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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사이트 - 배우고, 생각하고, 연결하는 법을 바꿔놓을 시각 혁명
데이비드 로즈 지음, 박영준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8월
평점 :
예전에 홍보 담당으로 일했던 축제의 주제가 '가상현실'이었다. 덕분에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에 관련된 게시물을 지속적으로 업로드하느라 나름의 공부를 했었다. 『슈퍼사이트』를 읽으면서 까맣게 잊었던 그 기억이 드문드문 떠올랐다. 구글의 스마트안경은 그때, 그러니까 2015년에도 개발 중이었던 걸로 아는데 아직 우리 주변으로 가까이 오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한가 보다.
이 책은 증강현실을 비롯한 다양한 기술들이 우리의 시각을 어떻게 확장하여 일상과 사회를 바꿀지 미리 살펴보는 길잡이다. 모든 기술이라는 게 그렇듯 이런 '슈퍼사이트(¹인공지능, 공간 컴퓨팅, 컴퓨터비전이 결합해 탄생한 새로운 형태의 시각적 현실/²보고, 배우고, 생각하고, 연결하는 법을 바꿔놓을 시각 혁명)'도 명과 암을 가지고 있기에 저자는 발전으로 인해 편리해질 청사진을 제시함과 동시에 우리가 잃게 될 능력, 즐거움,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저지른 사고의 책임 소재 등과 같은 우려스러운 지점도 같이 지적한다.
당신은 집 근처 술집으로 들어간다. 바텐더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는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술이 무엇인지 곧바로 파악하고 당신이 의자에 앉자마자 맨해튼 버번을 따라준다. 당신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호출한 우버는 슈퍼사이트 카메라를 이용해 당신이 차에 접근하자마자 바로 문을 열어준다. 그리고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설정 방식에 따라 차의 내부 환경을 조절한다. 의자를 따뜻하게 덥히고, 허리 지지대를 높여준다. 가속 페달을 부드럽게 밟고 길모퉁이를 돌 때는 천천히 회전한다. 창문에는 빛으로 물든 숲의 풍경이 증강현실 화면을 통해 펼쳐진다.
- 『슈퍼사이트』 中 p.71
슈퍼사이트를 통해 말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걸 파악하는 바텐더, 차량, 어떻게 느껴지는가? 개인적으로는 이런 게 필요한 날이 있지만, 이런 걸 원하지 않는 날도 있을 거 같다. 바텐더랑 음료에 관한 대화만 주고받지 않을 수도 있기도 하고, 게다가 슈퍼사이트로 상대가 내 기분까지 바로 파악한다면 정말 소름 끼칠 거 같기도 하다.

슈퍼사이트가 가장 우려 없이 사용되기에 적합한 분야는 책의 후반부에 언급되는 기후위기, 환경 및 야생동물 보호 관련이지 않을까 싶다. '백문이 불여일견', 보는 것의 효과만 한 게 없다면, 우리가 지금처럼 살았을 때 미래의 지구가, 환경이, 인간이, 동물들이 어떻게 될지를 슈퍼사이트로 정말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만큼 좋은 건 없을 것이다. 이미 이런 기술들을 이용하여 세미나, 콘퍼런스 등을 진행하고 앱 개발이 이루어지는 사례들을 읽으며 제일 시급하고 필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슈퍼사이트로 미리 얻을 수 있는 정보들,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쇼핑, 모임 등은 분명히 편안하고 쾌적한 일상을, 더불어 실수가 없는 선택과 결정을 도울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저자도 언급한 예상치 못한 모험에서 오는 짜릿함, 즐거움에서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 안에서 실수로 인한 새로운 발견이 분명히 존재한다. 잘못 들어선 길에서 우연히 멋진 풍경을 발견하기도 하지 않나. 꼭 실수 없는 일상이, 삶이 좋은 것도, 정답도 아니라고 봤을 때, 이런 기술들에는 적정한 선이라는 게 정말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가정에 새로운 도구가 도입됐을 때 실제로 어떤 효과가 발생할지 정확히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1940년대에 세탁기와 진공청소기가 발명됐을 때 미래학자들은 이 기계 덕분에 가정주부들이 독서나 운동 같은 여가를 누릴 시간이 현저하게 늘어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새로운 도구의 도입으로 사회적인 위생의 기준이 급격히 높여지면서 우리는 지금도 예전과 똑같은 시간을 청소에 쏟아붓고 있다.
- 『슈퍼사이트』 中 p.189
책을 읽기 전에 봤던 <알쓸별잡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에서 출연자 한 분이 위와 거의 같은 얘기를 하면서 발전이라는 게 좋은 것인지, 적절한 멈춤이 필요한 게 아닌지에 대한 소견을 밝혔었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 뭔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구글, 애플, 그리고 우리나라의 삼성, 홈플러스 등 이런 슈퍼사이트의 상용화와 발전을 위해 무수한 기업들이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많이 체감되지는 않지만, 관련 과학자이자, 개발자, 미래학자인 저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런 슈퍼사이트의 수혜를 입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그래도 맺는말 제목이 '모두를 위한(혹은 부자를 위한 슈퍼파워)'인 걸 보면 개발 비용이나 이런 걸 고려했을 때 이런 기술을 공평하게 누리게 될지는 저자에게도 의문점인 게 아닐까?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는 기술력으로 문해력이 떨어지고, 지도를 볼 줄 모르고, 심지어 전화 통화와 대면 대화에서 어려움을 겪는 세대를 만들어냈다. 더 나은 기술, 편리함이 더 나은 인간으로의 연결이 아니라면 이제 우리에게는 진짜 정기적인 '아날로그 안식'이 발전보다 더 필요한 거 같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