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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 히치하이커와 동물학자의 멸종위기 동물 추적 프로젝트
더글러스 애덤스.마크 카워다인 지음, 강수정 옮김 / 현대문학 / 2024년 3월
평점 :
동네 책방에서 순전히 표지가 주는 분위기 때문에 골랐던 책,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는 베스트셀러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저자 더글러스 애덤스와 세계적인 동물학자 마크 카워다인이 함께 써 내려간 멸종위기 동물 추척기다.
진지하고 무겁게 와닿아야 할 거 같은 이야기 속에 엉뚱하고 때때로 새털같이 가벼운 더글러스 애덤스의 모습에서 왠지 빌 브라이슨을 떠올린 건 나뿐인가? 이 세상이 덜 암울하기 위해서는 더글러스 애덤스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가 이미 2001년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니... OTL

아이아이 여우원숭이로부터 시작된 멸종위기 동물 찾기는 코모도왕도마뱀, 북부흰코뿔소, 실버백마운틴고릴라, 카카포, 양쯔강 돌고래, 로드리게스큰박쥐 등을 직접 만나기 위한 긴 여정이 되어 인도네시아, 뉴질랜드, 중국, 모리셔스 등으로 이어진다. 더글러스와 마크가 멸종위기 동물을 만나러 가는 과정만 봐도 이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알 수 있는 데다 한 가지 종을 지켜내기 위해 다른 종들에게 겪는 잔혹함(?) 때문에 씁쓸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들을 지켜야 하는 건 그들이 멸종하지 않는 지구가 인간도 멸종하지 않을 수 있는 지구이기 때문이라는 건 너무 분명하다.
그렇다고 이들의 프로젝트가 모두에게 환대 받으며 원활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체계와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아 곤란을 겪기도 하고, 때때로 일종의 투어리스트와 다를 바 없이 받아들여져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한다. 그래도 진심과 노력은 언어와 국적에 상관없이 어느 정도는 가닿기에 두 사람은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육체적, 물리적, 심리적 어려움을 헤치고 목표한 멸종위기 동물들의 생태를 거의 대부분은 직접 확인한다.

나는 선교라는 개념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기는커녕 두려움과 경계심이 앞선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아무튼 영국 특유의 필요에 따라 영국 사람들이 발명해 낸 그 신을 믿지 않으며, 신도들에게 가발과 텔레비전 방송국, 그리고(이게 제일 중요한데) 수신자부담 전화번호를 안겨 주는 미국의 신은 더더욱 믿지 않는다. 나는 그걸 믿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만 그 믿음을 간직하고, 제발 개발도상국엔 수출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中 p.108
제목만큼 책이 우울하지 않은 건 이들의 더글러스 애덤스 특유의 위트 덕분이다. 여정 안에서 겪은 다채로운 웃픈 에피소드들이 이야기가 무겁게만 흐르게 두지 않는다. 중국에서 양쯔강 강물 안의 오디오를 수집하기 위해 필요했던 콘돔 구하기의 지난한 상황, 자꾸 이리로 저리로 사람을 이동시키면서 정작 필요한 절차는 밟아주지 않았던 공항 직원 때문에 난감했던 순간 등을 있는 그대로 솔직한 어투로 담아내는데 그게 오히려 웃음을 자아낸다.
"뭐든 가능하고 유전공학도 있잖아요. 우리 세대가 끝날 때까지 잘 지켜서 다음 세대에 넘겨주면, 새로운 도구와 기술과 과학이 개발되겠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훼손하지 않고 최대한 좋은 상태로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면서, 그들의 마음도 우리와 같기를 바라는 것뿐이에요."
-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中 p.235
사안이 심각한 만큼 이런 환경과 동물, 지구의 자연을 다룬 책들은 계속 나온다. 읽을 때마다 체감하는 위기감은 있지만 그래서 우리의 생활은 얼마나 달라졌는가를 묻는다면 대답은 '잘 모르겠다'라는 게 슬프다. 요즘 찜통에 들어앉아 있는 거 같은 매일의 날씨에 인간의 멸망도 멀지 않았을 거 같은 느낌이 든다. 매년 올여름이 가장 시원한 거라는 말이 진짜 와닿는데 이제는 정말 다 같이 뭘 해야 한다. 뭐든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덜 가난하고, 덜 암울하고, 덜 쓸쓸할' 인간 자체가 없어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