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가 이사를 했어. 먼 곳이었어. 서울 도심에서도 맑은 날에는 도봉산이나 수락산이 보이잖아. 그 정도 거리였어. 버스를 타면 한 시간은 더 가야 도착하는, 버스 종점이 있는, 그런 동네. 실제로 집 뒤쪽으로 야트막한 산이 있었어. 분위기는 영 좋지 않았어. 성수동 미개발택지지역이나 상계동 당고개역 윗길의 허름한 주택촌 같은 느낌. 늘보를 초청하기로 했지. 늘보는 버스를 타고 이쪽으로 와서 나와 동네를 산책했어.

 

꼬불꼬불한 골목을 걷는데 날이 어둑어둑 해졌고, 큰 길로 나왔어. 그러는 동안 꽤 긴 시간이 걸렸어. 우리는 골목의 난잡함에 기가 빨린 상태였지. 저 뒤편 산으로는 무리지어 있는 무덤들이 보였고, 산 뒤로는 해가 떨어지고 있었어. 동네의 분위기가 으스스하게 바뀌기 시작한 건 그때 부터였어. 

 

인적이 드물어지는 만큼 노란색 봉고차가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어. 의아할 정도로. 늘보는 거의 본능적으로 불안해하기 시작했고, 사실 나도 좀 그랬어. 게다가 그의 불안함 자체도 나의 불안요소 중 하나였지.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길을 찾아가고 있는데 노란 봉고차가 저 앞에 끽 서는 거야. 그리고는 사내 하나가 내려서 지나가던 아이를 강제로 차에 던져 넣고 문을 쾅 닫았어. 차는 급하게 엑셀레이터를 밟았고 나는 그 소리에 정신이 확 깼어. “번호 외워!” 나는 미친 듯 번호판을 외우면서 혹시 틀릴 수 있을까봐 그에게도 말했어.

 

서울 708041’ ‘70는 지금에 와서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8041’은 정확해. 이건 무슨 의미일까. 어쨌든 다시 확인했을 때 늘보는 70제 부분을 정확히 외우고 있었어. 나는 파출소로 가기 전에 늘보를 택시에 태우려 했어. 그를 더 이런 동네에 두는 게 마뜩찮았거든. 하지만 택시는 다니지 않았고, 승용차만 아주 드물게 지나다녔어. 나는 생각다 못해 히치하이킹을 하려고 손을 들었는데 몇몇 차들이 보지도 않고 우리를 지나쳤다. 그러다 차 하나를 세웠는데 남자 넷이 타고 있더군. 나는 영 꺼림칙했지만 늘보를 태우려 했는데, 약간 주저하는 사이에 인근 군부대의 부사관인 듯 하는 남자가 낼름 뒷좌석을 열고 타 버렸어. 화를 낼 새도 없이 차는 출발했고,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곧 택시를 잡았지. 그를 태워 보내면서 나는 다시 택시 번호를 외웠어. 골치가 아팠지만 그래야만 하는 동네였으니까.

 

그리고 다시 나는 골목길로 들어가 파출소를 찾아 헤맸어. 뭐 하나 제대로 갖춰진 게 없는 곳이였어. 그러다가 저 가드레일 아래 낮은 지대에서 아무 패턴 없이 사방을 하이에나처럼 돌아다니는 노란 차들을 발견했어. 소름이 끼치더군. 도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동네인가! 그때 경찰차 몇 대가 나타나더니 노란 차 한 대를 강제로 세웠어. 노란 차는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펄떡거렸지만 결국 경찰차 사이에 고립되었고, 무장 경찰들이 차 문을 부수고 들어가 중년 남자를 체포했어. 내가 번호를 외웠던 그 차인 듯싶더라고. 용의자는 무장경찰들에 의해 파출소로 끌려갔고, 나도 확인을 하고 싶어 따라서 파출소에 들어갔어.

 

그는 간단한 조사를 받고 의자에 앉아있었는데, 마침 사무실은 경찰들이 거의 다 빠져나가고 휑했어. 나는 망설이지도 않고 그대로 그를 덮쳐서 면상을 미친 듯 후려갈겼어. 그의 얼굴에서는 순식간에 퍼렇게 멍이 올라오더군. 곤죽이 된 그를 두고 문을 박차고 나가는데 무장경찰 하나가 들어오다 나를 마주쳤어. 나는 팽팽하게 긴장해 있는 상태여서 바로 주먹을 뻗었는데, 다행히 그의 턱 밑에서 멈췄어. 그는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다는 듯 피유- 하고 콧방귀를 뀌며 지나가더군. 나가면서 파손된 채 끌려와있던 노란 차의 번호를 확인했는데, 8041이 아니었어.

 

어쨌거나 나는 다시 그 진절머리가나는 골목길로 들어갔어. 그래야 집으로 갈 수 있으니까. 완연히 어두워진 밤이었고, 거리는 한결 으스스했어. 그러다 골목길 끝으로 꽤 넓은 건널목이 보였는어. 유치원을 다녀오는 두 남매 꼬맹이가 인형을 들고 서 있었지. 걔들은 장난삼아 인형을 내 쪽으로 아주 멀리 던졌어. 멀리 던지기 시합이라도 한 걸까. 인형 두 개가 툭- 발아래 떨어졌지. 꼬맹이들은 그제야 나의 존재를 인식했고, 내가 인형을 주워갈까봐 신호등의 불이 바뀌지도 않았는데 길을 건너고 싶어 안절부절하더라고. 나는 거의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 들었어. 건너면 죽는다. 그러고도 남을 동네였으니까. 건널목은 물론 컴컴한 골목에서 뭐가 더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었어. (가로등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고 오토바이가 수시로 튀어나왔어.)

 

나는 소리쳤어. “뛰지마!!” “안 가져갈거야. 뛰지마!!” 하지만 내용은 전달되지 않고, 고함소리만 닿아 애들을 더 초조하게 만든거야. 나는 생각다 못해서 뒤로 돌았지. 그럼 최소한 가져가려는 제스쳐로 보이진 않을 거라는 판단이었어. 다행히 그게 꼬맹이들의 인내심에 도움이 된 모양이야. 신호가 바뀌었고 꼬마들은 날듯이 뛰어와 인형을 가지고 나를 스쳐서는 왼쪽 골목으로 달려가더라. 그리고 엄마!!”를 외치니까. 엄마가. 집 안에서 무심한 목소리로 말 했어. “왔니. 얼른 들어와!” 목소리로만. 나는 그 여자에게 막 화가 나서 악다구니라도 쓰고 싶었어. 이 미친 여자야 제발 이 시간이라면 나와서 애들을 기다리고 있으라고. 방금 네 새끼들이 요단강 건널 뻔 했다고! 실제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다시 미로 같은 골목을 거슬러 거슬러 집으로 가는 길을 찾았어. 처음 산책을 나왔던 그 길이더라고. 그 길에서는 역시 수상쩍은 냉동탑차 하나가 길을 배회하고 있었어. 나는 가능한 분노를 담은 눈으로 탑차의 운전석을 노려봤어. 선팅이 돼서 얼굴도 보이지 않았지만 부디 내 증오가 그리로 뚫고 들어가기를 바라면서. 그러면서도 나조차도 두려움과 공포감에 반쯤 사로잡혀 있었는데 그것이 내 내면으로부터 연원하는 것인지, 그 동네로부터 연원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더라고.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집이었고, 나는 불도 켜지 않은 채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를 열었어. 알겠지만 내가 식욕이 강한 편은 아니야. 사실 별로 없는 편이지. 그런데 알 수 없는 허기가 몰려왔어. 하지만 냉장고에는 반찬 아니면 우유팩뿐. 냉장고문을 닫는 순간, 어둔 거실 저 편에서 엄마가 걸어 나왔어. “다녀왔니?” 라는 그 목소리가 몸살나게 반가웠지. 그 쪽을 바라보니 집은 어두웠고, 엄마는 로브같은 잠옷을 걸치고 있는 듯 했는데.. 그것만으로는 그녀가 진짜 엄마인지 확신할 수 없더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