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송태욱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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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다루 박하주식회사에 근무하는 아버지 신조와 조산원을 운영하는 어머니 요네 사이에서 태어난 가즈에, 신지로, 에미코, 도모요 4남매. 남매 중에 유일하게 도요코와 가정을 꾸린 신지로는 아유미와 하지메 낳는다. 믿음직했던 야무진 딸 아유미는 젊은 나이에 암으로 삶을 마감하고, 하지메는 책을 쓰기 위해 교수 일을 정리하고 부모님이 계신 고향집으로 돌아온다.

 

 

| 가깝고도 먼, 쉬운 듯 어려운 가족

전쟁 때문에 위기를 겪기는 했지만,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하며 잘나가는 에다루 박하주식회사에 근무하는 아버지 신조는 자녀들이 짐작할 뿐인 두 집 살림을 하고, 조산원을 운영하는 어머니 요네는 산모와 그 아이들에 집중하느라 자기 자녀들은 제대로 품어주지 못한다. 일찍부터 자신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 장녀 가즈에에게 때때로 기모노를 맞춰주는 걸로 마음의 짐을 덜 뿐이다.

전기기사로 일하는 신지로와 결혼한 도요코는 세 명의 시누이 가즈에, 에미코, 도모요가 곧 가정을 꾸려 집을 떠날 것이라는 기대로 시댁에 들어오지만, 에미코가 잠시 결혼했다가 곧 이혼했을 뿐, 세 명의 시누이는 시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시어머니 요네의 조산원을 리모델링하여 바로 옆집에 함께 산다.

얼핏 보기에 나쁘지 않아 보이는 신지로의 가족과 세 명의 시누이의 관계는 경제력, 생활비 등의 문제로 묘한 불협화음과 불편한 기류를 지속한다. 미혼인 채 아버지로부터 받은 주식과 자신들의 급여 등으로 부족함 없이 생활하고 비싼 물건을 사고 해외여행을 수시로 하는 시누이들, 특히 막내 도모요의 은밀한 과시욕이 못마땅한 도요코는 이 문제로 남편인 신지로와 다툼을 벌이기도 하는데...

가족은 가장 가까운 듯하지만 멀고, 편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을 거 같지만 그럴 수 없는, 그런 존재라는 걸 이 소설의 삼대도 보여준다. 신지로의 자녀인 아유미와 하지메도 사이가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말할 수 없는 그런 남매 관계를 유지하다가 아유미의 병을 계기로 조금 가까워지고 의지하는 부분이 생기게 될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 속 인물들은 가족을 떠나지 않는다. 소설의 제목 속 '집'은 바로 그런 가족을 의미한다고 느껴졌다. 신지로가 여러 가지로 못 미더워했던 아들 하지메가 집필을 위해 돌아온 집에서 결국 치매에 걸린 고모들과 아버지를 챙기게 되는 것도 -화합이나 화해보다는- 가족이기에 자연스러운 회귀 같은 느낌이었다

작가는 그런 가족의 관계를 평가하지도 판단하지도 조정하지도 않는다. 5남 4녀의 막내딸로 태어나 아버지 친구의 집에 양녀로 갔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파양되어 집으로 돌아온 요네부터 3대에 걸친 소에지마 집안 인물들의 이야기를 관조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더불어 아유미와 사귀었던 이치이, 그리고 이치이와 친구가 된 농장 학교의 다케시 등 주변 인물들의 사연도 세심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자신의 마음조차 잘 알 수 없는데 남의 마음을 알 턱이 없다. 남의 마음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몰라서 다행이다, 하고 아유미는 생각한다. 알 수 있는 거라면 개나 고양이처럼 서로의 냄새, 울음소리, 몸짓이 더 믿음이 간다. 말 같은 건 사실상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안거나 안기거나 할 때 자신의 감각, 감촉 정도가 아닐까. 상대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감각이나 감촉은 믿을 수 있다.


-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中 p.319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지만, 동시에 말하는 게 다는 아니다. '가족이라서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라는 마음은 곤란하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신조와 요네가 자녀들에게 좀 살가운 부모였다면, 삼대의 이야기는 달라졌을까? 가즈에, 에미코, 도모요도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신지로도 좀 넉넉하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을까? 등장인물들의 다른 결말과 이야기를 상상해 보면서도 아마 신조와 요네, 다른 인물들 모두 그들이 겪은 경험, 배경 안에서 자기들이 살 수 있는 최선의 삶을 살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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