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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배우는 시간 -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
김현아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평점 :
『죽음을 배우는 시간』은 의사인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누구나 종국에는 마지막으로 이르게 되는 자연 현상인 죽음이 치료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린 현대사회에서 잘 슬기롭게 죽는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할 부분들을 제시한다.

많은 죽음을 바로 가까이에서 목도할 수밖에 없는 직업을 가진만큼 저자가 겪은 죽음의 이야기들로 가득한 첫 챕터를 읽고 나니 지금 건강하다는 게 일단 다행스러웠고, 가족들 모두 오래 입원하거나 병을 앓은 적이 없다는 것도 감사했다.
결국 생로병사에는 항상 답이 있는 것도, 답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현대의학은 우리로 하여금 강제로 이에 대한 답을 찾도록 요구한다.
- 『죽음을 배우는 시간』 中 p.140
무엇이 인간인가? 이 대답을 자본의 손에 넘겨주는 한 세상은 곧 영생하는 슈퍼리치들만이 군림하는 지옥이 될 것이다. 한쪽에서는 영생을 이야기하는데 역설적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아이를 안 낳아 문제라고 아우성이다. 그런데 만약 영생이 가능하다면 새 생명이 태어날 필요가 있는 것일까?
- 『죽음을 배우는 시간』 中 p.286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은 없고, 그냥 내가 나일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한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내 모습일 때, 이상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죽고 싶다고... 그런데 그러려면 나만 멀쩡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서 이 책을 읽으면서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작년에 썼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부터 어쩌면 많은 나라에서 금지하고 있는 안락사가 '존엄사'라는 의미로는 적정한 선에서 필요한 일이 아닐까라는 마음까지... 죽음이라는 건 누구나 피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쉽게 받아들여지는 일도 아니기에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사람들, 이를 편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가족들, 그리고 법, 죄책감 등 다양한 이유로 역시나 자유롭지 못한 의료진까지 다 이해가 되면서도 답답했다. 우리는 더 나은 해결책을 늘 찾아왔는데 죽음 앞에서의 더 나은 해결책이 연명인지, 덤덤한 수용인지부터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죽음은 태어남과 같이 우리가 겪는 삶의 여정이다. 잘못된 일도 아니고, 조금 슬픈 일이기는 하지만 나쁜 일은 아니다. 사고사로 단 한순간에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아니면 우리 모두는 늙어가면서 죽음에 가까워진다. 아픈 데 없이 그냥 조용히 가까워진다면 좋겠지만, 우리 몸이 하나 둘 기능을 잃어가는 것 역시 늙어가면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현상이다. 이 부분이 슬픈 건 내 몸이 기능을 잃어가면 내가 나를 제대로 컨트롤할 수 없어진다는 거다. 이때쯤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어서-그러기에는 얽혀있는 이해관계가 너무 복잡하기도 하여서- 무려 5시간의 심폐소생술을 받기도 하고, 주렁주렁 온몸에 무언가를 매달고 중환자실에 하염없이 누워 있게도 된다.
이 책이 죽음에 대해 어떤 정답을 던져주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가 직, 간접적으로 겪는 죽음의 모습이 왜 이런 건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이에 대해 좀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죽음을 비즈니스화하는 데 휘둘리지 않을 방법을 고민하도록 도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