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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체면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25년 4월
평점 :
<용감한 형사들>이라는 시리즈 프로그램이 있다. 현재 4시즌이 방송 중인데 방송 1회당 2건의 사건을 다룬다. 프로그램 안에서 사건 얘기가 마무리될 때쯤 MC들이 꼭 범인의 형량을 묻는다. 이때 거의 매번 탄식의 한숨이 터져 나오는데 법의 처벌이라는 게 그들이 저지른 죄의 대가로는 대부분 한참 부족하다고 여겨져서다. 게다가 심신 미약, 반성문 등 형량 감소 요건은 어찌나 잘 이용되는지 듣는 것만으로도 분노를 참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언가 변호사들이 떼로 나오는 프로그램에서도 대체 왜 이렇게 처벌 수위가 약한 거냐는 물음이 나온 적이 있었다. 출연진 중 누군가가 법의 주 소비 대상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이고, 그렇기에 가해자가 가중 처벌을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하는데 중심을 둔다고 얘기했었던 기억이 난다.
변호사이자 추리 소설 작가인 저자의 단편 모음집인 이 책을 읽으면서 저 두 프로그램을 보며 떠올렸던 우리가 기대하는 법의 정의, 역할이라는 것에 대해 계속 곱씹게 되었다.
법이, 처벌이 능사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 수위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할만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억울한 가해자 만큼이나 억장이 무너질 거 같은 피해자는 만들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닐까? 법의 본질이 무엇인지 법을 만들고, 집행한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추리와 SF가 적절히 섞인 수록작들은 본질보다 체면이 중요시되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그런 상황이 야기된, 혹은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법의 본질뿐 아니라 삶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특히 표제작 「법의 체면」에서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복합적인 상황의 인물을 등장시켜 보여주는 법의 허점과 아이러니는 결코 아물 수 없는 피해자 가족들의 상처와 맞물려 긴 여운을 남긴다.
누구도 해친 적 없지만 세상의 체면 때문에 자신의 천국을 잃게 된 어느 방송작가의 자살기 「당신의 천국」, 법 집행자와 가해자, 누구의, 무엇이 범죄인가를 묻는 듯한 「완전범죄」, 욕망을 채우는 허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아이러니를 그린 「애니」, 삶과 행복에 대한 블랙코미디 같은 「행복한 남자」, 「컨트롤 엑스」까지 총 여섯 편의 단편에서 작가가 직업적인 활동에서 느꼈던 고민, 괴로움, 그리고 이를 대하는 진중함과 그런 감정들을 승화시키는 방편인 듯한 상상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결백한 사람, 피해자는 법의 보호, 나아가 세상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 상황에는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확실한 방지턱 같은 게 있어야 한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없는 사회, 법이라면 그 존재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다 같이 고민해 봐야 할 거 같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