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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공부 - 똑바로 볼수록 더 환해지는 삶에 대하여
박광우 지음 / 흐름출판 / 2024년 12월
평점 :
내 삶에 남은 가장 큰 이벤트는 '죽음'일 거라서 잘 죽고 싶다. 그래서 '잘 죽는 것'에 대한 나름의 고민을 안고 여러 책들을 읽기도 했다. 말기 암, 파킨슨병의 명의가 생각하는 웰다잉은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는데 이 책, 그런 고민뿐 아니라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도움이 되었다. 회의 때 듣고 넘어간, 삶의 질을 반영한 기대수명을 나타내는 QLAY(질 보정 생존 연수 Quality-adjusted life year)를 어떻게 계산하는지, 집에서 사망했을 경우의 절차 같은 디테일부터 파킨슨병이 뇌의 어떤 부분에 문제가 생겨서 발생하는지 등 다양한 분들과 상담하면서 들었던 병과 증상들에 대해서 그 원인과 진행 과정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게 해주었다.
병이라는 건 나나 주변의 지인이 앓지 않으면 무지하고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특히 노화로 인한 병은 그렇게 둘 수 없는 분야가 아닐까. 나를 위해서,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 병은 '똑바로' 보는 게 필요하고 그렇게 볼수록 지금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선명해진다.

| 어떻게 죽을 것인가
그러나 삶과 죽음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누군가의 자식이며, 누군가의 부모이며, 누군가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죽음은 다른 이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이 환자는 내가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지는 몰라도, 부인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남편, 자식들에게는 나쁜 아빠로 각인되었을 것이다. 남은 가족은 더 이상 책임을 돌릴 수 없는 망자로 인해 심리적 후유증과 경제적 부담만을 지게 되었다.
- 『죽음 공부』 中 p.36~37
죽음은 끝이 아니다. 내가 관계 맺었던 모두에게는 그 이후가 남는다. 나의 죽음은 나와 관계되어 남는 사람에게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여야 한다. 금전적이든, 감정적이든 말이다. 당장 아프고 죽는 건 난데 그런 배려까지 해야 되냐고 묻고 싶다면, 본인이 남겨진 사람이 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자. 죽은 이를 원망하고, 그 원망에 따라오는 죄책감까지 안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남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설사 그 과정이 고되고 지난할지라도)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갑작스런 뇌출혈로 순식간에 식물인간이 되어 콧줄을 넣고 목에 구멍을 낸 채로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환자들을 마주하다 보면 치료의 자기 결정권이 중요하게 느껴진다.
- 『죽음 공부』 中 p.95
이전에 요양보호사 한 분이 스스로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있는 건 살아있다고 할 수가 없다고, 본인은 자신을 스스로 돌볼 수 있을 때까지만 살고 싶다고 하셨다. 너무 강하게 말씀하셔서 기억에 남았는데 나도 그럴 거 같다. 스스로 먹지도, 씻지도, 화장실을 이용할 수도 없다면, 정말 살고 싶지 않을 거다.
영화 <Me Before You>에 보면 누구보다 활동적이고 의욕적으로 삶을 살다가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남자가 나온다.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충만한 삶을 살았기에 홀로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든 그는 안락사를 고집하며 부모님과 갈등을 빚는다. 영화를 보면서 그의 심정도, 가족의 심정도 이해가 되어 정말 안타까웠다.
이리저리 치료, 죽음의 자기 결정권을 고민하던 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지금은 이 이외의 다른 방법이 더 있는 거 같지는 않다. 존엄사, 안락사 등을 일부 허용하는 국가들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되기까지는 심도 있는 논의가 한참은 필요하고 솔직히 그렇게 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 어떻게 살 것인가
수많은 죽음을 곁에서 보아왔다. 항상 죽음을 가까이 하다 보니 때로는 오늘의 햇살을 내일 다시 만끽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그럴 때면 모든 일상적인 풍경들이 생경해 보인다. 그렇게 새롭게 마주한 일상의 풍경은 더 이상 나에게 그냥 당연한 것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매일 새로운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이 나에게 '잘 죽는 법'이다.
- 『죽음 공부』 中 p.72
내일은 안 올 수도 있다. 3년, 10년 후를 얘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당장 내일도 모르는데 부질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오늘을 잘 보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내일이 온다면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나은 내가 되려고 해 본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앞으로를 약속하는 사람들을 잘 믿지 않는다. 오늘 제대로 할 수 없다면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삶에 정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는 후회, 미련 같은 걸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남기지 않고 잘 죽기 위해서 오늘을 충실히 산다.
오지 않은 미래(당장 죽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며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에게, 심지어 가족에게까지 싫은 소리를 해가며 본인의 욕심을 채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살아 있는 동안 온전히 자신의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고, 즐겼으면 좋겠다. 나 역시 그러려고 한다. 그리고 자그마한 욕심이 있다면, 내가 죽은 뒤 나를 기억해주는 누군가에게 예쁜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 『죽음 공부』 中 p.250~251
죽은 후에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 게 좋은 일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좋은 기억이던 나쁜 기억이던 남아있는 사람이 힘들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냥 잊히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을 했었다. 완전히 기억 속에서 지워지는 게 불가능하다면 가능한 좋은 추억으로 남도록 잘 살아야겠다. 늘 매일이 잘 사는 것에 대한 고민과 시행착오의 연속이지만, 누군가 그래도 이 사람이 있어서 좋았다고 기억해 준다면 그걸로 꽤 괜찮은 삶을 산 거라고 믿어도 될 거 같으니 말이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