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단련하다 - 인간의 현재 도쿄대 강의 1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일본에서 평론가로서 활발하게 일해 온 다치바나 다카시는 내가 존경하는 몇 안 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지식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끝없이 공부하고 평론을 썼다. 다치바나 다카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는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는 이런 사회 문제뿐만 아니라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글을 썼고, 그 글들이 일본 사회를 얼마나 크게 흔들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그는 일본에서 확실하게 인정받는 평론가이다.


그가 1990년대 후반에 도쿄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는데, 그 강의 내용을 모은 책이 '뇌를 단련하다'이다. 내가 알기로는 원래 3부까지 나오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가 너무 바빠서 강의를 그만뒀는지 모르지만 2권은 지금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나는 지금 '뇌를 단련하다' 2권이 나오기만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도쿄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뒤 '문예춘추' 사에 들어갔다가 2년만에 그만두고 다시 도쿄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한 까닭은 간단했다. 자기 머리가 차츰 굳는, 좀 심한 말을 쓰면 '황폐'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 자기를 조였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없고, 그 결과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심각한 고민은 그가 쓴 '퇴사의 변'이라는 글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어서 보통 사람들과 견주어 볼 때 대단히 많은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고정 관념에 부딪쳐 다치바나 다카시가 한 말에 대해 착각하기 쉽다. 지식을 많이 지니고 있는데 뇌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묻기 쉽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말하는 머리가 '황폐'해진다는 느낌은 머릿속에 지식이 적게 들어 있다는 뜻이 아니다. 넓고 깊게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엄청나게 많은 새로운 정보가 몇 초 단위로 쏟아지고 지식 세계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똑똑해져야 했다. '나무 2'에서 이상용 님이 쓴 '업그레이드'에 나오는 두뇌를 가장 잘 쓸 수 있게 해 주는 '나스'라는 약물을 요즘 사람들이 먹은 것은 아니지만, 요즘 사람들은 옛날보다는 정말 똑똑하다.
 

나는 이미 고등학교 2학년 때 '상상을 초월하는 고학력 시대'라는 글을 써서 사회 구성원들이 자꾸만 똑똑해지는 일이 과연 바람직한지 의심했다. 그 의심은 이 책을 읽은 뒤 확신으로 굳었다. 너무 일찍부터 전공 공부에 매달리고 시험을 치는데 필요한 지식에만 매달리는 우리나라 대학생들을 보면 나도 같은 대학생이기는 하지만 참 문제가 많다고 느낀다.


예전에 중앙일보에서 '위기 속에서 인문학은 더욱 발전한다'라는 글을 본 일이 있다. 제목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그 글 제목은 지금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에 따르면 분명히 틀렸다는 것이다. 인문학뿐만 아니라 인문학을 포함한 교양 교육이라는 거대한 교육 체계가 통째로 무너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이 망한다고 다치바나 다카시는 강조하는데, 그가 하는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이미 거의 망했다. 


내가 부산대학교에 들어간 뒤 도서관에서 그저 학문을 연구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전혀 보지 못했다. 다양한 강의 계획표를 보고 어떻게든지 많이 듣고 싶어서 안달이 나서 견디지 못하는 학생을 거의 못 봤다. 그렇기 때문에 교양 과목은 아주 많지만 수강 신청이 끝나고 나면 교양 과목 가운데 절반이 폐강되고 그나마 진행되는 교양 강좌에서도 학생이 전공과목보다 훨씬 적다. 무슨 과목이든지 들어 놓으면 도움이 된다고 말은 잘 하면서, 실제로는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면서 그 말이 과연 어떤 뜻인지 파악하려고 전혀 힘쓰지 않는 학생들이 널려 있다. 


내가 본 모습들은 부산대학교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봐도 좋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틈만 나면 우리나라 교육에 문제가 많다고 난리를 치면서 위와 같은 모습들을 비판하지만, 정작 자기는 그러한지 되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 하다. 그저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다가, 어쩌다가 시대 흐름에 몸을 맡기지 않고 흐름을 거스르려는 사람들이 나오면 이상하다면서 아주 쉽게 무시한다. 자기들이 못했던 것을 그 사람이 해내니까 샘이 나서 견딜 수 없다는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보이는 이 이상한 흐름은 도대체 무엇인가?  


다치바나 다카시가 주장하는 바에 따라 다음과 같이 물어본다. 'Sailing to Byzantium', 'Pride and Prejudice', 'The Last Leaf', 'The Canterbury Story', 'The Waste Land', 'The Lovesong of J.Alfred Prufrock'. 'My Last Duchess', 'Heart of Darkness', 'A Prayer for My Daughter' 따위 영문학 작품들을 영어로 막힘없이 강독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갖춘 문과 학생이 있다. 그 학생에게 온도와 절대 온도를 정확하게 정의하고 열역학 제 1 법칙과 2 법칙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보라고 하면 과연 그 학생은 어떻게 대답할까? 그 반대로도 얼마든지 질문을 만들 수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항상 좀 더 넓게 보라고 했다. 데카르트가 요소환원주의를 주장한 뒤 인류가 구축한 지식 세계는 큰 틀을 잃어버렸다고 그는 주장한다. 문과 사람들은 이과 지식을, 이과 사람들은 문과 지식을 너무 모르며 서로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곧 한 쪽으로 치우친 완전하지 않은 지식 세계를 지닌 사람들이 이 세상에 너무 많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이 지식 세계를 넓게 보지 못하고 좁게만 파고들고, 이대로 가다가는 지식 세계가 근본부터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것은 인류가 구축한 지식 세계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실제로 사회에 그런 사람이 널려 있다고 다치바나 다카시는 말한다. 결국 그는 어디에도 치우치지 말고 어디에든지 관심을 가지고 폭넓게 교양을 쌓아 진정한 실력을 쌓으라고 강조한다.  


나는 그 강한 주장을 받아들이고 이해한 뒤 지금까지 전혀 의심해 본 일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그가 말하는 진정한 실력을 쌓는데 힘썼다. 그러면서 나는 확실히 예전보다 훨씬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뭔가 안다는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 정신세계가 예전보다 훨씬 커지고 훨씬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그런 즐거움이었다.  


'뇌를 단련하다'라는 제목은 결국 그런 뜻이다. 한 쪽으로만 너무 치우쳐 있는 정신을 다른 방향으로 많이 보내 바람을 피워보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진정으로 공부하는데서 나오는 즐거움을 맛보라는 뜻이다. 연애를 할 때는 한 쪽으로 치우친 사랑과 관심을 다른 쪽으로 마구 보내면 큰일 나지만 공부를 할 때는 전혀 그렇지 않다. 되도록 많이 바람을 피워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생각이 특정한 방향으로만 흐르기 쉽고 결국 뇌에 균형이 잡히지 않게 된다. 
 

그는 어떤 글에서든지 정말 다양하고 깊이 있는 자료들로 자기 견해를 뒷받침해, 그가 주장하는 바를 감히 반박하기 힘들다. '뇌를 단련하다'를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주와 환경을 바라보는 위상, 지식 세계 발전사, 뇌 과학, 발레리와 데카르트, 에라스무스와 종교개혁, 르네상스, 교육 제도, 에너지, 자기조직화 원리, 상대성 이론, 패리티 보존칙……책을 읽으면서 문과와 이과라는 이분법을 뛰어넘어 모든 지식 세계를 마음껏 누비다 보면 어느새 뇌가 마구 꿈틀거릴 것이다. 한 방향으로 치우쳐 굳어 있던 뇌가 몸부림치는 그 뛰어난 역동성을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것이다. 

 

http://cyworld.nate.com/Lyubishev -> 더 많은 자료는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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