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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산책을 했다. 어둑어둑한 저녁, 게으른 밤 고양이처럼 눈을 뜨는 가로등 사이로 오래 걸었다. 실타래 같은 골목길은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뒤엉켜 새 길을 열었다. 나는 길 사이로 내 몸을 밀어냈고, 서릿발 선 찬 공기와, 낮 모르는 사람들과, 본 적 없는 주택단지들이 내가 몸을 밀어내는 속도로 다가왔다.
송곳 낫으로 고등어 아가미를 퍽퍽 찍어대는 아저씨의 어물전과, 갓 구워낸 식빵을 파는 빵집 앞에서 머뭇거렸다. 잡화점에서는 플라스틱 다라이와 밀폐용기, 다림질 판 머리를 샀다. 노점 구둣방에서는 망가진 구두를 고쳤다. 망치와 작은 모루로 금방 구두를 고쳐준 아저씨는 돈을 받지 않았다. 희끗 거리는 머리에 툭툭 불거진 팔 힘줄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시장을 지나 커다란 은행을 끼고 한 바퀴를 빙 돌았다. 밤은 깊었고, 나는 길치라 돌아가는 길을 되짚어 갈 수 없었다. 집이 있는 방향을 짐작해 그 쪽으로 무작정 걸을 뿐이었다. 꼭 집이 나오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헤맨다는 건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로 사소한 일이니까.
그래, 그건 정말로 사소한 일이다.
그러고 보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아주 긴 헤메임의 과정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