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분 엄마의 인문학 습관 - 엄마의 생각의 깊이만큼 스스로 성장하는 아이
한귀은 지음 / 예담Friend / 2016년 2월
평점 :
품절


엄마와 아이를 살리는 로고테라피

<엄마의 인문학 습관>



   저자는 '전형적으로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고, 전형적으로 스마트폰을 끼고 사는' 평범한 14살 아들을 둔 엄마다. 아들을 키우면서 마주치는 긴장과 갈등, 고통 그리고 환희의 순간들을 54개의 짧은 에세이로 풀어냈다. 공부하지 않는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고, 아이의 성적에 대해 고민하고, 사춘기 아들과 말다툼을 벌이는 모습 등 엄마라면 누구나 공감할 엄마의 일상이 담겼다. 재미있고 쉽게 읽혀서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하지만 이 책은 "너도 그러니? 나도 그래!" 하는 맞장구만 유도하는 동네 친한 아줌마의 수다 수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저자 한귀은은 경상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인문학으로 잔소리할 줄 아는 엄마'다. 엄마인 자신에 대해, 아이에 대해, 아이와의 관계에 대해 이성적 성찰을 해나간다. '엄마로서 살아남기 위해' 아이와 자신에 대해 여러 질문을 던져보고, 해석해나가는 로고테라피(Logotherapie)를 실천했다. 로고테라피(Logotherapie)란 ' 이성적으로 어떤 의미를 생각하고 발견하는 심리치료 방식'(p.212) 이다. 예를 들면, 아이의 행동 때문에 와락 짜증이 날 때 '내가 왜 짜증이 날까' 해석해보는 거다. '짜증이 나면 짜증을 억지로 참지는 말되, 그 짜증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고 아이와 자신에 대해 재해석을 해봐야 한다.'(p.213) 고 저자는 말한다. 짜증의 원인을 생각해보면 불필요한 감정싸움을 줄이고, 아이의 긍정적 변화를 유도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이성적 성찰, 로고테라피가 저자가 강조하는 '엄마의 인문학 습관'이다. 

한마디로 인문학이란, 인간이나 인간성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는 학문이다. 이 세상에서 엄마와 아이의 관계만큼 인문학이 더 필요한 경우가 있을까. (p.11)

   정말 그렇다. 아이를 고유한 인격을 가진 한 인간으로 키워내는 일을 하는 엄마에게 인문학은 필수적이다.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행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아이는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인지, 나는 어떤 엄마가 될 수 있는 사람인지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들 하는대로'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갈팡질팡하게 된다. 저자는 아들과 갈등이 생길 때마다 인문학을 통해 갈등의 본질을 이해하고, 대처 방법을 찾는다. 아이를 명문대를 보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때면 현대인의 모방 욕망을 꼬집은 르네 지라르의 <<폭력과 성스러움>>을 떠올린다. "내가 바라는 내 아이의 미래상이  '나의 욕망'인가, 누군가로부터 주입된 모방된 욕망인가?"를 따져 묻는다.

다른 부모들이 자기 아이를 명문대에 넣으려고 기를 쓰고, 대기업에 가게 하지 못해 안달할 때, 자기 아이의 재능을 지켜보고, 아이의 욕망과 자신의 욕망을 직시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정말 잘 사는 사람이 아닐까. (p.39)

  아이가 원하는 것을 다 못해 줘서 미안한 마음이 들 때 저자는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을 들춘다. '지나치게 잦은 여행을 하고 지나치게 다양한 인상을 심어주는 것은 어린아이들에게 좋지 않다.'는 러셀의 말을 되짚는다. 행복의 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권태를 이기는 힘을 가져야 하며, 아이의 행복을 위해 아이에게 권태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지혜를 얻는다. 아닌게 아니라 요즘 아이들은 정말 바쁘다. 엄마들은 아이를 똑똑하게, 남다르게 키우고자 틈틈이 여행을 가고, 각종 문화체험에 아이를 데리고 다닌다. 방학이면 경쟁적으로 박물관, 미술관에 몰려드는 아이들을 보면서  씁쓸함이 느껴질 때가 많다. 엄마 손에 이끌려 학습지를 손에 들고, 바쁘게 그림을 하나씩 훑고 지나가는 아이. 사설 학원의 체험학습 프로그램에 따라 강사 뒤를 따르며 학습지에 정답을 받아 적느라 바쁜 아이들. 나는 러셀이 강조한 '권태를 이기는 힘'을 떠올리며 아이에게 권태와 결피, 지루함을 참아내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에 크게 공감했다. '무엇이 중요한가?', '본질은 무엇인가?를 묻고 답하는 일, 그게 엄마에게 필요한 이성적 성찰이고 인문학 습관이다.  

​   저자는 아들을 키우며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를 그대로 드러내고, 그것을 통해 성장해나가는 엄마의 모습을 진실되게 보여준다. 엄마의 맘을 몰라주는 아이 때문에 상처받기도 하고, 아이와의 밀당을 하며 권위를 잃지 않으려 애쓰기도 한다. 평범한 엄마의 일상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일상에 묻혀 수동적으로 살아가지 않고, 인문학적으로 자신의 삶을 성찰해나간다. 엄마 노릇을 잘 해보려는 노력은 엄마인 '나'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성장과정과 취향, 장단점 등에 대해 차분히 정리해낸다. 자신에 대해 알아가면서 아이를 이해하고, 아이와 소통하는 일도 한결 수월해진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역할'이 아니라 '존재'로 다가가야 할 때가 있다. 역할의 딜레마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분명 역할이 중요하지만 그 역할의 비중이 너무 커져서 존재를 막아버리게 해서는 안 된다. 나 자신을 엄마로서만 말고 '나'라는 존재로 보자. 내 아이도 내 아이로만 보지 말고 그 '존재' 자체를 보자. (p.222)

   엄마의 인문학적 습관은 엄마인 나와 아이를 '존재' 그 자체로 보는 일을 하기 위한 노력이다. '좋은 엄마'라는 허울 속에 나를 가두지 말고, '좋은 아이'라는 망상에 내 아이를 가두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왜?"라고 묻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엄마는 읽고, 쓰고, 생각해야 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인문학이 엄마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엄마의 성장이 왜 중요한지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자기 절제 사회>>,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레토릭>>, <<부모와 다른 아이들>>,<<인간은 언제 지루해했을까?>>, <<부모혁명 스크림프리>>, <<게으름에 대한 찬양>> 등 책 속에 인용된 글들은 지금 나와 내 아이의 관계를 성찰해보는데도 도움을 줬다.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 엄마라도 이 책에 담긴 글들을 하루 한 편씩 읽으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이 책의 마케팅 문구처럼 하루 10분이면 족하다.

 

아이와 엄마는 공동체다. 아이의 행복이 엄마의 행복이 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행복의 순환, 사랑의 피드백과 피드포워드, 그것이 엄마와 아이 관계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엄마는 아이를  '잘' 사랑해야 한다. 그 사랑 속에서 엄마 자신도 성장해야 한다. 아이를 잘 키우는 방법은, 아이를 잘 키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엄마 자신의 성장에 있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p.209) 

   책을 다 읽고도 '아이를 잘 키우려면, 잘 사랑하려면 엄마가 성장해야 한다'는 말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이일 뿐만 아니라 엄마로서의 나 자신이었다. 실로 나의 양육 투쟁은 치열했다. 그런데 그것은 아이와의 투쟁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투쟁이었다.'(p.288)라고 고백한다. 나는 얼마나 치열하게 나 자신과 투쟁하고 있나, 성장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나 되묻게 된다.

   책에는 엄마와 아이의 관계를 담은 그림이 중간중간 등장한다. 그림에 담긴 엄마와 아이의 마음이 나와 내 아이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서 공감하며 보았다. 특히나 마지막 그림인 한스 안데르센 브렌데킬데의 <가을, 나무가 우거진 오솔길>을 보다가는 울컥하기까지 했다. 가을 오솔길 가 벤치에 엄마가 앉아 있고, 저 멀리서 두 아이가 달려오는 어찌 보면 정적이고 편안한 그림이다. 그런데 저자가 덧붙여 놓은 설명을 읽어보면 편안히 그림을 볼 수가 없다.


멀리서 다가오는 아이 둘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이 어떨까. 반갑고 흐믓하고 자랑스럽고 든든하고 뿌듯하고 행복할 것이다. 그래도 엄마는 일어나지 않는다. 나라면 아이들이 오기 전에 일어서서 먼저 달려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럼 안 된다. 아이들에게, 엄마에게로 다가올 시간을 줘야 한다. 엄마가 그 자리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아이들은 저렇게 걸어오는 행동만으로도 엄마에게 힘을 준다 


​   나 는 엄마니까, 엄마라서 벤치에서 일어나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마음을 안다. 엄마는 아이에게 먼저 달려가 뽀뽀를 퍼붓고, 아이가 넘어질까 봐 손을 잡아주고, 아이 발에 흙이 묻지 않도록 깨끗한 길로 이끌고 싶다. ' 그런데, 그럼 안 된다.' 는 저자의 단호한 어투에 울컥 눈물이 나려고 한다. 그래, 엄마는 사랑도 '잘' 해야 한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야 '엄마의 생각의 깊이만큼 스스로 성장하는 아이'라는 이 책의 부제가 눈에 들어온다. 아이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설 수 있는, 그러나 '엄마가 그 자리에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성숙한 엄마가 되고 싶다. 나는 하루 10분이 아니라 더 많은 시간을 읽고 생각하고 쓰겠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잔소리를 하지만 본인은 읽지 않는 엄마,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엄마, 아이와의 감정싸움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엄마, 육아와 살림의 일상 속에서 자신이 텅 비어간다고 느끼는 엄마,... 저마다의 고민으로 우울한 하루를 보내는 엄마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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