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수는 도련님
도대체 지음 / 동그람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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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의 도대체 작가의 반려견 웹툰을 엮은 『태수는 도련님』. 하필 태수가 이코랑 똑닮은 시추인 탓에 읽으면서 몇 번은 눈물을 찍어낼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그렇게 슬프냐고 묻는다면 계속 슬프다기보다 이건 무의식 속에 기한 없이 남아있는 슬픔이라고 하겠다.

 

 

책에는 태수가 12살인 시점까지의 이야기까지 나와 있다. 태수가 혹시 무지개다리를 건넜을까 싶었는데 차마 검색하지는 못했다. 그냥 태수가 여전히 사랑 듬뿍 받으며 견생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련다.

예상 가능하겠지만 이야기는 태수와 저자, 그리고 가족과 이웃들이 함께 경험하는 소소한 일상과 그 속에서 느끼는 행복, 즐거움, 재미로 가득하다. 그 속에서 태수를 비롯한 우리 모두의 반려견들은 조건 없이 나를 반기고, 사랑하고, 받아준다.

 

심지어 개는 사람들의 속사정도 제법 많이 알고 있죠. 우리는 자주 개를 붙들고 이러쿵저러쿵 하소연하니까요. 비열하거나 치사해서 남에겐 차마 하지 못한 말도 개한테는 털어놓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속속들이 알면서도 좋아할 수 있다니, 어쩌면 이것은 굉장한 사건입니다.

- 『태수는 도련님』 中 p.274

 

태수가 아플 때만큼은 반려견이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특히 격하게 공감했다. 이코가 아픈 걸 좀 빨리 알았어야 했었다. 자기가 어디가 불편한지 제대로 알려줄 수 없는 반려동물이 아픈 건 정말 마음이 너무 무너지는 일이다.

 

천국이란 것이 정말 존재한다면, 저는 모두에게 같은 환경이 주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쩐지 저마다 가장 행복한 환경이 주어질 것 같죠. 누군가는 매일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왁자지껄한 파티장을 좋아할 것이고, 누군가는 매우 조용한 숲속 별장에서 책만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좋아할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그 벤치에 앉아 있을 때면 '내가 만약 천국에 간다면 지금 이 풍경을 보고 있겠구나' 생각하곤 했습니다. 적당한 온도, 시원하게 부는 바람, 따뜻한 햇살, 눈이 부시지 않게 해 주는 나무 그늘, 그리고 제 옆에 앉아 있는 개 말입니다. 천국에서도 저는 그렇게 태수와 함께 앉아, 태수에게 다가가는 개미를 쫓으며 한가로이 이런저런 공상을 하며 보낼 거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상을 하다 보면 이어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천국을 미리 경험하고 있는 것이구나. 이 작은 개 한 마리와 함께.'

- 『태수는 도련님』 中 p.297~298

 

반려동물과 함께 한다는 건 단순한 일이 아니다. 음식, 배변, 산책, 놀이 등 내 시간과 에너지를 끊임없이 내어 주어야 하는 생활이고, 무엇보다 제대로 하려면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과 가족을 이루는 건 거기서 얻는 행복, 기쁨, 안정 등 더 거대한 무언가가 분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다 읽고 오랜만에 외장 하드에 남아있는 이코의 사진을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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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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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마스다 미리의 책은 부정적인 감정을 다뤘을 때 더 공감하게 되는 거 같다. 중고서점에서 발견하고 퇴근길에 도서관에 들러서 빌려 온 『오늘도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도 -『아무래도 싫은 사람』만큼은 아니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요즘 화가 많이 나서라기보다는 화를 제대로 풀 수가 없어서인 거 같다.

 

 

마스다 미리는 서문에서 '화에 슬픔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그렇게 대단한 화가 아니'라고 한다. 요 슬픔이라는 게 뭔지가 좀 애매했는데 키우던 아기 고양이의 무덤이 파헤쳐 진 에피소드에서 이해가 되었다.

 

내 마음은 분노로 터질 거 같았다.

증오와 슬픔이 함께가 된 분노는 갈 데가 없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그 분노는 이제 시간과 함께 흐려졌지만, 제방에서 울던 열네 살의 나는 지금도 불쌍하다.


- 『오늘도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中 p.114

 

책에는 마스다 미리가 경험한 다양한 상황에서의 화가 등장한다. 화가 난 상황,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을 화가 나게 만든 상황 등 살면서 한 번쯤 접했을 법한 상황이 많아서 '그래 이 비슷한 일 있었어' 이러면서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쉬운 지점은 결국 화에 대한, 화가 나게 만든 사람들과 그 이야기의 모음에 그쳤다는 느낌이 강해서 구입하지 않고 빌리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딱히 해결책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스다 미리가 좀 다르게 풀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는 조금 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있는 날, 몹시 무서워진다. 사십대인 나는 화를 낼 체력과 다소 화를 내는 스킬을 갖추고 있는, 말하자면 인생 최강의 화를 낼 시기. 그렇지만 나이를 더 먹으면? 설령 정당한 항의라고 해도 상대조차 해주지 않는 건 아닐까? 그런 나의 미래를 상상하니 쏟을 데 없는 분노가 멋대로 부글거린다.


- 『오늘도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 후기 中 p.159

 

마지막 에피소드까지 읽은 후에 작가 후기를 읽다가 조금 노련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같은 고민, 화에 시달리고 있는 거 같은 저자의 모습에 뭔가 인간(?)적인 느낌이 받았다. 그렇다! 책 한 권 쓴다고 해서, 그 책을 읽는다고 해서 오랜 세월 답 없는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는 것이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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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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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겪고 있는 러시아,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은 내무 인민위원회 소속 긴급 위원회에서 메트로폴 호텔 밖으로 평생 나갈 수 없다는 종신 연금형을 선고받는다. 이 소설은 선고받은 1922년부터 1954년까지 32년의 세월을 배경으로 삼아 급변하는 사회 상황과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 속에서도 품위와 긍정, 평정을 잃지 않고 살아간 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 모두의 친구가 되다

알렉산드르 백작은 원래 묵었던 스위트룸이 아니라 호텔의 좁은 다락방으로 거처도 옮기게 되는데 덕분에 가지고 있던 집안의 소중한 물건들을 모두 챙길 수도 없게 된다. 비록 그가 연금형을 선고받고 다락방에 묵어도 호텔 직원들은 여전히 그를 각하라고 부르기도 하고 기꺼이 그를 돕는데 인상적인 것은 그 관계가 상하 수직이 아니라 상호 존중의 관계로 점점 두터운 신뢰와 은밀한 공모의 커뮤니티로 발전해 나간다는 것이다.

호텔에서 생활하는 소녀 니나, 잡역부 아브람, 호텔 식당 지배인 안드레이, 주방장 에밀 등 호텔의 거의 모든 사람들과 맺은 우호적인 관계는 백작에게 활력을 준다. 특히 니나는 호텔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그를 마스터키를 이용해서 다채로운 내부 탐험의 세계로 이끈다.

 

"음, 모두가 어떤 말을 해줄 땐, 그게 사실이기 때문에 그러는 경우가 많단다."

"모두가 어떤 말을 해줄 땐 그들이 모두이기 때문인 경우가 많아요." 니나가 똑 부러지게 말했다.


- 『모스크바의 신사』 中 p.150

 

결국 여동생 옐레나의 10주기 기일에 자살하려고 했던 백작은 호텔 잡역부 아브람이 권한 신선한 꿀에서 익숙한 고향의 향을 떠올리고 마음을 돌리게 되고, 호텔의 식당 보야르스키에서 웨이터 주임으로 일하게 된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서 공산당 간부 오시프의 외국어 및 서구 문화 관련 개인교사로까지 활약하게 되는데 이 친분은 그가 나중에 소피야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도 영향을 미친다.

 

| 아버지가 되다
연금된 백작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였던 니나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열혈 청년으로 활약하게 된다. 자연스레 백작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게 되지만, 사랑하는 남편이 체포되어 멀리 이송되자 이를 따라가면서 안정된 상황이 될 때 데리러 오겠다며 딸 소피야를 백작에게 맡긴다. 달리 부탁할 사람이 없다는 니나의 말에 한두 달만 봐주면 될 거라고 생각해서 시작된 대리 부모 역할은 무려 16년이 넘도록 지속되는데 소피야는 그를 아버지라 부르며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성장한다.

어렵고 낯설었던 소피야와의 관계 맺기는 그가 한층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만들고, 새로운 계획을 꿈꾸는 계기가 된다. 다친 소피야를 안고 의식할 여지도 없이 호텔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하고, 피아니스트 그리고 인간으로서 더 나은 소피야의 삶을 위해 치밀하고 대담한 스파이가 되기도 한다. 예기치 못하게 주어진 아버지 역할이었으나 그는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고, 딸에게 더 나은 삶을 주는 데에도 망설이지 않는다. 그에게 소피야가 없었다면 이 소설의 마지막은 엄청나게 달라졌을 것이다.

 

중요한 건 그가 어떤 모습이나 행동을 취하던 이야기 안에서 그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논리, 품위가 달라지지 않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이 내가 생각하는 낭만이라는 것에 가장 부합한다고 느끼지 않았나 싶다.

700페이지 가량의 이야기는 마지막 17페이지 정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호텔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런데 다 읽고 나면 혁명에 휘말린 러시아 귀족의 길고 먼 여정(?)을 따라온 기분이다. 여행이라는 건 꼭 멀리 갈 필요도 없고, 특별한 곳일 필요도 없는 거라는 걸 백작이 다시금 알려 준 거 같다.

+ 문득 러시아 사람들은 이 소설을 어떻게 느낄지가 궁금해졌다. 그들에게는 혹시 이게 서양의 오리엔탈리즘과 비슷하게 읽힐 수도 있을까? 미국 작가가 그려낸 혁명 시기에 연금형을 받은 러시아 귀족의 이야기가 어쩌면 러시아 사람들에게는 내가 느끼는 것과는 전혀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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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 블러드 - 테라노스의 비밀과 거짓말
존 캐리루 지음, 박아린 옮김 / 와이즈베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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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 화학공학대학의 로버트슨 교수의 수업을 듣던 엘리자베스 홈즈는 신기술로 질병을 진단하고 동시에 치료할 수 있는 팔 패치 관련 특허 신청서를 작성한다. 그녀의 창의력에 감탄한 로버트슨 교수의 지지에 힘입어 학교를 그만두고 회사 창업에 나선 홈즈는 가족 인맥을 이용해서 자금을 모으는 데 성공하고, 패치 아이디어 대신 손가락을 찔러 얻은 소량의 혈액 샘플로 각종 질병의 검사가 가능한 소형 장치 개발로 선회한다.

 

 

엘리자베스 홈즈의 이야기는 TV 프로그램에서 처음 접했었다. 그녀는 결국 희대의 사기꾼에, 소시오패스였는데 이 책은 그녀와 그녀의 회사 테라노스를 탐사 보도한 「월스트리트저널」의 존 캐리루의 기록이다. 존 캐리루가 테라노스와 홈즈가 새빨간 거짓말로 스탠퍼드 공과대학의 채닝 로버트슨 교수부터 노령의 벤처 투자가 도널드 L.루커스, 그리고 굴지의 회사를 이끈 CEO들과 제임스 매티스, 조지 슐츠, 헨리 키신저 등 정계 인사들,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까지 이용하며 어떻게 사기 행각을 벌였는지 내부 고발자 60명을 포함한 150명이 넘는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밝혀낸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절반이 넘는 분량을 읽을 때까지 속 터져 죽을 거 같았다. 그녀의 비전을 믿고 따른 죄 없는 직원들이 당한 일들도 치가 떨렸지만, 당최 경험과 연륜이 넘치는 정재계 저명인사들까지 이렇게 대책 없이 놀아날 수 있다는 게 어이가 없으면서도 이게 바로 집단지성의 파멸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었다.

특히 전 미국 국무장관을 역임한 정치가이자 외교관인 조지 슐츠가 테라노스에 근무하며 엘리자베스와 회사의 실체를 겪은 손자의 말을 끝까지 믿지 않고 엘리자베스를 지지한 건 충격적이었다. 타일러 슐츠는 존 캐리루의 핵심 정보원 중에 하나였는데 그가 동료까지 데리고 가서 반복해서 털어놓은 진지한 이야기에도 조지 슐츠는 엘리자베스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고, 결국 자신의 95번째 생일에 관계가 소원해진 손자는 불참, 엘리자베스는 여전히 참석하는 촌극을 연출한다. 이쯤 되면 손자 입장에서는 할아버지가 노망이 났다며 맹비난할 수도 있을 듯한데 타일러의 의연하고도 성숙한 대처는 분노하는 나를 반성하게 만들 정도였다.

존 캐리루는 테라노스 관련 보도로 '조지 폴크상', '제라드 롭 최고 보도상', '바를레트 & 스틸 실버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상은 각종 압력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각종 자료와 인터뷰로 테라노스와 홈즈의 실체를 폭로한 정보원들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존 캐리루도 감사의 말에 그들이야말로 이 이야기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했다.

읽으면서 오바마 정부와 힐러리 클린턴에게도 끈이 있었던 엘리자베스에게 넘어간 사람이 「월스트리트저널」 내에도 있는 게 아닌지 조마조마했다. :) 다행히 편집장을 비롯한 모두 제정신(?)이었고, 엘리자베스에게 투자했음에도 보도를 막아달라는 그녀의 요구를 깔끔하게 거절한 루퍼트 머독은 인상적이었다.

테라노스는 결국 2018년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몰락하지 않았다. 검색해보니 지난 3월에 그녀는 임신했다며 재판을 미뤄달라고 했다는 기사가 보였다. 재벌가의 상속자인 남자친구와 동거 중이라는데 개인적으로는 파산했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부자 남자친구의 돈으로 호의호식하는 거 같아서 짜증이 났다. 하긴 연쇄살인범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소시오패스 사기범이랑 동거하는 사람이 왜 없겠는가. 진정한 반성이라고는 없는 그녀가 제발 제대로 빨리 벌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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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송태욱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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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다루 박하주식회사에 근무하는 아버지 신조와 조산원을 운영하는 어머니 요네 사이에서 태어난 가즈에, 신지로, 에미코, 도모요 4남매. 남매 중에 유일하게 도요코와 가정을 꾸린 신지로는 아유미와 하지메 낳는다. 믿음직했던 야무진 딸 아유미는 젊은 나이에 암으로 삶을 마감하고, 하지메는 책을 쓰기 위해 교수 일을 정리하고 부모님이 계신 고향집으로 돌아온다.

 

 

| 가깝고도 먼, 쉬운 듯 어려운 가족

전쟁 때문에 위기를 겪기는 했지만,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하며 잘나가는 에다루 박하주식회사에 근무하는 아버지 신조는 자녀들이 짐작할 뿐인 두 집 살림을 하고, 조산원을 운영하는 어머니 요네는 산모와 그 아이들에 집중하느라 자기 자녀들은 제대로 품어주지 못한다. 일찍부터 자신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 장녀 가즈에에게 때때로 기모노를 맞춰주는 걸로 마음의 짐을 덜 뿐이다.

전기기사로 일하는 신지로와 결혼한 도요코는 세 명의 시누이 가즈에, 에미코, 도모요가 곧 가정을 꾸려 집을 떠날 것이라는 기대로 시댁에 들어오지만, 에미코가 잠시 결혼했다가 곧 이혼했을 뿐, 세 명의 시누이는 시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시어머니 요네의 조산원을 리모델링하여 바로 옆집에 함께 산다.

얼핏 보기에 나쁘지 않아 보이는 신지로의 가족과 세 명의 시누이의 관계는 경제력, 생활비 등의 문제로 묘한 불협화음과 불편한 기류를 지속한다. 미혼인 채 아버지로부터 받은 주식과 자신들의 급여 등으로 부족함 없이 생활하고 비싼 물건을 사고 해외여행을 수시로 하는 시누이들, 특히 막내 도모요의 은밀한 과시욕이 못마땅한 도요코는 이 문제로 남편인 신지로와 다툼을 벌이기도 하는데...

가족은 가장 가까운 듯하지만 멀고, 편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을 거 같지만 그럴 수 없는, 그런 존재라는 걸 이 소설의 삼대도 보여준다. 신지로의 자녀인 아유미와 하지메도 사이가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말할 수 없는 그런 남매 관계를 유지하다가 아유미의 병을 계기로 조금 가까워지고 의지하는 부분이 생기게 될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 속 인물들은 가족을 떠나지 않는다. 소설의 제목 속 '집'은 바로 그런 가족을 의미한다고 느껴졌다. 신지로가 여러 가지로 못 미더워했던 아들 하지메가 집필을 위해 돌아온 집에서 결국 치매에 걸린 고모들과 아버지를 챙기게 되는 것도 -화합이나 화해보다는- 가족이기에 자연스러운 회귀 같은 느낌이었다

작가는 그런 가족의 관계를 평가하지도 판단하지도 조정하지도 않는다. 5남 4녀의 막내딸로 태어나 아버지 친구의 집에 양녀로 갔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파양되어 집으로 돌아온 요네부터 3대에 걸친 소에지마 집안 인물들의 이야기를 관조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더불어 아유미와 사귀었던 이치이, 그리고 이치이와 친구가 된 농장 학교의 다케시 등 주변 인물들의 사연도 세심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자신의 마음조차 잘 알 수 없는데 남의 마음을 알 턱이 없다. 남의 마음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몰라서 다행이다, 하고 아유미는 생각한다. 알 수 있는 거라면 개나 고양이처럼 서로의 냄새, 울음소리, 몸짓이 더 믿음이 간다. 말 같은 건 사실상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안거나 안기거나 할 때 자신의 감각, 감촉 정도가 아닐까. 상대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감각이나 감촉은 믿을 수 있다.


-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中 p.319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지만, 동시에 말하는 게 다는 아니다. '가족이라서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라는 마음은 곤란하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신조와 요네가 자녀들에게 좀 살가운 부모였다면, 삼대의 이야기는 달라졌을까? 가즈에, 에미코, 도모요도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신지로도 좀 넉넉하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을까? 등장인물들의 다른 결말과 이야기를 상상해 보면서도 아마 신조와 요네, 다른 인물들 모두 그들이 겪은 경험, 배경 안에서 자기들이 살 수 있는 최선의 삶을 살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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