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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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4시간 중 그 11분 때문에(말도 안 되는 소리긴 하지만, 모든 사람이 매일 밤 아내와 사랑을 나눈다고 가정할 때) 결혼을 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아이들의 울음을 참아내고, 늦게 귀가하게 되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함께 제네바 호숫가를 거닐고 싶은 수십 수백 명의 다른 여자들을 훔쳐보고, 자신을 위해 값비싼 옷을, 그 여자들을 위해서는 더 비싼 옷을 사고, 채우지 못한 것을 채우기 위해 창녀를 사고, 피부관리, 몸매관리, 체조, 포르노 등 거대한 산업을 먹여살리고 있는 것이다……

인류문명에 뭔가 문제가 있었다. 그 문제는 신문에서 떠들어대는 것과는 달리 아마존의 삼림훼손도, 오존층 파괴도, 판다의 멸종도, 담배도, 암을 유발하는 음식도, 감옥 내의 열악한 환경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종사하는 직업, 바로 섹스였다……


'sex'를 우리말로 어떻게 나타내는가? 사랑나누기? 성행위? 성접촉? 어떻게 나타내든 상관없이 '사람'이라는 종족이 지구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 가운데 한 가지이다. 어떻게 보면 인류 문명에서 사랑은 식량과 자원보다 훨씬 중요하다. 만약 사람들이 성행위에서 전혀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나아가 사람들이 이성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도록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미친 과학자가 인류를 협박한다면,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생각할까? 온 세상 석유를 자기 손아귀에 넣으려는 악당이나 지구를 통째로 날려버릴 무기를 가진 악당처럼 여기지 않을까?

나는 사랑과 연애를 다룬 소설은 거의 읽지 않고 경험도 거의 없어서, 사랑과 연애에 관해서 너무 많은 것을 모른다. 나는 매우 순진한 편이었고, 성과 관련된 쾌락을 처음 느낀 방법도 다른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방법이 아니다. 연애를 하려면 그저 무작정 좋아하면 그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연애에도 지식이 필요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요동치고 폭발하는 감정에 몸을 맡기자 결국 큰 상처를 입고 망가지기만 했을 뿐, 다른 사람들이 하는 연애 따위는 꿈꿀 수도 없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지만, 여러모로 나는 이 주제에 굉장히 예민하다. 이상하게 문명을 지탱하는 한 가지 요소라는 학술로서 접근할 때는 즐겁지만, 실제로 부딪쳐 보면 심하게 아프고 괴롭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그 아픔과 괴로움이 내 일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을 제대로 하려고 그런 주제에 관해 생각을 끊고 연정을 억눌렀다. 지금은 그 연정이 내 능력으로 어느 정도 '승화(sublimation)'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아프고 괴로워도 이것은 본능이기에 나는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나는 프로이트가 말하는 성에너지, 곧 리비도가 특히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가두어도 이성에 관한 내 호기심은 자꾸 빠져나오고, 아무리 밀어내도 내 마음 안에 여자가 자꾸 들어온다. 멍하니 아무 것도 하기 싫고 꿈꾸듯이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거의 이성이다.

이런 나에게 '11분'은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다지 많지 않은 지식을 얻고 경험을 쌓아놓고, 그것 때문에 나를 크게 뒤흔들어 놓을 정도로 심한 상처를 입었다. 그 뒤 연애에 관해서는 정면으로 부딪쳐 보자는 생각마저 하지 않고 있던 나에게 용기를 줬다. 쉬워 보였지만 완전한 별천지로서 다가가기 너무 어려운 곳에 보잘것없는 지식과 경험으로나마 과감하게 발을 들여놓아 보자고 생각한 것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인 마리아는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다가 상처를 받고 사랑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뒤 사람들이 막연하게 거부하는 이른바 창녀가 되고 차츰 성을 깨닫지만, 성은 성일 뿐 더 큰 뜻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기 안에 있는 빛을 보고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랄프 하르트라는 화가를 만나면서 나중에는 자기 안에 숨어 있는 성스러운 성과 사랑을 깨닫는다. 결국은 동물인 사람 안에 어떻게 그토록 많은 것이 숨어 있을 수 있는가? 그 많은 것들은 왜 그렇게 한결같이 아름다워 수많은 사람들이 찬양하고, 한편으로는 너무 역겨워 수많은 사람들이 경멸하는가? 몸은 몸이고 마음은 마음일 뿐인가? 나는 사랑이 지닌 두 가지 면인 몸과 마음이 어떻게 서로 통하는지 얼마나 알고 있었던가? 많은 질문이 쏟아져 나왔지만 전혀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런 내가 얼마나 한심했는지 모른다.

그랬기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매우 답답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사랑은 아름답고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렇기에 나도 사랑하고 아름다워지고 싶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실패했지만, 언젠가는 이룰 수 있을까? 마음은 그저 끝없이 흔들리고 계속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방황하려는 나를 다잡을 뿐이다. 언제 이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여전히 속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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