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퍼맨 - 속삭이는 살인자
알렉스 노스 지음, 김지선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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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내 리베카를 잃고 아들 제이크와 단둘이 세상에 남겨진 톰은 피더뱅크라는 조용한 마을로 이주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다소 서먹하고 어색한 제이크와의 관계도 개선하려는 톰의 마음과의 달리 상황은 꼬여만 가고, 이사한 집에서 이상한 인기척, 낯설고 기분 나쁜 방문자, 그리고 제이크의 납치 미수까지 겪게 된다. 게다가 두 사람이 정착한 피더뱅크에서는 15년 전에 아동 연쇄 살인을 저질렀던 '위스퍼맨'의 모방 범죄가 일어나고 불길한 예감에 새집의 차고를 뒤지던 톰은 오래된 어린아이의 유해를 발견한다. 경찰서에서 조사 중에 만난 어린 시절 헤어진 아버지 피트 경위는 톰이 트라우마처럼 가지고 있던 폭력과 불화의 기억을 계속 되새김질하게 만드는데...



심지어 우리가 말다툼을 할 때도 우린 여전히 서로를 많이 사랑해.

- 『위스퍼맨』 中


줄거리만 보면 이 책은 분명한 (스릴러) 장르 소설이다. (그런 줄 알고 읽었다) 그런데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내용을 곰곰이 곱씹어 보니 세상 이렇게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없다.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결국 모든 아버지와 비슷하게 자기 자식, 특히 아들에게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그것도 엄마, 아내의 부재 속에서 어쩔 줄 모르는 아빠 톰이 제이크에게 적어준 저 메모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사랑하는 관계라는 것은 메모를 주고받은 톰과 제이크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라, 피트와 톰에게도 그렇다. 두 사람이 그걸 깨닫기에는 너무 많은 오해가 쌓였고 긴 시간이 흘렀지만, 두 사람 모두 무의식 중에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가깝고도 먼, 애정과 애증이 교차하는 관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부모를, 자식을, 형제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톰은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달리 피트에게 사랑받았으며, 아버지 피트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톰의 오해였을 확률이 높다. 엄마, 아내 리베카를 잃은 톰과 제이크가 서로에게 보여주는 것보다 얼마나 마음 깊이 상대방을 생각하고 있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지는 책을 읽다 보면 정말 절절하게 느껴진다. 더불어 그렇게나 사랑하지만 너무 서툰 두 사람만 남겨 두게 된 엄마 리베카의 사랑까지도...



문을 반쯤 열어두면 속삭임이 들려오지.

바깥에서 혼자 놀면 집에 못 가게 되지.

창문을 안 잠그면 유리창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지.

외롭고 슬프고 우울하면 위스퍼 맨이 널 잡으러 오지.

- 『위스퍼맨』 中 p.443


'위스퍼맨'의 행적은 너무 잔인하고 무섭지만, 이 책은 그럼에도 사랑으로 모든 걸 이겨나가는 부자의 이야기가 메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관계지만 너무 극한의 대조를 이루는 프랭크와 프랜시스 덕분에 톰과 제이크의 모습이 더 크게 와닿기도 한다.  

그래서 제이크와 톰이 마지막에는 끈끈해지냐고 묻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는 이 소설이 참 현실적인 게 모든 에피소드가 마무리된 시점에도 톰은 여전히 제이크와 대화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실감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계속 나름의 노력을 할 거다. 사랑하니까... 어떤 상황에도 상대방을 포기하지 않는 것, 사랑은 바로 그런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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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사이트 - 배우고, 생각하고, 연결하는 법을 바꿔놓을 시각 혁명
데이비드 로즈 지음, 박영준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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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홍보 담당으로 일했던 축제의 주제가 '가상현실'이었다. 덕분에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에 관련된 게시물을 지속적으로 업로드하느라 나름의 공부를 했었다. 『슈퍼사이트』를 읽으면서 까맣게 잊었던 그 기억이 드문드문 떠올랐다. 구글의 스마트안경은 그때, 그러니까 2015년에도 개발 중이었던 걸로 아는데 아직 우리 주변으로 가까이 오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한가 보다.


이 책은 증강현실을 비롯한 다양한 기술들이 우리의 시각을 어떻게 확장하여 일상과 사회를 바꿀지 미리 살펴보는 길잡이다. 모든 기술이라는 게 그렇듯 이런 '슈퍼사이트(¹인공지능, 공간 컴퓨팅, 컴퓨터비전이 결합해 탄생한 새로운 형태의 시각적 현실/²보고, 배우고, 생각하고, 연결하는 법을 바꿔놓을 시각 혁명)'도 명과 암을 가지고 있기에 저자는 발전으로 인해 편리해질 청사진을 제시함과 동시에 우리가 잃게 될 능력, 즐거움,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저지른 사고의 책임 소재 등과 같은 우려스러운 지점도 같이 지적한다.


당신은 집 근처 술집으로 들어간다. 바텐더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는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술이 무엇인지 곧바로 파악하고 당신이 의자에 앉자마자 맨해튼 버번을 따라준다. 당신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호출한 우버는 슈퍼사이트 카메라를 이용해 당신이 차에 접근하자마자 바로 문을 열어준다. 그리고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설정 방식에 따라 차의 내부 환경을 조절한다. 의자를 따뜻하게 덥히고, 허리 지지대를 높여준다. 가속 페달을 부드럽게 밟고 길모퉁이를 돌 때는 천천히 회전한다. 창문에는 빛으로 물든 숲의 풍경이 증강현실 화면을 통해 펼쳐진다.

- 『슈퍼사이트』 中 p.71


슈퍼사이트를 통해 말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걸 파악하는 바텐더, 차량, 어떻게 느껴지는가? 개인적으로는 이런 게 필요한 날이 있지만, 이런 걸 원하지 않는 날도 있을 거 같다. 바텐더랑 음료에 관한 대화만 주고받지 않을 수도 있기도 하고, 게다가 슈퍼사이트로 상대가 내 기분까지 바로 파악한다면 정말 소름 끼칠 거 같기도 하다.



슈퍼사이트가 가장 우려 없이 사용되기에 적합한 분야는 책의 후반부에 언급되는 기후위기, 환경 및 야생동물 보호 관련이지 않을까 싶다. '백문이 불여일견', 보는 것의 효과만 한 게 없다면, 우리가 지금처럼 살았을 때 미래의 지구가, 환경이, 인간이, 동물들이 어떻게 될지를 슈퍼사이트로 정말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만큼 좋은 건 없을 것이다. 이미 이런 기술들을 이용하여 세미나, 콘퍼런스 등을 진행하고 앱 개발이 이루어지는 사례들을 읽으며 제일 시급하고 필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슈퍼사이트로 미리 얻을 수 있는 정보들,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쇼핑, 모임 등은 분명히 편안하고 쾌적한 일상을, 더불어 실수가 없는 선택과 결정을 도울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저자도 언급한 예상치 못한 모험에서 오는 짜릿함, 즐거움에서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 안에서 실수로 인한 새로운 발견이 분명히 존재한다. 잘못 들어선 길에서 우연히 멋진 풍경을 발견하기도 하지 않나. 꼭 실수 없는 일상이, 삶이 좋은 것도, 정답도 아니라고 봤을 때, 이런 기술들에는 적정한 선이라는 게 정말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가정에 새로운 도구가 도입됐을 때 실제로 어떤 효과가 발생할지 정확히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1940년대에 세탁기와 진공청소기가 발명됐을 때 미래학자들은 이 기계 덕분에 가정주부들이 독서나 운동 같은 여가를 누릴 시간이 현저하게 늘어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새로운 도구의 도입으로 사회적인 위생의 기준이 급격히 높여지면서 우리는 지금도 예전과 똑같은 시간을 청소에 쏟아붓고 있다.

- 『슈퍼사이트』 中 p.189


책을 읽기 전에 봤던 <알쓸별잡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에서 출연자 한 분이 위와 거의 같은 얘기를 하면서 발전이라는 게 좋은 것인지, 적절한 멈춤이 필요한 게 아닌지에 대한 소견을 밝혔었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 뭔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구글, 애플, 그리고 우리나라의 삼성, 홈플러스 등 이런 슈퍼사이트의 상용화와 발전을 위해 무수한 기업들이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많이 체감되지는 않지만, 관련 과학자이자, 개발자, 미래학자인 저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런 슈퍼사이트의 수혜를 입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그래도 맺는말 제목이 '모두를 위한(혹은 부자를 위한 슈퍼파워)'인 걸 보면 개발 비용이나 이런 걸 고려했을 때 이런 기술을 공평하게 누리게 될지는 저자에게도 의문점인 게 아닐까?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는 기술력으로 문해력이 떨어지고, 지도를 볼 줄 모르고, 심지어 전화 통화와 대면 대화에서 어려움을 겪는 세대를 만들어냈다. 더 나은 기술, 편리함이 더 나은 인간으로의 연결이 아니라면 이제 우리에게는 진짜 정기적인 '아날로그 안식'이 발전보다 더 필요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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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일의 공부법 수업 - 인생의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특별한 수업 수업 시리즈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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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야구>에서 김성근 감독님이 패한 경기 뒤에 연습에 나온 위축된 선수들을 모아놓고 '사람은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된다, 배워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공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는데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을 수 있도록 늘 공부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야 하고... 

스스로를 '공부하는 노동자'라고 칭하는 저자는 바티칸대법원 변호사 자격을 취득해서 이탈리아 법무법인에서 일하기도 하고 우리나라 대학에서 라틴어와 법 관련 강의를 하기도 했다. 교회법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그런 자격을 얻기 위해 라틴어까지 공부하는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라틴어는 명사가 12가지 격으로 변하기도 하고, 형용사는 36가지, 동사는 대략 225가지 형태로 변화한단다. 유럽권 언어의 동사 변화형이 어마무시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차원이 다르지 않나?

이탈리아 라테라노대학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고 3년간의 사법 연수원 과정까지 거쳐 바티칸대법원 700년 역사상 최초의 한국인 변호사가 된 저자의 이야기를 차분히 따라가다 보면 공부뿐 아니라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일단 펼치고 나면 쭉 읽게 되는 은근하고 묵직한 끌림이 있는 책이었다.



과거의 기억에 매여 있으면 '여기서 지금(hic et nunc, 히크 에트 눈크)' 해야 할 일에 충실해지기 어렵습니다. '지금 여기'를 살고 싶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조건을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기억의 정화는 '지금 여기'를 잘살기 위한 조건을 만드는 훌륭한 방법입니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자꾸 떠오르는 기억부터 서서히 정화해나가기 바랍니다.  


- 『한동일의 공부법 수업』 中 p.197


요즘 가장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기억의 정화'. 나쁜 기억이든 좋은 기억이든 너무 오래 품고 있는 건 힘들다. 새로운 출발과 시작을 주저하게 만드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나쁜 기억은 결국에는 돌고 돌아 그렇게 된 원인을 자신에게 찾으며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된다. 최근에 일기에 '지금 나에게 가장 큰 문제는 사그라들지 않는 분노다'라고 썼었는데 이 분노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든 이걸 확실히 놓아줄 때가 되었고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여러분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공부하고 계시나요? 공부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기억의 정화'와 함께 필요한 건 바로 '목적의 정화'입니다. 우리 사회가 힘들고 아프고 어려웠던 건 열심히 공부해서 높은 연봉을 받는 직업을 가진,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없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목적을 정화하며 공부의 격을 높인 사람들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에게서 이웃으로, 이웃에서 사회로, 사회에서 국가로, 다시 세계로, 결국 인류 전체로까지 힘이 되는 공부의 목적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고, 더 나아가 거룩하게 만듭니다.


- 『한동일의 공부법 수업』 中 p.298


그리고 필요한 걸 하나 더 뽑자면 '목적의 정화'. 그저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다 보면 다음 스텝이 보이곤 했었는데 몇 년 전부터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의 목적, 목표에 대해서 방향성이라도 확실히 해야 된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는 일이, 공부가, 내면의 분명한 작은 기둥을 세울 수 있는 힘이 된다면 결국에는 그게 인류의 힘이 되는 범주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책안에 작은 선물이 있다고 공지를 먼저 받아서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이름이 들어간 친필 사인이었다. 저자가 먼저 제안한 아이디어였다고... 라틴어는 무슨 뜻일까 찾아보니 바로 아래 적혀있는 '기쁜 마음으로'였다. 책에도, 사인에도 저자의 마음이 잘 담겨있었다. 

초반부에 소개된 가수 마크 빈센트의  <룩 인사이드(Look inside)>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노래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은 채 공부든 일이든 매달리게 되면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저자의 의견에 동감한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중간에 달라지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들로 일상을 채우고 공부하고 살아가자.

'Dilige et fac quod vis(딜리제 에트 팍 쿼드 비스.)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 아우구스티누스  《요한 서간 강해》 


실상 몸을 가두고 무언가를 배워가는 과정 속에서는 주어진 시간을 꽉 채우지 못하고 이도 저도 아닌 나를 거의 매일 보게 됩니다. 이도 저도 아니라고 해서 그게 내가 아닌 것은 아니잖아요? 이도 저도 아니라고 해서 그게 삶이 아닌 것은 아닌 것처럼요.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유리창에는 얼룩도 있고 흠집도 있지만 깨끗한 부분이 더 많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그것을 통해 나와의 약속도 잘 지키지 못한 나, 이도 저도 아닌 그저 그런 나이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 『한동일의 공부법 수업』 中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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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안에 갇힌 사람들 - 화면 중독의 시대, 나를 지키는 심리적 면역력 되찾기
니컬러스 카다라스 지음, 정미진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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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국제 페스티벌 사무국에서 일할 때 그 어느 때보다 인간이라는 종에 대해서, 정확히 말하면 인간이라는 종으로 취급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필요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공교롭게도 최근에도 그랬다. 그러던 중에 만난 이 책은 깨달음을 주기도 했고, 위로가 되기도 했다. 우리가 겪은 발전이라는 건 우리의 타고난 인간다움을 잃게 만드는 쪽으로 특히 최근 몇 년간 급속도로 강화되었고, 그 흐름에 휩쓸리지 않게 위해 애쓰는 건 어쩌면 시대를 거스르는 어리석음으로까지 비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래도 그런 노력을 다 같이 하지 않으면 앞으로 겪을 절망은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거다. 


사실 그것은 이 책의 주요 요점 중 하나이다. 디지털 시대는 한때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중요한 힘, 본래의 바른 정신을 유지하는 힘을 없애버렸다. 우리에게는 인내심을 기를 수 있는 경험이 필요하지만, 경험 대신 트위터가 있다. 우리에게는 직접 경험이 필요하지만, 그 대신 게임이 있다. 우리에게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쌓는 사회적 경험이 필요하지만, 그 대신 소셜 미디어가 있다. 우리에게는 자연에 몰입하는 경험이 필요하지만, 그 대신 인스타그램으로 보는 자연 사진 몇 장이 있다. 

진정으로 건강하고, 강하고, 행복해지고 싶다면 이러한 상황을 그냥 무시해서는 안 된다.

- 『손 안에 갇힌 사람들』 中 p.315


저자는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는 약물중독자의 삶에서 스스로가 가진 본연의 힘을 회복한 경험과 엮어 현재 기술과 과학의 발전으로 편함이 디폴트가 된 우리의 일상과 세상이 가진 위험성을 경고한다. 미국 최고의 중독 치료 전문가로 활동 중인 저자는 소셜 미디어와 디지털 기기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회를 어떻게 바꾸어 나가는지에 대해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고 그 모습은 바로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도 무관하지 않다. 

뉴스로 많이 접하는 미국의 학교 총격 사건 중 첫 번째는 1966년에 일어난 텍사스 타워 총격 사건이라고 한다. 중요한 점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학교 총격 사건이 이 첫 번째 사건의 언론 보도가 나간 후 6개월도 되지 않아 두 건이나 발생했다는 것인데 저자는 이를 '사회적 전염'이라고 한다. 이는 요즘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살인 예고와 묻지마 칼부림, 마약 사건 등과도 겹쳐 보인다. -누군가는 하다 하다 살인이 유행이 되는 거냐고 하는데 이는 일종의 다른 바이러스일 수도 있겠다.- '사회적 전염'의 힘이 단순히 언론 보도에만 의지하던 시기에 대어 디지털 시대에 얼마나 커졌는지는 미국의 총격 사건의 빈도와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다.  


거대 기술기업은 정치적 중립의 땅에서는 이득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들을 위해서는 사람들의 '도마뱀 뇌'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언론계에 이런 말이 있었다. "피를 흘리면, 시청률이 올라간다." 자동차 사고의 사망 현장을 꼭 봐야만 하는 인간의 병적인 호기심을 생각하면 일리 있는 말이다. 이제 디지털 시대는 "피를 흘리면 시청률이 올라간다"를 넘어 "감정을 자극하면, 시청자가 몰두한다"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게 되었다. 경제적인 면에서 현실을 이야기하자면, 중도 성향 컨텐츠에는 돈이 따르거나 디지털 습관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 『손 안에 갇힌 사람들』 中 p.153


어떤 이야기든 퍼지는 속도가 남다른 세상에서 우리는 점점 참거나 감당하는 걸 어려워하는 대중이 되어가고 있고 거대 기술기업에서는 즉각적인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콘텐츠를 끊임없이 제공하면서 그런 면을 강화시킨다. 그러면서 큰돈을 번다. 뼈아프지만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기술 식민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에게는 회복이 필요하다. 인간으로서 타고난 기질과 품성을 잘 유지하며 살기 위해 좀 다른 노력이 필요한 때다. 어디에든 많이 연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고립되고 편향되기 쉬운 세상에서 노예가 아닌 제대로 인간으로 살 수 있도록 더 기꺼이 불편을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자유가 점점 줄어드는 방향으로 사회를 이끌려는 많은 비인간적인 세력이 있습니다. 기술 장치도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쓰고 싶은 사람이면 누구든, 자유에서 멀어지게 하고 통제를 강요하는 이 과정을 가속화하는 장치들을 쓸 수 있죠. 

… 미래에 벌어질 이러한 종류의 독재는 얼마 전까지 우리가 봤던 독재와는 매우 다를 겁니다. 

… 사실 어떤 면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체계에서 행복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위험한 것은, 그들이 행복하면 안 되는 상황에서 행복해진다는 거예요."

- 올더스 헉슬리, 1958년 5월 18일, 마이크 월러스와의 TV 인터뷰에서

- 『손 안에 갇힌 사람들』 中 p.198


세계는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다. 책 안에서 언급된 아이폰 조립 공장 노동자들의 사례를 읽으면서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희생되는 다른 이의 삶을 하나하나 들여다봤을 때 우리가 정말 제정신으로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적당히 눈 감고 살고 있는 게 맞다. 그렇게 보면 단순히 기부를 하고, 환경을 위한 채식을 한다는 것 등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오만일 수도 있을 거 같다. 소셜 미디어와 디지털 기기 덕에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의식하지도 않은 채로 죄짓기도 쉬워졌다는 것을 기억하자. 어떻든 나의 선택에 상처받는 사람이 없을 거라는 과신을 경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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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솔로지 -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의 지배종이 될 때까지의 거의 모든 역사
송준호 지음 / 흐름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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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내용을 한번 정리해보자. 200만 년 전 호모하빌리스는 지능은 있었지만 단편적이었고 아직 마음이 없는 존재였다. 180만 년 전 호모에렉투스는 강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그것이 자신인지 알아보는 자의식이 생겼다. 20~30만 년 전 호모네안데르탈렌시스는 아픈 자를 돌보고 사랑하던 이의 무덤에 꽃을 올려놓을 줄 알았다. 그리고 10만 년 전 호모사피엔스는 거침없이 유연한 상상을 하며 장신구와 추상적인 예술품을 쏟아냈다.

- 『사피엔솔로지』 中 p.101


학교의 교과과정 속에서 우리는 인류의 진화와 발전 과정을 배운다. 덕분에 시기와 명칭이 정확히 매칭되지는 않아도 관련 강의나 이야기를 들으면 어느 정도 생각이 나기도 한다. 이 책은 표지의 문구대로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의 지배종이 될 때까지의 거의 모든 역사'를 다룸과 동시에 어떤 미래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 미래가 불멸을 꿈꾸는 『두 번째 인류』와 연결되기도 한다.


우리는 참 신기한 생명체다. 체중의 2%에 불과한 뇌에 전체 에너지의 5분의 1을 소비하며 '지능'의 진화에 역량을 쏟아부어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걸 지속하고 서로에 대한 돌봄과 배려, 공감의 능력으로 거대한 사회를 이뤘다. 게다가 미지의 것에 대한 개척과 과감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자정을 위한 적절한 브레이크를 걸 줄도 안다. 그러나 배척과 적대심 또한 무한대로 발휘할 수 있으며 정말로 스스로를 멸종시키는 게 가능하기도 한 종족이다.


동물의 세계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혹독한 빙하기에 집단이 생존하려면 불구의 신체와 장애를 가진 타인은 버리는 것이 합리적이다. 선행인류가 무리 이동을 할 때 이동 능력이 없는 동족은 그 자리에 두고 떠났다.

반면, 이 늙고 병든 두 노인에게는 오랜 기간 돌봄을 받은 흔적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호모 속들이 타인을 돌보고 배려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이런 일을 동물들은 하지 않는다. 6만 년 전부터 인간은 더 이상 동물이 아닌 존재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 『사피엔솔로지』 中 p.95~96


인간은 공감하는 데 필요한 마음을 갖기 시작하면서 확실한 차별점을 가진 존재가 되었으나 그 덕에 좀 더 악랄하고 불필요한 경쟁을 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마음에는 꼭 긍정적인 부분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는 편을 가르고 전쟁을 하고 교묘하게 타인을 수단화할 수 있는 종이 되었다.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는 법, 상대적으로 약한 육체적인 능력치에도 지능, 마음, 문화 등으로 지구의 지배종이 된 인간의 협업 능력은 좋은 면만 있는 건 아니다.



인류의 기원과 진화, 그리고 도시와 국가, 문명에 대해 다룬 4장까지 읽고 나면 우리가 처음에 가지고 태어난 거 대비 참 대단한 걸 이루어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발전이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 시점에 그냥 휩쓸려가지 않도록 하는 게 조금 더 나은 우리와 세상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는 것도... 유전자 조작과 인공지능, 그리고 기후위기 등이 언급된 5장에서 7장까지의 내용은 이전에 읽은 『두 번째 인류』를 떠올리게도 했고, 동물복제로 주목받다가 논문 조작으로 몰락한 황우석 박사 사건부터 유전자 조작으로 일말의 결함도 없이 태어나는 인간, 크롬이 등장하는 드라마 <올모스트 휴먼> 등 여러 가지가 생각나게 만들었다. 

우리는 점점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으로 접했던 상황에 가까워지고 있다. 좋다, 나쁘다, 어느 한쪽으로 단정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세계 평균으로 볼 때 7월 29일 이후로 다음 세대가 사용할 지구 자원을 빌려다 쓰고 있다는 2021년의 통계치를 보고 있으니 -우리나라는 4월 초부터 후손들의 것을 빌려 쓰고 있단다- 이제 우리는 발전, 개발보다는 균형과 지속에 신경을 써야 할 때가 진짜 온 게 아닌가 싶다. 이미 너무 늦은 걸지도 모르지만, 이토록 경이로운 발전을 이뤄낸 인류로서 어느 때보다 '혁신 본능'을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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