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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숲 - 개역판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까치 / 2018년 1월
평점 :
빌 브라이슨이라는 작가를 처음 만난 건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흔한 여행 에세이와는 좀 다른 책이었고, 낄낄대며 웃기도 하고 재미있게 읽었었다. 도서관 신착 도서 속에서 발견한 요 책이 그래서 더 궁금했다.

미국 조지아 주에서 메인 주까지 이어지는 총 길이 3,500㎞에 달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도전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에서 호기롭게 준비를 이어가던 저자는 출발이 임박해지자 주변 지인들에게 같이 가지 않겠냐는 나름 절박한(?) 편지를 보낸다. 연락이 뜸했던 의외의 친구 카츠가 나서서, 두 사람은 함께 트레일을 향해 출발하는데...
교류가 거의 없던 두 사람이 여행을, 그것도 트레일을 종주하는 도전을 같이 하는 것부터 불안했지만, 두 사람의 종주기는 상상하던 것보다 순조롭게(?) 진행된다. 물론 중년의 아저씨 2명이 체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들이 걷기에 길이 평탄했던 것도 아니지만, 짐승, 벌레의 습격, 살인마의 등장 등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그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서먹했던 두 친구가 의례 겪을 수 있는 삐걱거림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젠 어떤 약속이나 의무, 속박, 임무, 특별한 야망도 없고 필요한 것은 눈곱만큼도 없다. 당신은 마음의 격렬한 동요를 거쳐 더 이상 어떤 자극이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탐험가이자 식물학자였던 윌리엄 바트럼이 표현한 대로 "투쟁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고요한 권태의 시간과 장소에 놓인 존재가 된다. 당신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저 걸으려는 의지뿐이다.
- 『나를 부르는 숲』 中 p.112
역시 '빌 브라이슨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마냥 질주할 거 같았던 이야기에 산과 트레일, 공원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인 배경이나 상황을 더해 단순히 트레일 종주 경험기에 그치지 않도록 만든 스토리텔링 때문이었다. (읽다 보면 어느 순간은 종주기는 그냥 거들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전의 책도 그래서 좀 다르게 읽혔던 거 같다. 이런 구성은 작가의 학식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고 다층적인지를 잘 충분히 느낄 수 있는데 반해 트레일 종주기에 집중하려고 했던 독자에게는 산만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내내 자연에 대한 저자의 애정을 느낄 수 있고, 카츠를 비롯해 종주를 통해 만난 인물들과의 에피소드 속에 빌 브라이슨다운 유머도 여전함을 알 수 있었다.
"그럼, 너희들이 준비될 때까지 산은 그대로 있을 거야, 이 사람들아."
그녀가 말했다-그녀의 말이 옳은 것은 물론이다.
당최 나의 저질체력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는데 많은 사람들이 계속 순례길이나 이런 트레일을 걷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롯이 나와 자연, 그리고 걷는 행위에 집중하는 시간이 주는 평정? 성취감? 여전히 답은 잘 모르겠지만, 걷기 전과 후가 결코 똑같지 않을 거라는 건 확실히 알겠다.
빌 브라이슨은 처음 마음먹었던 대로 종주를 마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가 준비될 때까지 '산은 그대로 있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