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속도를 늦추어라
에크낫 이스워런 지음, 박웅희 옮김 / 바움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2004년 4월 15일부터 류비셰프가 26세부터 평생동안 썼던 시간 통계법을 내 삶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 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부족한 것은 너무 많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라는 얇다면 얇고 내용도 충분하지 않다고 볼 수밖에 없는 책 한 권을 달랑 손에 쥐고, 나는 주저하지 않고 정체조차 드러나지 않은 시간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류비셰프가 성공했으니 나라고 성공하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고 굳게 믿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간단해 보였지만, 그 안에는 너무 많은 것이 얽혀 있었다. 일단 내가 처음에 파악한 문제는 수학으로 접근해서 생기는 변수 문제였다. 처음에는 몇 가지 안 되는 초기 조건이 너무 민감해서 시간 기록이 어려운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 동안 기록하면서 내용을 분석해 보니까 그렇지 않았다. 예상보다 변수가 너무 많은 비선형 방정식이 시간 통계법 안에 숨어 있었다. 그 해를 찾아내는 일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그 해를 찾고자 나는 대학교에서 보낸 2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그러다 보면 두 해 안에 뭔가 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수 천 년 동안 나보다 훨씬 발달한 지성을 지닌 셀 수 없이 많은 철학자들이 매달려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를 남긴 시간을, 그 보잘것없는 시행착오로 모두 파악해 보겠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유치한 젊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치기였다. 해를 찾기는커녕 갈수록 늘어나는 변수를 고려하는 작업에도 엄청나게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 한 달과 한 해를 결산할 때마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못 찾아낸 것 같다는 자책감과 안타까움에 시달리면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온갖 정보가 넘쳐나는 인터넷을 뒤져봤다. 하지만 아무 것도 구할 수 없었다. 나와 같은 기록을 하면서 느꼈던 문제점을 토론할 이도 찾을 수 없었다. 류비셰프에 관하여 내가 구할 수 있는 자료는 오로지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라는 책 한 권뿐이었다. 이제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얻어낸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내가 모르는 것은 너무 많았다. 일이 갈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한숨만 쉬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기에는 지금까지 내가 공들여 쌓은 것들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무엇이 문제인지 처음부터 다시 차분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일은 계속 진행되는데 무엇인가 계속 어긋나고 있다면, 분명히 시작이나 과정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했던 일을 침착하게 돌이켜 보면서, 나는 지금까지 헛된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을 썼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시간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일과 시간에 관련된 모든 것을 숫자로 나타내는 일은 일단 그만두기로 했다. 작업 효율과 겹치는 시간을 계산하는 방법까지 나름대로 고안해서 써 봤지만, 자기를 관리하는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숫자로 나타내는 일을 그만두자 한 가지 결론이 나왔다. 가장 근본에 가까운 문제는 숫자나 방정식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내가 전개념과 원개념 같은 추상과 현실 논리를 이어주는 방식을 설명한 '수량화 혁명'이나 '수학 유전자' 같은 걸작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숫자나 방정식을 고친다고 해서 내가 쓰고 있는 방법이 완벽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하나만큼은 분명히 옳다고 생각했다. 류비셰프가 뛰어난 통계학자이며 유물론자였다는 사실이 오히려 내가 그를 완벽하게 이해하는데 방해가 된 셈이었다. 그런 특성을 지닌 그는 모든 것을 숫자로 파악했을 것이라고 내 멋대로 믿어버렸기 때문이다.

 

한 가지 편견에서 벗어난 뒤 나는 내가 과연 어떤 인물인지 분석하기 시작했다. 내가 과연 시간통계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되새겨 보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면서도 모호하기 짝이 없었다. 베르나드스키가 스물 세 살에 쓴 글에 나오는 것처럼 '지혜와 지식, 재능을 가능한 많이 쌓아 모든 면에서 부족하지 않은 지식인이 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내가 주목했던 것은 '모든 면에서 부족하지 않은'이다. 모든 면에서 부족하지 않다는 것은 어떤 뜻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간단하게 생각하면 답은 쉽게 나온다. 말 그대로 공부뿐만 아니라 일, 사랑, 놀이, 체력, 운동 따위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잘 챙긴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람이 지닌 능력에는 한계가 있고 일생을 구성하는 시간도 분명히 제한되어 있다. 결국 우리가 달성해야 할 것은 되도록 높은 효율이다. 그것은 주어진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일을 제대로 해내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나는 효율을 높이는 방법을 단순히 시간만 기록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심지어 뭔가 잘못되었거나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었으면서도, 시간을 기록하는 데만 매달렸을 뿐 자기 반성에는 소홀히 했다. 일을 하고 글을 쓰고 새로운 시간 기록 방법을 알아내고 체력을 관리하는 것은 단순한 실행 과정일 뿐, 그 실행 과정이 내 삶 속에서 밀도가 더욱 높아지는데 필요한 열정과 의지에 관해서는 연구를 소홀히 했던 것이다. 이때서야 그것은 단순한 숫자놀음이 아닌 인생 철학과 진지한 성찰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나이 24세. 아직도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 정신 속에서 인생 철학이 여물어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절대 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하지 않고 있다. 단지 진지한 성찰만큼은 어설프게라도 흉내나마 내 볼 수 있었다. 그런 성찰에 도움이 되고자 수많은 책을 잡히는 대로 무작정 읽었으며, 그 가운데 이 책 '마음의 속도를 늦추어라'는 매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에서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은 가장 평범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 우리에게 왜 가장 유익한지는 뚜렷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 책을 몇 해 동안 계속 읽으면서 답을 찾기는 찾았다. 평범해지면 욕심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욕심이 사라지는 것이 왜 가장 우리에게 이로운지는 분명히 알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욕심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아내야 했다.

 

그 욕심은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완벽한 지식인이 되는 것이다. 그 지식인은 류비셰프와 같이 같은 시간 안에 되도록 많은 일을 더욱 열심히 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필요한 것은 단순한 시간 기록이 아닌 시간 그 자체를 바라보는 마음가짐과 철학이다. 1분이라도 헛되이 쓰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현실로 옮기려면 주의를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쓸데없는 일에 쏟아붓는 에너지, 어제와 내일에 쏠려 있는 에너지를 모두 자기가 살아있는 지금으로 가져와야 한다. 그러면 그 날 하루가 주는 것을 되도록 많이 이용하는데 필요한 집중력과 의지가 생긴다. 

 

이는 내가 지금까지 저질렀던 실수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정확하게 지적한다. 나는 무슨 일을 할 지 계획을 세우는데 들어가는 시간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할 일이 없으면 실행 가능성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계획을 세우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러면서 그 시간 자체는 보람이 있는 것이라면서 스스로 위로하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으로 어제를 반성하고 내일을 내다보는 것이 아니다. 어제 했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일 뿐이며, 오늘 써야 할 힘을 내일을 상상하는데 써서 결국은 힘을 낭비하는 것일 뿐이다.

 

결국 '가장 평범한 사람'이라는 건 단순히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게 묵묵히 자기 할 일을 모두 해내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류비셰프가 그 사실을 깨닫는데 몇 년이 걸렸듯이 나도 결국 그랬다. 내가 시간통계라는 작업을 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전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작업을 하는 자체가 보통 사람들보다 내가 더 부족하기에 괜한 시간을 더 들이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더욱 겸손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작업인 시간통계 방법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네 가지로 나눠 그에 따라 시간을 기록하고, 내가 얼마나 하루를 가치 있게 보냈는지 계산했다. 굳이 분류 기준에 이름을 붙이자면 제 1 업무는 학술 업무, 제 2 업무는 생활 업무, 제 3 업무는 사교 업무, 제 4 업무는 생존 업무이다. 지금까지 제 1 업무를 뺀 나머지 시간에는 매우 적은 가치를 두었다. 특히 3-3, 곧 사교에 쓰이는 시간이 너무 많으면 곤란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제 3 업무가 지니는 가치는 자기가 어떤 이를 만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곧 자기가 도움을 줄 수 있거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이를 만나면, 그 시간은 가치가 훨씬 더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일이 그런데도 나는 유난히 사교에 들어가는 시간을 헛되이 쓰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시간을 기록하는데도 주저했던 게 사실이다. 실제로는 사교 업무에 들어가는 시간이 매우 많으면서도 말이다. 결국 사교 대상이 누구인가가 중요하다. 내가 훌륭한 이들을 따라가야 하며 훌륭한 이들이 나를 보고 쓸만한 사람이라고 여길 수 있도록 스스로 수양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모든 것을 돌이켜 보고 성찰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수단이, 바로 이 책에서 강조하는 명상이다. '선물'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현재에 집중하여 과거에서 배우고 미래를 현재로 만들고자 힘쓰는 방법을 명상과 수행이라는 방법으로써 깨달을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다. '선물'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 같아서 읽고도 그다지 큰 감동이 없었는데, 이 책은 그야말로 가슴에 팍 꽂힌다는 말이 적절했다.

 

되도록 늦추라고 하는데도 나는 이 책을 계속 뒤적거리면서 읽었으니, 그저 저자가 말하는 수준에서 내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책 읽고 글 쓰기에 아주 좋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가을이 온 만큼 명상을 한 번 해 볼 만도 한데, 명상에 도전할 생각은 전혀 없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명상을 할 시간에 글 한 편을 더 쓰겠다고 생각하는 판이니 말 다 한 셈이다. 이 책을 나는 과연 제대로 이해했는지조차 의심스러워졌다.

 

하지만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마음을 곧 고쳐먹었다. 시간통계가 해결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답을 찾게 해 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명상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나름대로 차분하게 열심히 일하고자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성과는 보잘것없지만,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굳이 보잘것없다고 깎아내릴 필요도 없다. 물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지금이야 이렇게 생각을 하지만, 언젠가 지옥에서 쇠사슬에 칭칭 묶여 있는 악한처럼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친다면, 그 때는 다시 이 책을 찾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런 날이 오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이 글을 마치는 순간만큼은 정말 차분하고 평온하다. 명상이 주는 기쁨에 빠져든 것처럼. 

 

http://cyworld.nate.com/Lyubishev -> 더 많은 자료는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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