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하는 뇌 -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단 하나, 상상에 관한 안내서
애덤 지먼 지음, 이은경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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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능력 저하에 걱정이 많은 분들을 접하는 일을 하며 치매 관련 교육까지 계속 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뇌에 관련된 궁금증도 많아졌다. 뇌 MRI 촬영을 하면 다양한 부위의 수치가 나오는데 어떤 수치는 정상 범위에 있지만, 꽤 많은 부위가 위험 범위에 들기도 한다. 대뇌 피질 위축 지수는 괜찮지만, 대뇌 백질 신호는 위험하게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한 수치가 정상인 범위에 있어도 많은 분들이 다시 심층 검진을 받겠다고 한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뇌, 인지에 대해서 공포스러울 정도의 걱정을 안게 되었을까?

이런 의문 중에 보게 된 『상상하는 뇌』는 뇌의 구조와 작동 시스템, 그리고 뇌를 통해 보는 인류 진화의 흐름까지 예상보다 많은 부분을 아우르는 책이었다. 저자가 의사인 만큼 흥미로운 연구들과 현장에서 만난 스스로 뇌사라고 믿는 환자 등의 난감한 사례들도 담겨있었다.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예측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뇌가 낯선 문제에 참신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다면 아주 유리할 것이다. 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모델을 다듬고 개선해 나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우리 인간은 참신한 상상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왔다. 무엇보다는 우리는 이를 혼자가 아니라 함께 했다.

- 『상상하는 뇌』 中 p.151


인류는 스스로 상상하고 생각하는 능력을 발휘함과 동시에 그 상상과 생각을 타인과 함께 다듬어 세상에 적용하는 사회적 상상력을 키워왔다. 그래서 인류가 진화하며 사회도 발전해 온 것. 단순히 특출난 상상만이 아니라 그에 대해 공감하고 고민할 줄 아는 정서적인 능력까지 같이 작동해서 우리가 이룩한 게 지금 이 세상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3부: 상상하는 그림자, 부유하는 뇌'가 가장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상상이 어떤 실제적인 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를 다룬 9장과 심상, 마음의 눈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10장이 재미있었다. 아직도 혼자 있을 때 상상 속의 친구를 옆에 앉힐 수 있는 나 같은 사람은 어떤 걸 마음으로는 그려내지 못한다는-상상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게 참 신기한데 그런 사람들이 세계 최대의 창작 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픽사와 디즈니의 애니메이터라는 것도 놀라웠다.


정신 연습을 하는 음악가나 운동선수는 마음속에서 '느끼고', '움직이며', 악기의 소리를 '듣고', 운동장을 '보는' 경험을 한다. 정신 연습은 이처럼 다양한 감각 정보를 동원하고 이에 상응하는 모든 뇌 영역이 관여한다. 이는 행동을 '상상'하는 것이 어떻게 실제 수행 능력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 『상상하는 뇌』 中 p.315


긴 연휴에 오랜만에 가죽공예 작업을 했다. 단순한 거긴 했지만, 거의 2년 정도를 쉬었다 하는 거라 나름 긴장이 되어서 전체 조립 바느질을 하기 전에 머릿속으로 계속 순서와 방향을 시뮬레이션 해보고 최적의 방법을 찾았다. 덕분인지 큰 실수 없이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런 정신, 마음, 상상으로 하는 연습에도 실제 행동했을 때 작동하는 것과 동일한 뇌 영역이 반응한다고 한다. 그래서 수행이 이루어졌을 때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단다. 그냥 단순한 습관 같은 거였는데 이리 괜찮은 연습 방법이었다니... 같은 맥락에서 긍정적인 믿음이 치료로 이어지는 '플라세보' 효과도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저자의 말대로 '상상력은 강력한 약물'일 수 있겠다.




어쩌면 상상이 우리를 지금까지 존재하게 만들어줬는지 모르겠다. 어떤 문제에 부딪쳤을 때, 어떤 일을 실행하기 전에 우리는 여러 가지 플랜들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면서 답을 찾고, 길을 찾아 나간다. 그런 걸 수없이 반복하면서 꼭 정답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러니까 다소 쓸데없이 느껴지는 순간에도 상상하는 걸 멈추지 말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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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딸들의 완벽한 범죄
테스 샤프 지음, 고상숙 옮김 / 북레시피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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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노라가 엄마가 살면서 저질렀던 일들은 범죄다. 엄마가 물색해 온 대상에게 완전 범죄의 사기를 실행하기 위한 완벽한 파트너로 키워진 노라가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양아버지 레이먼드에게, 자신을 성추행한 조셉에게 저지른 일은 범죄일까? 

남자와 사기, 두 가지 밖에 몰랐던 엄마는 노라에게 레베카, 사만다, 헤일리, 케이티, 애슐리 등 매번 다른 이름과 상황, 성격을 부여한 소녀들을 연기하도록 종용한다. 착한 딸, 쓸모 있는 인정받는 존재이고 싶었던 노라는 꽤 괜찮은 파트너로 성장한다. 아버지가 다른 언니 리를 만나고 자신 이전에 언니가 엄마의 파트너였고, 범죄와 엄마에게서 완전히 벗어난 언니가 자신도 그렇게 만들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달은 노라는 급이 다른 범죄자 레이먼드와 엄마의 결혼을 기점으로 탈출을 결심하고 실행한다. 이후 언니와 함께 이전과는 다른 일상을 이어가던 그녀는 은행강도에게 인질로 잡히게 되고, 스스로와 다른 사람들을 구하게 위해 과거의 자신을 소환한다.



없어진 돈 때문에 엄마가 레이먼드에게 무기력하게 폭행당하던 날, 노라는 엄마를 향한 총구 앞을 막아서며 자신이 그 돈을 가져간 것처럼 유인한다. 그리고 결국 어설프게나마 레이먼드를 제압하고 피를 흘리면서도 그를 찾는 엄마를 침대에 눕히고 FBI가 레이먼드를 체포할 수 있는 증거를 챙겨 언니와 도주한다. 여기서 노라가 레이먼드에게 저지른 짓은 범죄인가? 생존을 위한 행동은 어디까지 괜찮은 걸까?

이야기는 노라의 과거와 은행강도에게 인질로 잡힌 노라의 현재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노라의 감추고 싶은 거 투성이인 과거는 결국 사랑하는 아이리스에게까지 다 드러나는 상황이 되는데 오히려 그렇게 되어 서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관계로 나아간다. 



노라에게는 엄마라는 가족이 가장 큰 가해자였다. 하지만 가장 큰 구원자도 가족인 언니였다. 그래서 언니와 자신, 그리고 새롭게 꾸린 삶을 지키기 위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패 하나 감추는 건 노라에게 필요한 일이었다. FBI와 언니에게까지 감춘 레이먼드의 USB, 은행 강도 사건에서 챙긴 안전금고 열쇠 2개, 왜 저걸 계속 감출까 했을 때, 노라가 엄마와의 면회에서 USB를 이용하는 걸 보면서 어쩌면 영원히,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는 과거의 유산(?) 때문에 이건 버릴 수 없는 그녀의 습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차게 엄마를 상대했지만 면회를 마치고 로비에서 엉엉 우는 노라가 안쓰러웠다. 


필요하다면 싸울 것이다. 레이먼드가 내 뒤를 쫓아온다면, 머리 회전은 빠르지만 제대로 총을 쏘지는 못했던, 공포에 떠는 애슐리를 맞이하는 대신 내가 나의 분신으로 살았던 모든 소녀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레베카는 나에게 거짓말하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사만다는 숨는 법을 가르쳐주었으며, 헤일리는 싸우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케이티는 나에게 두려움을 가르쳐주었고 애슐리는 생존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노라는 지금까지 배운 모든 것들을 실행에 옮겼다.

- 『완벽한 딸들의 완벽한 범죄』 中 p.465


감옥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노라의 목숨을 노리는 레이먼드가 있지만, 그녀를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언니, 웨스, 아이리스가 있고, 무엇보다 그녀 자체가 생존에 특화되어 있어서 원하는 대로 소중한 사람들과 일상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범죄와 경계가 모호한 일들에서도 벗어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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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죽은 남자 목요일 살인 클럽
리처드 오스먼 지음, 공보경 옮김 / 살림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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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인 『두 번 죽는 남자』는 엘리자베스가 전남편인 더글러스로부터 편지를 받으며 시작된다. 여기서 엘리자베스가 전직 MI5 요원이었음이 드러나는데 불법 거래 중개상 마틴으로부터 무려 2,000만 파운드 상당의 다이아몬드를 훔친 전남편 더글러스는 절도 혐의를 부인하며 신변 보호를 핑계로 쿠퍼스 체이스로 오고, 엘리자베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다이아몬드의 행방을 캐기 위해 침입했던 킬러가 경호 요원 퍼피의 총에 사망하면서 더글러스는 새로운 안전 가옥으로 옮겨가게 되고, 더글러스의 문자를 받고 안전가옥에 찾아간 엘리자베스와 조이스는 퍼피와 더글러스의 시신을 마주한다. 누가 그들을 죽였고, 과연 다이아몬드는 어디에 있을까?



『두 번 죽은 남자』는 더글러스의 사건과 더불어 폭행에 절도까지 당하고 입원한 이브라힘, 크리스와 도나가 감시하던 마약상 코니, 다이아몬드를 도난당한 마틴과 마피아 프랭크의 사연까지 얽혀 한층 스펙터클한 느낌을 준다. 덕분에 1편보다 좀 더 흥미진진하기도 하고 복잡하게 얽히는 애정전선에 사랑 얘기는 2편에서도 빠질 수 없다는 게 느껴진다. 체포되어 출소 후 복수를 다짐하는 코니에게 '내 나이가 일흔다섯이고, 당신은 감옥에서 30년은 썩을 거 같으니 마음대로 하셔'라는 론의 말에서 이 용감하기 짝이 없는 '목요일 살인 클럽', 네 분의 활약을 응원하는 마음이 더 커지는 거 같다. 

원작의 느낌을 잘 살린 캐스팅이기는 한데 영화는 어떨지 궁금하다. 하지만 영화가 원작을 능가하는 경우가 드물어서 어쩌면 원작을 다 읽은 사람은 영화는 패스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버타운에서 노년을 보내는, 청춘을 각자의 분야에서 치열하게 보낸 시니어들의 인생 2막이 궁금하다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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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살인 클럽 목요일 살인 클럽
리처드 오스먼 지음, 공보경 옮김 / 살림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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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서 동명의 영화 티저를 보고 원작이 있다고 해서 찾아보게 된 『목요일 살인 클럽』. 피어스 브로스넌, 헬렌 미렌, 벤 킹슬리 등 출연 배우들도 괜찮아 보여서 더 궁금했다. 

영국에서 일곱 번째 수준의 고급 실버타운 쿠퍼스 체이스에 거주하는 엘리자베스, 론, 조이스, 이브라힘, 네 사람은 매주 목요일마다 퍼즐실에 모여 경찰의 사건 파일을 들여다보며 순전히 즐거움을 위해 함께 해결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 '목요일 살인 클럽'의 초기 멤버였던 페니는 경찰이었으나 현재는 타운 내 요양병원인 윌로우즈에 의식 없이 누워있다. 파일로만 사건을 접하던 이들에게 실버타운의 개발자이자 소유주인 이안의 건축업자 토니가 맞아 죽는 사건이 벌어지고, 뒤이어 실버타운 내 수녀들의 묘지 이장을 막는 입주민들과 대치하던 상황에서 주요 용의자였던 이안까지 사망하게 된다. 목요일 살인 클럽의 멤버들은 사건에 관여하기 위해서 쿠퍼스 체이스에 한 번씩 강연하러 오던 도나 순경을 살인 사건 수사본부에 합류시키는데 성공하고, 나름의 인맥과 재능을 발휘하여 조금씩 사건의 진상에 다가간다. 



읽으면서 어떤 배우가 어떤 역할일지 딱 느껴져서 한층 즐거웠다. 이렇게 찰떡같은 캐스팅이라니... 이야기 안에서 -거의 작가가 의도한 대로- 용의선상에 이 사람, 저 사람 올려놓고 헤매다 보면, 예상치 못한 진범의 정체와 그 결말에 이르게 된다. 이안을 죽인 범인의 정체, 그 이유, 그리고 사람 따뜻한 조이스로 인해 이 소설이 '어쩌면 연애 소설'이지 않을까라는 문구가 나온 거 같다.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클럽의 리더 엘리자베스의 전직이 내내 궁금증을 자아내는데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면 과연 진범의 정체를 엘리자베스가 몰랐을까에 더해 조이스는 대체 진범의 정체를 어떻게 알아챈 것인가라는 의문까지 남는다. 하여간 대단한 액티브 시니어들이심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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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들의 땅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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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작은 시골 마을 용징에 사는 천가네와 그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귀신들의 땅』.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천가네 일곱 남매의 아버지 아산 때문에 마음이 아팠고, 그들의 어머니 아찬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당신이 그들의 어머니였는데라는 생각이 더 강해서 그랬던 거 같다. 

이야기는 주로 일곱 남매 중 한 명이 돌아가며 화자가 되어 끌어간다. 첫째 딸로 태어나 공부가 싫어 공장에 들어가 일하다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결혼하게 된 수메이, 공무원이 되어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둘째 수리, 유명한 남편 덕에 부유하게 살지만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셋째 수칭, 동생을 질투하여 그 약혼자를 가로챘지만 영원히 스스로의 감옥에 갇힌 쑤제, 모두가 부러워할 정도의 미모와 수완에도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 차오메이, 그렇게 바라던 집안의 첫째 아들이였지만 능력 밖의 허황된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톈이, 상까지 받은 소설가에서 동성 배우자의 살해자가 된 톈홍... 이야기의 중심은 이 중 막내아들 톈홍에게 맞춰져 있지만, 결국 독자들은 퍼즐 맞추듯 남매들의 삶, 이 가족의 삶 전체를 조망하게 된다.



읽을수록 궁금증이 하나씩 풀려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보니 '왜 누군가의 이야기는 없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때쯤 바로 그 인물이 화자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런 구성이 이 소설의 특별함이기도 하다. 만일 천가네 가족들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늘어놨다면 몰입감이나 마지막에 밀려오는 딱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쓰나미는 없었을 거 같다. 천가네 가족뿐 아니라 그들과 얽히는 왕가네 큰 아들 징쯔총, 톈홍의 친구 샤오촨, 그리고 뱀 잡는 사내 등 다들 나름대로 안고 있는 아픔과 사연이 당시 역사적 배경과 맞물려 누구에게도 뭐라 할 수 없는, 그저 연민 가득한 마음을 안게 만든다.  



아들만 낳으면 모든 게 좋아질 줄 알았던 엄마 아찬, 사랑하는 사람과 조용히 살고 싶었던 아빠 아산은 마지막 장을 넘길 때 가장 충격적인 반전을 만들어 준다. 아마 이 천가네 부모들 때문에 마케터 분이 너무 재미있고, 너무 슬픈 책이라고 말씀하신 게 아닐까 싶다.

작가의 말을 읽고 나니 혹시 자전적 소설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 용징에서 아홉 번째 아이로 태어난 저자가 이 소설을 통해 오래 마음에 품어온 것들을 내려놓은 느낌도 있어서 왠지 다행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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