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뇨리따 2016-09-23  

바빠요.
사색을 빙자한 잡생각따윈 한치도 허락받지 못할만큼 헐떡이며 살고있죠. 여기엔 치열하게 사는 낭만을 그리워 하던 백수를 그리워하는 월급쟁이밖에 남지 않았네요. 그랬어요. 낭만은 방관자의 전유였어요

막연하게나마 기약했던 계절은 의식할 새도 없이 지나갔네요. 때 늦은 인사지만 명절은 잘 보내셧는지.

낭만따위 없이 살다보니, 까막눈처럼 글을 잊었어요. 읽어도 글자와 의미는 명백히 다른방향으로 조합되는 와중에, 퇴근길 뇌리에서 코에걸린 재채기처럼 간질거리는 노래가사 하나에 골몰했더랬죠. 근 몇주간 처음있는 문학활동이었어요.

기억해내고 보니 정경화의 지상에서 영원으로.
어릴때 뭣모르고 전율했던 가사의 참의미를 곱씹었죠. 꼭꼭 씹었어요. 쌀은 씹을수록 감칠맛을 더한다는대 간만에 느낀 문학적 환희에 귀가 떫도록 반복해 들었죠. 참 잘 지은 글은 바쁘다는 핑계가 무색하게 감동을 주는구나. 그런데 왜 이런 문학적 영감의 끝은 항상 말미잘의 서재일까요? 길들여진건가 싶기도 하고..

뭐 여하간 그렇게 일해서 쓸 시간도 없이 사는대 무얼했는고 하니, 치미는 뽐뿌를 이기지 못해 시계를 질렀네요. 엤날에 덕질할때는 기계식 시계의 아날로그틱 감성에 개똥철학을 칠해서 열변을 토하며 그 값어치에 대한 자가변호를 하기 바빴는대, 뭐 다들 알잖아요. 사치죠 사치

선생님들 글월이나 그럴듯하게 배끼는 꼴에 미문이 아니면 눈치에 두지도 않는다거나, 남들은 진작에 노후대책이다 뭐다 시작하는 판국에 꾸역꾸역 모아도 살둥 말둥하는 월급쟁이가 주제 모르고 월급보다 비싼 시계를 산다거나 하는거.

참 예쁜대 거기서 부들거리는 저를 보다가 아 이런 고민도 사치구나 싶더라구요. 죽는것에 비하면야 사는것도 사치잖아요. 그냥 그렇게 살아보려고요. 나중 걱정은 나중의 내가 해결하지 않겠나요.

죽을때 아 참 사치스러운 인생이었다 하고 뿌듯하게 죽을수 있기를. 말미잘의 신랄한 비문을 선물받는 사치도 누릴수 있기를. 뇌가 익어가는 중에 필터없이 나오는 헛소리를 말미잘이 잘 필터링해서 미문으로 답장해줄거라 알기때문에,
저는 늘 여기서 마음놓고 똥을 싸죠.

요지는 그러니까..
'명절은 잘 보내셧는지..?'
 
 
뷰리풀말미잘 2016-09-27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뭐 명절이랄 게 없습니다. 오는 사람도 없고 갈 곳도 없고 내내 책이나 읽고 뒹굴거리다가 명절음식으로 타르트나 몇 개 만들어 먹는 정도죠. 제가 에그 타르트를 기가 막히게 만드는데요. 먹어 본 사람들은 인생타르트라며 다들 울먹울먹해요. 레시피 올려서 요리 블로거로 거듭나 볼까요? 하지만 올해는 치즈 타르트를 만들었다가 폭망해서 조금 우울했어요. 역시 사람이 한 우물을 파야되나봐요.

시계라. 그거 참 덕질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는 분야라고 하더군요. 이천만원짜리 시계와 분리불안장애를 겪는 친구를 하나 알죠. 저는 시계를 전혀 하지 않아요. 전에는 귀도 세 개나 뚫고, 반지에 팔찌에 목걸이에 악세사리를 주렁주렁 하지 않으면 어색했는데, 심플라이프에 경도된 삶을 살다보니 옷 말고 뭐가 피부에 걸쳐져 있는 게 어색하더라고요. 가급적 스마트폰만 하나 가지고 다닙니다. 하지만 뭔 패션잡지 같은 거 보면 그 내부의 파츠가 노출된 그런 거 있잖아요 왜. 스켈레톤 스타일. 그런 거 보면 막 홀리고 그럴 때도 있어요. 예쁜 건, 예쁜 거예요. 예쁜 걸로 충분하죠. 사치 인정합니다.

오늘 퇴근길에는 정경화의 지상에서 영원으로. 들어보겠습니다. 최근에 가입한 벅스로. ㅎㅎ 전 비 오면 링크의 비가와 듣는데 이 노래를 그렇게 좋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반사적으로 듣게 되는거 같아요.

글고요. 팔월은 마음속에 있는 겁니다. 팔월이라고 생각하면 그게 팔월인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