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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퍼맨 - 속삭이는 살인자
알렉스 노스 지음, 김지선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1월
평점 :
절판
아내 리베카를 잃고 아들 제이크와 단둘이 세상에 남겨진 톰은 피더뱅크라는 조용한 마을로 이주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다소 서먹하고 어색한 제이크와의 관계도 개선하려는 톰의 마음과의 달리 상황은 꼬여만 가고, 이사한 집에서 이상한 인기척, 낯설고 기분 나쁜 방문자, 그리고 제이크의 납치 미수까지 겪게 된다. 게다가 두 사람이 정착한 피더뱅크에서는 15년 전에 아동 연쇄 살인을 저질렀던 '위스퍼맨'의 모방 범죄가 일어나고 불길한 예감에 새집의 차고를 뒤지던 톰은 오래된 어린아이의 유해를 발견한다. 경찰서에서 조사 중에 만난 어린 시절 헤어진 아버지 피트 경위는 톰이 트라우마처럼 가지고 있던 폭력과 불화의 기억을 계속 되새김질하게 만드는데...

심지어 우리가 말다툼을 할 때도 우린 여전히 서로를 많이 사랑해.
- 『위스퍼맨』 中
줄거리만 보면 이 책은 분명한 (스릴러) 장르 소설이다. (그런 줄 알고 읽었다) 그런데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내용을 곰곰이 곱씹어 보니 세상 이렇게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없다.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결국 모든 아버지와 비슷하게 자기 자식, 특히 아들에게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그것도 엄마, 아내의 부재 속에서 어쩔 줄 모르는 아빠 톰이 제이크에게 적어준 저 메모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사랑하는 관계라는 것은 메모를 주고받은 톰과 제이크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라, 피트와 톰에게도 그렇다. 두 사람이 그걸 깨닫기에는 너무 많은 오해가 쌓였고 긴 시간이 흘렀지만, 두 사람 모두 무의식 중에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가깝고도 먼, 애정과 애증이 교차하는 관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부모를, 자식을, 형제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톰은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달리 피트에게 사랑받았으며, 아버지 피트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톰의 오해였을 확률이 높다. 엄마, 아내 리베카를 잃은 톰과 제이크가 서로에게 보여주는 것보다 얼마나 마음 깊이 상대방을 생각하고 있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지는 책을 읽다 보면 정말 절절하게 느껴진다. 더불어 그렇게나 사랑하지만 너무 서툰 두 사람만 남겨 두게 된 엄마 리베카의 사랑까지도...

문을 반쯤 열어두면 속삭임이 들려오지.
바깥에서 혼자 놀면 집에 못 가게 되지.
창문을 안 잠그면 유리창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지.
외롭고 슬프고 우울하면 위스퍼 맨이 널 잡으러 오지.
- 『위스퍼맨』 中 p.443
'위스퍼맨'의 행적은 너무 잔인하고 무섭지만, 이 책은 그럼에도 사랑으로 모든 걸 이겨나가는 부자의 이야기가 메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관계지만 너무 극한의 대조를 이루는 프랭크와 프랜시스 덕분에 톰과 제이크의 모습이 더 크게 와닿기도 한다.
그래서 제이크와 톰이 마지막에는 끈끈해지냐고 묻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는 이 소설이 참 현실적인 게 모든 에피소드가 마무리된 시점에도 톰은 여전히 제이크와 대화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실감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계속 나름의 노력을 할 거다. 사랑하니까... 어떤 상황에도 상대방을 포기하지 않는 것, 사랑은 바로 그런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