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용의자
찬호께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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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은둔형 외톨이로 살던 셰바이천이 방에서 숯을 피우고 자살했다. 시신을 발견한 건 어머니 셰메이펑과 이웃이자 친구인 칸즈위안. 단순 자살 사건으로 종결하려던 경찰의 눈에 셰바이천의 옷장 속 토막 난 시신이 보존된 유리병 여러 개가 발견된다. 과연 단 한순간도 밖에 나간 적도 집에 손님을 들인 적도 없었다는 셰바이천이 살인범인지, 죽은 사람들의 신원과 살해 동기는 무엇인지, 어느 하나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한 경찰에 대한 불신은 높아지는데... 셰바이천의 절친이자 장르 소설가인 칸즈위안의 작품에서 실마리를 찾은 쉬유이 경위는 그를 감시하고, 그러다 만나게 된 살해된 여성과 닮은 탄아이잉을 통해 수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경찰이 탄아이잉과 셰바이천의 삼촌인 셰자오후를 발견하면서 사건이 술술 풀려나가는 부분을 읽다가 문득 책 띠지의 홍보 문구를 보고 이게 아닌가 보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맞았다. 이렇게 큰(?) 스포를 띠지에 적어 놓다니! 

셰바이천은 외톨이가 아니었다. 기가 막히게 머리 좋은 든든한 친구 칸즈위안이 있고, 화재 현장에서 같이 친구를 구해낸 더듬이가 있었고, 손자에게 늘 미안함을 안고 살았던 외할아버지, 자신을 아껴주는 어머니가 있었다. 정말 고독하고 외로웠던 사람은 화재현장에서 하나뿐인 아버지를 잃고 세상과 단절을 택한 더듬이, 이민 간 영국에서 부모님을 모두 잃고 돌아와 할머니와 단둘이 생활했던 칸즈위안이 아닐까. 

그래도 이 세 사람은 함께여서 단절된 듯 단절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었고 서로를 보호할 수 있었다. 마지막에 쉬유이 경위에게 '돌아올 이유, 가족이 아무도' 없어서 홍콩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하는 칸즈위안을 보며 소중한 모두를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그의 회한 같은 게 느껴져서 살짝 울컥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영국에 사는 의사 친구에게 안부 전해달라며 전화번호를 전하는 쉬유이의 마음에 공감이 되었다. 힘들겠지만 쓸쓸하겠지만 어떻게든 살아달라는 부탁 같아서...


하지만 억지로 책임을 전가해서 얻는 위신은 거품일 뿐이라고, 쉬유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모래사장에 짓는 건물은 탄탄할 수 없다. 기초가 부실하면 높이 지을수록 점점 기울어지고 무너졌을 때 피해도 크다. 일시적인 안정을 추구하며 위기를 모면하는 데 급급하다면 장기적인 안정과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 『고독한 용의자』 中 p.386


"최선을 다했다는 건 나도 알아요. 하지만 내가 말했죠? 당신과 당신 팀원들이 성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건 믿더라도 경찰 시스템 전체가 그렇다고 생각할 만큼 순진하진 않다고요. 시스템에 속한 모든 사람은 언제나 현실적인 선택을 하죠. 두 가지 선택지가 앞에 있을 때 자기 윤리 기준을 위배하지만 않는다면 리스크가 적은 쪽을 선택하는 게 인지상정이에요. 다만 이 평범한 선택이 쌓이면 '악'이 될 뿐입니다……. …

- 『고독한 용의자』 中 p.390~391


쉬유이 경위는 수사를 진행하면서 진실보다는 빠른 수습을 종용하며 이틀의 기한 뒤에는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셰바이천을 범인으로 발표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는다. 그런 지시에 부당함을 느끼고 고민하는 쉬유이와 칸즈위안의 대화에서 다시금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경찰 수사의 본질은 무엇인가? 진실을 밝히는 것인가? 대중을 안심시키는 것인가? 우리가 가끔씩 선택하게 되는 하얀 거짓말이라는 것이 쌓여서 악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꼬집는 칸즈위안의 말이 뼈아플 수 있을 거 같다. 


『고독한 용의자』는 짜임새, 몰입감 좋은 장르 소설이었다. 더불어, 그 안에서 사회 시스템에 던지는 질문이나 관계와 사람을 살피는 작가의 시선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아마 누군가는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면 쉬유이 경위처럼 '가족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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