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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
김유진 지음 / 북다 / 2026년 8월
평점 :
김유진의 <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는 기억을 회복시키는
기술과 기억을 제거하는 기술이 상용화된 가상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다.
내가 소설에서 붙잡힌 것은 ‘기억을 지울 수 있다’는 기술 자체가 아니다.
내가 진실이라고 믿는 과거가 누군가의 편집본이라면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데이터를 보고 판단해왔다. 소설을 읽으며 데이터베이스를 떠올렸다.
분석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계산식이 틀렸을 때만이 아니다.
원천 데이터가 이미 오염되어 있는데 아무도 그것을 모를 때가 더 위험하다.
완벽한 모델도 잘못된 원천 데이터 위에서는 정교하게 틀린 답을 만든다.
인간도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하고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하거나 가해자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를 결정한다.
원천 데이터에 누군가 손을 댈 수 있다면 권력은 돈이나 지위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강한 사람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책을 ‘편집권에 관한 소설’로 읽었다.
기억을 되살리는 행위도 반드시 선하지 않고,
기억을 지우는 행위도 반드시 악하지 않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치매로 사라지는 사랑을 되찾는 일과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덜어주는 일은 모두 인간적으로 보인다.
문제는 결정권이다.
누가 동의했는가.
누가 이익을 얻는가.
선택을 되돌릴 수 있는가.
기억의 복원과 삭제 모두 필요할 수 있지만 타인의 결정이나 법 밖에서 이루어질 경우 악용될 가능성을 질문한다.
제목도 새롭게 보였다.
스핑크스는 인간에게 질문을 던지는 존재다.
‘왼쪽 눈동자’를 완전한 두 눈이 아닌 반쪽짜리 시야처럼 읽었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가진 일부 기억만으로 인생 전체를 설명한다.
불완전한 조각을 ‘나의 역사’라고 부른다.
모두 자기 인생의 불완전한 데이터 분석가인지도 모른다.
장점은 거대한 철학적 질문을 무거운 강의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가족의 비밀을 알고 싶은 욕망,
뛰어난 기술을 갖고 싶은 의사의 욕망,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없애고 싶은 마음이 서로 충돌하면서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수오가 주경재의 의술에 압도되는 순간들이 좋았다.
인간은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의 능력까지 욕망할 수 있다.
윤리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에게서 기술적으로 배울 것이 발견되는 순간,
인간은 복잡해진다.
선과 악을 쉽게 나누지 않는 이 지점에서 소설이 평범한 복수극보다 한 단계 깊어진다고 느꼈다.
아쉬움도 있다.
서스펜스와 복수극의 속도가 강한 만큼
기억 편집 기술이 사회 전체에 보편화됐을 때 법·보험·채용·범죄수사·가족관계가 어떻게 달라질지까지
넓게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기억을 복원한 사람이 과거의 계약을 부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보험회사는 기억을 질병으로 볼까 데이터로 볼까.
미완의 공간 때문에 책을 덮은 뒤 생각이 더 길어졌다.
사람은 기억 때문에 상처받지만 상처까지 포함해 한 사람이 된다.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 치료인지, 고통을 견딘 뒤 의미를 다시 만드는 것이 치료인지 우리는 쉽게 결정할 수 없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필요한 능력은 ‘내 기억을 의심하는 힘’이다.
책을 읽고 나는 작은 행동 하나를 해보고 싶어졌다.
중요한 기억을 기록할 때 ‘사실’, ‘그때 내가 한 해석’, ‘지금의 감정’을 구분해서 적는 것이다.
기억을 정확하게 저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사실과 해석을 얼마나 쉽게 섞는 사람인지 보기 위해서다.
데이터에서도 원천값과 가공값을 구분한다.
삶에서도 사건과 해석을 분리할 수 있다면,
과거에 끌려다니는 대신 과거를 다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리사 제노바의 <기억의 뇌과학>은 기억과 망각이 실제 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과학적으로 이어 읽기 좋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오가와 요코의 <은밀한 결정>은 기억의 소멸을 권력과 통제의 문제로 확장한다.
<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를 중심에 놓고 세 책을 이어 읽으면 기억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뇌과학, 철학, 사회적 권력이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다.
<스핑크스의 왼쪽 눈동자>는 “기억을 잃으면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책이 아니었다.
“내가 지금 나라고 믿는 사람은, 내가 기억하는 이야기의 결과물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우리는 과거를 기억한다고 생각한다.
매일 과거를 편집하면서 현재의 나를 만들고 있다.
미래의 가장 무서운 기술은 인간의 기억을 지우는 기술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의 기억을 바꿔놓고도 자신의 기억이라고 믿게 만드는 기술이다.
순간 인간이 잃는 것은 기억이 아니다.
자기 인생의 저작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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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