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세뇨리따님.

두둥. 어제 12월 24일 4시 44분에 찍은 사진입니다. 세뇨리따님이라면 새벽, 4시 44분에 이런 수상쩍은 번호판을 가진 택시를 만난다면 타시겠습니까? 조건 1. 안 타면 삼족을 멸함.
#. 1
샘숭에서 나온 300만화소 똑딱이 디카였어요. 당시만 해도 디카가 아직 대세가 아니었던 시절이라 성능도 변변치 않은 것들이 값은 오지게 비쌌죠. 30만원이나 40만원 쯤 하는 물건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물건들과 비교했을 때 가성비는 좋았습니다. 엔간한 수동기능은 다 지원했으니까요. 최신형 32mb SD카드를 꽂아 넣고 뭐든 찍었죠. 한 서른 두 장 쯤 찍으면 꽉 차는 용량이었어요.
폐공장에도 기어들어가고, 아파트 옥상 난간에도 올라가고, 지하철이 역으로 들어오는 순간 터널에 목을 들이밀기도 했죠. 거미줄 같은 청계천 뒷골목. 오래된 곤돌라 녹슨 철판의 결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올려놓고 수도 없이 셔터를 눌러댔던 기억도 나는군요. 저녁에 경춘선 육교 위에 올라가면 밤과 낮이 질펀하게 뒤섞이는 그 순간, 석양이 기가 막혔는데, 거기서 한 사흘은 셔터를 눌러댔을 겁니다.
지금은 대체로 없는 것들이네요. 청계천도, 경춘선도 카메라도 뭣도 다 어디로 가 버렸습니다. 심지어 제 외장하드에도 없는 것들이 많아요. 하지만 셔터를 누른 순간의 기억과 그 순간의 쾌감만은 제 뇌장하드에 고이 남아있습니다.
당시의 저는 사진에 대해서 쥐뿔 몰랐어요. 얼마나 몰랐느냐면 청와대에 계시는 그 분이 정치에 대해 아시는 것 만큼도 몰랐어요. 다만, 사력을 다해서 찍으니까 때론 그림이 나오더라고요. 그것들 중 몇 몇을 여기에도 업로드 했더랬죠.
십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고, 지금은 그보다 다섯 배는 족히 비싼 소니 DSLR를 쓰고 있습니다. 그간 카메라의 모든 수동기능을 마스터했고, 바바라런던의 '사진학강의'도 읽었는데 결과물은 영 변변치가 않네요. 300만 화소 카메라로 찍을 때가 나았어요. 카메라가 좋아서 대충 찍어도 엔간히 나오니까 빛이며 구도를 열심히 재지 않는 탓도 있을 테고, 16기가나 되는 SD카드 덕분에 용량이고 뭐고 마구잡이로 셔터를 눌러대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역시 사진은 내공인가요.
요즘 카메라와 저의 관계는, 시들시들 하다는 얘기입니다.
오래된 연인처럼.
아, 물론 제가 연애를 그렇게 하는 타입은 아니에요.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말이죠. 일반적으로.
#. 2
결핍에 대해서 말 하고 싶습니다. 삶이든 지식이든 다 갖춰져 있으면 사람은 나태해지는 것 같아요. 반대로 뭐가 결핍되어 있다고 인식하는 순간 사람은 그걸 채우기 위해 오만 노력을 다 하죠. 밥이든 섹스든 문학이든 뭐든. 그게 인류 역사가 진보해온 방식이 아닐까요.
저는 찍은 사진을 외장하드에 날짜순으로 폴더를 만들어서 정리하는데, 그나마 괜찮은 사진을 찾으려면 결핍됐던 시절의 폴더를 누릅니다. 12년 12월. 2년 전 이맘때로군요.
브리즈번에 살 때였는데, 아주 고단했고, 시간도 없었고, 외로웠어요. 이런 저런 거지같은 이유로 여행이고 뭐고 전혀 할 수가 없었죠. 회복되지 않고 끊임없이 내적으로 갉아먹혀가는 삶이었죠. 그러다 번뜩 용기를 내서 바이런 베이로 가는 버스를 탑니다.
거기가 어딘지도 잘 몰랐습니다. 저는 동명의 시인을 알았고, 버스가 있었고, 그냥 탔던 거죠. 호주대륙의 동쪽 끝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엄청난 풍경이 펼쳐져 있더군요.
카메라에 담기 황송할 정도로.

마침내 타이밍이 왔고, 앵두같은 입술을 조금 벌려서 삼가 공손하게 호흡을 들이마셨고, 섬섬옥수 가녀린 손가락 끝에 힘을 꼭 줘서 몇 장의 사진을 얻어냈답니다.
거기서 저는 조금 재충전을 할 수 있었고, 덕분에 세뇨리따님과 이렇게 할랑한 수다를 떠는 오늘날의 제가 있을 수 있었던 거죠.
#. 3
요즘의 저는.. 앗,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
여기부터는 다음 페이퍼로..
메리 크리스마스 세뇨리따님.
PS: 4시 44분은 조금 무리수였죠..? 7시 10분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