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바닥을 두드렸다. 울림도, 진동도 없는 대리석의 단단함이 손가락 마디로 느껴졌다. 나는 석공처럼 바닥에 엎드려 돌 틈에 낀 때를 날로 갈아냈다. 날이 모든 모서리를 긁어내는데 한 나절이 걸렸고, 바닥은 무결해졌다. 다만, 오래 된 사이를 정돈하고 싶었다.

 

이사한 첫 날, 창틀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냉기를 탐색했다. 아르곤 가스를 꽉 채운 창틈으로는 차가운 기운이 끼쳐오지 않았다. 비를 온전히 막아주는 사이 없는 천장, 기온이 치고 들어올 틈 없는 사방이 고맙다.

 

 

#. 2

 

전에 살던 대저택은 비가 샜다. 봄에 옥상에 올라가 크랙을 메꾸고 우레탄을 발라 방수작업을 해 놓고도 여름을 노심초사했다. 침대에 누울 때 마다 천장 합판이 삭아 뚫린 작은 틈이 심난했다.

 

균열은 불안을 자극한다. 그 날, 사고는 내 의식의 빈틈을 노렸고, 이후로 나는 학대당한 개처럼 틈을 두려워한다. 시간의 틈, 언어의 틈, 공간의 틈. 새카맣게 입을 벌린 불가해성 앞에서 내 땀구멍은 축축하게 젖는다.

 

의식의 공백이 불안해 술을 먹지 않게 되었고, 행간을 방황할 의미가 걱정스러워 글을 쓰지 않게 된 것은 오래 된 일. 문을 잠가 나의 영역과 세계의 틈을 봉인하고, 이어플러그를 꽃아 귀와 공간의 틈을 없애고, 안대를 써 시선과 세계의 틈을 닫은 뒤에야 나는 잔다.

 

 

#. 3

 

의사가 뭐래?

 

.

 

.

 

아버지는 입술을 닫아 소리를 두 갈래로 나눴다. 몸 바깥으로 퍼져나간 음성이 휑한 거실을 빽빽한 밀도로 채웠다. 미음으로 끝나는 울림소리의 일부는 그의 안쪽으로 무겁게 파고들었을 것이다. 나는 울림소리를 다시 울림소리로 받았고, 두 울림소리는 거의 간격 없이 공명했다. 과묵한 자들의 가히 수다스러운 침묵이 이어졌다.

 

절제하고 방사선 치료 몇 번 하면 돼.

 

이후의 말들은 꽉 막힌 공간을 빠져나가지 못한 채, 안으로 침잠했다. 나는 속에 더께처럼 내려앉은 말들이 답답해 내 방으로 돌아왔다. 비는 안에서 내렸다. 단단한 벽과 아르곤 창 내부로 우물처럼 고였다. 무결한 사방이, 안대와 이어플러그가 막아주지 못하는 빗물에, 나는 밤새 젖었다.

 

 

#. 4

 

열세 번인가, 열네 번째 이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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