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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시대 - 찬란하고 어두웠던 물리학의 시대 1900~1945
토비아스 휘터 지음, 배명자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5월
평점 :
1900년부터 1945년까지 세계 물리학의 흐름과 이를 주도했던 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불확실성의 시대』. 고등학교에서 배웠던 총 4과목의 과학 중 제일 힘들었던 게 '물리'였던 만큼 읽기 전부터 이 책을 온전히 끝까지 읽어내는 것 자체가 도전이겠구나 싶었다. 그 우려를 딛고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던 건 어려운 물리학의 이론들을 그걸 연구하고 성취해 낸 학자들의 개인적인 이야기 속에 같이 녹여낸 드라마틱한 구성 덕분이었다.
읽는 내내 단지 맞고 틀림이 아닌 여러 다양한 이론들의 공존을 인정하고 개별 이론들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연구를 지속해가는 학자들의 지난한 끈질김이 존경스러웠다. 자신의 주장과 다르다고 배척하는 게 아니라 새롭게 생각해낸 이론 등에 대한 의견을 끊임없이 주고받는 열린 마음과 자세가 45년간의 물리학의 눈부신 발전을 가능하게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세상에도 영향을 주고 있고...

물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이론이 하나 있다. 이론물리학자와 실험물리학자 사이에 '천재 보존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이론이다. 천재 이론가가 한 명 있으면, 멍청한 실험가가 한 명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파울리는 이 이론의 살아 있는 증거이다.
- 『불확실성의 시대』 中 p.353
가끔 지인들하고 얘기하는 '진상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어느 조직이든 모임이든 일정한 수의 진상이 존재하고 만일 진상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바로 '내'가 진상일 확률이 높다는 것...! 물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한다고 언급된 '천재 보존의 법칙'을 읽으면서 '진상 질량 보존의 법칙'이 떠올랐다. 물론 두 법칙은 좀 차이가 있다. '천재 보존의 법칙'은 한 사람이 천재 이론가이면서 똑똑한 실험가가 되기는 어렵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언급된 파울리라는 학자는 천재 이론가이기는 했지만, 자신이 손을 대지 않아도 같은 장소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파괴지왕의 능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물리학 얘기가 너무 머리 아플 거 같다면 이 책이 담고 있는 이런 소소한 학자들의 일화에 집중하는 것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다. 당시에 어떤 직업이든 비슷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게 연구에 집중하고 몰두하면서도 문어발식 연애에, 불륜까지, 존경받는 학자로서의 업적과는 별개로 아주 난봉꾼 같은 사생활을 유지한 물리학자들의 삶도 알 수 있다.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아인슈타인, 마리 퀴리까지도 말이다.
자신의 연구에 집중하고 악기 연주, 연애 등 하고 싶은 일들을 즐기던 물리학자들의 생활과 관계는 전쟁을 겪으면서 급변한다. 특히 히틀러의 등장으로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학살이 벌어지면서 유대인이거나 유대인의 피가 섞인 학자들의 상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나빠지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나치 독일에 잘 보이지 않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연구와 일자리에서 배제되는 걸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히틀러를 지지하는 척이라도 하며 버티는 사람들과 미국이나 중립국으로 피신하는 사람들로 나뉘게 되는데 결국 이 두 부류는 원자폭탄의 개발로 진짜 적이 되어버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아마도 우리 인간은 어느 날, 우리가 정말로 지구를 완전히 파괴할 힘을 가졌음을 알게 될 거야. 심판의 날 또는 그 비슷한 것을 우리의 잘못으로 유발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될 테지."
- 『불확실성의 시대』 中 p.452
독일에 끝까지 남는 쪽을 택한 하이젠베르크가 친구에게 쓴 편지의 내용처럼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우리 인간이 가진 파괴의 힘은 증명이 되었다. 미국의 원자폭탄은 독일의 원자폭탄을 개발을 두려워한 아인슈타인이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에게 보낸 편지로 시작된 '맨해튼 프로젝트'를 통해서 만들어졌는데 결과적으로 독일은 원자폭탄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이 일을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불렀고...
과학 중에 제일 어렵다고 느꼈던 물리학, 『불확실성이 시대』를 통해 그 어려움을 다시금 실감하기도 했지만, 물리학자들의 삶과 노력에 경탄하면서 조금은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