다. 종교가 아무리 억눌러도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열광했다. 사실 나는 이 소설에 나오는 일루미나티에 충성하는 암살자와 같은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종교를 이해하고 포용하려고 하는 척 하면서, 현대 사회에서 차츰 힘을 잃어가는 종교를 바라보면서 속으로 통쾌한 기분을 맛보았다. 지금 과학이 완전하지 않기는 하지만, 지금처럼만 과학이 발달한다면 결국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그 위대한 과학을 충실히 이해하려고 힘쓰는 나를 매우 위대한 존재로 생각했다. 곧 영웅 심리가 극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것은 곧 철없는 생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나는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소설은 흔들리는 나를 아예 때려눕혔다. 궁무처장이 온 세상에 하는 연설을 읽으면서, 나는 심장이 터질 듯한 감동에 휩싸였고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소설에서 궁무처장이 연설하는 것을 생방송으로 바라본 CERN에서 일하는 과학자들과 온 세상 사람들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과학과 종교는 서로 살아남으려고 맞서 싸워야 하는 그런 운명이 아니라, 서로 도우면서 인류 문명을 이끌고 살찌워야 할 의무을 지니고 있다. 그래야 애매한 듯 하면서도 결국 진리라고 할 수 있는 이중성이 빛을 본다. 과학과 종교는 서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풀어주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결국 둘 다 이중성을 띤다. 종교를 극단으로 거부하는 일루미나티나 원리주의를 따르면서 과학을 거부하는 종교나 둘 다 옳지 않다. 사람들은 열린 마음과 이성으로 과학과 종교를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 두 가지가 서로 충돌한다면 그 충돌을 줄이고 서로 이해하고 같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을 닦으려고 힘써야 한다.

세상이 더욱 혼란스러워지면서 과학자들과 종교인들이 서로 이야기하려고 세상을 올바르게 다잡으려고 힘쓰고 있지 않은가? 예전에도 그랬다. 이미 깨달은 자들은 과학과 종교는 절대 대립해서는 안 되고 화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가톨릭 사제이면서 CERN에서 가장 뛰어난 과학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레오나르도 베트라 박사, 수녀와 사랑에 빠진 교황을 도와준 생명과학, 일루미나티가 만든 길이 나타내는 거대한 십자가 따위는 무엇을 뜻하는가? 작가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여 소설에 빠져들도록 하려는 그런 목적으로만 이중성을 상징하는 이야기를 자꾸 집어넣은 것 같은가? 내가 보기에는 절대 그렇지 않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깨달아야 한다고 작가가 강조하는 핵심이다. 과학과 종교가 서로 이해하고 같이 발전한다면 인류 문명은 앞으로 더욱 번영할 것이요, 과학과 종교가 계속 대립한다면 인류 문명은 비틀거리다가 결국 파멸할 것이다. 소설 제목과 연관지어 말한다면 과학과 종교는 인류를 구원할 '천사'가 될 수도 있고 인류를 멸망시킬 '악마'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천사와 악마' 가운데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 답은 뻔하지 않은가? 망설일 까닭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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