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분 엄마의 인문학 습관 - 엄마의 생각의 깊이만큼 스스로 성장하는 아이
한귀은 지음 / 예담Friend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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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이를 살리는 로고테라피

<엄마의 인문학 습관>



   저자는 '전형적으로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고, 전형적으로 스마트폰을 끼고 사는' 평범한 14살 아들을 둔 엄마다. 아들을 키우면서 마주치는 긴장과 갈등, 고통 그리고 환희의 순간들을 54개의 짧은 에세이로 풀어냈다. 공부하지 않는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고, 아이의 성적에 대해 고민하고, 사춘기 아들과 말다툼을 벌이는 모습 등 엄마라면 누구나 공감할 엄마의 일상이 담겼다. 재미있고 쉽게 읽혀서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하지만 이 책은 "너도 그러니? 나도 그래!" 하는 맞장구만 유도하는 동네 친한 아줌마의 수다 수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저자 한귀은은 경상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인문학으로 잔소리할 줄 아는 엄마'다. 엄마인 자신에 대해, 아이에 대해, 아이와의 관계에 대해 이성적 성찰을 해나간다. '엄마로서 살아남기 위해' 아이와 자신에 대해 여러 질문을 던져보고, 해석해나가는 로고테라피(Logotherapie)를 실천했다. 로고테라피(Logotherapie)란 ' 이성적으로 어떤 의미를 생각하고 발견하는 심리치료 방식'(p.212) 이다. 예를 들면, 아이의 행동 때문에 와락 짜증이 날 때 '내가 왜 짜증이 날까' 해석해보는 거다. '짜증이 나면 짜증을 억지로 참지는 말되, 그 짜증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고 아이와 자신에 대해 재해석을 해봐야 한다.'(p.213) 고 저자는 말한다. 짜증의 원인을 생각해보면 불필요한 감정싸움을 줄이고, 아이의 긍정적 변화를 유도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이성적 성찰, 로고테라피가 저자가 강조하는 '엄마의 인문학 습관'이다. 

한마디로 인문학이란, 인간이나 인간성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는 학문이다. 이 세상에서 엄마와 아이의 관계만큼 인문학이 더 필요한 경우가 있을까. (p.11)

   정말 그렇다. 아이를 고유한 인격을 가진 한 인간으로 키워내는 일을 하는 엄마에게 인문학은 필수적이다.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행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아이는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인지, 나는 어떤 엄마가 될 수 있는 사람인지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들 하는대로'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갈팡질팡하게 된다. 저자는 아들과 갈등이 생길 때마다 인문학을 통해 갈등의 본질을 이해하고, 대처 방법을 찾는다. 아이를 명문대를 보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때면 현대인의 모방 욕망을 꼬집은 르네 지라르의 <<폭력과 성스러움>>을 떠올린다. "내가 바라는 내 아이의 미래상이  '나의 욕망'인가, 누군가로부터 주입된 모방된 욕망인가?"를 따져 묻는다.

다른 부모들이 자기 아이를 명문대에 넣으려고 기를 쓰고, 대기업에 가게 하지 못해 안달할 때, 자기 아이의 재능을 지켜보고, 아이의 욕망과 자신의 욕망을 직시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정말 잘 사는 사람이 아닐까. (p.39)

  아이가 원하는 것을 다 못해 줘서 미안한 마음이 들 때 저자는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을 들춘다. '지나치게 잦은 여행을 하고 지나치게 다양한 인상을 심어주는 것은 어린아이들에게 좋지 않다.'는 러셀의 말을 되짚는다. 행복의 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권태를 이기는 힘을 가져야 하며, 아이의 행복을 위해 아이에게 권태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지혜를 얻는다. 아닌게 아니라 요즘 아이들은 정말 바쁘다. 엄마들은 아이를 똑똑하게, 남다르게 키우고자 틈틈이 여행을 가고, 각종 문화체험에 아이를 데리고 다닌다. 방학이면 경쟁적으로 박물관, 미술관에 몰려드는 아이들을 보면서  씁쓸함이 느껴질 때가 많다. 엄마 손에 이끌려 학습지를 손에 들고, 바쁘게 그림을 하나씩 훑고 지나가는 아이. 사설 학원의 체험학습 프로그램에 따라 강사 뒤를 따르며 학습지에 정답을 받아 적느라 바쁜 아이들. 나는 러셀이 강조한 '권태를 이기는 힘'을 떠올리며 아이에게 권태와 결피, 지루함을 참아내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에 크게 공감했다. '무엇이 중요한가?', '본질은 무엇인가?를 묻고 답하는 일, 그게 엄마에게 필요한 이성적 성찰이고 인문학 습관이다.  

​   저자는 아들을 키우며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를 그대로 드러내고, 그것을 통해 성장해나가는 엄마의 모습을 진실되게 보여준다. 엄마의 맘을 몰라주는 아이 때문에 상처받기도 하고, 아이와의 밀당을 하며 권위를 잃지 않으려 애쓰기도 한다. 평범한 엄마의 일상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일상에 묻혀 수동적으로 살아가지 않고, 인문학적으로 자신의 삶을 성찰해나간다. 엄마 노릇을 잘 해보려는 노력은 엄마인 '나'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성장과정과 취향, 장단점 등에 대해 차분히 정리해낸다. 자신에 대해 알아가면서 아이를 이해하고, 아이와 소통하는 일도 한결 수월해진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역할'이 아니라 '존재'로 다가가야 할 때가 있다. 역할의 딜레마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분명 역할이 중요하지만 그 역할의 비중이 너무 커져서 존재를 막아버리게 해서는 안 된다. 나 자신을 엄마로서만 말고 '나'라는 존재로 보자. 내 아이도 내 아이로만 보지 말고 그 '존재' 자체를 보자. (p.222)

   엄마의 인문학적 습관은 엄마인 나와 아이를 '존재' 그 자체로 보는 일을 하기 위한 노력이다. '좋은 엄마'라는 허울 속에 나를 가두지 말고, '좋은 아이'라는 망상에 내 아이를 가두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왜?"라고 묻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엄마는 읽고, 쓰고, 생각해야 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인문학이 엄마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엄마의 성장이 왜 중요한지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자기 절제 사회>>,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레토릭>>, <<부모와 다른 아이들>>,<<인간은 언제 지루해했을까?>>, <<부모혁명 스크림프리>>, <<게으름에 대한 찬양>> 등 책 속에 인용된 글들은 지금 나와 내 아이의 관계를 성찰해보는데도 도움을 줬다.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 엄마라도 이 책에 담긴 글들을 하루 한 편씩 읽으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이 책의 마케팅 문구처럼 하루 10분이면 족하다.

 

아이와 엄마는 공동체다. 아이의 행복이 엄마의 행복이 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행복의 순환, 사랑의 피드백과 피드포워드, 그것이 엄마와 아이 관계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엄마는 아이를  '잘' 사랑해야 한다. 그 사랑 속에서 엄마 자신도 성장해야 한다. 아이를 잘 키우는 방법은, 아이를 잘 키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엄마 자신의 성장에 있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p.209) 

   책을 다 읽고도 '아이를 잘 키우려면, 잘 사랑하려면 엄마가 성장해야 한다'는 말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이일 뿐만 아니라 엄마로서의 나 자신이었다. 실로 나의 양육 투쟁은 치열했다. 그런데 그것은 아이와의 투쟁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투쟁이었다.'(p.288)라고 고백한다. 나는 얼마나 치열하게 나 자신과 투쟁하고 있나, 성장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나 되묻게 된다.

   책에는 엄마와 아이의 관계를 담은 그림이 중간중간 등장한다. 그림에 담긴 엄마와 아이의 마음이 나와 내 아이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서 공감하며 보았다. 특히나 마지막 그림인 한스 안데르센 브렌데킬데의 <가을, 나무가 우거진 오솔길>을 보다가는 울컥하기까지 했다. 가을 오솔길 가 벤치에 엄마가 앉아 있고, 저 멀리서 두 아이가 달려오는 어찌 보면 정적이고 편안한 그림이다. 그런데 저자가 덧붙여 놓은 설명을 읽어보면 편안히 그림을 볼 수가 없다.


멀리서 다가오는 아이 둘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이 어떨까. 반갑고 흐믓하고 자랑스럽고 든든하고 뿌듯하고 행복할 것이다. 그래도 엄마는 일어나지 않는다. 나라면 아이들이 오기 전에 일어서서 먼저 달려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럼 안 된다. 아이들에게, 엄마에게로 다가올 시간을 줘야 한다. 엄마가 그 자리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아이들은 저렇게 걸어오는 행동만으로도 엄마에게 힘을 준다 


​   나 는 엄마니까, 엄마라서 벤치에서 일어나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마음을 안다. 엄마는 아이에게 먼저 달려가 뽀뽀를 퍼붓고, 아이가 넘어질까 봐 손을 잡아주고, 아이 발에 흙이 묻지 않도록 깨끗한 길로 이끌고 싶다. ' 그런데, 그럼 안 된다.' 는 저자의 단호한 어투에 울컥 눈물이 나려고 한다. 그래, 엄마는 사랑도 '잘' 해야 한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야 '엄마의 생각의 깊이만큼 스스로 성장하는 아이'라는 이 책의 부제가 눈에 들어온다. 아이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설 수 있는, 그러나 '엄마가 그 자리에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성숙한 엄마가 되고 싶다. 나는 하루 10분이 아니라 더 많은 시간을 읽고 생각하고 쓰겠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잔소리를 하지만 본인은 읽지 않는 엄마,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엄마, 아이와의 감정싸움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엄마, 육아와 살림의 일상 속에서 자신이 텅 비어간다고 느끼는 엄마,... 저마다의 고민으로 우울한 하루를 보내는 엄마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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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나아렌트의 말/ 한나 아렌트/ 마음산책/ 2016-01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로 20세기 탁월한 정치이론가 한나아렌트의 인터뷰집이다. 워낙 여러 책들에서 그녀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 터라 무척 궁금했었다. 한나 아렌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갔는지... "사유한다는 것은 항상 비판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이고, 비판적으로 사유한다는 것은 늘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거에요." 이렇게 말하는 그녀였기에 '악의 평범성'에 대해 말할 수 있었던 거다. 한나 아렌트의 냉철한 사유와 당당한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낸 책일거라고 기대해본다.

 

 

 

 

2.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김정선/ 유유/ 2016-01

 

  <동사의 맛>을 쓴 김정선의 두 번째 책이 나왔다. 글을 잘 쓰려면 퇴고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런데 막상 글을 스스로 고쳐보려면 어디가 어색한지, 뭘 어떻게 다듬어야 좋을지 모르겠다.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에 눈길이 머무는 이유다. 어색한 문장을 살짝만 다듬어도 보기좋고 잘 읽히는 문장이 된다. 목차를 살펴보니 20년 넘게 단행본 교정을 해온 저자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긴 듯 하다. 실제적이고 핵심적인 조언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3. 25년간의 수요일/ 윤미향/ 사이행성/ 2016-01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인 윤미향이 묶어낸 25년간의 수요집회 기록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지우고 싶어하는 역사다. 그에 맞서는 방법은 진실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일거다. 그래서 이 책은 귀한 책이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어난 '위안부' 문제가 왜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세상에 알려졌는지, 아픈 경험을 꺼내놓기 힘들어했던 할머니들이 어떻게 평화인권가로 변했는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지 세세히 담았다.

 

 

 

 

4. 명태가 노가리를 까니, 북어냐 동태냐 / 권오길/ 지성사/ 2016-01

 

  '우리말에 깃든 생물이야기' 시리즈 중 네 번째 책이다. 생물수필가 권오길이 썼다. 목차를 살펴보니 우리말에 담긴 생물의 특성과 우리말의 어원을 재미있게 풀어냈다. 우리말의 맛깔스러움과 생물에 대한 지식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편씩 읽고, 잠자리에서 아이들에게 들려주어도 좋겠다.

 

 

 

 

 

 

 

5. 온더 무브/ 올리버 색스/ 알마 / 2016-01

 

   나는 올리버 색스에 대해서 잘 모른다. 지난 해 8월 그의 타계 소식을 매우 안타까워하며 전하던 사람들을 보고서야 그의 명성을 알았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으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아직 읽지 못했다. 이 책은 올리버 색스가 타계 전에 자신의 삶을 정리한 것이라 한다. '투명한 지성을 가진 따뜻한 휴머니스트' 라는 올리버 색스의 이야기가 무척 궁금하다. 의사이며 작가인 그의 글을 읽기 전에 그의 삶을 먼저 알아봐도 좋을 것 같다. 온더 무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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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과 영원 - 푸코.라캉.르장드르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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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철학이란 이런 것

《야전과 영원》

 

  저자 사사키 아타루는 '일본의 니체'라고 불린다 한다. 니체는 시대의 주류 사상을 뒤엎고 자신만의 철학을 세워낸 망치 철학자이다. 그는《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열에 들뜬 목소리로 자신의 사상을 전했다. 하지만 일반인이 니체의 잠언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사사키 아타루의 《야전과 영원》역시 철학적 소양이 충분하지 않은 내가 읽기에 쉽지 않은 책이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라캉의 사상에서 출발하여, 그와 대립점에 있던 푸코, 그들 사이에 위치했던 르장드르를 고루 다룬다. 그는 서문에서 '미셀 푸코, 자크 라캉, 피에르 르장드르 이 세사람의 텍스트를 나름대로 철저하게 읽고 정성스레 재단해 세로실 가로실을 풀어 묵묵히 다시 짜는 작업'을 했다고 발혔다.(16쪽) 책을 직접 읽어보면 이 말의 뜻을 잘 알게 된다. 사사키 아타루는 푸코, 라캉, 르장드르 각각에 대해 치열하게 읽고 해석했다.

 

    단순히 과거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사상을  열심히 공부해서 풀어내는데 그쳤다면 저자는 '일본의 니체'라는 평을 듣지 못했을거다. 그는 세 철학자의 사상을 하나씩 풀어내어 촘촘히 다시 엮어냈다. 서로 달라보이는 사상들을 이리저리 자신만의 방법으로 교차시켰다. 읽는 내내 그의 내공과 사유의 힘을 발견하며 놀라워해야 했다. 그는 푸코, 라캉, 르장드르를 넘나드며 막힘없이 자신의 사유를 전개한다. 능수능란하다. 다른 이들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듯 거침없이 서술 한다. 사실 푸코도, 라캉도, 르장드르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내가 읽기에는 많이 버거운 책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읽고, 마지막 장을 덮었지만 개운치 않다. 하지만 '나는 누구인가', '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이 진실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귀한 시간이었다. 또한 어떤 하나의 사상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여러 사상을 넘나드는 사사키 아타루의 철학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많은 책을 읽고, 많은 경험을 한다해도 나의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창조해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일반인이 읽기에 쉽지는 않지만, 여러 번 읽고 소장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라캉, 푸코, 르장드르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더불어 세 철학자를 넘나들며 '나만의 철학'을 엮어내는 또 다른 철학자의 열정과 사유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힘겹게 읽어나가며 철학자들의 사유를 따라가면 머리가 말랑말랑해지는 기분도 든다. 전문가가 이 책에 대해 쓴 리뷰가 있다면 읽어보고 싶다. 저자를 유명하게 해준 《잘라라,기도하는 그손을》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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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불감증 - 유동적 세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너무나도 소중한 감수성에 관하여
지그문트 바우만.레오니다스 돈스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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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적 근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비춰주는 대화

《도덕적 불감증》

 

   지그문트 바우만이라는 이름만 보고 많은 기대와 설렘을 갖고 책을 펼쳤다. 그는 탈근대 사상가인데, '현대 유럽 사상의 최고봉'이라 불린다. 나는 얼마 전 지그문트 바우만의 대담집 《사회학의 쓸모》를 읽으며 큰 감동을 받았다. 이 시대의 어두운 그늘을 똑바로 바라보면서도, 좌절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내는데 힘을 보태려하는 노학자의 삶이 아름다웠다.《도덕적 불감증》은 지그문트 바우만이 '유랑하는 학자'인 레오니다스 돈스키스와 나눈 대담을 엮어낸 책이다. 서문에서 돈스키스는 이 책이 '파편화,원자화, 그리고 그에 따른 감수성의 상실에 대한 실행 가능한 대안으로서 귀속감의 재발견 가능성에 대한 대화'(27쪽)라고 밝힌다. 바우만은 우리의 삶이 점점 개인화되면서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소비자의 활동이 시민의 기본 의무로 되어버리는 문제를 지적한다.

 

   책에서는 1장 '우리의 모습을 닮은 평범한 악에 관하여', 2장 '정치의 위기, 감수성의 언어를 찾아서', 3장 '감수성의 상실, 공포와 무관심 사이에서', 4장 '소비하는 대학, 새로운 무의미와 기준의 상실', 5장 '서구몰락을 다시 생각하며' 으로 이들의 대화를 묶어냈다. 돈스키스는 '인간의 고통에 대한 불감증'과 '사생활을 식민지화하려는 욕망'을 새로운 악의 두 가지 형태라고 지적한다. (19쪽)무척 공감가는 대목이다. 뚜렷한 하나의 거대한 악이 존재하던 과거와는 달리 요즘은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 가장 큰 두려움이다. 인터넷에서는 익명성을 방패삼아 타인에게 갖은 욕설과 비난을 퍼붓는다. 타인의 개인정보를 함부로 훔쳐내고 공유한다. 권력을 쥔 자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언론을 통제한다. 소비자로 전락한 유권자는 정치를 바꿔내지 못한다. 우리는 점점 도덕적으로 무감각해지고, 정치에 무관심해진다. 오늘날 '유동적 근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깊이 들여다 본 두 학자의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금 우리의 삶의 어둡고 우울한 면이 그대로 드러나니 답답한 생각도 든다. 그러나 두 학자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돈스키스는 미셀 우엘벡의 말을 인용하며 '인간관계의 역사는 언제나 주기적이다.'라고 말한다. 생겨나고 발전하고 시들어 죽는다는 거다. 하지만 돈스키스는 '인간관계의 생명주기와 그것의 종말을 극복하는 것은 사랑과 우정의 본질 자체'라고 강조한다.(352쪽) 결국, 타인과의 공감과 소통에 대안이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나는 생각했다.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일, 무의식중에 소비 생활에 물들어 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깨어 있는 일.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공존하는 삶.

 

   짧게 주고받는 대화 형식의 글을 기대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서면 대화를 주고 받은 듯, 한 사람의 이야기가 꽤나 길다. 대중과의 공감과 소통을 중시하는 바우만인지라 이번 책도 쉽게 읽힐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학자들 간의 대화라서일까. 번역탓일까. 어려운 용어가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화 형식의 글인데도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 않다. 각자 이야기하다 뜬금없이 "자네는~" 하는 어색한 호칭이 몇 번 등장할 뿐이다. 역자의 후기를 통해 길잡이를 얻어볼까 했으나 웬일인지 역자후기도 보이지 않는다.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이야기니까 말이다. 다만, 유동적 근대사회의 문제점을 도덕적 감수성 상실로 봤다는 점에 크게 공감이 갔고, 두 학자가 대화 중에 인용한 다양한 문학 작품과 학자들의 연구물에 대한 소개는 유용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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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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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쓸모 많은 사회학 - 한국 사회를 지배한 모멸감을 꺼내 보이다.

 

   김찬호는 우리의 삶과 사회를 조망하고 분석하는 사회학자이다. 30개의 공간을 중심으로 한국인의 삶과 문화를 탐구한 [문화의 발견], 돈의 실체를 인문학적으로 규명한 [돈의 인문학] 등 여러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모멸감]은 ‘굴욕과 감정의 사회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가장 최근에 출간된 책이다. 책은 우리의 삶을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위험한 감정인 모멸감에 대해 다룬다. 과거나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우리의 문제이기에 공감하며 책장을 부지런히 넘기게 된다. 저자의 눈을 통해 사회를 넓게 바라보면 모멸을 주는 우리가 보이고, 모멸감으로 고통 받는 우리가 보인다.

 

   최근 보복 살인, 보복 운전, 층간 소음으로 인한 살인, 고객의 갑질 행태 등 흉흉한 사건이 자주 보도된다. 왜 이렇게 사소한 일에 크게 분노하고 위험한 행동을 하는지 동기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저자는 이러한 사건들의 이면에 모멸감이 존재한다고 본다. 모멸감은 타인에게서 모욕이나 경멸을 받았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모멸은 인간이 목숨 보다 소중히 여기는 자존감을 크게 훼손시킨다. 자존감을 훼손당한 사람은 ‘자신 또는 남을 죽이고 싶은 충동마저’ 느낀다. 저자는 한국이 모멸감을 쉽게 주는 사회라고 말한다. 철저한 서열의식과 귀천 관념,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짓밟는 심보가 한국인의 심성을 지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서로 아무렇지 않게 모멸을 주고받는 사회 안에서는 인간다운 삶을 살 수도, 행복할 수도 없다. 오늘은 내가 갑이지만 내일은 을이 되어 누군가에게서 모멸을 당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자존감을 지키고, 서로 존중하는 문화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저자는 세 가지 차원에서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는 일자리 창출, 불평등한 분배의 개선, 부동산 가격 안정 등 구조적 차원의 접근이다. 둘째는 특정한 기준으로 인간의 귀천을 나누는 문화를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도록 바꾸는 문화적인 차원의 접근이다. 마지막은 모멸감을 당하지 않도록 개인의 자존감을 키우는 일, 즉 내면적인 힘을 키우는 일이다.

 

   [모멸감]을 읽으면서 문득 이것이 사회학의 쓸모구나하고 깨닫게 된다. 사회학은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넓은 시야를 통해 나의 위치를 확인하게 해준다. 개인의 삶과 사회․문화 구조가 맞닿은 지점을 조망하게 해준다. 사회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사회의 이면이 또렷이 드러난다. 나와 너를 가르고 우위를 점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사람들, 조금이라도 나 보다 못하다 싶으면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 내가 받은 모멸감을 더 약한 사람에게 분노로 퍼붓는 사람들. [모멸감]을 통해 우리는 한국인을 지배한 부정적인 감정들의 이면에 존재하는 모멸의 매커니즘을 확인할 수 있다. 책에 인용된 연구물, 영화, 문학 작품, 다양한 통계 자료는 나 또한 모멸 매커니즘의 일부일 수 있음을 생생하게 깨닫게 해준다. ‘모멸감을 주는 사회 못지않게 위험한 것이 모멸감을 쉽게 느끼는 마음’이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다만, 모멸을 넘어 존엄한 삶을 살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한 세 가지 차원의 대안이 그리 새롭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원론적인 수준의 논의에 그쳐 아쉽다. 하지만 한국 사회를 지배한 감정의 실체를 분석하고, 모멸의 매커니즘을 지적한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크다. 모멸을 넘어 존엄한 삶, 인간적인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는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조언이다.

 

   책에 담긴 사유는 넓고 깊지만 읽어나가기 어렵지 않다. 인용한 문구나 사례들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것들이라 낯설지 않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내는 저자의 문체도 쉽게 읽힌다. 사회학의 쓸모가 궁금하다면, 모멸감이란 낱말에 자꾸 눈길이 머문다면, 한국인을 지배한 분노와 불안의 원인을 알고 싶다면 망설이지 말고 읽어보자. 당연시 했던 일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고, 나는 그 동안 누군가에게 모멸을 주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사회학의 쓸모를 깨닫게 되는 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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