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배우는 시간 -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
김현아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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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배우는 시간』은 의사인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누구나 종국에는 마지막으로 이르게 되는 자연 현상인 죽음이 치료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린 현대사회에서 잘 슬기롭게 죽는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할 부분들을 제시한다.

 

 

많은 죽음을 바로 가까이에서 목도할 수밖에 없는 직업을 가진만큼 저자가 겪은 죽음의 이야기들로 가득한 첫 챕터를 읽고 나니 지금 건강하다는 게 일단 다행스러웠고, 가족들 모두 오래 입원하거나 병을 앓은 적이 없다는 것도 감사했다.

 

결국 생로병사에는 항상 답이 있는 것도, 답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현대의학은 우리로 하여금 강제로 이에 대한 답을 찾도록 요구한다.


- 『죽음을 배우는 시간』 中 p.140

 

무엇이 인간인가? 이 대답을 자본의 손에 넘겨주는 한 세상은 곧 영생하는 슈퍼리치들만이 군림하는 지옥이 될 것이다. 한쪽에서는 영생을 이야기하는데 역설적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아이를 안 낳아 문제라고 아우성이다. 그런데 만약 영생이 가능하다면 새 생명이 태어날 필요가 있는 것일까?


- 『죽음을 배우는 시간』 中 p.286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은 없고, 그냥 내가 나일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한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내 모습일 때, 이상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죽고 싶다고... 그런데 그러려면 나만 멀쩡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서 이 책을 읽으면서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작년에 썼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부터 어쩌면 많은 나라에서 금지하고 있는 안락사가 '존엄사'라는 의미로는 적정한 선에서 필요한 일이 아닐까라는 마음까지... 죽음이라는 건 누구나 피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쉽게 받아들여지는 일도 아니기에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사람들, 이를 편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가족들, 그리고 법, 죄책감 등 다양한 이유로 역시나 자유롭지 못한 의료진까지 다 이해가 되면서도 답답했다. 우리는 더 나은 해결책을 늘 찾아왔는데 죽음 앞에서의 더 나은 해결책이 연명인지, 덤덤한 수용인지부터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죽음은 태어남과 같이 우리가 겪는 삶의 여정이다. 잘못된 일도 아니고, 조금 슬픈 일이기는 하지만 나쁜 일은 아니다. 사고사로 단 한순간에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아니면 우리 모두는 늙어가면서 죽음에 가까워진다. 아픈 데 없이 그냥 조용히 가까워진다면 좋겠지만, 우리 몸이 하나 둘 기능을 잃어가는 것 역시 늙어가면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현상이다. 이 부분이 슬픈 건 내 몸이 기능을 잃어가면 내가 나를 제대로 컨트롤할 수 없어진다는 거다. 이때쯤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어서-그러기에는 얽혀있는 이해관계가 너무 복잡하기도 하여서- 무려 5시간의 심폐소생술을 받기도 하고, 주렁주렁 온몸에 무언가를 매달고 중환자실에 하염없이 누워 있게도 된다.

이 책이 죽음에 대해 어떤 정답을 던져주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가 직, 간접적으로 겪는 죽음의 모습이 왜 이런 건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이에 대해 좀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죽음을 비즈니스화하는 데 휘둘리지 않을 방법을 고민하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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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씽 에브리씽
니콜라 윤 지음, 노지양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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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화 프로그램에서 보고 끝이 궁금해서 원작 소설로 읽게 된 『에브리씽 에브리씽』.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의 장르를 로맨스라고 하겠지만, 끝까지 다 보고 나니 나에게 이것은 로맨스의 탈을 쓴 호러였다. 잠자리에서 곱씹을수록 너무 무서웠다고만 해두자. 다만 그런 분위기를 그나마 희석시켜주는 건 저자의 남편인 일러스트레이터가 솜씨를 발휘한, 딱 매들린이 정말 그렸을 거 같은 재치 있는 일러스트다.

 

 

프로그램에서 결말만 제외하고 거의 다 보여줘서 내가 진짜 궁금한 곳에 이르기까지 좀 조바심을 내서 읽게 되었다. 그러다가 설마 했던 불길한 예감이 '그럼 그렇지'하고 딱 들어맞는 순간, 이 책은 나에게로 와서 호러가 되었다. ^^;

 세상에서 누군가의 시간을 뺏는 거만큼 나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상식 범위에서 누군가에게 뺏을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어느 정도 보상이 가능하다. 물론 집안의 가보라던가, 유품이라던가, 정서적인 가치가 부여된 것들은 완전한 보상이라는 게 있을 수 없지만, 심지어 누군가의 사랑을 뺏어도 위자료라는 걸 청구할 수 있지 않나? 그런데 시간은 아니다. 내 시간을 떼어서 누군가에게 주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고, 더 큰 문제는 시간이라는 건 도리어 뺏은 사람이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좀 늦을 수도 있지, 뭐!라는 말 안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주인공 매들린은 무려 18년의 시간을 도둑맞는다. 그녀가 18살이라서 괜찮을까? 아니다. 그녀는 그 시간 동안 보통의 인생이 누리는 것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놀이동산, 소풍, 외출, 쇼핑, 학교, 친구, 다툼... 그녀의 인생에는 오로지 집, 엄마, 입주 간호사, 인터넷으로만 만날 수 있는 선생님이 있었다. 엄마랑 하는 게임, 엄마랑 보는 영화, 금요일마다 엄마의 솜씨로 즐기는 프랑스식 디너가 그녀가 가진 추억의 전부다. 나는 매들린이 느끼는 절망과 분노에 너무 공감이 되어서 인생은 길고 18살밖에 안 되었으니 긴 인생 이제부터 누리라는 말이 정말 개소리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 사랑한다면

정말 오래전에 즐겨보던 경연 프로그램에서 최종 파이널 무대에는 늘 가족이 함께했다. 몇 시즌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시즌의 우승 후보 중 한 참가자가 이전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가족은 고통이라는 식으로 얘기했었다. 그래서 최종 파이널에 가족이 오지 않는 건가 했는데 어머니가 나타났고, 그 참가자는 정말 이게 무슨 일인가라는 생뚱맞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던 게 기억이 난다. 어쨌거나 자식에게 좀 가까이 살가운 모습으로 서 있으려고 했던 어머니와 그게 영 어색하고 불편했던 그 참가자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예전 기억까지 가지 않아도 가족은 마냥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닌 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이야기가 매들린과 옆집 소년 올리의 풋풋한 사랑을 중심에 두고 그 비중이 압도적이라서 그렇지 이 소설 속 가족은 내가 이 소설이 호러라고 느끼는데 크게 한몫했다. 자세하게 얘기하면 완벽한 스포가 될 거라 더 이상 말하지는 않겠지만, 누군가에게 사랑을 말할 때, 특히 가족이라는 특수한 관계에서 사랑을 말할 때는 더 조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랑은 받는 사람이 원하는 사랑과 주는 사람이 주고 싶은 사랑이 일치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완벽하게 다른 시간을 살았는데 그게 같을 수가 없다. 그건 나랑 같은 DNA를 공유하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나랑 다른 환경과 다른 경험을 가지고 살고 있는데 아무리 부모, 자식이어도 어떻게 같은 마음, 취향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말하기 전에 그 사람을 잘 보는 게 먼저여야 한다. 그 사람이 원하는 걸 잘 살피고 내가 주고 싶은 사랑과 그 사람이 받고자 하는 사랑 사이에서 적절한 교집합과 균형을 찾는 것, 그게 먼저인 거 같다. 무조건 '너를 사랑해서 그랬다'는 다분히 이기적이다.

이 책을 너무나 사랑스럽게 읽은 많은 독자들은 내 감상이 황당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원래 모든 작품은 경험한 사람이 다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정답은 없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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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게 걸어봐 인생은 멋진 거니까 - 19살 단돈 50유로로 떠난 4년 6개월간의 여행이 알려준 것
크리스토퍼 샤흐트 지음, 최린 옮김 / 오후의서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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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의 특성상 두꺼워도 빨리 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예상을 빗나가게 한 『신나게 걸어봐 인생은 멋진 거니까』. 여행이라는 걸 떠올리면 나는 안전하고 쾌적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더럽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불안하게 돌아다녀야 하는 상황은 굳이 여행으로 경험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저자 크로스토퍼처럼 몸이 힘들고 마음이 어지럽더라도 나름의 이유와 의미를 가지고 오지나 무전여행을 한다. 이 책은 그런 여행하고는 거리가 먼 나 같은 사람들이 마치 <정글의 법칙>같은 프로그램을 대리 체험하는 거 같은 느낌을 준다. 19살에 단돈 50유로를 가지고 비행 없이 4년 6개월의 세계 여행, 생각만 해도 아찔한가? 아니면 '나도 한번'이라는 도전 정신이 생기는가?

 

 

 저자는 전통을 그대도 유지하면서 사는 원주민들과 어울려 사냥이나 낚시를 하기도 하고 그들이 준 타액이 섞인 전통 음료를 마시기도 한다. 캄캄한 밤에 불빛 없이 위험한 화산을 올라가기도 하고 맨발로 나무에서 열매를 따다가 피가 멈추지 않는 상처를 입기도 한다. '비행 없이'라는 본인의 룰을 지키기 위해 태평양, 대서양 등을 배로 항해하면서 다른 나라로 이동한다. 여기서 배는 유람선이나 페리가 아니라 항구에서 본인이 원하는 경로로 이동하는 배를 선원으로서 얻어타는 거다. 그래서 한밤중에 아찔한 폭풍우를 만나 배가 뒤집힐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뜬금없이 요리사로 일하게 되기도 한다. 육로에서든 해로에서든 모든 이동을 히치하이킹으로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 상상만 해도 피곤한 사람들 많을 것이다.:) 나도 그래서인지 초반부에 잘 읽히지가 않아서 책 잘못 고른 거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우리의 믿음이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된다. 예전에 인생의 의미에  대해 깊게 생각한 적이 있다. 나는 인생은 큰 선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래서 잘 살고 싶었다. 나에게 그것은 내가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가능한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우선순위에서 내 자신이 먼저였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순서를 바꿔도 된다는 걸 깨달았다. 때로는 타인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게 내가 더 강해지고 성장해야 하는 이유가 된 것이다. 이 깨달음은 나의 믿음이 되었고 그 후 내 삶을 크게 바꾸었다.


- 『신나게 걸어봐 인생은 멋진 거니까』 中 p. 227

 

저자는 이 여행으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고,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 그리고 한국어 등도 배웠다. 선원, 항해사, 요리사, 모델, 가이드, 어부, 배관공 등 다양한 일을 하며 실용적인 기술을 익혔고, 수많은 지역의 무수한 친구들을 갖게 되었다. 이러면 좀 부러운가? ㅎㅎㅎ

먼저 훑어본 저자에 대한 소개 끝부분에 신학을 공부 중이라는 이야기를 보았는데 책을 읽다 보니 어쩌면 저자가 대학 진학도 치우고 시작한 이 여행은 진정한 진로 탐색을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저자가 여행에 들고 간 유일한 책이 성경이었다는 것이 뭔가 의미심장했다. 4년 6개월이라니 진로 탐색에 다소 긴 시간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분명한 확신의 시간이라면 오히려 짧은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런 여행을 하고 싶은가는 좀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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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짧은 집중의 힘 - 꾸준함을 이기는
하야시 나리유키 지음, 이정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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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애니메이션 과정 수료 작품을 만들 때 3일을 연달아 새벽 3시까지 작업한 적이 있다. 체력도 좋고 정신력도 훌륭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사실 돌이켜보면 즐거웠다는 느낌이 가장 크다. 놀랍게도 피곤하다는 생각은 거의 들지 않았으니까... 새벽까지 작업해야지가 아니라 그냥 집중하다 보니 시간이 그렇게 지났고, 그때가 바로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몰입', '무아지경'의 집중 상태였던 거 같다.

 

 

뇌신경외과 교수였던 저자는 집중에 관여하는 뇌의 메커니즘과 그 메커니즘을 효과적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일상의 습관을 설명하며 어떻게 집중의 효율을 높일 수 있는지 설명한다.

 읽다 보니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라는 이유로 나 자신도 많은 집중력에 방해가 되는 태도와 습관을 키워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매사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려고 하지만 속으로 계속 되새기게 되는 것은 부정적이고 시니컬한 생각들인 데다 덕분에 사소한 일이라도 결정하는데 긴 시간을 들여 고민을 거듭한다. 이런 부분이 하루아침에 고쳐지지는 않겠지만, 저자의 말대로 그런 생각들에 휘말릴 때 뇌의 메커니즘이 다르게 작동하도록 입꼬리를 올리고 웃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집중력을 무의식적으로 떨어뜨리는 원인 중 하나는 무엇이 이익이고 손해인지 따지는 사고방식이다. '이건 하는 편이 이득이겠다', '이건 해봤자 나에게 남는 게 없겠어'라는 판단의 기준을 세우면 어떤 일에서도 '이런 일에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일단 손해가 없을 정도로만 해두자'하고 한 발을 빼고 주저하게 된다. 온전히 집중할 수 없게 딴 생각이 끼어들게 된다.


- 『꾸준함을 이기는 아주 짧은 집중의 힘』 中 p.106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면 일의 중요도에 따라 들이는 노력을 분배하게 된다. 가지고 있는 에너지와 시간이 한정적이기에 전력투구할 일, 그러지 않을 일 등으로 나누는 거다. 그런데 저자는 그렇게 하는 게 오히려 집중을 방해하고 일의 능률을 떨어뜨린다고 이야기한다. 어차피 전부 해야 하는 일들이라면 작은 일도 온전히 집중해서 빨리 끝내는 것이 뇌가 어느 순간이든 집중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데 더 낫다는 것이다.

 

실수한 부분을 찾다 보면 '여기에서 이렇게 한 게 잘못이네'처럼 부정적인 표현이 쏟아져 나오므로 자책과 후회가 강렬해진다. 게다가 잘못한 부분을 재확인함으로써 실패한 일이 머릿속에 남기 쉽다는 점도 문제다. 나중에 같은 상황이 일어났을 때 '또 실수하면 어떡하지', '난 못해. 할 수 없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뇌는 작동하기를 멈추어버린다. 반성할수록 기분은 점점 나빠지니 집중력이 필요한 순간에 발휘할 수 없게 된다.


- 『꾸준함을 이기는 아주 짧은 집중의 힘』 中 p.111

 

전에 어떤 일을 그만하기로 하면서 그토록 좋아했던 일에 어떻게 이렇게 단호한 마음을 먹었는지 스스로도 궁금했던 적이 있었는데 바로 이 반성의 시간 때문이었다. 마지막 근무 현장에서 일이 마무리된 후 매일 회의를 했는데 그 시간의 대부분은 질책과 비아냥으로 채워졌다. 내내 잘못된 부분만 헤집는 이야기를 2시간이 넘게 듣고 있으면 피곤함에 짜증에 분노까지 더해져서 모든 의욕은 사라지고 나쁜 마음만 남곤 했다. (내 인생에서 그렇게 욕을 거르지 않고 많이 해본 시기가 없다. ㅎㅎㅎ) 이런 반성의 시간은 집중력을 기르는 데에도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한다. 저자의 말대로 이제 잘못한 점만 돌아보는 습관, 혹은 회의는 버리기로 한다.

책의 마지막 챕터에 이르러 저자는 집중력을 '몰입', '무아지경'에 이르게 하기 위한 습관에 대해 언급하며 이를 팀워크에 적용하는 방향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일은 조직 속에서 이루어지고 그 조직에서 나만 잘한다고 해서 성과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좋은 팀워크는 중요하다. 저자가 응급의료센터에서 치료팀을 이끌 때 리더로서 명심했던 사항들은 공감이 되면서 반드시 리더가 아니더라도 동료로서 서로 존중하고 의욕적으로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억해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 앞에 '꾸준함을 이기는'이라는 말은 다소 오해의 여지가 있을 거 같다. '긴 시간 꾸준한 노력보다 순간적인 집중이 더 낫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는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제목 앞에 언급된 '꾸준함'은 집중 없이 단순하게 반복되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그런 집중하지 않는 반복의 시간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지 않으니 이 책은 우리에게 작은 일, 짧은 순간에도 집중해서 전력을 다하고 그럴 수 있도록 뇌에 도움이 되는 생각을 하고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수료 작품을 만들던 때처럼 다시 그렇게 몰입할 수 있는 순간이 있을지 모르겠다. 모든 게 맞아떨어져 즐거움이나 행복감으로 채워지는 집중의 시간은 흔치 않은 거 같으니 말이다. 그래도 어떤 일이든 조금 더 의욕을 가지고 대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바꾸는 기본적인 방법은 이 책이 알려준 거 같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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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여 안녕 에놀라 홈즈 시리즈 6
낸시 스프링어 지음, 김진희 옮김 / 북레시피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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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종된 아내를 찾아달라며 사이언티픽 퍼디토리언 라고스틴 박사의 사무실에 온 캄포 공작. 이미 경찰과 탐정 셜록 홈즈까지 동원된 사건에 라고스틴 박사의 조수로 변장한 에놀라까지 뛰어든다. 아름답고 어린 공작부인의 두 시녀를 찾아가 증언을 듣던 에놀라는 공작부인이 실종된 지하철역에서 도우려던 노부인의 묘사에 누군가를 떠올리고 런던에 처음 도착하여 사라진 후작과 맞닥뜨린 때를 회상한다. 한편 펜델홀에 사라진 에놀라의 엄마, 유도리아 버넷 홈즈가 보낸 게 분명한 소포가 도착하고 이를 전달받은 셜록 홈즈는 여동생을 찾기 위해 에놀라의 반려견 레지날드를 이용하는데...

 

 

피날레인 이 『집시여 안녕』까지 읽고 나니 <에놀라 홈즈 시리즈>가 모험이나 추리물보다는 가족 성장 드라마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한 권 한 권의 개별 사건보다는 6권의 전체를 한 이야기의 흐름으로 보아야 비로소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명확하게 와닿는 거 같다.

 

| 두 아들을 바꾸고 싶었던 엄마의 빅 픽처?

에놀라가 공작부인 찾기에 돌입한 시점은 그녀의 열다섯 번째 생일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그러니까 에놀라의 엄마, 홈즈 여사가 실종된 지 1년이 되어가는 시점이다. 엄마가 사라지고, 홀로 런던으로 올라와서 여러 사건을 해결하고 오빠들까지 피해 다니느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녹록지 않은 1년을 보낸 에놀라는 곤경에 처할 때마다 엄마가 한 '너는 혼자서도 아주 잘할 거야'라는 말을 계속 떠올린다. 그래서 마지막 『집시여 안녕』에 이르러서는 에놀라가 더 이상 외로워하지 않고 엄마의 사랑에 의구심을 갖지 않느냐, 그건 아니다. 에놀라는 여전히 엄마가 그립고 엄마가 자신을 정말 사랑했는지, 사랑하는지 궁금해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 6권의 이야기 속에서 정말 새롭게 달라지는 건 에놀라의 두 오빠, 셜록과 마이크로프트다. 탁월한 지성과 매너는 갖추었지만, 역시나 그 시대 보통 남성들처럼 여성에 대한 편견, 고정관념에 갇혀있던 두 사람은 에놀라와 사건 사고를 거듭하면서 그저 기숙학교에 보내 결혼만 잘 시키면 되겠거니 했던 여동생에게 하고 싶은 게 뭔지 진지하게 묻는 눈부신(?) 성장을 보여준다.(나는 여기서 아서 코난 도일 재단에서 이 소설에 대해서는 소송을 걸지 않았는지 궁금해졌다) 결국 1년여의 엄마의 실종은 막내딸보다는 이미 나이 먹을 만큼 먹은 두 아들에게 큰 변화를 일으킨 셈이다. 엄마가 실종되지 않았어도 에놀라는 저렇게 컸을 거 같으니까...

| Team 홈즈의 결성

공작부인을 찾는 마지막 여정에 오빠인 셜록 홈즈의 도움이 필요했던 에놀라는 대신 마이크로프트도 함께해야 한다는 조건에 어쩔 수 없이 응한다. 결국 삼 남매가 사이좋게(?) 공작부인을 찾아 나서고, 필연적으로 맞서게 된 악당들에게 힘을 합쳐 대응하게 된다. 주인공이 에놀라인 만큼 두 오빠는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기보다는 적당한 도움과 큰 육체적인 능력을 발휘하며 당연시했던 관습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도 갖는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에놀라가 더 이상 두 오빠로부터 도망 다니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훈훈한 화해 무드가 조성된다.

결국 세 사람은 에놀라의 생일을 함께 축하하며 같이 어머니로부터 온 메시지를 해독하게 되는데 심지어 셜록은 에놀라를 자신의 경쟁자가 될 거라고 유쾌하게 인정한다. 세 사람이 함께 활약하는 모습은 이제 독자들의 상상으로만 가능하게 되었지만, 추리 어벤저스급의 Team 홈즈의 결성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큰 계기가 없는 한 삼 남매가 모두 독신으로 늙을 거 같으니 그런 부분에 있어서도 이 Team은 필요할 거 같다. ㅎㅎㅎ 혹시 이것도 엄마의 빅 픽처?!

 

… 에놀라, 넌 엄마로서 내가 어떤 마음으로 널 대했는지 궁금했을 거야. 나 자신도 과연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양육을 베풀었는지 의문을 품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그 의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란다. 나는 온 마음으로 널 사랑했고, 내 방식대로 널 사랑했단다. 역설적인 건, 다른 엄마였다면 네게 더 따뜻한 사랑을 주었을 것이라는 점이야. 하지만 네가 다른 엄마의 딸이었다면, 넌 에놀라가 아니겠지.


- 『집시여 안녕』  中 p.19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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