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구원한 사람, 사회가 외면한 사람
사랑 이야기에서 두 사람만 바라본다. 그러나 서리꽃의 한가운데에는 말없는 세 번째 존재가 있다. 두 사람의 선택을 바꾸는 돈이다. 이재이와 윤소인의 사랑이 진실할수록 가로막는 현실도 선명해진다.
시작은 아름답다. 이재이의 시에 윤소인이 반 고흐의 밤하늘을 빌려 그림을 그린다. 타인의 문장을 자기 색으로 옮기는 일. 이보다 근사한 사랑의 비유가 있을까. 다섯 해 뒤 다시 만난 자리에는 시와 그림보다 빚과 가족의 기대가 먼저 따라온다. 윤소인에게는 아버지의 죽음 뒤 견딘 생활이, 이재이에게는 사람마저 재산으로 재단하는 집안이 있다.
이재이가 경영학 대신 철학을 택한 사실도 오묘하다. 아버지는 무엇을 얼마나 소유했는지 묻는다. 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는다. 윤소인은 질문할 여유조차 빼앗긴 채 생계를 견딘다. 같은 시대에도 누구에게는 삶이 사유의 대상인데 또 다른 누구에게는 매일 통과해야 할 시험인 것이다. 비대칭 앞에서 사랑을 그저 운명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이재이는 형과 밀약을 맺고 윤소인의 빚과 치료 문제를 풀려 한다. 사랑이 말에서 행동으로 바뀌는 영화같은 장면이다. 나만의 질문 하나가 남는다. 충분한 자원을 가진 집안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윤소인에게도 회복의 기회가 왔을까. 한 인간의 생존이 다른 인간의 선의에 기대야 한다면 헌신을 칭찬하는 만큼 의존을 낳은 현실도 물어야 한다.
서리꽃은 사랑의 힘을 믿게 한다. 한계도 떠올리게 한다. 사랑은 아픈 사람 곁을 지킬 수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아플 때 쉴 권리까지 마련해 주지는 못한다. 고통 속에서 빛난 마음을 존중하는 일과 고통 자체를 아름답다고 말하는 일은 다르다.
서리꽃은 추위 속에서 피어난다. 그렇지만 꽃이 아름답다는 이유로 추위까지 미화할 수는 없다. 책장을 덮으며 떠오른 질문이 있다. 우리는 누군가를 구해낸 사랑에는 쉽게 감동하면서 왜 구원받아야만 했는지는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는가.
“본 서평은 해냄출판사 『서리꽃』 독자서평대회 응모작으로, 선정 시 상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