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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들의 땅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3년 12월
평점 :
대만의 작은 시골 마을 용징에 사는 천가네와 그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귀신들의 땅』.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천가네 일곱 남매의 아버지 아산 때문에 마음이 아팠고, 그들의 어머니 아찬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당신이 그들의 어머니였는데라는 생각이 더 강해서 그랬던 거 같다.
이야기는 주로 일곱 남매 중 한 명이 돌아가며 화자가 되어 끌어간다. 첫째 딸로 태어나 공부가 싫어 공장에 들어가 일하다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결혼하게 된 수메이, 공무원이 되어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둘째 수리, 유명한 남편 덕에 부유하게 살지만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셋째 수칭, 동생을 질투하여 그 약혼자를 가로챘지만 영원히 스스로의 감옥에 갇힌 쑤제, 모두가 부러워할 정도의 미모와 수완에도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 차오메이, 그렇게 바라던 집안의 첫째 아들이였지만 능력 밖의 허황된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톈이, 상까지 받은 소설가에서 동성 배우자의 살해자가 된 톈홍... 이야기의 중심은 이 중 막내아들 톈홍에게 맞춰져 있지만, 결국 독자들은 퍼즐 맞추듯 남매들의 삶, 이 가족의 삶 전체를 조망하게 된다.

읽을수록 궁금증이 하나씩 풀려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보니 '왜 누군가의 이야기는 없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때쯤 바로 그 인물이 화자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런 구성이 이 소설의 특별함이기도 하다. 만일 천가네 가족들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늘어놨다면 몰입감이나 마지막에 밀려오는 딱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쓰나미는 없었을 거 같다. 천가네 가족뿐 아니라 그들과 얽히는 왕가네 큰 아들 징쯔총, 톈홍의 친구 샤오촨, 그리고 뱀 잡는 사내 등 다들 나름대로 안고 있는 아픔과 사연이 당시 역사적 배경과 맞물려 누구에게도 뭐라 할 수 없는, 그저 연민 가득한 마음을 안게 만든다.

아들만 낳으면 모든 게 좋아질 줄 알았던 엄마 아찬, 사랑하는 사람과 조용히 살고 싶었던 아빠 아산은 마지막 장을 넘길 때 가장 충격적인 반전을 만들어 준다. 아마 이 천가네 부모들 때문에 마케터 분이 너무 재미있고, 너무 슬픈 책이라고 말씀하신 게 아닐까 싶다.
작가의 말을 읽고 나니 혹시 자전적 소설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 용징에서 아홉 번째 아이로 태어난 저자가 이 소설을 통해 오래 마음에 품어온 것들을 내려놓은 느낌도 있어서 왠지 다행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