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기억해야 할 죽음이 많아지는 일인가. 올해만 신영복을 보냈고, 움베르토 에코를 보냈다. 필자들의 망령으로 휩싸여가는 책꽂이를 보며, 늙지 않는 나도 늙어가는 쓸쓸함을 짐작한다.

 

만약, 세상에 나의 서재만이 남았고, 신이 나를 미워해 불이라도 낸다면, 맨 먼저 품을 책은 장미의 이름이다. 거룩한 그레고리오 성가의 단성 음률이 궁륭을 울리고, 성서를 필사하는 수사들의 펜촉 소리만 사각거리는 이태리 어느 수도원. 피비린내는 무슨 연유일까.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수상쩍은 죽음들. 그 비밀은 오래된 장서관에 있었으니, 아드소와 숨 죽여 회랑을 걸을 때 문자향은 더욱 아득했다. 이 아름다운 도서관을 지은이는 고집스런 맹인 소설가였으되, 숨결을 불어넣은 이는 구라파의 현자였구나.

 

침대 귀퉁이에 쪼그려 앉아 밤을 새운 건, 스무 살의 어느 날. 이 소설을 읽고, 중세역사로, 기호학으로, 철학으로, 신학으로 생각을 틔워나갔다. 시절 모를 나의 지학(志學)이었으리라. 나는 공자의 이 말을 마음에 서재를 만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는데, 늦게나마 에코를 읽고 소박한 책꽂이를 채우기 시작했으니, 그는 나의 선생이었다. 한양의 추사가 연경의 담계를 사모했듯, 나는 그를 사모했노라.

 

2015. 2. 19 바벨의 도서관으로, Umberto E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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