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과 모리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권남희 옮김 / 김영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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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얘기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에서 따 온 두 캐릭터 메멘과 모리가 등장하는 요 그림책도 그래서 읽게 되었다.



이야기는 '메멘과 모리와 작은 접시', '메멘과 모리와 지저분한 눈사람', 그리고 '메멘과 모리와 시시한 영화',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누나 메멘이 만든 접시를 깨뜨린 모리는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접시라며 정말 미안해하는데 메멘과 또 만들면 된다고 괜찮다고 한다. 접시를 깨진 것과 같이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진짜 중요한 건 그다음에 어떻게 하는 것인가다. (물론 접시가 깨졌을 때 깨뜨린 모리가 잘못을 인정하고 미안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살아보니까 이게 안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그 상황에서 우리를 더 나아지게 만드는 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 앞에서 그 깨진 접시를 안고 슬퍼하는 게 아니라 메멘처럼 다음에 어떤 접시를 만들 것인지, 이 접시 대신에 어떤 걸 사용할지 등 다음 스텝을 같이 고민하는 것. 언제나 내가 선택하고 바꿀 수 있는 방법과 대안을 찾는 걸 잊지 않아야 할 거 같다.  

깨진 접시, 적은 눈 때문에 지저분하게 만들어진 눈사람, 함께 본 시시한 영화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생각이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어느 것도 단정 짓지 않는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고,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괜찮다고 한다. 예상대로 되어도, 예상대로 되지 않아 깜짝 놀라게 되어도 좋은 거라고 한다.


사는 데 정답은 없다. 하지만 답이 있었으면 하는 순간, 그리고 그 답을 찾다 지치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 따뜻한 그림과 '내 말고 맞고 네 말도 맞아'라고 속삭이는 거 같은 이 책이 위로가 되어 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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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없는 집 율리아 스타르크 시리즈 1
알렉스 안도릴 지음, 유혜인 옮김 / 필름(Feelm)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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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이은 목재 재벌 4세 페르 퀸터 모트는 가족 주주총회가 있던 날, 미리 먹은 약과 술의 효과로 기억을 잃는다. 다음 날 자신의 휴대폰에서 얼굴을 가린 죽은 듯 보이는 남자의 사진을 발견하고 경찰이 아닌 탐정 율리아를 찾아온다. 율리아는 페르 귄터가 살인을 저지른 것인지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그가 살고 있는 만하임 저택으로 향하고 경찰인 전남편 시드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사진 속의 남자의 정체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던 율리아는 대를 이은 가족의 비극과 비밀에 다다르게 된다.

제목 『아이가 없는 집』은 의뢰인 페르 귄터를 비롯한 사촌 형제들 모두 아이가 없다는 것에서 온 것이었다. 딱히 중요한 부분으로 느껴지지는 않아서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싶었는데 이전 세대에서 있었던 일로 이런 DNA가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현명할 것이라는 형제들의 조소 어린 말이 힌트가 되었다.



불쌍한 시리, 아버지의 오해로 인해 입양, 평생 친오빠한테 당한 가스라이팅에 숨겨진 경악할 만한 진실이라니... 뭐가 문제였을까? 너무 많은 재산? 페르 귄터의 아버지 쉴베스테르가 모든 재산을 이어받도록 만든 증조할아버지 만하임의 잘못? 자식이 둘이 있으면 각각 공평하게 나눠주고 그다음 대에 넷이 있으면 넷이 나눌 수 있게 하고 그러면 안 되었던가? 그럴 수밖에 없는 -기업의 미래를 생각한다던가 등등- 이유가 존재한다고 해도 이 비극은 결국 재산 분할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부모님의 진실을 알게 된 베르테르의 행동은 정말 이해가 안 갔다. 베르테르의 어머니 린네아는 기업과 재산을 물려받게 될 큰 아들이 남편 쉴베스테르처럼 될 거 같다는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포는 현실이 되었다. 베르테르는 형제들을 못살게 굴어 신체적, 감정적으로 상처 입히고, 진실을 알고서도 감추고 돈(주식)으로 무마하는 등 자신의 아버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인간으로 나이 들었으니 말이다.

베르테르가 어머니의 편지(유서)를 발견했을 때, 거기에 적힌 것이 진실이라는 걸 알았을 때, 모든 것을 충분히 바로잡을 수 있었다. 왜 그러지 않았을까? 이 모든 건 정말 DNA 때문인가?



저자 알렉스 안도릴은 '라르스 케플레르'라는 필명으로도 활동하는 부부 작가 알레산드라 코엘료 안도릴과 알렉산데르 안도릴의 또 다른 필명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 필명으로 쓴 탐정 율리아 스타크 시리즈 첫 권이라고 한다. 

읽으면서 탐정 율리아가 어떤 등장인물보다 강렬하게 느껴졌다. 가족과 당한 비행기 사고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그녀는 덕분에 얼굴에 긴 흉터와 불편한 다리를 가지게 되었고 다른 사람의 손길에 엄청난 스트레스와 압박이 있어서 악수조차 잘 나누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의지하고 닿아도 괜찮은 사람이 전남편 시드니인데 이 두 사람의 자세한 서사도 궁금해졌다.


『아이가 없는 집』은 탐정 율리아 스타크가 궁금해지는 서막으로 좋은 작품이었다. 사진 속의 인물이 누구인지, 진짜 죽었는지, 사진이 어떻게 페르 귄터의 폰에 남았는지, 누가 왜 그랬는지, 모두 느긋한 듯하지만 섬세하고 예민한 율리아를 따라가다 보면 답을 찾게 되고 마지막에는 추악한 진실에 다다를 수 있다. 다만, 그 진실은 개인적으로 좀 짜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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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시민 - 뉴스에 진심인 사람들의 소셜 큐레이션 16
강남규 외 지음 / 디플롯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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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즈음에 선물로 받았는데 여행에 들고 가서 다 읽고 왔다. 그래도 다행히 선물 받은 그 해를 넘기지는 않았다. 다양한 이력의 사람들이 모여 나눈 토론을 담은 책이었고 생각보다 재미나게 읽었다.



…이상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선을 추구하고 악을 미워한다면 문동은의 인생은 왜 그 모양이었단 말인가? 왜 다수의 선한 사람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지 못하는가? 이것이 복수를 응원하기 전에 먼저 마주해야 할 질문이 아닐까.

- 『최소한의 시민』 中 p.26~27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 나쁜 사람이 되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쁜 사람조차 자기가 한 일이 나쁘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나름의 기준으로, 혹은 좋은 사람이라는 적당한 착각으로 산다. 그래서 세상은 더 나아지지 않는 거 같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노력으로 또 완전히 나빠지지는 않는 거 같다. '다수의 선한 사람' 속에 얼마나 많은 허수가 있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마음이 좁아지고, 삶이 길을 잃는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도 '이상하다'라고 느끼지만, 더 깊이 생각하려고 하지는 않는 거 같다. 세상에, 교실에 정말 선한 다수의 사람이 있었다면, 문동은은 상상 속에만 있어야 하는 캐릭터다.


다양성을 제일 인정하기 힘든 분야가 윤리인 거 같아요. 취향이나 다른 선호들은 타인의 것을 얼마든지 인정할 수 있는데, 이 사람이 나랑 다른 윤리관을 가졌다 그러면 이거는 참기 힘들어지는 거죠. 어떤 사람이 다른 이의 기준에서 봤을 때 부도덕한 일을 밥 먹듯이 하면서 자기는 그게 도덕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을 가까이 하기 힘들어지는 거죠. 

- 『최소한의 시민』 中 p.57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건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야기될 때가 있다.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고... 그런데 여기에 배려, 예의, 존중이라는 차원이 더해지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내가 중요시하는 가치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상대방의 언행은 불쾌함과 무력감을 주기 쉽다. 특히 상대방이 그런 태도들을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며 유지하면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무한의 인내심과 희생을 유발하는 일방적인 관계가 된다. 이쯤 되면 이 관계는 질병을 유발할 확률이 높아진다. 상호 간에 추구하는 가치가 맞고 틀림을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에 동의가 된다면, 상대방을 살피고 적어도 서로가 저어하는 언행은 자제할 줄 아는 게 진짜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적 인간이 하는 최선의 행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 내가 뒤처진 것이 아니라 이전에는 없던 신비로운 생명체가 나타난 것이다. 그런 식으로 자기가 여전히 세상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 그것이 세대론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세대론은 등장의 기록이 아니라 낙후의 기록이다. 어느날 세상에 'OO세대'가 등장했다면 주목해야 할 것은 'OO세대'가 아니라, 그걸 보고 놀라워하는 세대의 낙후성이다.

- 『최소한의 시민』 中 p.192


세상은 계속 변화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 같이 변화해야 한다. 어떤 거창한 것보다는 그냥 어제 몰랐던 어떤 걸 오늘 하나라도 알게 되면 그게 변화라고 볼 수도 있을 거 같다. 어제는 이해 안 가던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이 오늘 이해가 된다면 그것도 변화가 아닐까. 그래서 최근에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유연함을 잃지 말자는 거다. 오렌지족, X세대 등 사회에 이전에 없던, 삶의 지향점이 다른 무리를 지칭하는 단어들은 MZ 세대 전에도 잔뜩 있었다. 세대까지 가지 말고 가족 안에서 부모님한테, 형제들한테 내가 어떤 유별난 존재인지만 봐도 알 수 있을 거다. 새로운 세대를 새로운 기술과 비슷하게 생각하면 어떨까 싶다.


총 16개의 주제에 대해 함께 나눈 토론 정리본과 2개의 토론록이 담긴 이 책은 다루는 주제에 대해서 나의 의견은 어떠한가를 고민하고 읽으면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제대로 된 토론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경험하기 쉽지 않다. (토론 프로그램 보다가 꺼버리거나 무슨 개싸움 보는 거 같은 기분이 든 적 있을 거다) 제대로 토론할 수 있다는 건 기본적으로 잘 들을 수 있고, 상대방을 제대로 존중할 줄 안다는 것. 이 책에서는 그런 토론이 주는 안정감과 상호 이해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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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순간이다 - 삶이라는 타석에서 평생 지켜온 철학
김성근 지음 / 다산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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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한 발 비껴있기는 하지만 <최강야구>는 방영을 시작한 시점부터 최애 프로그램이었다. 그냥 은퇴한 선수들이 모여서 놀려고 만든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고 봤다가 그 진심에 너무 크게 치였달까. 특히 1시즌 때는 상대편으로 만난 고등학교 팀에서 기대되는 선수나 멋있는 감독님을 보고 주변에까지 얼마나 열심히 얘기했는지 모른다. 신인 드래프트 방송까지 챙겨보고 야구에 대해 전혀 모르시던 어머니까지 방송 보시고 선수들에 대해 물어보시는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한 경기가 하루에 끝나지 않는 직관과 편집이 많아져서 잘 챙겨 보게 되지를 않지만, 그래도 <최강야구>에서 볼 수 있는 진짜 '팀'플레이를 좋아한다.

<최강야구>는 김성근 감독님이 맡으신 다음부터 뭔가 처절해지고 '팀'이라는 게 좀 더 강조되기 시작했다. 나는 <유 퀴즈 온 더 블럭> 방송을 보고 이분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는데 이후에 이광길 코치님이 유튜브 '마이금희'에서 두 분의 인연과 함께했던 야구에 대해 말씀하시는 걸 듣고 감독님과 코치님, 두 분의 팬이 되었다. 두 분의 이야기 속에는 '야구'라는 단 하나에 집중해 온 삶, 모든 걸 건 삶이 주는 경이로움이 있었다. 그래서 김성근 감독님의 이 책도 읽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차피' 속에서도 '혹시'라는 가능성을 무궁무진하게 상상하고 그것들을 '반드시'로 만들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최고의 결과를 내는 것, 그게 내가 여태껏 해온 일이었다. '어차피 돈이 없으니까', '어차피 나는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으니까', '이 팀은 어차피 뛰어난 투수가 없으니까'……. 그런 생각은 하등 필요가 없다. 그렇게 수많은 '어차피'가 있다면 그 비관적인 상황을 돌파할 아이디어를 미리 찾아놓으면 되지 않는가.

- 『인생은 순간이다』 中 p.81


김성근 감독님은 선수 시절 모든 걸 잘하는 완벽한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달리기도 잘 못하셨단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절망이나 단념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거다. 피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라면 그걸 바꿀 수 있는, 아니면 다르게 이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최선의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냈다. 

'원래 그래', '어쩔 수 없어'라는 말로 스스로의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조직이나 사람을 언제든 만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남는 건 그 자리에서 썩는 거 밖에 없다. 계속 성장하려면, 적어도 '내일의 나'가 '오늘의 나'보다 괜찮으면 좋겠다면 '어차피'라는 말을 핑계 삼아 도망갈 구멍은 그만 만들자.


승률 7할이라는 목표는 내게 한 경기 한 경기 질 때마다 굉장한 압박감을 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수들에게 야구만 바라보라고 강제할 순 없다. 그들은 최강야구 연습을 하면서도 각자 자리의 일을 해야 한다. 이전까지 '김성근의 야구'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니, 어느 면에서 나는 이제 선수들에게 맞춰주고 있는 셈이다. 그 안에서 나만의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찾아가면서.
- 『인생은 순간이다』 中 p.111


야구에 대해 잘 몰랐지만, 김성근 감독님 이름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강야구> 감독으로 오신 다음에, 주변에 이 감독님 뭔가 논란이 있지 않았던가라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찾아보니 이런저런 기사들이 있었는데 연습량 등으로 혹사 논란도 있는 반면에 아직도 SK 선수들이 감독님을 모시고 생신 모임을 할 정도로 끈끈하고 좋은 관계를 이어오고 있으셨다.

<최강야구>도 감독님이 오신 다음부터 경기가 없는 겨울에도 진짜 구단처럼 시즌을 대비한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단, 연습 참여는 자율이고, 감독님과 같이 할 수 없다면, 개인 훈련 후에 영상 인증 등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최강야구>의 출연료가 진짜 선수 연봉만큼을 담보하는 건 아니라서 선수 개개인이 생계를 위해 따로 하고 있는 일들은 양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수들은 연습과 경기에 빠지기도 한다. 자신은 여전히 야구만 바라보지만, 지금 본인이 감독하고 있는 팀의 특성상 선수들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걸 이해하고 맞춰주신다는 것, 이것도 성장이 아닐까?



나도 내 의견을 피력하되 코치들의 이야기도 듣는다. 내 아이디어보다 괜찮은 의견을 내는 코치가 있다면 '이야, 일리있는 말이구나' 싶어 적용해 본다. 즉 미팅은 리더의 의견만을 관철시키기 위해 모두가 모이는 게 아니다. 설사 상대가 리더라도 틀렸다면 틀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 『인생은 순간이다』 中 p.270


1942년생인 감독님은 올해 83세시다. 그리고 그 생의 대부분을 야구에 쏟으셨다. 이런 감독님이 코치나 선수들의 말을 듣고 의견을 바꾸시는 건 아마 쉽지 않을 거다. 감독님보다 경력이 일천한 사람들도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에 오르면 다른 상황이나 의견에 독선이나 독단으로 대응하는 걸 더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성장하기 위해 우리기 잃지 않아야 하는 중요한 성향은 유연함이고, 조직과 리더는 그런 유연함으로 거센 토론이 가능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걸 감독님의 말씀 안에서 느낄 수 있었다.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이라는 껍질만 쓴 곳을 많이 봐서 더 공감할 수 있었던 거 같다. 


조금씩이라도 지속적으로 나아지는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감독님이 야구에 대해 보여주시는 집중력과 진심에 더 공명하게 되는 거 같다. 아직도 계속 야구 관련 책을 읽으시고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으신다는데 이리저리 다양한 것에 관심이 많은 자로서 이렇게 단 하나에 집중하는, 감독님이 보여주시는 삶이 정말 감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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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공부 - 똑바로 볼수록 더 환해지는 삶에 대하여
박광우 지음 / 흐름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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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남은 가장 큰 이벤트는 '죽음'일 거라서 잘 죽고 싶다. 그래서 '잘 죽는 것'에 대한 나름의 고민을 안고 여러 책들을 읽기도 했다. 말기 암, 파킨슨병의 명의가 생각하는 웰다잉은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는데 이 책, 그런 고민뿐 아니라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도움이 되었다. 회의 때 듣고 넘어간, 삶의 질을 반영한 기대수명을 나타내는 QLAY(질 보정 생존 연수 Quality-adjusted life year)를  어떻게 계산하는지, 집에서 사망했을 경우의 절차 같은 디테일부터 파킨슨병이 뇌의 어떤 부분에 문제가 생겨서 발생하는지 등 다양한 분들과 상담하면서 들었던 병과 증상들에 대해서 그 원인과 진행 과정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게 해주었다. 

병이라는 건 나나 주변의 지인이 앓지 않으면 무지하고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특히 노화로 인한 병은 그렇게 둘 수 없는 분야가 아닐까. 나를 위해서,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 병은 '똑바로' 보는 게 필요하고 그렇게 볼수록 지금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선명해진다.



| 어떻게 죽을 것인가


그러나 삶과 죽음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누군가의 자식이며, 누군가의 부모이며, 누군가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죽음은 다른 이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이 환자는 내가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지는 몰라도, 부인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남편, 자식들에게는 나쁜 아빠로 각인되었을 것이다. 남은 가족은 더 이상 책임을 돌릴 수 없는 망자로 인해 심리적 후유증과 경제적 부담만을 지게 되었다.

- 『죽음 공부』 中 p.36~37


죽음은 끝이 아니다. 내가 관계 맺었던 모두에게는 그 이후가 남는다. 나의 죽음은 나와 관계되어 남는 사람에게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여야 한다. 금전적이든, 감정적이든 말이다. 당장 아프고 죽는 건 난데 그런 배려까지 해야 되냐고 묻고 싶다면, 본인이 남겨진 사람이 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자. 죽은 이를 원망하고, 그 원망에 따라오는 죄책감까지 안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남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설사 그 과정이 고되고 지난할지라도)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갑작스런 뇌출혈로 순식간에 식물인간이 되어 콧줄을 넣고 목에 구멍을 낸 채로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환자들을 마주하다 보면 치료의 자기 결정권이 중요하게 느껴진다.

- 『죽음 공부』 中 p.95


이전에 요양보호사 한 분이 스스로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있는 건 살아있다고 할 수가 없다고, 본인은 자신을 스스로 돌볼 수 있을 때까지만 살고 싶다고 하셨다. 너무 강하게 말씀하셔서 기억에 남았는데 나도 그럴 거 같다. 스스로 먹지도, 씻지도, 화장실을 이용할 수도 없다면, 정말 살고 싶지 않을 거다.

영화 <Me Before You>에 보면 누구보다 활동적이고 의욕적으로 삶을 살다가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남자가 나온다.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충만한 삶을 살았기에 홀로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든 그는 안락사를 고집하며 부모님과 갈등을 빚는다. 영화를 보면서 그의 심정도, 가족의 심정도 이해가 되어 정말 안타까웠다. 

이리저리 치료, 죽음의 자기 결정권을 고민하던 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지금은 이 이외의 다른 방법이 더 있는 거 같지는 않다. 존엄사, 안락사 등을 일부 허용하는 국가들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되기까지는 심도 있는 논의가 한참은 필요하고 솔직히 그렇게 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 어떻게 살 것인가


수많은 죽음을 곁에서 보아왔다. 항상 죽음을 가까이 하다 보니 때로는 오늘의 햇살을 내일 다시 만끽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그럴 때면 모든 일상적인 풍경들이 생경해 보인다. 그렇게 새롭게 마주한 일상의 풍경은 더 이상 나에게 그냥 당연한 것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매일 새로운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이 나에게 '잘 죽는 법'이다.

- 『죽음 공부』 中 p.72


내일은 안 올 수도 있다. 3년, 10년 후를 얘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당장 내일도 모르는데 부질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오늘을 잘 보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내일이 온다면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나은 내가 되려고 해 본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앞으로를 약속하는 사람들을 잘 믿지 않는다. 오늘 제대로 할 수 없다면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삶에 정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는 후회, 미련 같은 걸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남기지 않고 잘 죽기 위해서 오늘을 충실히 산다. 


오지 않은 미래(당장 죽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며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에게, 심지어 가족에게까지 싫은 소리를 해가며 본인의 욕심을 채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살아 있는 동안 온전히 자신의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고, 즐겼으면 좋겠다. 나 역시 그러려고 한다. 그리고 자그마한 욕심이 있다면, 내가 죽은 뒤 나를 기억해주는 누군가에게 예쁜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 『죽음 공부』 中 p.250~251


죽은 후에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 게 좋은 일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좋은 기억이던 나쁜 기억이던 남아있는 사람이 힘들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냥 잊히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을 했었다. 완전히 기억 속에서 지워지는 게 불가능하다면 가능한 좋은 추억으로 남도록 잘 살아야겠다. 늘 매일이 잘 사는 것에 대한 고민과 시행착오의 연속이지만, 누군가 그래도 이 사람이 있어서 좋았다고 기억해 준다면 그걸로 꽤 괜찮은 삶을 산 거라고 믿어도 될 거 같으니 말이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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