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으로 옳다는 착각 - 누가 왜 가짜 과학을 만들고 퍼뜨리고 악용하는가
지바 사토시 지음, 김종현 옮김 / 부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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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보다 위험한 것은 ‘나는 객관적이다’라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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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특히 권하고 싶은 사람?

AI의 답을 자주 믿는 사람, 데이터를 근거로 의사결정하는 사람, 숫자와 논문을 보면 마음이 놓이는 사람, 스스로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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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숫자를 좋아한다.

사람의 말은 흔들려도 숫자는 적어도 덜 흔들린다고 생각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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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를 보고 근거를 가지고 판단하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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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으로 옳다는 착각>을 읽으면서 불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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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험한 순간은 내가 객관적이라고 확신할 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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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진짜 주제는 ‘가짜 과학’이 아니다.

‘옳음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책’으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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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소련의 트로핌 리센코가 등장한다. 정치권력과 결합한 이론은 유전학을 억압했고 연구자들은 숙청됐으며 세계적인 수준이던 소련 생물학의 기반까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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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무서운건 사람들이 강제로 말을 믿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난한 농민 출신의 천재, 엘리트 학계를 무너뜨린 혁신가, 과학으로 세상을 구원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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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메시아 효과’로 설명한다.

나는 과학보다 오늘의 인터넷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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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논문보다 사람을 먼저 믿는다.

유명한 CEO가 말하면 기술의 미래가 되고 의사가 말하면 건강 상식이 되고 투자 대가가 말하면 시장의 법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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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어가 많고 말이 단정적이고 이야기가 극적일수록 ‘사실처럼 느껴지는 힘’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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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과학의 반대말은 진짜 과학만이 아니다.

가짜 과학의 반대편에는 검증하는 태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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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생학이 있다.

프랜시스 골턴과 칼 피어슨 같은 당대의 지식인들은 인간의 능력을 과학적으로 분류하고 개선할 수 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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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슨은 현대 통계학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남긴 인물이다.

묘한 두려움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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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학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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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보다 먼저 인간의 가치관이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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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측정할 것인가.

누구를 정상이라고 부를 것인가.

어떤 차이를 중요한 차이라고 판단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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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는 완전히 중립적이지 않다.

이런 문장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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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는 답을 왜곡하기 전에 질문에서 먼저 왜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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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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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가는 흔히 데이터가 충분하면 좋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질문에 아무리 정확한 데이터를 넣어도 잘못된 결론을 정교하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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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는 문제가 커질 수 있다.

과거에는 권력자가 잘못된 과학을 퍼뜨리는 데 신문과 방송이 필요했다. 지금은 그럴 필요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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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만들어낸 그럴듯한 주장에 AI가 문장과 그래프와 논리를 붙여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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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가 ‘거짓이 많아지는 시대’라기보다 ‘거짓도 매우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된 시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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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필요한 능력은 많은 지식을 기억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근거처럼 보이는 것을 한 번 더 의심하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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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왼손잡이의 수명이 짧다는 주장, MAOA-L을 이른바 ‘전사 유전자’처럼 해석하는 사례 역시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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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틀렸다기보다 무엇을 확대해서 보여줄 것인가가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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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유전적 영향을 크게 말하고 빈곤·학대·사회구조 같은 더 큰 변수를 배경으로 밀어버리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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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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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성장률 하나를 보여주면 성장기업이 되고 PER 하나를 보여주면 고평가 기업이 된다. 데이터는 거짓말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데이터를 보여주느냐는 인간이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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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분석은 숫자를 많이 보여주는 일이 아니다.

숫자가 말하지 않는 것을 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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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데이터가 증명한다’라는 표현을 만날 때 네 가지를 먼저 확인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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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과 가치판단을 분리한다. ‘~이다’와 ‘~해야 한다’ 사이에 숨어 있는 논리를 찾는다.

2. 누락된 변수를 찾는다. 무엇이 측정됐는지보다 무엇이 제외됐는지 본다.

3. 이익을 얻는 사람을 확인한다. 연구자·기업·정치·미디어의 이해관계를 본다.

4. 나의 가치관도 공개한다. 나는 중립적이라고 선언하기보다 어떤 관점에서 판단하는지를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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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항목이 특히 중요하다.

책이 말하는 성숙한 객관성은 가치관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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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 상태다.

좋은 판단이란 감정을 제거하고 데이터에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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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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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판단은 인간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 속에 어떤 인간이 들어가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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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으로 옳다는 착각>은 과학책이면서 데이터 분석책이고, 미디어 리터러시 책이며, AI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철학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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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으로 책을 읽고 나서 나는 과학을 덜 믿게 된 것이 아니다.

더 믿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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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믿는 것이 아니다. 틀렸을 때 고칠 수 있는 과정을 믿는다.

과학의 가장 위대한 힘은 항상 옳다는 데 있지 않다.

자신의 옳음을 의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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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다면 칼 세이건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으로 유사과학과 회의주의를,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으로 인간의 판단 편향을,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로 과학적 패러다임을, 캐시 오닐의 <대량살상 수학무기>로 숫자와 알고리즘이 사회적 권력이 되는 과정을 이어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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