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장승수 지음 / 김영사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우리집 책꽂이에 꽂혀 있던 책이라서 여러 번 읽었고 읽은 지도 꽤 오래 됐다. 내가 1999년에 이 책을 읽었으니 중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 읽은 셈이다. 어머니께서 내가 그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책에 나오는 장승수처럼 제발 공부 좀 열심히 하라고 야단치신 기억이 난다. 책을 읽고 어릴 때 어느 정도 감명을 받았는지, 아니면 평소와 다르게 야단이 워낙 효과가 좋았는지 중학교 1학년 때는 그래도 성적이 제법 괜찮은 편이었다. 1학년 2학기 기말고사 때 전교 3등을 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세월이 매우 많이 흘러서 내가 대학생이 된 뒤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 이렇게 독후감을 쓰는 까닭은 간단하다. 내가 자라는 동안 머릿속에 새로운 정보가 많이 들어오면서 많은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릴 때는 그저 공부 잘 한다고 감탄하고 부러워했지만, 대학생이 된 뒤에는 이 책을 생각할수록 뭔가 비판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졌다. 그런 욕구 때문에 나는 손을 부지런히 놀린다.

장승수는 매우 보잘것없는 조건에서 시작했다. 그저 미친 듯이 싸우고 오토바이를 타고 동네 오락실을 기웃거리던 건달이었다. 집은 찢어질 듯이 가난해서 홀어머니 혼자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어서 온갖 일을 하면서 공부해야 했다.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한 뒤 막노동 따위 온갖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며 여러 대학을 지원했지만 떨어지다가, 결국 1996년 서울대학교 인문계열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그는 서울대학교에 합격하기 전에 자기가 살았던 삶과 그 속에서 느꼈던 것들을 담담하면서도 진솔하게 풀어놓았다.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온갖 고난을 겪어본 사람이기에 그가 하는 말은 나에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 험한 밥을 먹어가면서 몇 년 동안 막일을 했던 경험은 그가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말을 이 책 제목으로 삼도록 했다. 그가 한 경험으로만 따져서 그런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객관으로 따져봐도 삶에서 가장 쉬운 일은 공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그다지 걱정이 없었던 학창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 아닌가? 사회에 나와서 생계를 스스로 꾸려가면서 엄청난 걱정에 시달리다 보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예전과 견주어 볼 때 세 끼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있고 나름대로 문화도 즐길 수 있는 풍요로운 조건 속에서, 자기만 제대로 마음 먹고 시작한다면 공부를 못할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생긴다. 앞에서 말한 풍요로운 조건이 어느 정도 갖춰진 사회 속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장승수처럼 성공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에 관한 논란이 요즘 같은 심각한 때도 없었지만, 분명히 예전보다는 삶 수준이 많이 높아졌기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한 번 생각해 보자. 가난을 딛고 여러 번 도전한 끝에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있으면 언론이 크게 보도하면서 난리를 치는 일이 예전에는 몇 번 있었는데 요즘에는 전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 사실 환경이 어려워도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여 성공하는 사람들이 제법 흔해서 눈에 띄는 새로운 소식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워야 한다. 그래야지 제대로 된 사회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사회는 그렇지 않다.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은 이미 옛말이 되어 버렸다. 부자는 자기가 가진 것을 이용해 더욱 큰 부자가 되고 자식에게 부를 물려주고, 가난한 자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후손에게 가난을 물려주는 세상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왜 세상이 그렇게 변해 버렸는가? 교육이 자본과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어 기득권을 이어가는 도구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장승수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있을까? 또 이와 같은 책이 나올 수 있을까? 그렇기에 이런 책이 나왔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이 책 전체를 칭찬하는 것은 아니다. 삶에서 배운 것을 활용하려는 자세는 높이 평가할 만 하고, 또 마땅히 본받아야 할 자세이다. 하지만 뒤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잘 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책에서 많은 분량을 쓰면서 책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수능이 이미 학생들을 진정한 공부에서 멀어지게 하는 주범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쓸데없는 시험이기에, 'JSS식 학습법'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한 많은 내용은 몇 가지 주목할만한 의견 빼고는 그다지 가치가 높지 않다고 본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학벌 때문에 매우 문제가 많은데, 그런 학벌을 언론이 앞장서서 부추기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사실 언론이 그렇게 크게 보도를 해 주었기에 이 책이 제대로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개천에서 용 났다'라는 말도 삐딱하게 해석하면 매우 안 좋은 말이 된다. 용이 도대체 무엇인가? 명문대에 합격한 사람만 성공한 사람인가? 어떤 사람은 공부 못하는 사람을 패배자로 만들지 말라고 했는데, 그 말도 나에게 상당히 와닿았다. 자기가 힘써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사회에서는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지만 자기는 스스로 만족하고 자기가 일군 것에 대해 뿌듯한 긍지를 가지고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빛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저 서울대학교 같은 명문대에 합격한 사람들만 언론이 크게 보도하는 것 같아서 영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일 때 장승수는 제 45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그가 자기를 관리하는 능력은 정말 감탄할 만 하다. 절대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권투로 체력을 관리하며 오로지 사법고시 준비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철저하게 준비했기에 사법고시 합격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맛볼 수 있었으리라. 그가 사법고시를 합격한 뒤에 이 책이 다시 크게 인기를 끌었는데, 뒤에는 신경 쓸 필요가 별로 없다. 그가 걸어온 길을 담담하게 이야기한 앞과 중간을 자세히 읽어보면, 자기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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