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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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대해서 내가 고등학생일 때 우진이한테 처음 이야기를 들었다. 우진이 집에 갔더니 '개미'와 '뇌'라는 책이 있기에 재미있냐고 물어봤더니 우진이가 매우 재미있다면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대한 이야기를 잔뜩 풀어놓았다. 나는 빠르면서도 정보가 많은 말을 끝없이 늘어놓는 우진이에게 진절머리를 내면서, 그저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했다. 


이미 고등학교 2학년 때 지식에 대한 욕심이 수미산만큼이나 커져 있었던 나는, 수능을 치고 난 뒤에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는지 더욱 깊이 깨닫고 진저리를 쳤다.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했기에 생각은 많았지만 그것들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해서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새로 들어오는 정보를 갈무리하기는커녕 이미 들어와 있는 정보들이 멋대로 연결되고 뻗는 바람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더욱 어이없는 것은 그 때 내가 겪었던 혼란과 고통은 내 세계를 건설하면서 계속 느낄 모든 혼란과 고통에 대 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 때까지 머릿속에 집어넣고 생각한 것들이 너무나 보잘것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내 모습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도 전혀 알 수 없었다. 내가 앓고 있는 고질병 가운데 한 가지는 이렇게 근원을 찾을 수 있다. 


그렇게 비틀거리면서도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에서 주장한 사람이 지닌 본능에 따라 계속 공부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시간을 보냈고, 그 결과 나는 부산대학교 영어교육과에 입학했다. 우리 과에는 부서가 5개 있었는데, 그 가운데 나는 책을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어서 문학부에 들어갔다. 문학부장 선배가 첫 모임에서 읽고 토론할 과제로 지정해 주신 책이 바로 '나무'이다. 


나는 '나무'를 읽으면서 같은 시기에 푹 빠져 있던 책인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에서 읽었던 내용을 생각했다.
 


……류비셰프의 비정통적 시각이란 단지 표면에 나타난 현상일 뿐이었다. 그 이면에는 독특한 세계관, 거대하게 뻗어가는 구조물의 윤곽이 숨어 있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 구조물의 모습은 낯설고도 매력적인 것이었다…… 



모든 사람은 성장하면서 세계관, 곧 독특한 정신계를 구축한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도쿄대학교에서 강의할 때 설명한 세계를 바라보는 위상들 가운데 세 번째에 해당하는 것이다. 곧 바깥 세상을 객관이나 주관으로 바라보면 생기는 두 가지 세계가 아니라, 자기 안으로 한없이 파고들어가면 나타나는 그런 세계, 곧 바깥 세상과는 전혀 다른 안쪽 세상(inner world)이다. 그것은 건축공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 세계관은 시멘트와 철근이 아니라 정보와 생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땅을 파고 시멘트를 부어넣어 굳혀 기초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많이 입력하여 기초를 다지는 것이다. 철근을 정교하게 연결하여 뼈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입력한 정보들을 연결하고 끝없이 생각하여 뼈대를 만드는 것이다. 이말고도 수많은 차이점이 있지만 가장 큰 차이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현실에서 건물은 완성하면 끝이지만, 정신계는 완성한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는 정신계를 끝없이 지으면서 새로워질 수 있으며, 그 가능성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그 가능성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장 폴 사르트르가 쓴 말을 빌리자면 '실존'일 것이다. 나는 실존주의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내 마음대로 정의하자면 그렇다. 


넓고 깊게 생각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만드는 정신계와 그렇지 않은 정신계는 엄청나게 큰 차이가 난다. 굳이 위인과 속물을 견주어 보지 않더라도 단번에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나는 '나무'를 읽으면서 제목 그대로 나무를 상상했다. 생각이 깊어지면서 '나무'라는 책이 내 머릿속에서 정말 나무 한 그루가 되었다. 이 책에 담겨 있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은 모두 인류에 대한 통찰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은 인류에 대한 통찰이라는 뿌리에서 뻗어나온 나무다. 그 뿌리에서 나무가 뻗어나올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인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넓고 깊게 생각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넓고 깊게 생각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창의성과 자율성이 두드러져야 하지 않은가? 이것이야말로 인류라는 종족 안에 들어가는 진정한 한 인격체로 태어나는 것 아닌가?  


사람은 자기가 살고 영향을 주고받는 세상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게 끝없이 생각하여 독특하고 웅장한 세계관을 만들고 계속 넓히는 것이야말로 앞에서 설명했듯이 진정한 사람으로서 다시 태어나는 방법이다. 이 책에 있는 이야기 열여덟 편을 읽다 보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나무가 떠오를 것이다. 그 나무는 결국 이야기 가운데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의 나무'로 합쳐질 것이다. 정신계에 대해서 확고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막연한 우주이기만 하던 정신계가 나무로 변하여 무럭무럭 자라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즐거움은 그저 누리기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계속 그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계속 힘써야 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지금 그렇게 계속 나름대로 힘쓰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러면서 많이 성장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한 가지 엉뚱한 사실이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안정되지 않고 항상 혼란스러운 내 정신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단 한 마디로 증명해 주었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어쨌든 생각나는 대로 쓴다. 그래도 이 사람이 이렇게 말해 준 덕분에 나는 지금도 죽지 않고 이렇게 살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상상력이 얼마나 부족한지도 뼈저리게 느꼈다.  


"내가 앓고 있는 정신불안증이 지닌 단 한 가지 장점은 번뜩이는 상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http://cyworld.nate.com/Lyubishev -> 더 많은 자료는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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