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시대 - 찬란하고 어두웠던 물리학의 시대 1900~1945
토비아스 휘터 지음, 배명자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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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부터 1945년까지 세계 물리학의 흐름과 이를 주도했던 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불확실성의 시대』. 고등학교에서 배웠던 총 4과목의 과학 중 제일 힘들었던 게 '물리'였던 만큼 읽기 전부터 이 책을 온전히 끝까지 읽어내는 것 자체가 도전이겠구나 싶었다. 그 우려를 딛고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던 건 어려운 물리학의 이론들을 그걸 연구하고 성취해 낸 학자들의 개인적인 이야기 속에 같이 녹여낸 드라마틱한 구성 덕분이었다.

읽는 내내 단지 맞고 틀림이 아닌 여러 다양한 이론들의 공존을 인정하고 개별 이론들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연구를 지속해가는 학자들의 지난한 끈질김이 존경스러웠다. 자신의 주장과 다르다고 배척하는 게 아니라 새롭게 생각해낸 이론 등에 대한 의견을  끊임없이 주고받는 열린 마음과 자세가 45년간의 물리학의 눈부신 발전을 가능하게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세상에도 영향을 주고 있고...



물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이론이 하나 있다. 이론물리학자와 실험물리학자 사이에 '천재 보존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이론이다.  천재 이론가가 한 명 있으면, 멍청한 실험가가 한 명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파울리는 이 이론의 살아 있는 증거이다. 


- 『불확실성의 시대』 中 p.353


가끔 지인들하고 얘기하는 '진상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어느 조직이든 모임이든 일정한 수의 진상이 존재하고 만일 진상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바로 '내'가 진상일 확률이 높다는 것...! 물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한다고 언급된 '천재 보존의 법칙'을 읽으면서 '진상 질량 보존의 법칙'이 떠올랐다. 물론 두 법칙은 좀 차이가 있다. '천재 보존의 법칙'은 한 사람이 천재 이론가이면서 똑똑한 실험가가 되기는 어렵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언급된 파울리라는 학자는 천재 이론가이기는 했지만, 자신이 손을 대지 않아도 같은 장소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파괴지왕의 능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물리학 얘기가 너무 머리 아플 거 같다면 이 책이 담고 있는 이런 소소한 학자들의 일화에 집중하는 것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다. 당시에 어떤 직업이든 비슷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게 연구에 집중하고 몰두하면서도 문어발식 연애에, 불륜까지, 존경받는 학자로서의 업적과는 별개로 아주 난봉꾼 같은 사생활을 유지한 물리학자들의 삶도 알 수 있다.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아인슈타인, 마리 퀴리까지도 말이다. 

자신의 연구에 집중하고 악기 연주, 연애 등 하고 싶은 일들을 즐기던 물리학자들의 생활과 관계는 전쟁을 겪으면서 급변한다. 특히 히틀러의 등장으로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학살이 벌어지면서 유대인이거나 유대인의 피가 섞인 학자들의 상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나빠지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나치 독일에 잘 보이지 않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연구와 일자리에서 배제되는 걸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히틀러를 지지하는 척이라도 하며 버티는 사람들과 미국이나 중립국으로 피신하는 사람들로 나뉘게 되는데 결국 이 두 부류는 원자폭탄의 개발로 진짜 적이 되어버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아마도 우리 인간은 어느 날, 우리가 정말로 지구를 완전히 파괴할 힘을 가졌음을 알게 될 거야. 심판의 날 또는 그 비슷한 것을 우리의 잘못으로 유발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될 테지."


- 『불확실성의 시대』 中 p.452


독일에 끝까지 남는 쪽을 택한 하이젠베르크가 친구에게 쓴 편지의 내용처럼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우리 인간이 가진 파괴의 힘은 증명이 되었다. 미국의 원자폭탄은 독일의 원자폭탄을 개발을 두려워한 아인슈타인이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에게 보낸 편지로 시작된 '맨해튼 프로젝트'를 통해서 만들어졌는데 결과적으로 독일은 원자폭탄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이 일을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불렀고...

과학 중에 제일 어렵다고 느꼈던 물리학, 『불확실성이 시대』를 통해 그 어려움을 다시금 실감하기도 했지만, 물리학자들의 삶과 노력에 경탄하면서 조금은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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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지성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 의식, 실재, 지능, 믿음, 시간, AI, 불멸 그리고 인간에 대한 대화
마르셀루 글레이제르 지음, 김명주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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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만 용기 있는 행동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우리는 어떤 것들을 이해했지만 다른 것들은 모릅니다. 그리고 여기가 경계선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일은 어렵지만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 솔직해지려면 이렇게 해야 합니다.


- 『위대한 지성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中 p.57


의식에 대한 신경과학자와 철학자의 논의를 시작으로 총 8개의 주제로 과학자와 인문학자의 대담을 기록한 『위대한 지성은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상호 간의 이해라는 건 우리가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한다는 걸 보여주는 책인 거 같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인정을 더 보태자면,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이 사람들의 대화를 나도 '어떤 것들은 이해했지만, 어떤 것들은 모르겠다. 그리고 그게 내 한계다'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 상대방의 의견을 열린 마음과 자세로 경청하는 상호 존중이 느껴지는 만큼 읽는 나도 집중해서 읽어냈지만, 아직도 알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는 걸 체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과학자들이 발견한 모든 자연법칙은 잠정적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더 근본적인 법칙의 근사치로 간주되죠. 새로운 실험 데이터가 발표되거나 새로운 가설이 제안될 때마다 그 법칙들은 끊임없이 수정됩니다. 사실 우리가 자연법칙이라고 부르는 건 자연법칙의 근사치로 불려야 합니다. 많은 과학자가 믿는 최종적이고 완벽한 자연법칙이 존재한다 해도 어느 한 순간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그 법칙들의 근사치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 『위대한 지성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中 p.165


지금의 과학적인 이론들이 언제든 수정되거나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새삼 스스로에 대해 느끼는 한계에 대해 위로가 되기도 했다. 

인간이 관계를 떠나서 생존하기 어려운 것처럼 우리가 연구하는 학문들도 분리되고 배타적인 실험과 논의만으로는 그 생명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실재, 지능, 영성, 시간 등을 놓고 과학과 철학, 종교, 작가 등의 지성들이 나누는 이 책 속의 대화는 바로 그걸 알려주고 싶어 하는 거 같았다. 화합이나 통합보다는 대립과 불화가 쉬운 시대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해하는 것들을 제대로 나눠야 우리 앞에 놓인 많은 문제들이 더 쉽게, 빠르게 해결될 수 있다고 말이다.  

대학의 학과와 학부들이 트렌드에 따라 막무가내로 합쳐지거나 사라지거나 하는 걸 볼 때마다 그 학과(학문)이 이제까지 지속된 역사와 이유가 있을 텐데 단지 인기가 없거나 취업이 잘되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저렇게 해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세상은 계속 달라져왔고 또 어떻게 달라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지금'이라는 이유로 좁고 편협한 시각에서 오래 지속된 학문과 연구, 그 가치를 치워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새로운 연구로 인한 지속적인 업데이트는 필요할 거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꼭 알아둬야 할 중요한 사실은, 오래전 아프리카 땅에서 두 발로 걷는 동물이 되었을 때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다른 멋진 면모들인 보살핌, 연민, 공감, 친사회성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서로 돌보고, 이웃을 죽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입니다. …


- 『위대한 지성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中 p.364


개인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문학적, 과학적 관점에서 세 학자가 대담을 펼친 마지막 장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늘 인간이라는 존재가 인간이기 위해서 지켜야 할 선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편이라서 그랬던 거 같다. 

나이가 들면서 인간으로서 이렇게 자동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능력이 없다는 게 절망스러울 때가 있다. 저절로 마음이 넓어지지도, 이해의 깊이가 깊어지지도, 포용력이 커지지도 않는다. 나이를 먹어도 저절로 나아지는 건 하나도 없다. 여전히 계속 배우고 노력해야 하고, 편협하거나 독선적이 되지 않기 위해 경계해야 한다.

저자가 『위대한 지성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통해서 말하고 싶은 건 우리가 계속 다양한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질문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야 하고 그것 자체로 우리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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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임 머신 - 수치심이 탄생시킨 혐오 시대, 그 이면의 거대 산업 생태계
캐시 오닐 지음, 김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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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첫 페이지에서 식료품점 점원이 저자에게 한 말이 강렬하게 남았던 『셰임 머신』. '진짜 이런 말을 이렇게 한다고?'라는 생각을 계속했다. 

세상에는 솔직의 탈을 쓰고 다른 사람의 기분은 안중에도 없이 말을 뱉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그런 말이 누군가에는 분명히 상처가 되고 수치심을 자극한다. 그 말이 팩트를 담고 있다면 때로는 그렇게 듣는 게 도움이 되지 않냐고 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상황도 있을 거다. 하지만,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어도 어떻게, 어떤 단어로 말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상대방에게 자극되는 부분은 차이가 생긴다. 정말 절대 다른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면 듣는 사람을 배려하는 방식으로 가는 게 맞지 않을까. 내가 듣기 싫은 말은 상대방도 싫다.

식료품 점원이 했던 말은 박사학위에 가까워졌다는 기쁨을 순식간에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저자를 혼란과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말을 한 사람, 들은 사람 누구도 좋은 상황이 아니다. 굳이 이래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 거대한 수치심 머신은 비만, 약물 중독, 가난, 허약함을 이용하기 위해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을 비난하고, 그 과정에서 힘과 시장 지분을 얻는다. 이들은 자신들의 희생양을 돈벌이로 삼거나 일회용품으로 취급하면서 보통 두 가지 전술을 결합해 쓴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릇된 전제를 복음처럼 받아들여 이 현상에 가담한다. 패배자는 잘못된 선택을 했으니 자기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렇게 충분히 후회해야 잘못된 행동을 고친다고 본다. 수치심은 강력하고 때로는 필요 이상으로 효과적이다.


- 『셰임 머신』 中 p.129


『셰임 머신』은 사회가 개개인이 가진 수치심을 자극하고 그걸 이용한 수익성 높은 시장을 만들어 고객을 등쳐 먹고 있는 사례들로 시작된다. 비만, 약물 중독, 빈곤, 외모 등을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딸린 문제로만 한정 짓고 이들을 낙인찍고 그들의 수치심을 자극해서 대형 제약회사, 약물 중독 치료소, 사채업자, 인플루언서 등이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지 보여준다. 더불어 이런 산업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어떻게 통계 수치를 조작하는지도 알려준다.

콤플렉스가 없는, 약점 하나 없는 인간은 없다. 우리 사회는 그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거기서 벗어나야 행복해질 거라고 얘기하고 그렇지 못하면 한심하다고 생각하게끔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런 수치심을 사업 기회로 잡아 엄청난 돈을 벌고 있는 여러 산업이 존재한다. 

이전에 『전쟁에서 살아남기』라는 책을 읽었을 때 전쟁이 얼마나 큰 비즈니스인가를 느끼고 이래서 전쟁이 사라지지 못하는구나 싶었는데 『셰임 머신』을 읽고 나니 혐오와 분란, 차별이라는 게 사라지길 바라지 않는 사람도 존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치심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주겠다며 생겨난 상품, 기업, 기관, 단체, 심지어 방송 프로그램들까지 모두 결국 추구하는 바는 자신들의 이익이니, 수치심에서 해방시켜주겠다는 그들의 달콤한 약속은 정말 이율배반적이다.  


온갖 비하가 판치는 시대에도 건전한 수치심은 여전히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힘은 꽉 닫힌 문과 창문이 아니라 활짝 열린 문과 창문을 통해 들어와야 한다. 친구들,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은 열린 문과 창문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해야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이들은 사랑을 담아 점잖게 수치심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빌 게이츠나 파우치 박사보다 훨씬 낫다. 그렇게 부드러운 독려만으로도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힘차게 나아갈 수 있다.


- 『셰임 머신』 中 p.232


수치심이 다 나쁜 건 아니다. 저자는 푸에블로 부족의 수치심 의식, 코로나 마스크 착용 등을 통해 적절한 수치심 자극으로 개선을 유도하는 사례들도 보여준다. 그 사례들 속에서의 수치심 자극은 나쁘다고 낙인을 찍는 게 아니라 잘못을 고치라고 충고하는 이벤트로서 기능한다. 다만, 이렇게 수치심이 건전하게 작용하려면 그 자극을 주는 사람들의 세심한 배려, 사려 깊음이 필요하다. 비난이 아니라 다정함이 기반이어야 한다.


도와주는 것보다 비난하는 게 훨씬 쉬운 법이다. 약자를 공격하는 담론은 골치 아픈 문제들을 사업 아이템으로 삼은 광범위한 생태계를 부추긴다. 피해자가 자책하고 그들의 노력이 실패할수록 사업가들은 부유해진다. 업체를 다시 찾는 고객은 황금알이다. 고객 각자가 겪는 처참한 실패는 수치심을 불어넣는 현실을 정당화한다. 


- 『셰임 머신』 中 p.283


영화 <굿 윌 헌팅>에서 교수 숀이 윌에게 'It's not your fault'라고 얘기해 주는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누군가가 무의식적으로 생각 없이, 혹은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나 행동 때문에 수치심에 시달리는 모두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졌다. 내가 소중히 여기지 않는, 지나가는 사람의 말 따위는 딱 무시해도 된다. 아울러 아무리 진실이라고 생각하더라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 한 번 더 고민해 보고 말했으면 좋겠다. 


- 같이 보면 좋은 기사 '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culture/10707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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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의 심리학 - 무력감을 털어내고 나답게 사는 심리 처방전
브릿 프랭크 지음, 김두완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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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벗어나고 싶어 하는 무기력에 대해서 조금 다른 관점을 제공하는 『무기력의 심리학』. 모든 게 재미없다는 생각이 어느 때보다 크게 드는 요즘 어쩌면 제일 필요한 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몸이 보내는 생존 신호로서의 무기력

이전에 직장에서의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두통약과 소화제를 매일 먹었던 적이 있었다. 아침에 머리가 아파서 진통제를 먹고 출근해서는 점심에는 소화가 안 되어서 소화제를 먹고 저녁에 퇴근해서 돌아와서는 여전히 낫지 않은 두통 때문에 두통약을 먹고 잠들었었다. 이게 몇 달이 지속되어 크게 몸이 안 좋아졌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뒤늦은 휴가를 가서 단, 하루도 아프지 않은 스스로를 보며 내가 몸이 아픈 게 아니라 마음과 정신이 정상이 아니고 이대로는 안된다는 신호가 매일의 두통과 소화불량으로 나타난 거라는 걸 알았다. 그때의 두통과 소화불량이 내 몸이 보내는 생존을 위한 신호였던 것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본능은 행복이 아닌 생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의 뇌는 위험을 감지하면 다양한 신호를 몸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낸다. 저자는 무기력이 바로 그런 신호라고 이야기하며, 그래서 무기력을 부정적인 것, 나쁜 것으로 바라보며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스스로 행복과 균형을 찾는 돌파구로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심을 두자고 한다.


그러나 수 세기 동안 여러 방면에서 진보가 이루어졌음에도, 웬일인지 무기력에 대한 인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게으름이란 표현은 우리 뇌가 나름의 작동방식으로 '선택'한 무기력을 여전히 도덕적인 잣대에 묶어 두고 있다. 무기력은 뇌의 선택이지 도덕의 문제가 아니다.


- 『무기력의 심리학』 中 p.73


| 관찰하기, 상태를 알기, 결정하기, 행동하기

우리는 모두 자신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어두운 사고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사고는 행동과 다르다. 우리는 긍정적인 사고를 항시 할 필요가 없다. 온전함을 버리고 이로움만을 추구하면 큰 대가를 치뤄야 한다. 늘 좋은 사람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마음과 분리되거나,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긍정성을 진정성보다 높이 사는 치유법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라는 것과 같다.


- 『무기력의 심리학』 中 p.127


저자는 각 챕터의 주제에 맞춰 변화를 위한 핵심 정리와 행동 규칙, 그리고 구체적인 도전 과제들을 제시하는데 결국 우리 스스로 관찰, 상태 파악, 그리고 결정과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기력에서 벗어나려면 자신과 관계, 그리고 감정 등에 대해 제대로 살펴보고, 감추거나 스스로 속이는 부분이 없는지 자문한 뒤 그에 따른 자신의 상태를 파악한다. 어디가 아픈지, 느낌은 어떤지 등등 몸이 보내는 신호에 집중해 보는 것이다. 이후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을 찾는다. 가장 쉬운 것부터 어려운 것까지 어떤 걸 선택할지 결정하고, 그다음에는 하나하나 실천해 본다. 

제일 중요한 건 자신에게 정직한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에게 있는 빛과 어두움(그림자)을 인정하고 그게 잘못되거나 나쁜 거라고 움츠러들지 않는 것, 아마 그것만으로도 무기력을 야기하는 관계나 감정, 중독, 트라우마 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 같다.


『무기력의 심리학』 中 p.290


책을 읽다가 '발을 디디고 있는 곳에 마음을 두기'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 '발을 디디고 있는 곳에 마음을 두'고 있는가? 내가 현재 느끼는 무기력은 그렇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러면 발을 디디고 마음을 둘 수 있는 곳으로 떠나야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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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 게임 - ‘좋아요’와 마녀사냥, 혐오와 폭력 이면의 절대적인 본능에 대하여
윌 스토 지음,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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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심리 상담을 하던 선생님이 나에게 장난처럼 인간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아서 누구보다 본인의 삶이 고달플 거라고 걱정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그냥 내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는 얘기를 에둘러 말씀하시는 건가 싶었는데 이 책 『지위 게임』을 읽으면서 내가 '도덕 게임'으로 사람들에게 지위를 부여하면서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저자 윌 스토는 '사람들이 우리를 추종하거나 존경하거나 추앙하거나 칭찬하거나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치도록 허락해 주는 상태'를 지위라고 정의하고 우리의 인생은 지배, 도덕, 성공의 세 가지 지위 추구 노력과 게임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이 중에서 '남달리 의무감이 강하고 순종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에게 지위'를 주는 도덕 게임이 내 삶의 전반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누군가를 판단할 때 그 사람이 가진 힘이나 재능, 지식보다는 확실히 인성을 중심에 두어 왔던 건 맞다. 특히 나는 쓸데없이 권력을 내세우는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인정은 하지만 가까워지고 싶어 크게 마음에 두지는 않았던 거 같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왜 선생님이 고달플 거라고 걱정하셨는지 명확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도덕 게임 속에서 스스로가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 옳다고 믿는 가치와 규칙 등을 저버리는 짓은 절대 할 수 없는 인간으로 살며 부단히 애써 왔고 앞으로도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그렇게 살 것이다. 아마 선생님은 이런 나를 꿰뚫어 보셨으리라.


우리는 본래 우위를 점하기를 좋아하도록 태어났다. 우리는 계속 우리의 게임이 정점에 머물도록 세상을 재편하려 하고, 그러는 내내 우리 행동에 오류가 없다는 자기중심적인 이야기를 스스로 들려준다.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할 교훈이 있다. 경쟁자와 그저 '평등'하기를 바란다고 주장하는 집단을 절대로 믿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집단은 무슨 말을 하든 무엇을 믿든 결코 평등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를 위한 공정'에 관해 환상적인 꿈을 만들지만 그 꿈은 거짓이다.


- 『지위 게임』 中 p.225



『지위 게임』에서는 자기에게 유리한 게임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려고 갖은 술수를 부리는 인간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각자가 가진 환경이나 능력치는 너무나 다양하고 그게 나쁘다고 해서 낮은 지위에 머물 생각은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이 높아질 수 있는 지위 게임을 한다. 그게 범죄이거나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는 대학살이라 하더라고 '뇌가 만드는 '현실에 대한 환상' 속에서' 스스로가 훌륭하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산다. 저자는 범죄자, 인플루언서, 그리고 독재자 등의 사례를 들어 인간 본성에 기반을 둔 지위 게임이 어떤 사건, 상황까지 야기할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공식적인 게임을 하도록 진화하지 않았고 이렇게 극단적으로 게임을 하도록 진화하지도 않았다. 다만 우리는 억울함을 느끼도록 진화했다. 먼 옛날에는 이 위험한 정서로 인해 부족이 굴러가고 계층이 폭이 얕게 유지되었다. 위에서 으스대면서 자격도 없이 지위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벌주었다. 오늘날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들이 자극하는 억울함은 세상에 관한 우리의 이야기를 틀어지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야기에 손가락질하고 비난의 화살을 돌릴 악당을 덧붙이고, 우리 나름의 정의감과 시기심에 차 그를 향한 조롱의 노래를 부른다. 


- 『지위 게임』 中 p.145


진화적이고 역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지위를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불평등을 혐오하기는 하나 언제나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높이 올라가려고 하는 게 바로 인간이다. 그래서 윌 스토는 우리의 인생이 '결승선이 없는 게임'이고 우리는 '끝없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며 즐거움을 얻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위 게임이 어쩔 수 없는 본성이라면 결국 우리는 각자의 게임을 바르게 해나가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신념에 함몰되지 않는 것, 무엇보다 그게 중요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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