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즐거움
다나카 고이치 지음, 하연수 옮김 / 김영사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2002년은 나에게 여러모로 뜻깊은 한 해였다.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다. 2002 한일월드컵을 즐기면서 오랜만에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느꼈고, 서해교전을 바라보면서 북한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봤고, 사라졌던 개구리 소년들이 유골로 발견되면서 숨겨진 진실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다. 그리고 2002년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된 뒤에 우리나라에서는 반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매우 강해진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공계 문제에 대해서 해결책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리나라에서 거세지도록 한 사람. 노벨상을 받은 사람치고는 너무 평범해서 세상을 놀라게 한 사람. 그는 누구인가? 나는 그에 대해서 중앙일보에 나온 과학 사설을 읽으면서 지금 소개할 책을 쓴 사람이 어떤 일을 해냈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 뒤 그 일에 대해서 본인이 직접 설명한 책이 나왔다. 




이 세상의 평범한 모든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 준 사람.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 



2002년 10월 9일 노벨상 화학상 수상자 발표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박사도 교수도 아닌 학사 출신, 게다가 화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일개 샐러리맨 다나카 고이치가 수상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하루아침에 유명인이 되었고, 이후 반년 동안 그의 생애 중 가장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2003년 3월 말 다나카 고이치는 엔지니어 복귀 선언을 했다. 노벨상 수상 후 연일 계속 되는 강연과 인터뷰 때문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연구 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돈 나이인 마흔세 살에 그가 원한 것은 엔지니어로서의 삶이었다. 출세나 공명, 이익보다는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에서 행복과 긍지를 찾고 만족하는 삶,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고 상식에 얽매이지 않으며 목표를 발견한 후에는 끝까지 추구하는 삶이 그가 원하는 삶이었다. 



다나카 고이치는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는 사람들의 자긍심을 일깨우고 활력과 자극, 꿈과 희망,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는 직접 저술한 이 책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 사회의 가장 소중한 일꾼들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독창적인 능력은 대단히 특별한 능력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독창성을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다나카의 메세지는 오늘도 이 세상의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꿈과 희망이 되고 있다…… 




책날개를 보면 이미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잘 정리되어 있어 더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일단 이 책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해 보겠다. 제목이 '일의 즐거움'이다. 일 중독증 환자들을 위해 나온 책도 아니고, 게으른 사람들을 나무라는 책도 아니다. 다나카 고이치는 이 책에서 노벨 화학상을 받은 소감, 자기가 노벨상을 타기 전까지 살아온 과정과 느낀 것들, 그리고 자기가 노벨 화학상을 받은 까닭인 고분자 질량 분석법에 대해서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어느 하나도 놓칠 수 없는 책이다. 저자는 앞에 나오는 두 가지, 곧 노벨 화학상을 받은 소감과 자기가 살아온 삶을 이야기하면서, 책날개에서 밝힌 것처럼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고 분자생물학과 고분자공학에 대한 지식도 꽤 얻을 수 있다. 다나카 고이치는 자기가 연구한 결과에 자부심을 느끼고, 책에서도 많은 면을 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학문 이름을 듣고 지레 겁먹을 필요가 전혀 없다. 전문 서적이나 논문처럼 설명을 어렵게 해 놓은 것은 아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내가 지니고 있는 생물 지식은 고등학교 수준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차근차근 순서대로 읽었더니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가 그만큼 보통 독자들을 신경 썼다는 뜻이다. 과학 분야로 교양을 쌓기에도 제법 괜찮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일에 대한 열정을 더욱 강하게 할 수 있었다는 설명은 자세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보다는 이제 첫 문단에서 내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이 훨씬 낫다.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 5개년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기초과학 연구에 투자를 집중하면서, 전국에서 수많은 인재들이 나라에서 지원을 받으며 기초과학 연구에 몰두했다. 이는 새로운 기술 개발로 이어져 우리나라가 중진국으로 발전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기초과학이 없는 응용과학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니 이는 당연한 일이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국과학기술연구원(KAIST), 포항공대가 전국에서 합격 기준선이 제일 높았다. 그 때만 하더라도 경희대학교 한의대학과 연세대학교 의과대학과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한 번에 붙었다면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이공계 사람들이 희망이 없다고 야단이다. 의과대학, 약학대학, 사범대학과 견주어 볼 때 공과대학이 맥을 못 추고 있고, 그나마 공과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도 앞길이 막막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곳으로 가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이는 나라가 발전하는데 매우 큰 걸림돌이 된다. 그에 대 볼 때 일본은 어떠한가? 



물론 미국이나 독일과 같은 노벨 과학상 강국과 대 볼 때는 한참 멀었지만, 우리나라와 대 볼 때 일본은 훨씬 더 탄탄한 기초과학 기반을 마련해 놓고 있다. 핵력을 설명하는데 매개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중간자를 예언해 일본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유카와 히데키, 최근 사례를 들자면 우주에서 날아온 중성미자와 X선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관측해 2002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고시바 마사토시, 고분자 질량 분석법을 개발해 2002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은 다나카 고이치, 이 말고도 여러 과학자들을 포함하여 모두 여덟 명이 노벨 과학상을 받았다. 물론 단순히 노벨 과학상 수상자만으로 과학기술 수준을 대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하지만 그만큼, 그리고 우리나라보다는 그나마 환경이 갖춰져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증명할 수 있지 않은가?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처럼 나라가 발전하도록 제대로 기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데, 엉뚱한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사는 현실을 보면 화가 치밀어서 견딜 수 없다. 일본에도 우리나라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 전체가 망한다고 다치바나 다카시가 강하게 주장했지만, 그래도 일본은 우리나라보다는 나은 것 같다. 이와 같은 책이 나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좀 더 많은 이야기는 독후감에 쓰지 말고 따로 해야겠다. 



어쨌든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하는 책이다. 일본이 지닌 탄탄한 기초과학 기반에 대한 부러움, 자기가 가진 가능성에 대한 고찰, 일이 인생에서 지니는 뜻, 다나카 고이치가 말하는 행복론, 고분자공학에 대한 설명과 그 뜻, 질량 분석법에 대한 설명과 그 뜻……이 책을 읽고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은 매우 많았다. 특히 생물학을 좀 더 깊이 공부한 뒤 다시 계속 읽어서 고분자 질량 분석법에 대한 내용은 완전히 익혀야겠다.  

 

http://cyworld.nate.com/Lyubishev -> 더 많은 자료는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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