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들의 공부법
박희병 엮어 옮김 / 창비 / 199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과거에는 배움을 사람의 도리로 익히며 성격을 도야하는 과정으로 생각하고 그에 치중했다. 옛 사람들은 지식보다도 마음가짐을 중요시했고, 처신하는 법이 피와 살처럼 몸에 배도록 노력하였다. 배운 사람이 존경받았던 이유도 지식뿐만이 아니라 성격적으로도 단련된 사람이라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로 볼 때 지금의 학문은 좀 씁쓸하게 여겨진다. 공부나 연구도 성격 단련과는 아주 거리가 멀어지고 말았다. 답안지로 정답인지 아닌지만을 판정하는 교육으로 인해 우리는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오카다 다카시 지음. 유인경 옮김. '나만 모르는 성격'. 5쪽

 

 

학생을 성폭행한 교사도 겨우 정직에 그치는 마당에, 일제고사에 반대한다는 가정 통신문을 보낸 전교조 교사 7명이 무더기로 해임되었다. 서울에 있는 유명한 학원들은 자기 이익을 챙기고자 입시 지옥을 장려하는 공정택 서울특별시 교육감에게 선거 자금 가운데 7할 정도를 지원했지만, 검찰은 손도 대지 않았다. 공정택 교육감은 사과 한 마디도 아쉽다는 듯이 고개 한 번 숙이고 자기 멋대로 교육을 망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곧바로 주경복 전 서울특별시 교육감 선거 출마자에게 선거 자금을 댔다는 혐의를 들이대며 전교조에 칼날을 들이밀었다. '반국가교육척결 국민연합'이라는 난데없는 단체는 개인정보관리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엉터리에 가까운 전교조 교사 명단을 공개하면서, '사교육을 조장해 대한민국을 도탄에 빠뜨리고 더 나아가 반국가교육으로 친북 좌파 세력을 양성하는 무서운 빨갱이 집단'을 척결하겠다고 입에 게거품을 물었다.

 

이미 수 십 년 동안 대한민국을 쥐고 흔들며 썩은 똥에 모여드는 파리와도 같이 사익을 열심히 챙기는데만 몰두했던 이들이다. 수 십 년 동안 사회 전방위에서 분열을 조장하고 교육과 언론으로써 민중을 세뇌시킨 이들이다. 수 십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 가면서 조금이나마 일궈놓은 그 소중한 민주주의를 그들은 절대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리고 민중들은 그들이 펼치는 집요한 공세를 견디지 못했다. 그 비극이 2008년 한 해를 선진화와 세계화와 법치라는 탈을 쓴 야만과 횡포와 폭력으로 물들였다.

 

그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그들에게 맞서 싸우고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다가, 결국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교육 분야에서 내 전공을 살려서 일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용문 뒤 맨 처음 문단에 약간 길게 썼듯이 그들 또한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교육마저 자기 입맛대로 하고자 줄기차게 손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 현실을 알고 있는 예비 교사로서 절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교육 현장이 엉망이 되어 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거둘 수는 없었다. 희망을 거두는 순간 우리는 대한민국을 지옥으로 만들려는 무리들에게 아이들을 빼앗기게 될 것이며, 그 순간 정말로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말 것은 분명했다. 내가 아무리 온갖 고민과 좌절 때문에 힘들고 괴롭더라도, 이 따위 나약한 모습으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현장에서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생각과 전혀 다르게 지내는 내 모습을 가차없이 비판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또 힘을 잃고 아무 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린 뒤에 헛되이 보낸 지난 시간을 후회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해야 할 일이 많은데 계속 그렇게 악순환만 이어지니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생각과 행동이 따로 노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뇌가 멈춰 버린 듯한 그 느낌이 그렇게 끔찍한 것인 줄은 몰랐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왜 그러고 있는지 생각했다. 답은 분명했지만 그 답까지 다시 이르는 과정에서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그 모든 것을 항상 일목요연하게 잡아낼 수만 있었다면 이미 천재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생각도 든다. 그런 난데없는 생각들이란 게 주로 이 사회와 관련된 온갖 문제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연결하면서 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 가운데 가장 많이 들었던 것은, 우리는 근본에서부터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이었다. 맨 앞에 인용한 글이 정확하게 지적한 것처럼 말이다. 콩나물 시루 같은 교실에 앉아서 오로지 주입식 교육만을 강요당한 옛날 학생들은 시대를 스스로 판단할 능력을 잃어버렸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오로지 국가에 충성하는 산업 역군으로 거듭나 국가가 장려하는 대로 뼈 빠지게 일하면서 열심히 살았다.  

 

그 충성스러운 일꾼들이 만들어 놓은 국가는 분명히 물질 자체는 예전과는 견줄 수도 없을 정도로 풍요로운 곳이었다. 후대가 그 덕을 분명히 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물질만 풍요로웠지 정신은 너무나도 심하게 썩어빠진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렇게 풍족해진 물질은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고 의심을 품는 사람들도 갈수록 늘어났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현실이 곧바로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온갖 폭압과 부정을 못 본 척하며 그저 조용히 밥만 먹고 살았던 이들은 물질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국가를 찬양했다. 하지만 현실에 의심을 품고 사회 전반에서 국가가 저지르는 폭압과 부정을 깨달은 뒤, 그에 맞서려고 한 이들은 모두 가혹한 대가를 치뤄야 했다. 게다가 국가가 만들어 놓은 충성스러운 역군들에게서도 비난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 이들은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그 덕분에 집회, 표현, 사상이 어느 정도 자유로운 현실을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진보한다'라는 말이 뜻이 없어질 만큼 이 사회는 다시 옛날로 되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보루인 교육도 기득권을 쥐고 있는 그들이 손아귀에 넣고 자기들에게 충성하는 샛노란 새싹을 기르고자 발악하고 있다. 수구 친일 세력이 주도하는 현대사 특강과 4.19 '데모' 동영상 배포 따위가 최근에 벌어진 그 천박한 사례이다.

 

어쩌면 그들도 천박한 현실에서 살아남아 그토록 달콤한 부와 권력을 거머쥐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된 잘못된 사회가 만들어 낸 희생자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희생자라고 해서 자기들이 저지르는 만행이 어쩔 수 없는, 심지어 정당한 것으로 인정받지는 못한다. 부와 권력 앞에 충성하는 앞잡이가 되어버린 사람들이나, 부조리에 맞서 싸운 사람들이나 모두 같은 국가에서 같은 입시 지옥 속에서 같은 것을 배우고 세상으로 나왔다.

 

이 사실이 뜻하는 바는 분명하다. 교육 과정 속에서 학생들이 배우게 되는 내용 또한 중요하지만, 학생들이 지닌 교육에 관한 생각 자체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공교육 과정에서 배운 바른 생활, 도덕, 윤리 같은 과목 이름과 그 과목이 요구하는 지식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비판할 줄 모르는 인간을 길러내는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 원인을 뿌리뽑아야 한다.

 

그 방법을 아마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엮은 박희병 교수는 동아시아 사상 전통 속에서 근대를 넘어서는 생태주의 대안을 모색하다가, 자기 학문을 떠받치고 있는 기초가 온통 서양 근대학문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자각하고 이 책을 엮었다고 한다. 그 자각과는 상관 없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어떻게 보면 박희병 교수와는 많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서로 통한다고 본다.

 

서양 근대학문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형식 논리 가운데 하나인 'A=A이고 B=B이다'와 다르게 동양철학에서는 'A=B이고 B=A다'라는 변증법으로 표현한다. A와 B를 각각 앎과 삶이라고 치면, 바로 결론이 나온다. 이는 박희병 교수가 머릿말에서 적어놓은 '공부의 활법(活法)', 곧 몸과 마음으로 동시에 깨닫는 공부와 통한다. 공부는 특별한 것이거나 어떤 것을 얻고자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사람답게 살려면 자연스럽게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그런 논리가 교육과정 속에서 반영되어 있는 현실성 없는 이상으로 치부될 뿐이다. 기득권을 가진 이들은 학생들이 사회를 비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일단 앎과 삶이 분리되도록 철저한 주입식 교육만을 강조해서, 아무리 정의와 법과 윤리에 관한 지식을 많이 가진다 하더라도 사회에서 그런 것들을 지키는 이들이 바보 취급을 받게 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고 교육 환경이 철학이라는 근본에서부터 조금씩 개선되자, 수구 세력은 신자유주의 흐름을 타고 교사와 학생을 포함한 모든 이들을 남을 짓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경쟁으로 내몰아, 비판할 힘도 없을 정도로 지쳐 나가 떨어지게 만들게 했다. 그리고 설사 뭔가 깨닫더라도 사회 자체가 그런 이들이 하는 저항을 비난하도록 사회 구성원들을 길들이고 교육시킨다. 그마저도 무시하고 투쟁에 나서는 이들은 '정의로운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짓밟았다.

 

아무리 학생들 개성을 살리고 존중하는 쪽으로 개편된다는 허울 좋은 구실을 들이댄다 하더라도, 앎과 삶이 연결되지 않고 분리된 사람들이 짜는 교육과정은 그 본질 자체가 추악하기 짝이 없기 때문에, 결국은 아무리 바뀌어도 진정한 교육이 지니는 이념을 실천하지 못한다. 대한민국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인재(?)들이 과연 교육이 추구하는 근본 이념인 올바른 의식을 지닌 사람으로서 자질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앞에서 이야기한 주장이 어느 정도는 타당성을 띨 것이다.

 

사실 이 책에서 전달하겠다고 하는 여러 가지 지혜 또한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흔해 빠진 것이다. 그런 지혜를 모르기 때문에 이 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안다 하더라도 그 지혜와 삶을 꾸려가는 주체인 자기가 온전히 하나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현실을 깨닫고자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아는 것을 실천하면서 사는 사람은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어차피 평생 자기를 성찰해야 한다는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이 이런 책을 끊임없이 찾아서 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이 책은 그저 읽은 뒤에 그냥 자기가 뭘 좀 아는 체 하려고 할 때 읊을 구절이나, 궤변을 늘어놓을 때 필요한 좋은 소재를 제공할 뿐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을 때 주의할 점은 배우는 자세에 관해 설파하는 학자들이 모두 현실에서 도리를 지키면서 살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곧 누가 어떤 말을 한다고 해서 그 말을 무작정 받아들이지 말고 비판하려는 자세로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학자들은 분명히 긍정할 만한 점도 보여주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때까지 어떤 종교도 한국 고대사와 중세사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극렬한 배타성을 보여주었다. 그 배타성은 정치에서도 줄곧 이용되어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다. 고상하고 좋은 말을 한다고 해서 다가 아니라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예비 교사에서 교사로 새롭게 거듭나려면 임용고시를 통과해야 한다. 임용고시와 사범대 가산점을 놓고 지난 2004년과 2005년에 서울과 부산에서 그토록 열심히 거리를 걷고 소리를 질렀지만, 결국 바뀐 것은 거의 아무 것도 없었고 나도 임용고시를 준비해야 할 형편에 처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준비를 하기는 해야 한다. 하지만 예비 교사들도 무한 경쟁에 시달리면서, 오로지 임용고시 준비만 죽어라 한 뒤에 교사가 된 이들이 현장에서 보여주는 문제점을 이 책이 주는 깨달음과 연결해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 일은 앞으로 내가 임용고시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방향을 잡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1.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 공자

2. 천하를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몸으 다스린다 - 대학, 중용

3. 학문이란 안에서 찾는 것이다 - 정자

4. 공부하는 사람은 기가 가벼워서는 안된다 - 장자

5. 공부는 닭이 알을 품는 것과 같다 - 주자

6. 스스로 깨닫는 것은 일당백의 공부가 된다 - 왕양명

7. 학문하는 것은 거울을 닦는 데 비유할 수 있다 - 이황

8. 공부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 - 서경덕

9. 경은 학문의 시작이요 끝이다 - 조식

10. 공부를 하지 않으면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없다 - 이이

11. 훌륭한 스승을 만나려면 묻기를 좋아해야 한다 - 이익

12. 큰 의심이 없는 자는 큰 깨달음이 없다 - 홍대용

13. 선비가 독서를 하면 그 은택이 천하에 미친다 - 박지원

14. 학문은 천하의 공변된 것이다 - 정약용

15. 글쓰기는 자신을 속이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 김정희

16. 상등의 학문은 기로 듣는다 - 최한기 

 

http://cyworld.nate.com/Lyubishev -> 더 많은 자료는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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