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세상 보기 - 하루쯤 물리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양형진 지음, 류기정 그림 / 굿모닝미디어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한 때 나는 언론이 '보통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으로서 객관성을 지니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집에 있는 신문이란 신문은 글자 하나도 빠짐없이 읽으면서 세상을 극히 조금씩이나마 알아가는 즐거움에 푹 빠졌다. 그러나 중앙일보에서 벗어나 한겨레 따위 다양한 신문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은 완전히 산산조각나 버렸다. 그 뒤 나는 신문을 읽을 때 굉장히 신중해져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여전히 그렇지 않은 분야가 있었는데, 그것은 자연과학과 관련된 기사나 사설이었다.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따위 분야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의식이 매우 크게 작용하지만, 자연과학은 그나마 앞에서 제시한 학문들보다는 객관성을 지니고 있어서 신문을 읽을 때도 그나마 좀 마음을 놓고 읽을 수 있었다.

 

중앙일보에서 주로 연재된 자연과학 사설 가운데 가장 재미있었던 것이 김희준 교수님과 양형진 교수님이 쓰신 사설이었다. 김희준 교수님이 쓰신 사설은 주로 문제가 한 가지 나오고 그와 연관하여 이야기가 펼쳐졌고, 양형진 교수님이 쓰신 사설은 주로 과학과 불교 사상과 문학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이야기가 펼쳐지는 모습이 돋보였다. 양형진 교수님이 중앙일보에 2년 동안 연재하신 사설들이 묶여 '과학으로 세상 보기'라는 책으로 나왔다. 


나는 그 사설들 가운데 일부를 신문에서 오려 공책 한 권에 잘 정리해 놓은 덕분에, 서점에 가서 책을 산 뒤 사설과 책을 대조하면서 읽어볼 수 있었다. 예상대로 사설과 책은 달랐다. 사설은 아무래도 원고 분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문장이 줄어들고, 그 결과 설명도 충분하지 않은 일이 좀 있다. 저자가 후기에서 밝혔듯이 가끔씩 자기가 의도했던 바와 전혀 다른 내용으로 이야기가 흐른 일도 가끔씩 있었다. 그래서 저자가 내용을 고치면서, 문장을 좀 더 길게 풀어써 설명을 보충하고, 어려운 말에 대해서는 글 뒤에 따로 설명을 덧붙이고 글 전체 흐름을 다듬는데 신경 쓴 덕분에, 사설로 읽을 때보다는 조금 더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아인슈타인이 주장한 상대성 이론과 보어가 중심이 된 코펜하겐 학파에서 주장한 양자 이론이 주로 등장한다. 현대 물리학은 이 두 이론 위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현대 물리학에 대해 쓴 책에서는 절대 빠질 수 없다. 그것 말고도 물리학과 관련된 서적을 좀 읽어본 사람들이 짐작할 수 있듯이 열역학 제 2 법칙, 자기 조직화 원리, 뉴턴 역학 따위 물리학을 의논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것들이 빠지지 않고 나타난다.
 

저자는 이런 다양한 과학 이론들을 주로 불교 철학과 관련지어 과학과 철학과 자연이 얽히는 관계를 설명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끝없이 묻는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알고 무엇을 알 수 있는가? 극대와 극소가 왜 서로 통하는가? 저자는 인류 문명의 근원에 접근하는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읽는 이들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자극한다. 물론 책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면 꼼꼼하게 되씹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책을 읽든지 계속 생각해야 하지만, 이처럼 스스로 생각하도록 끊임없이 자극하려고 읽는이에게 무엇이라도 묻는 책을 나는 매우 좋아한다. 


결국 이 책이 주장하는 가장 중요한 내용은 과학이 이룬 성과를 문명과 자연이 함께 발전하는데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과학으로 세상을 바라본 결과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가장 뚜렷한 진리일 것이다. 과학은 인류가 자연이 드러내는 참모습에 대해서 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자연이 우리에게 말하는 진리는, 분리와 적대감이 아닌 조화와 공존이었다. 나 없이는 네가 없고 너 없이는 네가 없다. 자연과 과학이 그러하며, 서로 다른 문명권들이 그러하며, 자연 속에 있는 모든 존재가 그러하다. 

 
그러나 인류는 자연에 대해 많은 것을 알수록 자연을 더욱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자연 속에 살아가는 우리가 자연과 함께 발전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그 결과 지금 자연은 온갖 상처에 시달리고 있으며 인류 또한 살아남기 힘들어진다는 위기감 때문에 공포에 떨고 있다. 함께 살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인류사에서 같은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는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고 끔찍한 일이 도대체 몇 번이나 반복되었던가?


이 책 마지막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저자가 밝혔듯이 사람은 '야누스'와 같은 존재이다.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다. 그저 지금처럼 다른 존재들과 함께 사는 삶을 거부하다가 자멸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존재들과 인류는 절대 뗄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려고 힘쓸 것인가? 과학으로 세상을 철저하고 깊게 분석한 결과 그 답은 뚜렷해지지 않았는가? 무엇을 주저할 것인가? 

 

http://cyworld.nate.com/Lyubishev -> 더 많은 자료는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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