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새벽이고, 나는 좀 취했다. 누워도 잠이 오지 않는다.
그에겐 개인적인 얘기를 여기다 풀어놓는 게 맞을까. 아니, 이건 내게도 개인적인 얘기다. 그런데 블로그는 사유적 사유의 공간인가. 모르겠다. 지금 나는 그렇게 인식한다. 불편하면 뒤로가기 누르시라. 한 뭐시기라는 개새끼와 페미니즘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한다.
#. 1
조독마였던가 진보누리였던가 아무튼 벌써 10년도 훨씬 더 전의 일이다.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아흐리만을 기억한다. 조선일보 논술 대상을 거부하고, 서울대 철학과를 간댔나. 나는 당시에 고등학교도 못 나온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런지 그가 좀 똑똑해 보였던 것 같다. 군대 백일 휴가 들어가는 길에 칼럼 한 편을 적어올리던 성실한 친구였다. 영리해서 어떤 글이든 핵심을 알았고, 문장의 고갱이가 단단해서 글 읽는 맛이 났다. 논리가 정합했고 문장마다, 문단마다 핵심이 있었다. 주장이 분명하고 명료해서 좋았다. 그와 밤 새 글을 적어 올리던 밤에 진심으로 즐거웠다.
그 후로, 나는 이렇게 저렇게 살다 보니까 무슨 주의, 무슨 철학 따위를 주절거리지 않게 되었고, 비겁하게 일신을 보전하느라 바빠 세상의 이슈에 별 관심을 두지 않게 됐다. 그는 잘 커서 여전히 좋은 글을 쓰고 더러 책도 내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류의 책들을 사 모으지 않게 됐지만 어쨌거나 똑똑한 애가 똑똑한 책을 썼을 거라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 2
여자 친구를 때렸단다. 그것도 몇 년 간. 얼마 전에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뭔 패널로 나왔다면서. 주제가 ‘나는 페미니스트다.’였다면서.
#. 3
나는 월장이후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너무 많은 싸움을 했다. 스스로를 ‘마쵸’라고 규정하는 자들도 있었고 ‘페미니스트’라고 규정하는 자들도 있었다. 전선은 이론의 영역 모두를 포괄할 만큼 광대했고, 비트겐슈타인이 지적한대로 말은 말 속에 꼬리를 물어 결국, 오해와 곡해가 뒤엉키고 피아가 식별되지 않는 상황이 빈번했다. 사람을 잃고서야 나조차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말하기를 멈췄다. 조금 멀어지니 그제야 전선의 윤곽은 명확해졌으나. 다시 그 판에 끼고 싶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지긋지긋하다. 아주 지긋지긋하다.
‘삶’이 인구의 숫자만큼 다양한 모습이듯 ‘페미니즘’도 계급, 계층, 문화, 지리에 따라 전개되는 양상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 안에는 심지어 남자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는 주장도 있고. 여자친구를 두들겨 패고 ‘나는 페미니스트다’를 이야기 하는 한윤형도 있다. ‘김정일 개새끼 해봐’처럼 페미니스트냐 아니냐를 결정하라고 윽박지르는 알라디너도 있다. 2000년대, 그 지리한 참호전 끝에 내부는 비교적 평안을 찾은 모양이지만 경계에서는 아직도 혼전이 벌어지고 있다. 임옥희 교수는 ‘나는 페미니스트다’선언하는 해시테그 페미니즘을 보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는데, 그 불안을 이해한다.
얼마 전 친구 하나는 나를 비난했다. 내가 특정 젠더문제(pek0501님의 글이었다. 관련글: http://blog.aladin.co.kr/717964183/7485583)를 성별이라는 진영논리를 넘어 객관적 시선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여성이기 때문에 객관적일 수 없고,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다고 했다. 객관성은 아무 문제도 해결해 줄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페미니즘이란 ‘출발부터 인간 해방 기획이었다.’ 그는 이 점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그러니 페미니즘이 특정 젠더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주장은 ‘객관’성을 잃고 마음 속에선 여성성/남성성을 갈라 가족오락관 재방을 찍고 있는 거다. 2015년에. 별 특별할 것도 없는 글을 읽고.
페미니즘은 사회적 고정관념을 해체하며 성장해왔다. 몸과 정신을, 가부장제의 부조리함을, 남성의 페니스 파시즘을, 여성성이라는 지옥 같은 껍데기를. 그가 페미니즘이 인간 해방 기획임을 이해할 때 그가 소중히 여기는 ‘감성’과 ‘감정’이 곧은 이성의 무릎 위에 올바로 설 수 있으리라. 그 때, 호기심으로 Revenge porn본 얘기를 천연덕스럽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여성의 성노동이 옳은지 그른지 비로소 분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말 해봤자 불편하구나. 역시 나는 그냥 닥치고 있는 편이 속 편한 것 같다.
#. 4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해 그것을 되물림 했다는 한윤형의 변명은 다분히 프로이트적이다. 배운-새끼라 그런지 지랄도 제법 철학적 구조를 갖췄다. 근데, 그 나이먹도록 노쇠한 아비조차 해체하지 못했다면 철학공부는 왜 했나.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고추라면 그냥 자르는 편을 추천한다. 최소한 페니스 파시즘 소리는 안 들을게 아닌가.
학문은 윤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 논객이랍시고, 글 깨나 쓰는 무슨 블로거랍시고 인터넷에서 함부로 나불거려도 좋다. 언어의 자유만큼 중요한 가치도 또 없으니까. 그러나 최소한 '이즘'을 말하는 자는 '보편적 입법의 원리'를 궁구해야 한다. 이성의 검증을 회피하고, 도덕적이기를 포기한 ‘이즘’은 오직, 파시즘Fascism 뿐이다.
내가 신뢰했던 한 개인의 부조리에서 나약한 먹물들의 내면이 얼비친다. 머리만 영근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오래전 세계의 부조리에 핏대를 세우던 그 청년은 늙어 부조리 그 자체가 되었구나. 이런 것이었나.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