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꽃 세트 - 전2권 (한정판 케이스 + 조정래 작가노트)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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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구원한 사람, 사회가 외면한 사람


사랑 이야기에서 두 사람만 바라본다. 그러나 서리꽃의 한가운데에는 말없는 세 번째 존재가 있다. 두 사람의 선택을 바꾸는 돈이다. 이재이와 윤소인의 사랑이 진실할수록 가로막는 현실도 선명해진다.


시작은 아름답다. 이재이의 시에 윤소인이 반 고흐의 밤하늘을 빌려 그림을 그린다. 타인의 문장을 자기 색으로 옮기는 일. 이보다 근사한 사랑의 비유가 있을까. 다섯 해 뒤 다시 만난 자리에는 시와 그림보다 빚과 가족의 기대가 먼저 따라온다. 윤소인에게는 아버지의 죽음 뒤 견딘 생활이, 이재이에게는 사람마저 재산으로 재단하는 집안이 있다.


이재이가 경영학 대신 철학을 택한 사실도 오묘하다. 아버지는 무엇을 얼마나 소유했는지 묻는다. 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는다. 윤소인은 질문할 여유조차 빼앗긴 채 생계를 견딘다. 같은 시대에도 누구에게는 삶이 사유의 대상인데 또 다른 누구에게는 매일 통과해야 할 시험인 것이다. 비대칭 앞에서 사랑을 그저 운명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이재이는 형과 밀약을 맺고 윤소인의 빚과 치료 문제를 풀려 한다. 사랑이 말에서 행동으로 바뀌는 영화같은 장면이다. 나만의 질문 하나가 남는다. 충분한 자원을 가진 집안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윤소인에게도 회복의 기회가 왔을까. 한 인간의 생존이 다른 인간의 선의에 기대야 한다면 헌신을 칭찬하는 만큼 의존을 낳은 현실도 물어야 한다.


서리꽃은 사랑의 힘을 믿게 한다. 한계도 떠올리게 한다. 사랑은 아픈 사람 곁을 지킬 수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아플 때 쉴 권리까지 마련해 주지는 못한다. 고통 속에서 빛난 마음을 존중하는 일과 고통 자체를 아름답다고 말하는 일은 다르다.


서리꽃은 추위 속에서 피어난다. 그렇지만 꽃이 아름답다는 이유로 추위까지 미화할 수는 없다. 책장을 덮으며 떠오른 질문이 있다. 우리는 누군가를 구해낸 사랑에는 쉽게 감동하면서 왜 구원받아야만 했는지는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는가.


“본 서평은 해냄출판사 『서리꽃』 독자서평대회 응모작으로, 선정 시 상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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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타이거!
앨프리드 베스터 지음, 해도연 옮김, 듀나 해설 / 다산책방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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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프리드 베스터 타이거! 타이거!

우주도, 순간이동도, 전쟁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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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무언가를 미워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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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타이거!의 시작은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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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기.

우주선 노마드호에 홀로 남겨진 삼등 항해사 걸리버 포일은 170일 동안 죽음 가까이에서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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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구조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온다.

지나가던 보르가호가 그의 구조 신호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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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지나가버린다.

포일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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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야망도 없고, 대단한 능력도 없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도 없다.

‘평범함조차 특징이 되지 못하는 인간’처럼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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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순간 한 가지가 생긴다.

복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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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좋은 목표가 사람을 성장시킨다고 생각한다.

꿈이 있어야 노력하고,

의미 있는 목적이 있어야 자신을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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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일은 정반대다.

증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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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하기 위해 배우고, 생각하고,

몸을 단련하고, 언어를 익히고,

사람을 읽는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던 인간이

누군가를 파괴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한계를 계속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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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불편했다.

불편함 때문에 생각하게 됐다.

사람을 바꾸는 힘은 반드시 아름다운 감정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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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삶도 꼭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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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을 당해서 공부하기 시작한 사람도 있고,

가난이 싫어서 돈을 벌기 시작한 사람도 있으며,

실패한 자신이 싫어서 운동을 시작한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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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사랑보다 열등감 때문에 더 멀리 간다.

감정에는 도덕이 있지만 에너지에는 도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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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도 인간을 움직인다.

어디로 움직이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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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포일을 보며 생각했다.

복수를 위해 자신의 능력을 키웠지만,

복수의 대상보다 자신이 더 커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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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보르가호 하나만 파괴하면 되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계속 변화하다 보니 기업과 전쟁,

권력과 인류의 미래까지 그의 삶 안으로 들어온다.

목적이 인간을 성장시켰는데

성장한 인간이 처음의 목적을 초과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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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가장 좋았다.

삶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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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취업하려고 공부했던 기술이 세상을 보는 방식이 되고,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투자가 인간의 탐욕과 공포를 공부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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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를 분석하다 보면 조직과 사람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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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의 이유와 도착의 이유는 같을 필요가 없다.

성장이란 처음 품었던 목적을 끝까지 잘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한 자신이 과거의 목적보다 커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타이거! 타이거!는 ‘인간의 목적이 어떻게 진화하는가’를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포일을 성장 서사의 멋진 주인공으로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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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이고 잔혹하며 타인을 수단처럼 취급한다.

지금의 감각으로 읽으면 인물과 여성에 대한 몇몇 묘사는 상당히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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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베스터는 좋은 사람이 성장하는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

위험한 인간에게 엄청난 능력이 생겼을 때 무엇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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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의 발전과 인간의 발전은 같은 것이 아니다.

기술이 발전했다고 사회가 성숙해지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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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기의 사람들은 순간이동이라는 놀라운 능력을 얻지만 범죄와 통제,

계급과 전쟁은 사라지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이 오래된 인간의 욕망과 결합하면서 더 기괴한 세계가 만들어진다.

지금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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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발전한다고 인간이 더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진다고 좋은 판단을 하는 것도 아니다.

기술은 인간을 대신해서 성숙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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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인간에게 주는 것은 새로운 능력이다.

능력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는 인간에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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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파이어 같은 무기도, 행성 간 전쟁도 아니었다.

능력을 얻은 인간이었다.

가장 희망적인 존재 역시 인간이었다.

포일은 분노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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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움직였고, 움직임은 변화시켰으며,

변화한 인간은 처음 자신을 움직였던 분노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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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 가장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구원은 자신을 움직이던 감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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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제가 해보고 싶은 행동은 거창하지 않다.

요즘 나를 움직이는 감정이 무엇인지 한번 적어보는 것이다.

욕심인지, 두려움인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인지, 분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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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묻고 싶다.

“이 감정이 나를 어디까지 데려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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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감정이라고 무조건 없애야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연료로 사용할 수도 있다.

연료와 목적지는 구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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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일의 문제는 분노했다는 것이 아니라

한동안 분노가 목적지까지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었다는 데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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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타이거!는 오래된 SF인데 낡았다는 느낌이 적었다.

많은 능력을 너무 빠르게 얻게 된 지금의 인간에게 묻는 소설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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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고 있다.

그렇다면 남는 질문은.

“그래서 어떤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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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인간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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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으면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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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상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이어 읽으면 ‘복수하는 인간’이라는

오래된 서사가 SF에서 어떻게 변형되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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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를 읽으면 타이거! 타이거!에서 보았던

기술·자본·신체·인간 욕망의 결합이 훗날 사이버펑크에서 어떻게 확장되는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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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프리드 베스터의 파괴된 남자는 같은 작가가 인간의 정신과 사회를 어떻게 다르게 상상했는지 비교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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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방향에서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추천하고 싶다.

두 작품 모두 인간이 새로운 능력과 가능성을 손에 넣었을 때 책임 또한 함께 커지는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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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로 출발한 인간이 결국 복수보다 커지는 이야기. 타이거! 타이거!에서 가장 먼 여행은 인간 내부에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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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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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
김유진 지음 / 북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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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의 <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는 기억을 회복시키는

기술과 기억을 제거하는 기술이 상용화된 가상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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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설에서 붙잡힌 것은 ‘기억을 지울 수 있다’는 기술 자체가 아니다.

내가 진실이라고 믿는 과거가 누군가의 편집본이라면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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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를 보고 판단해왔다. 소설을 읽으며 데이터베이스를 떠올렸다.

분석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계산식이 틀렸을 때만이 아니다.

원천 데이터가 이미 오염되어 있는데 아무도 그것을 모를 때가 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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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모델도 잘못된 원천 데이터 위에서는 정교하게 틀린 답을 만든다.

인간도 비슷하지 않을까.

기억은 우리 삶의 원천 데이터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하고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하거나 가해자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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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 데이터에 누군가 손을 댈 수 있다면 권력은 돈이나 지위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강한 사람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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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편집권에 관한 소설’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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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되살리는 행위도 반드시 선하지 않고,

기억을 지우는 행위도 반드시 악하지 않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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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로 사라지는 사랑을 되찾는 일과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덜어주는 일은 모두 인간적으로 보인다.

문제는 결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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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동의했는가.

누가 이익을 얻는가.

선택을 되돌릴 수 있는가.

기억의 복원과 삭제 모두 필요할 수 있지만 타인의 결정이나 법 밖에서 이루어질 경우 악용될 가능성을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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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도 새롭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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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는 인간에게 질문을 던지는 존재다.

‘왼쪽 눈동자’를 완전한 두 눈이 아닌 반쪽짜리 시야처럼 읽었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가진 일부 기억만으로 인생 전체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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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조각을 ‘나의 역사’라고 부른다.

모두 자기 인생의 불완전한 데이터 분석가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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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은 거대한 철학적 질문을 무거운 강의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가족의 비밀을 알고 싶은 욕망,

뛰어난 기술을 갖고 싶은 의사의 욕망,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없애고 싶은 마음이 서로 충돌하면서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수오가 주경재의 의술에 압도되는 순간들이 좋았다.

인간은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의 능력까지 욕망할 수 있다.

윤리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에게서 기술적으로 배울 것이 발견되는 순간,

인간은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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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을 쉽게 나누지 않는 이 지점에서 소설이 평범한 복수극보다 한 단계 깊어진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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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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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펜스와 복수극의 속도가 강한 만큼

기억 편집 기술이 사회 전체에 보편화됐을 때 법·보험·채용·범죄수사·가족관계가 어떻게 달라질지까지

넓게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기억을 제거한 범죄자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기억을 복원한 사람이 과거의 계약을 부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보험회사는 기억을 질병으로 볼까 데이터로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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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공간 때문에 책을 덮은 뒤 생각이 더 길어졌다.

사람은 기억 때문에 상처받지만 상처까지 포함해 한 사람이 된다.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 치료인지, 고통을 견딘 뒤 의미를 다시 만드는 것이 치료인지 우리는 쉽게 결정할 수 없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필요한 능력은 ‘내 기억을 의심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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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는 작은 행동 하나를 해보고 싶어졌다.

중요한 기억을 기록할 때 ‘사실’, ‘그때 내가 한 해석’, ‘지금의 감정’을 구분해서 적는 것이다.

기억을 정확하게 저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사실과 해석을 얼마나 쉽게 섞는 사람인지 보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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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에서도 원천값과 가공값을 구분한다.

삶에서도 사건과 해석을 분리할 수 있다면,

과거에 끌려다니는 대신 과거를 다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함께 읽으면 좋은 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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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 제노바의 <기억의 뇌과학>은 기억과 망각이 실제 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과학적으로 이어 읽기 좋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오가와 요코의 <은밀한 결정>은 기억의 소멸을 권력과 통제의 문제로 확장한다.

<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를 중심에 놓고 세 책을 이어 읽으면 기억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뇌과학, 철학, 사회적 권력이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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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는 “기억을 잃으면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책이 아니었다.

“내가 지금 나라고 믿는 사람은, 내가 기억하는 이야기의 결과물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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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거를 기억한다고 생각한다.

매일 과거를 편집하면서 현재의 나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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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가장 무서운 기술은 인간의 기억을 지우는 기술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의 기억을 바꿔놓고도 자신의 기억이라고 믿게 만드는 기술이다.

순간 인간이 잃는 것은 기억이 아니다.

자기 인생의 저작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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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꾸는 투자학개론
한정수(세상학개론) 지음 / 토네이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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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를 오래 할수록 역설을 만난다.

정보는 많아지는데 판단은 더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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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 발표, 금리, 환율, 유동성, AI, 반도체, 전력, 로봇, 국방까지 매일 엄청난 데이터가 쏟아진다.

결국 계좌를 바꾸는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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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중요하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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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꾸는 투자학개론>을 읽으면서 가장 오래 남은 것도 결국 이 질문이었다.

어떤 종목을 사라고 말하는 책이 아니다. 종목에서 한 걸음 물러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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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세상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보고 그 변화의 힘이 어느 산업으로 흘러가는지 살핀 다음, 마지막에 기업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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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흐름을 알아보는 안목, 그 미래에 충분히 참여하는 비중, 현실이 내러티브를 따라올 때까지 견디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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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가 사실상 책 전체를 관통한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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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투자자는 정보를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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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보다 해온 데이터 분석 일을 떠올렸다.

데이터 분석가는 숫자를 많이 보는 사람이 아니다. 좋은 분석가는 좋은 질문을 만드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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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L을 아무리 빠르고 정확하게 짜도 질문이 틀렸다면 정확한 오답을 얻게 된다.

투자도 놀랄 만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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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를 지금 사도 될까?”

이런 질문은 필요하지만 너무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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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먼저 물어야 한다.

AI는 인간과 기업의 의사결정 비용을 얼마나 낮출 것인가?

그 과정에서 경제적 가치는 반도체, 클라우드, 전력, 소프트웨어, 로봇, 국방 가운데 어디로 이동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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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아직 충분히 가격에 반영하지 않은 변화는 무엇인가?

책에 나온 “큰 수익은 큰 질문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분석 방법론으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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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크기가 관찰할 수 있는 세계의 크기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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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는 미래를 맞히는 게임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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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얻은 가장 큰 생각은 조금 다른 곳에 있다.

투자는 내가 맞았을 때 충분히 크게 참여하고 틀렸을 때도 살아남도록 구조를 만드는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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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업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엄청난 기회를 발견하고도 투자 비중이 1%라면 그것이 인생을 바꾸기는 어렵다.

아무리 강한 확신이 있어도 한 번의 판단에 모든 것을 걸어버리면 다음 기회를 만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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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종목보다 손익비와 비중에 관한 이야기가 중요하게 다가왔다.

투자 수익률은 생각의 정확도 하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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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 가격 × 비중 ×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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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변수의 곱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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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큰 이야기’는 가장 위험한 함정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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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 책의 탑다운 투자와 내러티브 투자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책을 진지하게 읽을수록 경계해야 할 부분도 선명해졌다.

세상을 설명하는 이야기가 아름다워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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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세상을 바꾼다는 것과 지금 어떤 AI 기업의 주가가 싸다는 것은 전혀 다른 명제다.

산업이 10배 성장해도 경쟁이 격화되면 개별 기업은 돈을 벌지 못할 수 있다.

위대한 기업이라도 지나치게 비싼 가격에 산다면 훌륭한 투자라는 보장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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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러티브가 강해질수록 숫자를 더 의심해야 한다.

책의 투자 공식을 이렇게 한 문장 더 붙여 사용하고 싶다.

큰 흐름을 찾고, 가장 강한 기업을 고른 뒤, 숫자로 내 이야기를 공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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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러티브는 어디를 봐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데이터는 그 이야기가 정말 현실이 되고 있는지를 검증한다.

매출 성장률, 영업이익률, 현금흐름, 고객 증가율, 시장점유율, 자본효율성 같은 숫자가 미래를 예언해주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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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내가 사랑에 빠진 이야기가 현실에서 멀어지고 있는지는 알려줄 수 있다.

데이터 기반 장기투자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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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 노트’보다 ‘변화 노트’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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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실제 행동으로 옮긴다면 나는 종목부터 적지 않을 것이다.

먼저 변화 노트를 만들고 싶다.

AI 에이전트, 전력 인프라, 자율주행, 국방 소프트웨어, 로봇처럼 거대한 변화 하나를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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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이 변화가 시작됐는가?

무엇이 변화의 속도를 높이고 있는가?

결국 누가 가장 많은 경제적 가치를 가져갈 것인가?

내 생각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신호는 무엇인가?

정말 맞다면 나는 얼마만큼의 자본을 노출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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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네 번째 질문이다.

“무엇이 나오면 나는 내 생각을 바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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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에서 확신이란 끝까지 고집하는 능력이 아니다.

틀렸다는 증거가 나타났을 때 자기 생각을 수정할 수 있는 능력까지 포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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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투자 실력이란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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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니 ‘투자를 잘한다’는 말의 의미도 조금 달라졌다.

시장 방향을 매번 맞히는 사람이 정말 좋은 투자자일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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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변화를 자기 언어로 설명할 수 있고

생각을 데이터로 검증하며 중요한 순간에는 행동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할 때는 조용히 기다릴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오랫동안 살아남는 투자자에 더 가깝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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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생을 바꾸는 것은 한 종목이 아니다.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달라지고,

질문이 달라지고,

질문이 자본 배분을 바꾸고,

그 자본 배분이 오랜 시간 복리로 쌓이면서 어느 순간 인생 전체의 궤적이 달라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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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읽은 <인생을 바꾸는 투자학개론>의 진짜 제목은

‘투자자가 세상을 보는 법’에 더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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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가져갈 투자 원칙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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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은 데이터에서 만들고,

확신은 반증을 통과한 뒤에 얻으며,

비중은 손익비로 결정하고,

마지막 수익은 시간이 만든다.


함께 읽는다면 피터 틸의 <제로 투 원>을 권하고 싶다.

남들이 동의하지 않는 중요한 진실을 찾는 질문을 사업과 투자 너머까지 확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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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막스의 <투자에 대한 생각>은 강력한 내러티브에 취하지 않도록 2차적 사고와 리스크라는 균형추를 달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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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피셔의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는 거대한 산업 변화가 실제 기업의 장기 경쟁력으로 이어지는지를 판단하는 눈을 보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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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듀크의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까지 함께 읽으면

좋은 결과와 좋은 의사결정을 구분하는 확률적 사고까지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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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투자책은 좋은 종목 하나를 남기지 않는다.

좋은 질문 하나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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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꾸는 투자학개론>은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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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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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으로 옳다는 착각 - 누가 왜 가짜 과학을 만들고 퍼뜨리고 악용하는가
지바 사토시 지음, 김종현 옮김 / 부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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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보다 위험한 것은 ‘나는 객관적이다’라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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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특히 권하고 싶은 사람?

AI의 답을 자주 믿는 사람, 데이터를 근거로 의사결정하는 사람, 숫자와 논문을 보면 마음이 놓이는 사람, 스스로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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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숫자를 좋아한다.

사람의 말은 흔들려도 숫자는 적어도 덜 흔들린다고 생각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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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를 보고 근거를 가지고 판단하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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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으로 옳다는 착각>을 읽으면서 불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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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험한 순간은 내가 객관적이라고 확신할 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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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진짜 주제는 ‘가짜 과학’이 아니다.

‘옳음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책’으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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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소련의 트로핌 리센코가 등장한다. 정치권력과 결합한 이론은 유전학을 억압했고 연구자들은 숙청됐으며 세계적인 수준이던 소련 생물학의 기반까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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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무서운건 사람들이 강제로 말을 믿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난한 농민 출신의 천재, 엘리트 학계를 무너뜨린 혁신가, 과학으로 세상을 구원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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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메시아 효과’로 설명한다.

나는 과학보다 오늘의 인터넷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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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논문보다 사람을 먼저 믿는다.

유명한 CEO가 말하면 기술의 미래가 되고 의사가 말하면 건강 상식이 되고 투자 대가가 말하면 시장의 법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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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어가 많고 말이 단정적이고 이야기가 극적일수록 ‘사실처럼 느껴지는 힘’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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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과학의 반대말은 진짜 과학만이 아니다.

가짜 과학의 반대편에는 검증하는 태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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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생학이 있다.

프랜시스 골턴과 칼 피어슨 같은 당대의 지식인들은 인간의 능력을 과학적으로 분류하고 개선할 수 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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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슨은 현대 통계학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남긴 인물이다.

묘한 두려움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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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학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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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보다 먼저 인간의 가치관이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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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측정할 것인가.

누구를 정상이라고 부를 것인가.

어떤 차이를 중요한 차이라고 판단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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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는 완전히 중립적이지 않다.

이런 문장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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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는 답을 왜곡하기 전에 질문에서 먼저 왜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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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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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가는 흔히 데이터가 충분하면 좋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질문에 아무리 정확한 데이터를 넣어도 잘못된 결론을 정교하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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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는 문제가 커질 수 있다.

과거에는 권력자가 잘못된 과학을 퍼뜨리는 데 신문과 방송이 필요했다. 지금은 그럴 필요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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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만들어낸 그럴듯한 주장에 AI가 문장과 그래프와 논리를 붙여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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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가 ‘거짓이 많아지는 시대’라기보다 ‘거짓도 매우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된 시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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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필요한 능력은 많은 지식을 기억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근거처럼 보이는 것을 한 번 더 의심하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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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왼손잡이의 수명이 짧다는 주장, MAOA-L을 이른바 ‘전사 유전자’처럼 해석하는 사례 역시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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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틀렸다기보다 무엇을 확대해서 보여줄 것인가가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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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유전적 영향을 크게 말하고 빈곤·학대·사회구조 같은 더 큰 변수를 배경으로 밀어버리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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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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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성장률 하나를 보여주면 성장기업이 되고 PER 하나를 보여주면 고평가 기업이 된다. 데이터는 거짓말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데이터를 보여주느냐는 인간이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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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분석은 숫자를 많이 보여주는 일이 아니다.

숫자가 말하지 않는 것을 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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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데이터가 증명한다’라는 표현을 만날 때 네 가지를 먼저 확인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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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과 가치판단을 분리한다. ‘~이다’와 ‘~해야 한다’ 사이에 숨어 있는 논리를 찾는다.

2. 누락된 변수를 찾는다. 무엇이 측정됐는지보다 무엇이 제외됐는지 본다.

3. 이익을 얻는 사람을 확인한다. 연구자·기업·정치·미디어의 이해관계를 본다.

4. 나의 가치관도 공개한다. 나는 중립적이라고 선언하기보다 어떤 관점에서 판단하는지를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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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항목이 특히 중요하다.

책이 말하는 성숙한 객관성은 가치관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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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 상태다.

좋은 판단이란 감정을 제거하고 데이터에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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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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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판단은 인간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 속에 어떤 인간이 들어가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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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으로 옳다는 착각>은 과학책이면서 데이터 분석책이고, 미디어 리터러시 책이며, AI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철학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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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으로 책을 읽고 나서 나는 과학을 덜 믿게 된 것이 아니다.

더 믿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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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믿는 것이 아니다. 틀렸을 때 고칠 수 있는 과정을 믿는다.

과학의 가장 위대한 힘은 항상 옳다는 데 있지 않다.

자신의 옳음을 의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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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다면 칼 세이건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으로 유사과학과 회의주의를,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으로 인간의 판단 편향을,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로 과학적 패러다임을, 캐시 오닐의 <대량살상 수학무기>로 숫자와 알고리즘이 사회적 권력이 되는 과정을 이어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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