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팩스 부인 미션 이스탄불 스토리콜렉터 38
도로시 길먼 지음, 송섬별 옮김 / 북로드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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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스파이 활동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폴리팩스 부인. 가라테도 배우고, 여전히 병원에서의 봉사활동과 원예 클럽 등에도 참여하며 한층 생기 있는 하루하루를 꾸려가던 중 CIA의 카스테어스의 전화를 받는다. 새로운 미션에 참여할지를 묻는 질문에 두근거림을 느낀 부인은 망설이지 않고 짐을 꾸려 출발한다. 새로운 미션지는 터키! 그녀가 만나야 할 사람은 오랜 스파이 생활로 여러 나라의 표적이 된 마그다 페렌치사보. 과연 폴리팩스 부인은 이번에도 성공적으로 미션을 수행할 수 있을까?

 

 

터키를 향해 출발하는 폴리팩스 부인을 보면서 어쩌자고 카스테어스가 이런 미션에 부인을 끌어들였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멕시코에서의 일은 정말 단순한 관광객이라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는데 솔직히 터키에서 부인이 맡은 미션은 그냥 관광객인 누군가가 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먼저 파견했던 요원이 바로 죽음을 당할 정도로 심한 감시와 정보 유출의 상황이었는데 평범한 삶을 사는 노부인을 보내다니 CIA가 너무 순진하던가, 정신이 나갔던가 둘 중에 하나인 거 아닐까 싶었다.

폴리팩스 부인은 처음 방문한 터키, 이스탄불이지만, 비행기에서 만난 예쁜 아가씨에게 부탁받은 대로 거리낌 없이 그 오빠를 찾으러 가기도 하고 본인의 보호해 주는 요원인 헨리와 은밀한 눈짓을 주고받는 등 연륜 있는 관광객이자 초보 스파이로서 나름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그러나 호텔에 나타난 마그다와 만나는 거까지 성공하여 미션이 마무리될지 알았던 순간, 경찰에 연행되고 심문을 받고 여권까지 빼앗기자, 이 미션의 거대한 위험성을 비로소 깨닫기 시작한다.

 

때로 인생에서 아무런 패턴도 보이지 않는 것만 같은 그 순간, 상상도 하지 못한 우연의 일치가 찾아오기도 한다. 어떤 거대한 힘이 인생의 모든 출발과 도착을 끌어당기고, 조정하고, 배열하고, 짜 맞춰서는, 결국엔 엄청난 일을 성사시키고 마는 것이다.


- 『폴리팩스 부인』 中 p.300


| 터키 전역을 아우르게 된 모험
이스탄불에서 6일 만에 끝날 거라고 했던 미션은 앙카라, 요즈가트, 위르귀프, 괴뢰메, 카파도키아, 카이세리 등 터키 전역을 아우르며 이어진다. 단순히 부탁받은 물건을 건너주러 가서 만난 콜린은 가장 중요한 조력자가 되고, 공동묘지에서 만난 산도르, 요즈가트의 대학생 사바하트, 그리고 콜린의 삼촌 휴와 아니에타와 고루를 비롯한 마그다의 집시 친구들까지 폴리팩스 부인은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하며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

몇몇 지명은 터키 여행을 할 때 가봤던 곳이어서 그때 기억도 다시 나고, 특히 카파도키아의 구멍 숭숭 뚫린 바위들의 묘사를 볼 때는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여행할 때는 날씨가 좋지 않아서 그 풍경이 그렇게 좋지 않았는데 이야기 속에서 흥미진진한 모험이 펼쳐지는 배경으로 만나니 또 다르게 다가오는 거 같았다.

도입부를 읽을 때 왠지 폴리팩스 부인과 좋은 인연이 될 거 같았던 벨로 박사가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어서 다소 충격적이었으나 만일 그랬다면 터키 전역을 아우르는 스파이물이 아니라, 로맨스물이 되었을 것이다. ^^; 멕시코에서 시작되었던 지난 모험보다 다소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이번 터키 미션에는 대신 여러 가지 의미로 뒤통수치는 인물이 많이 등장하여 한층 모험이 다채롭고 풍성해진 맛이 있었다. 가라테 정도로 부인 능력의 업그레이드는 끝이겠거니 생각했는데 헬기를 조종하며 터키 하늘까지 비행하는 걸 보고 작가가 과연 시리즈의 다음 편에서는 폴리팩스 부인을 어떤 모습으로 만들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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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카인드 - 감춰진 인간 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조현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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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친한 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기다. 결혼을 앞둔 선생님의 오랜 친구가 신랑을 소개한다고 마련한 식사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친구는 선생님을 소개할 차례가 되자 '00는 그림 그려. 만화가야'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신랑이 감탄하면서 '재주가 많으시네요'라고 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신랑의 말을 들은 선생님의 친구가 말하길, '이이는... 그림 그려서 얼마나 번다고...' 이 말을 들은 선생님은 정말 놀랐다고 하셨다. 평소 그 친구의 언행과는 차이가 있는 말이라서 화가 나면서도 순간 잘못 들었나 싶기도 했다고... 결국 선생님은 내내 그 친구가 갑자기 뭔가 달라진 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인데 지금까지 자기가 잘못 알았던 것인지 고민했다며 우리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셨었다.

 혹시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결혼이라던가 내 집 마련이라던가, 인생의 나름의 이벤트를 겪으며 갑작스럽게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닌 거 같은 지인... 이 책을 읽으면서 정답까지는 아니더라도 왜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했는지 어떤 메커니즘이 그런 언행을 유발했는지 분명해지는 느낌이었다.

 

 

책을 읽기 전 "위기의 순간, 인간은 선한 본성에 압도당한다!"는 문구는 공감보다는 의구심으로 다가왔다. 여전히 심리학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한 각종 실험, 사건들과 여러 가지 이유로 외면받은 그 이면의 이야기, 그리고 저자가 찾은 무수한 연구 자료와 실제 사례, 통계 등으로 우리가 가진 본성이 정작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방향의 면모를 보이고 있음을 차근차근 설명해나가는 챕터들을 계속 지나치면서도 그랬다. 실험 참가자들이나 사건 관련자들의 실제 상황이 어땠는지, 그래서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결과나 결론이 연구 책임자, 언론 등이 원하는 방향대로 조작되었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러면 그런 짓을 한 책임자들의 본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가 내내 목에 가시처럼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비로소 저자의 논리에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한 것은 Chapter 11, '권력이 부패하는 방식 : 후천적 반사회화'부터 였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우리가 만든 사회가 어떻게 소시오패스를 양성하는지를 보면서 소름이 끼치기 시작했다.

 

… 켈트너와 그의 팀은 값비싼 자동차가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또 다른 연구를 수행했다. 이 실험에서 첫 번째 피험자들은 낡은 미쓰비시나 포드 핀토를 횡단보도 방향으로 운전해갔다. 횡단보도에서는 보행자가 발을 막 내딛는 중이었으며 법에 따라 모든 운전자가 자동차를 멈췄다. 하지만 연구의 2부에서 피험자들은 멋진 메르세데스 벤츠를 운전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45퍼센트가 보행자를 위해 정지하지 않았다. 사실 자동차가 비쌀수록 도로상의 매너는 더 거칠어진다. 한 연구원은 ≪뉴욕타임스≫에 "BMW 운전자가 최악이었다"고 말했다(이 연구는 지금껏 두 차례 재현되었는데 결과는 모두 비슷했다).


- 『휴먼카인드』 中 p.316

 

고작 비싼 자동차 하나로 달라진다면, 연구 책임자가 아니라 국가 또는 기업, 아니 단 한 팀이라도 책임지는 자리에 있게 되면 인간이 어떻게 변할지 예상이 되지 않는가. 왜 투표를 하고, 정권을 바꾸고 별 난리를 피워도 세상이, 사회가 달라지지 않는지, 왜 선거 시즌만 되면 시장을 돌면서 절을 하고 노래, 춤으로 쇼까지 보여주는 국회의원들이 정작 선출되고 난 후에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온 농민들에게 고함을 치면서 무릎 꿇리는 행패가 가능한지 알 거 같았다. 저자가 인용한 또 다른 연구 결과에 따르면 'CEO의 4퍼센트에서 8퍼센트는 의학적으로 소시오패스, 즉 반사회적 인격장애자인 반면 일반인의 비율은 1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힘이 생겼다고 느끼는, 권력이 있다고 느끼는 순간 인지 기능이 달라진다니 선하고 악하고 떠나서 인간의 본성 자체가 너무나 연약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휴먼카인드』 中 p.490

 


|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절망에 빠졌느냐?! 사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 좀 울컥했다. 안도감이 들어서였다. 편리하다고 호응 좋은 새벽 배송이라던가, 백화점이나 마트의 가판대 직원들을 보면서 문득문득 느꼈던 문제들을 누군가에게 얘기할 때마다 공통적으로 듣는 소리는 '거기까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거나 그것은 내 문제가 아니라는' 거였다. 그래서 가끔 내가 유별나서 쓸데없는 고민이나 생각을 하는 건가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상할 수 있는 문제 제기에서 출발해 조직을, 인간을, 사회를 변화시키는 사례들을 보고 나니 우리 모두 함께 이런 쓸데없는(?) 걱정을 할 필요가 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관리자와 보너스가 없는 가정건강돌보미 조직 뷔르트조르흐, 인사, 기획, 마케팅 부서가 없는 자동차 부품회사 파비, 다양한 배경과 연령의 아이들을 다 받아주는 네덜란드의 학교 아고라, 베네수엘라 토레스시의 시장 선거, 노르웨이의 교도소를 견학한 노스다코타 교정국 국장의 눈물,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군인들이 보여 준 훈훈함과 그 전염성 등 이 책이 보여주는 인간의 선한 본성에 놀라기보다는 그로 인해 희망을 품을 수 있어서 좋았다. 지독히도 부정편향이었는데 어쩌면 우리 인간이, 세상이 나아질 수 있고, 그래서 괜찮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역자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의 네덜란드어 제목 'De Meeste Mensen Deugen'에 있는 'Deugen'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번역될 수가 없다고 한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냥 선하다고 옮긴 경우가 많았다고... 게다가 저자가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사람들이 선하다(good)고 실제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해서 더 번역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

★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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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숲 - 개역판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까치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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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이라는 작가를 처음 만난 건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흔한 여행 에세이와는 좀 다른 책이었고, 낄낄대며 웃기도 하고 재미있게 읽었었다. 도서관 신착 도서 속에서 발견한 요 책이 그래서 더 궁금했다.

 

 

미국 조지아 주에서 메인 주까지 이어지는 총 길이 3,500㎞에 달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도전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에서 호기롭게 준비를 이어가던 저자는 출발이 임박해지자 주변 지인들에게 같이 가지 않겠냐는 나름 절박한(?) 편지를 보낸다. 연락이 뜸했던 의외의 친구 카츠가 나서서, 두 사람은 함께 트레일을 향해 출발하는데...

교류가 거의 없던 두 사람이 여행을, 그것도 트레일을 종주하는 도전을 같이 하는 것부터 불안했지만, 두 사람의 종주기는 상상하던 것보다 순조롭게(?) 진행된다. 물론 중년의 아저씨 2명이 체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들이 걷기에 길이 평탄했던 것도 아니지만, 짐승, 벌레의 습격, 살인마의 등장 등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그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서먹했던 두 친구가 의례 겪을 수 있는 삐걱거림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젠 어떤 약속이나 의무, 속박, 임무, 특별한 야망도 없고 필요한 것은 눈곱만큼도 없다. 당신은 마음의 격렬한 동요를 거쳐 더 이상 어떤 자극이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탐험가이자 식물학자였던 윌리엄 바트럼이 표현한 대로 "투쟁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고요한 권태의 시간과 장소에 놓인 존재가 된다. 당신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저 걸으려는 의지뿐이다.


- 『나를 부르는 숲』 中 p.112

 

​역시 '빌 브라이슨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마냥 질주할 거 같았던 이야기에 산과 트레일, 공원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인 배경이나 상황을 더해 단순히 트레일 종주 경험기에 그치지 않도록 만든 스토리텔링 때문이었다. (읽다 보면 어느 순간은 종주기는 그냥 거들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전의 책도 그래서 좀 다르게 읽혔던 거 같다. 이런 구성은 작가의 학식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고 다층적인지를 잘 충분히 느낄 수 있는데 반해 트레일 종주기에 집중하려고 했던 독자에게는 산만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내내 자연에 대한 저자의 애정을 느낄 수 있고, 카츠를 비롯해 종주를 통해 만난 인물들과의 에피소드 속에 빌 브라이슨다운 유머도 여전함을 알 수 있었다.

 

"그럼, 너희들이 준비될 때까지 산은 그대로 있을 거야, 이 사람들아."

그녀가 말했다-그녀의 말이 옳은 것은 물론이다.

 

- 『나를 부르는 숲』 中 p.384


당최 나의 저질체력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는데 많은 사람들이 계속 순례길이나 이런 트레일을 걷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롯이 나와 자연, 그리고 걷는 행위에 집중하는 시간이 주는 평정? 성취감? 여전히 답은 잘 모르겠지만, 걷기 전과 후가 결코 똑같지 않을 거라는 건 확실히 알겠다.

빌 브라이슨은 처음 마음먹었던 대로 종주를 마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가 준비될 때까지 '산은 그대로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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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빙 미스 노마 - 숨이 붙어 있는 한 재밌게 살고 싶어!
팀, 라미 지음, 고상숙 옮김 / 흐름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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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배우는 시간』에서 언급되어서 알게 된 『드라이빙 미스 노마』. 아흔 살의 노마 할머니는 남편을 떠나보내던 시점에 자신도 말기 암 판정을 받게 된다. 입원, 수술, 항암치료 대신 아들 내외와 떠나는 전국 일주를 선택한 할머니는 생의 마지막 시간을 즐거움과 사랑, 아름다움으로 채운다. 그리고 아들 팀과 며느리 라미가 이 여행을 페이스북에 공유하면서 노마 할머니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아이콘이 된다. 이 책은 그 여정의 솔직한 기록으로 아픈 어머니와의 여행에 대한 불안과 걱정, 예기치 못한 공감과 교류의 순간,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 등을 팀과 라미가 적어내려간 것이다.

 

 

노마 할머니와 레오 할아버지는 모두 세계 제2차 대전의 참전용사로 가정을 이룬 후에 팀과 스테이시를 입양해서 사랑으로 키웠다.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팀과 다르게 군 복무를 마친 후 비밀경호국에서 일하던 스테이시는 젊은 나이에 암으로 가족 중 제일 먼저 세상을 떠난다. 스테이시의 죽음을 두고 서로를 보듬기보다는 각자 침묵하고 슬픔을 삼키는 방법으로 애도하던 가족들은 아버지 레오 할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노마 할머니의 시한부 판정으로 함께 여행하게 되면서 비로소 슬픔을 드러내고, 서로에게 마음을 보여주면서 깊은 유대감을 형성해 나간다.

노령의 어머니가 생활하고 이동하기 불편하지 않은 캠핑카를 고르는 것부터 큰일이었던 여행의 초반부를 읽으면서 내가 너무 순진하게 이 여정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여행은 그냥 꿈꿀 때나 낭만적인 것을... 진짜 떠나기 위한 실질적인 준비에 들어가면 고려해야 할 것도, 대비해야 할 것도 많고, 생각지도 않았던 이상한 난관이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을 잠깐 잊고 있었다. 캠핑카와 그 캠핑카를 견인할 수 있는 지프차, 여기에 캠핑카가 다니는 데 문제가 없을 길과 경로, 장소, 그리고 계속 세심하게 어머니의 약을 챙기고, 상태를 살피는 것까지, 떠나기로 결심한 노마 할머니도 놀랍지만, 이 여정을 전적으로 계획하고 진행해나간 팀과 라미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나이 들고 아픈 사람을 대할 때 가장 저지르기 쉬운 잘못은 단순히 더 아프지 않게, 또는 더 이상 다치지 않게 오래 사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사실 이들은 그 이상의 것을 중요시한다. 자기 인생의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나갈 수 있는 기회가 이들의 의미 있는 인생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 『드라이빙 미스 노마』 中 p.151~152 / 『어떻게 죽을 것인가』, 가완디

 

시어머니인 노마 할머니와 여행을 앞두고 라미는 아툴 가완디가 쓴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읽고 가족끼리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고 느낀다. 여행 내내 죽음을 의식하려는 게 아니라 죽음으로 인한 상실을 이미 겪기도 했고, 앞으로도 겪어야 하는 가족끼리 죽음에 대해 좀 더 편하게 대화하면서 막상 죽음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함께 겪어낼 것인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SNS를 통해 화제의 인물이 된 노마 할머니는 아들 내외가 기억하던 수줍고 나서길 꺼리던 모습 대신 각종 매스컴의 인터뷰, 해군 함정의 진수식, 퍼레이드 등에도 즐겁게 참여하고 낯선 사람들과도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여행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런 노마 할머니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의지가 되면서 큰 응원을 받는다.

그럼에도 결국 훌쩍거리면서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지만, 할머니의 이야기는 죽음을 앞두고 있거나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좋은 에너지가 될 거라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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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 스토리콜렉터 34
도로시 길먼 지음, 송섬별 옮김 / 북로드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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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라늄 화분을 내놓으려고 건물 옥상에 올라갔을 때였다. 난간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지금 딱 한 걸음 허공을 내디뎌서는 안 되는 이유가 하나라도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단 한 가지 이유도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 뾰족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 『뜻밖의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 中 p.14

 

남편과 사별하고 장성한 자식들과도 떨어져 사는 60대 폴리팩스 부인은 병원에서의 봉사, 미술협회 모임, 원예 클럽 등 다양한 활동을 활발히 하는 중에도 딱히 삶의 이유와 의미를 찾지 못해 우울해하고 있었다. 진료 중에 의사가 던진 "오래전부터 꼭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못" 한 일에 어렸을 적 꿈인 스파이를 떠올린 부인은 CIA에 찾아간다. 멕시코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전달해 줄 평범한 관광객이 필요했던 CIA의 카스테어스는 폴리팩스 부인을 우연히 마주치고 그녀에게 얼핏 어려울 거 없어 보이는 이 임무를 맡기기로 한다. 부인은 난생처음 떠나는 멕시코 여행과 나름의 미션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데...

 

 

구정 연휴 때 읽으려고 빌려두었던 3권의 책 중 한 권인 『뜻밖의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은 의외의 공감과 재미와 스릴을 주었다. 일탈을 꿈꾸는 노부인의 좌충우돌 스파이 체험기로 코믹하기만 할 거 같았던 이야기는 위험할 거 없어 보였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려던 폴리팩스 부인이 예기치 않게 납치되면서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가 감금된 곳에서 굴하지 않고 탈출을 계획하는 부인의 기지에 또 다른 분위기로 변화한다.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렸다. 폴리팩스 부인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필사적으로 다리를 절며 뛰어가는 패럴의 뒷모습을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이토록 필사적인, 가엾은 인생이라니. 인간이란 어쩌면 이렇게 끈질기게 목숨을 붙들고 매달리는지, 살겠다는 일념으로 온갖 일을 해내는지! 그러니까, 몸뚱이에 붙은 목숨 말이다. 영혼의 목숨을 부지하기는 훨씬 까다롭고, 어렵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 『뜻밖의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 中 p.317

 

협업하던 요원들이 목숨을 잃었고, 부인이 감금된 곳의 위치도, 생사도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CIA 조차 어찌해야 할지 모르던 그 시간에 폴리팩스 부인은 그대로 고문과 죽음을 기다리며 손 놓고 있지도, 그렇다고 자살을 시도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자신을 감시하던 비밀경찰들과 친구가 되고, 교류하면서 자신의 조국인 미국에 대해 알려주고, 자신도 그들의 나라에 대해 배운다. 여기에는 그녀가 스파이인지 아닌지 확신이 없는 존재로 그저 힘없는 노부인으로 보였다는 게 크게 한몫하기도 했는데 이에 더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질을 발휘하여 인내심을 가지고 모든 상황을 차근차근 헤쳐나가면서 폴리팩스 부인은 이름 그대로 '뜻밖의 스파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다.

딱히 특별한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닌 폴리팩스 부인이 부상당한 요원 '패럴'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또 다른 감금자 '지니'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벌이는 탈주의 여정은 한 번씩 숨이 탁탁 막히는 잔인한 위기의 연속이다. <미션 임파서블>이나 <007 시리즈>를 떠올린다면 이 지난한 과정에 괴로울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국경을 넘는 탈출이라는 건 폴리팩스 부인의 모험에 더 가까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부터 꼭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못" 한 일 중에 폴리팩스 부인처럼 스파이가 있다면 이 모험이 그래도 즐겁게 다가올 것이다.

다 읽고 나면 폴리팩스 부인이 틈날 때마다 하는 솔리테어가 정말 궁금하다. 트럼프 카드로 혼자 하는 게임이라는데 서점 주인 드가메즈가 부인에게 선물로 준 ≪솔리테어를 하는 77가지 방법≫이라는 책도 읽어보고 싶었다. 이제 별 게 다 해보고 싶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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