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교육학
파울로 프레이리 지음, 교육문화연구회 옮김 / 아침이슬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교육사회학 수업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파울로 프레이리가 무엇을 했던 사람인지 전혀 몰랐다. 교육사회학 수업이 있는 금요일에 행사가 많아서 그 수업에는 잘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금요일에 오랜만에 수업에 들어갔더니 과제가 나왔다. 책, 영화, 시 따위 온갖 것을 교육사회학 관점으로 바라본 뒤, 문제를 제기하여 그에 대한 답을 나름대로 써서 내라는 과제였다. 교수님이 책을 지정해 주셨는데 그 가운데 '희망의 교육학'이 있었다. 1학년 때 응용영어학 수업을 들으면서 노엄 촘스키라는 사람을 처음으로 알았고 그가 쓴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을 읽어보려고 마음먹었는데, 그 전에 이 책을 만났다. 그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아닌지는 따질 필요가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과제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관심 없이 읽었지만, 차근차근 읽다 보니까 조금씩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한국사 수업 시간에 나온 과제를 하려고 'NEXT SOCIETY'를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라틴 아메리카는 아프리카와 더불어 나에게 매우 흥미로운 땅이다. 하지만, 일단 아프리카는 제쳐 두고,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것이 없다. 고등학교 때 세계사와 세계지리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배우고 공부한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알고 있는 점은, 라틴 아메리카에는 민주주의가 완벽하게 들어서지 못해서 독재 정권이 판을 치고 있으며, 민중들이 그에 맞서 여전히 강하게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던 1960~1980년대에 나타난 모습이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여전히 현실이라는 것이다. 현실에서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꿈을 지니면서 현실주의자가 되어 기득권을 잡은 썩어빠진 세력을 몰아내자고 외쳤던 체 게바라뿐만 아니라 수많은 혁명가들이 활동하고 죽은 곳도 이 라틴 아메리카이다. 



파울로 프레이리는 그런 현실을 보고 아파하면서 젊을 때 이미 평생 동안 교육에 몸 바칠 것이라고 마음먹고 삶을 꾸려나가면서 그 결심을 꾸준히 행동으로 옮겼다. 사회에서 권력이 등장한 뒤부터 잘못된 권력에 맞서 싸우는 움직임은 절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근대와 현대만큼 격렬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시기도 드물다고 본다. 프레이리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온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지식인들과 노동자들과 토론하고 같이 살기도 하면서 거기에서 얻은 바를 글로 썼다. 그런 책이 20여 권이 있으며, 그 책들은 모두 프레이리가 교육이 궁극으로 지향하는 바라고 생각한 '인간 해방'을 만들 수 있는 교육을, 어떻게 만들고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토론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희망의 교육학' 또한 마찬가지다. 이 세상을 걱정하고 진정한 교육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리라. 



프레이리는 희망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교육은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교육이 과연 그러한가? 우리나라 교육 제도는 이미 사회 불평등을 고착하고 기득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유지하는 통로로 변해 버렸다. 교육열과 교육비는 온 세상에서 첫째이지만, 그 효율은 거의 꼴찌에 가깝다. 너무 많은 학생들이 평생 동안 패배 의식을 지니도록 하는 경쟁 구도 속에서 성공한 이들이 다시 기득권을 쥔다. 기초 학문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단지 실용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들 대부분을 그저 시키는 일만 할 수 있는 단순한 노동자로 만들어 버린다. 희망을 줘야 할 교육이 오히려 사람들이 지닌 희망을 꺾고 모순된 사회 구조 속에서 그저 가만히 살아가도록 강요한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이 모든 것을 신자유주의가 만들고 있다. 더욱 무서운 일은 이 신자유주의가 교육에 스며들어 학생들에게 이런 사회가 당연한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를 보라.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바가 당연한 것처럼 나와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온 세상사람 가운데 2할이 나머지 8할을 먹여 살리는 시대가 온다는 말이 있다. 그것이 윤리 교과서에 버젓이 나와야 할 내용인가? 사회 구성원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가르쳐야 할 윤리 교과서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그런 피 튀기는 경쟁 속에서 살벌해지는 사회가 당연한 것이라니! 



신자유주의를 보면 지금 사회에서 필요한 교육이랍시고 온 세상에서 시행되고 있는 교육 제도를 설명할 때 기능론보다는 갈등론이 훨씬 더 설득력이 크다. 교육에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깊이 스며들어 있는가? 프레이리는 갈등론을 강하게 지지하면서 신자유주의가 몰고 오는 무섭고 끔찍한 흐름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경쟁하지 않는 자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피도 눈물도 없는 논리를 내세우면서 미친 듯이 세계를 휩쓰는 신자유주의는, 기득권을 지닌 자들이 즐겨 쓰는 논리이기에 당연한 일이다.  




……한 줌의 희망도 없다면, 우리는 투쟁을 시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투쟁이 없다면 존재론적 요구로서의 희망도 사라지고,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며, 마침내는 희망 없음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희망 없음은 비극적인 절망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희망의 교육학이 필요하다. '희망의 교육학'은 그런 책이다. 분노와 사랑이 없으면 희망도 없기에, 이 책은 분노와 사랑으로 썼다…… 




파울로 프레이리는 부정부패에 찌든 기득권에 대한 분노와 민중에 대한 사랑을 가득 담아 이 책을 썼다고 여는 말에서 분명히 밝혔다. 희망이 있기에 투쟁이 있고 투쟁을 하면서 새로운 희망이 생긴다. 그리고 세상에 판치는 부정과 불의, 예를 들자면 신자유주의와 그것을 이용하는 가진 자들에 맞서 싸우는 민중들에게 교육으로서 희망을 줘야 한다. '희망의 교육학'이란 결국 그런 뜻이다. 사회 불평등과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쓰이는 교육학은 필요 없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잘 사는 아름답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려면 사람들은 계속 싸워야 하고, 싸우려면 사람들이 올바른 교육을 받아 의식 수준을 높이고 세계를 제대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올바른 교육을 하는데 필요한 '희망의 교육학'이다.  



에콰도르에서 사법부를 멋대로 주무르고 좌파 공약으로 당선된 뒤 우파 정책을 시행하며 강하게 독재했던 구티에레스 대통령이 의회에서 탄핵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내가 이 독후감을 쓰고 있는 2005년 5월 9일에 도착했다. 의회는 민중을 대표하는 기관이기에 민중이 힘을 쓴 것이며, 민중들도 가만히 있지 않고 거리로 나가 독재를 비판했다. 썩어빠진 기득권에 맞서 싸우는 민중이 있으면 그들이 바로 희망이다. 우리도 희망이 되어야 한다. 



이제 이 책을 다 읽었으니, 내가 읽어야겠다고 오래 전부터 마음먹었던 책, 곧 노엄 촘스키가 쓴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부터 일단 읽어봐야겠다. 읽어야 할 책은 산더미 같이 쌓여 있고 평생 동안 책만 읽어도 읽고 싶은 책을 다 읽을 수는 절대 없으니, 게으른 나를 채찍질하면서 서둘러야겠다.  

 

http://cyworld.nate.com/Lyubishev -> 더 많은 자료는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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