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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지성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 의식, 실재, 지능, 믿음, 시간, AI, 불멸 그리고 인간에 대한 대화
마르셀루 글레이제르 지음, 김명주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4월
평점 :
어렵지만 용기 있는 행동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우리는 어떤 것들을 이해했지만 다른 것들은 모릅니다. 그리고 여기가 경계선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일은 어렵지만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 솔직해지려면 이렇게 해야 합니다.
- 『위대한 지성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中 p.57
의식에 대한 신경과학자와 철학자의 논의를 시작으로 총 8개의 주제로 과학자와 인문학자의 대담을 기록한 『위대한 지성은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상호 간의 이해라는 건 우리가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한다는 걸 보여주는 책인 거 같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인정을 더 보태자면,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이 사람들의 대화를 나도 '어떤 것들은 이해했지만, 어떤 것들은 모르겠다. 그리고 그게 내 한계다'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 상대방의 의견을 열린 마음과 자세로 경청하는 상호 존중이 느껴지는 만큼 읽는 나도 집중해서 읽어냈지만, 아직도 알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는 걸 체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과학자들이 발견한 모든 자연법칙은 잠정적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더 근본적인 법칙의 근사치로 간주되죠. 새로운 실험 데이터가 발표되거나 새로운 가설이 제안될 때마다 그 법칙들은 끊임없이 수정됩니다. 사실 우리가 자연법칙이라고 부르는 건 자연법칙의 근사치로 불려야 합니다. 많은 과학자가 믿는 최종적이고 완벽한 자연법칙이 존재한다 해도 어느 한 순간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그 법칙들의 근사치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 『위대한 지성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中 p.165
지금의 과학적인 이론들이 언제든 수정되거나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새삼 스스로에 대해 느끼는 한계에 대해 위로가 되기도 했다.
인간이 관계를 떠나서 생존하기 어려운 것처럼 우리가 연구하는 학문들도 분리되고 배타적인 실험과 논의만으로는 그 생명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실재, 지능, 영성, 시간 등을 놓고 과학과 철학, 종교, 작가 등의 지성들이 나누는 이 책 속의 대화는 바로 그걸 알려주고 싶어 하는 거 같았다. 화합이나 통합보다는 대립과 불화가 쉬운 시대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해하는 것들을 제대로 나눠야 우리 앞에 놓인 많은 문제들이 더 쉽게, 빠르게 해결될 수 있다고 말이다.
대학의 학과와 학부들이 트렌드에 따라 막무가내로 합쳐지거나 사라지거나 하는 걸 볼 때마다 그 학과(학문)이 이제까지 지속된 역사와 이유가 있을 텐데 단지 인기가 없거나 취업이 잘되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저렇게 해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세상은 계속 달라져왔고 또 어떻게 달라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지금'이라는 이유로 좁고 편협한 시각에서 오래 지속된 학문과 연구, 그 가치를 치워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새로운 연구로 인한 지속적인 업데이트는 필요할 거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꼭 알아둬야 할 중요한 사실은, 오래전 아프리카 땅에서 두 발로 걷는 동물이 되었을 때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다른 멋진 면모들인 보살핌, 연민, 공감, 친사회성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서로 돌보고, 이웃을 죽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입니다. …
- 『위대한 지성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中 p.364
개인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문학적, 과학적 관점에서 세 학자가 대담을 펼친 마지막 장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늘 인간이라는 존재가 인간이기 위해서 지켜야 할 선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편이라서 그랬던 거 같다.
나이가 들면서 인간으로서 이렇게 자동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능력이 없다는 게 절망스러울 때가 있다. 저절로 마음이 넓어지지도, 이해의 깊이가 깊어지지도, 포용력이 커지지도 않는다. 나이를 먹어도 저절로 나아지는 건 하나도 없다. 여전히 계속 배우고 노력해야 하고, 편협하거나 독선적이 되지 않기 위해 경계해야 한다.
저자가 『위대한 지성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통해서 말하고 싶은 건 우리가 계속 다양한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질문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야 하고 그것 자체로 우리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거 아닐까.
★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