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부 종이접기 클럽 (양장) 소설Y
이종산 지음 / 창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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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접기에 대하여.
1.
풍영중학교 2학년 여학생, 정세연인 '나'의 시점으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끈질기게 매달"리는 이성적인 소라와 호기심이 넘치는 모모와 함께 도서부이면서 종이접기 클럽을 운영중이다. 이 책은 종이접기의 매력을 잘 알려준다. "절대 대신 접어주지 않는다"(p.119) 이런 회복탄력성을 배울 뿐 아니라 ,"쉬워 보이는 것도 직접 해 보면 의외로 어렵다"(p.59)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세상을 배운다. 뿐만 아니라 종이접기를 하며 세연이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을 줄 알게 된다. 남의 환대를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첫 단계임을 그 나이의 세연이는 모르겠지만 나는 알고 있고 다시금 확인한다.

도서관에서 종이접기클럽 활동을 한다는 것은 지난 시간이 응축되어 있는 이 도서관의 공간을 그때의 학생들이 그랬듯 지금의 나도 소라와 모모와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 연결되어 있다.
2.
가끔 교복입은 어두운 얼굴의 여학생들이 지나가면 주제넘게 그 아이들의 주된 고민 몇 가지를 떠올리게 된다. 학업, 진로, 가정에서의 부모와의 관계 그리고 특히 친구와의 비교로 미워하게 되는 자신의 모습. "나를 만든 것은 대체 어떤 신일까?"(p.61) 세연이처럼 나도 그때 그랬다. 똑부러지고 한번 마음 먹으면 해내는 소라가 부러웠고 호기심 생기는 일에 대해 과감하게 도전하는 모모가 부러웠다. 그 시절의 나도 내 자신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1937년의 그 아이들은 그럴 새도 없었다. 그들의 아버지가, 오빠가, 누나가, 친구들이 돌아오지 않았고 할 수 있는 것은 염원을 담은 종이학을 접어 태우는 것 뿐이었다. 1937년의 수이가 "내가 항상 널 기억하며 살았다면 믿겠니?(p. 220)"라고 말했다. 그녀가 세연이의 말을 기억하고 살아주었듯, 세연이도 수이를 보며 잘 살아내 주기를 바란다. 모모와 소라와 함께, 레비나스의 단단한 자기성(개체성)을 가지고 말이다.


한줄평:
그 시대에 종이접기 할 정도로 종이가 풍성했는가 살짝 의심한 부분에 대해 미안해지는 결말의 감동이 있는 책

p.s "이제와 말이지만, 난 사실 친구들이랑 같이 종이접는 시간이 참 좋았어. 시키니까 마지못해서 하는 척했지만, 돌아보면 그냥 날 위해 접었던 것 같아. 한참 종이를 접다 보면 시끄럽던 속이 조용해졌거든. 슬픔도 가라앉고, 화도 가라앉고, 터질 듯한 그리움도 잠시 내려놓게 되고, 종이학 접는게 지겨워지면 꽃도 접고, 나비도 접고, 새도 접고(...)"(p.222) 요새 나는 테레사 책방선생님께서 수업하시는 그림책인형 만드는 동아리에 들어갔다. 세연이처럼 서툴지만 남이 대신 해줄 수 없다는 것, 보기엔 쉬워보여도 직접 하면 어렵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22쪽 발췌처럼 '시끄럽던 속이 조용'해짐을 느낀다. 비록 노안에 보이지 않는 바늘 귀에 실을 꿰을 지언정 난 힐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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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과 잠자리 - 2020 보스턴 글로브 혼북, 2020 전미 도서상(National Book Awards)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140
케이슨 캘린더 지음, 정회성 옮김 / 사계절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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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킹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형 칼리드의 죽음이 3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다. 킹은 칼리드 형과 같은 방을 썼는데 형은 잘 때 잠자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리고 형의 장례식에 들어온 잠자리를 킹이 보고는, 형이 잠자리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 날 이후 동생 킹은 하교하는 길에 있는 늪지대를 거닐며 형을 찾는다. '형의 죽음으로 킹이 할 수 있는 것은 잠자리가 된 형을 찾는 것 뿐'(p.48)이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주인공 킹은 킹스턴의 애칭으로 흑인이다. 흑인하면 BLM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책은 인종에 관한 것 외에도(KKK단원이었던 백인 가족과 킹의 가족사가 언급된다) 여러 편견들이 이 소설에 드러나있다. 예를 들어 킹의 친구, 대럴은 키가 작지만 농구를 좋아한다. 자신보다 더 큰 브리애나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에 대해 '남자는 여자보다 커야한다(p.31)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킹의 아버지도 '사내가 주방에서'(p.58)그런 일을 하면 안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가족을 괴롭히던 백인가족의 샌디는 동성애 성향이 있는 킹의 친구이다. 킹과 재스민, 샌디는 셋이 친했지만 형은 샌디와 같이 다니다가 소문이 나는 것을 우려해 가깝게 지내지 말라고 충고한 적이 있다. 그리고 샌디는 그런 성향을 받아들일 수 없는 아버지로 부터 자주 구타를 당하고 가출하기에 이른다. 그런 샌디의 가출을 은닉하게 된 킹은 비로소 잠자리가 된 형을 조금씩 잊게 되며 소설의 중반을 지나간다.

집에서 든든했던 장남 칼리드의 죽음으로 슬픔이 들이닥친 킹의 집. 그의 어머니는 더이상 요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 킹을 등교시키는 아버지가 '사랑한다'고 선뜻 말하지 못하지만 하게 되는데 킹은 그 사랑한다의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 죽은 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응답으로서의 '사랑한다'를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편견은 아니지만 서로에 대한 이런 오해가 가슴아팠다. 킹은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라서 유리같다. 이런 현실들이 그대로 투영되어 킹의 마음에 박히는게 보이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을 좇는 잠자리를 제목에 갖다 둔 것만으로 위로가 된다.
이런 편견의 늪에 빠지지 않고 물이 비치는 빛을 따라 자유로울 수 있는 잠자리는 이 소설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지. 킹을 응원하게 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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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관리의 과학적 근거 로운 known 2
이창배 외 지음 / 지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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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산림과학원이라는 곳에서 산불에 대한 이런 연구도 하고 계셨다. 뭔가 국민의 입장에서는 안심이 되었다. 이분들이 이런 연구와 시스템 개발하고 현실화 할 때 이 쪽에 힘을 보탤 수 있는 시민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산불 관리의 과학적 근거

산불의 연중화와 대형화는 기후변화의 산물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과 가뭄이 나무에 불이 붙기 쉽고 확산되기 쉬운 조건을 만든다.(p.9)

서울식물원이 처음 생겼을 때 어린 슬이를 데리고 방문한 적이 있다. 훌륭한 곳이었지만 우리집에선 너무 멀어서 ㅜ 한 번 가고 다신 갈 엄두를 못냈더랬다. 벌써 5-6년 전이지 싶은데 그 곳에서 나의 뇌리에 박힌 몇 장면이 있다. 그 중에 하나는 호주에 관한 애니매이션이었다. 일부러 불을 낸다는 내용이었다. 따지고보면 화전민개념이었는데 현대에도 불을 질러 개간할 땅을 얻는다는 개념이 일단 문화충격이었다. 자주 불을 지르다보니 그 곳에 많다는 코알라들이 좋아하는 유칼립투스가 산불이 일어났던 곳에 매우 잘 자라는 식물이라는 내용이었다. 아... <사피엔스>에서 말했던 농사가 혁명일 수 밖에 없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농사라는 것이 자연에 인위적인 행동으로 사피엔스 종족의 이기적인 행위에 불과한거였다. 그러나 어쩌랴. 잘먹고 잘 사는 것이 사피엔스의 유일한 목적인데.

어쨌든 제국주의 관점에서 볼 때 남태평양이 가장 늦게 발견되어 호주는 그렇다치고 우리나라를 살펴보자면 최소한 일부러 불을 내는 나라는 아니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의외로 담뱃불에 의한 화재비율이 낮다는 것. (낮다고 하면 안될 것 같다. 입산자에 의한... 화재가 1위임을 생각하면 어쨌든 담배를 피우려고 들고 다니시는 도구들이 화재의 원인이 되기 쉬우니 말이다) 우리나라가 전쟁이후 잘 자라기 쉬운 나무들로 잘 심어 녹화에 성공했지만, 아마존이 한번 불타면 뿌리들이 몇 천 년 된 것들이라 쉬이 꺼지지 않는 것처럼 우리나라들 나무들도 산불이 나면 쉽게 꺼지지 읺는다는 점. 그리고 산불진화헬기가 너무 부족하다는 점. 처음엔 우리나라가 작으니 이수치 일까 싶었는데 우리 국토의 60퍼센트가 산인 걸 생각하면 헬기가 더 많이 필요하겠다는 점, 침엽수에서 산불이 주로 난다는 점, 산불 예방용 나무 심기프로젝트가 있고 진행되고 있다는 점 등등이다. 도시에 살고 있고, 등산이 취미가 아니라서 휴가때 주로 물가로 가는 나로서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전혀 모르던 산과 산불의 세계로 건너갔다 온 기분이다. 내가 산을 등한시했다고 남의 집 이야기로 읽히진 않았다. 나 역시 이모부님 두 분이 소방관으로 일하고 계셔서 그 분들의 3교대 시스템의 피곤함과 불과의 위험한 싸움에 대해 대충은 알고 있기 때문일까? 불에 대한 인문학적 의미는 차치하더라도 기후위기로 잦아진 산불에 대해 시민들에게 다각도로 고찰할 기회를 주는 매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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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보다 Vol. 1 얼음 SF 보다 1
곽재식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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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구병모, 남유하, 박문영, 연여름, 천선란 6명 작가의 ‘여긴 어디? 나는 누구?’ in SF.
이 6명의 작가들은 얼음이라는 소재를 각각 어떻게 표현했을까? 이 점을 가장 궁금해하며 책을 펼쳤다. 시공간 얼려버리기. 가장 처음으로 곽재식 작가님의 소설을 넣은 건 정말 제대로 된 낚시였다. 난 깔깔 대며 읽었고, “대단하지 않은가?(p.7)” 이런 문장을 읽으며 내가 방송에서 들었던 곽재식 작가님의 코맹맹이 목소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후 다른 작가님들은 아포칼립스 시절을 빙하기로 만들어버리기도 하고, 눈꼽같은 얼음덩어리를 귀에 넣고 다니는 존재로 만들기, 녹고 있는 영구동토층 위에 붕괴되기 일보직전인 임대아파트로 설정하기, (**) 눈까지(스포라서..**표시)! 안타깝다, 이런 단행본은 한 여름에 나왔어야했다. 이 책을 읽으며 몇 번을 얼어붙었다. 심지어 남유하 작가님의 <얼음을 씹다>를 읽은 후 난 이 책을 며칠간 멀리했다. 딸래미 손톱 깎아주면서도 괴로웠다. 다른 분 단편도 마찬가지였다. 몇 번 소름 돋았다. 책을 덮은 후 내가 최근에 읽은 한국작가 SF가 뭐지? 질문했다. 김초엽 작가님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지구 끝의 온실> 두 편이네, 이 책들은 이 6편의 백신이 될 수 없었다. 다 읽은 후 나의 소름들을 다행히도 곽재식 작가님의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이게 다 무슨 짓인지도 정확히 안다. 나는 소설의 등장인물이다”를 읽으며 위로받았다. 그래. 다 이야기야, 이야기.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야 얼음이 된 나는 스스로에게 “땡”을 외치며 풀어줄 수 있었다.

구병모 작가님의 <채빙>, 천선란 작가님의 <운조를 위한>은 워낙 네임드가 있으신 작가님들이니 다른 분들도 많이 쓸 거 같아서 패스. 나는 연여름작가님의 <차가운 파수꾼>이 인상적이었다. 이름이 여름이시라 그런지 이렇게 추운 이야기를 이렇게 따뜻하게 쓸 수 있는 건가, 아저씨 농담식으로 생각해보며.. 이 책의 다른 제목으로는 <너를 위한 파수꾼> 에이, 촌시럽구나. <교환>!!!! 이건 괜찮을 것 같은데. 노이와 이제트가 처한 세계에서는 교환만으로 생존이 가능한 세계였다. 하지만 그들의 교환이 조금씩 확장하면서 이런 세계에서도 가능할 수 있구나하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따지고 보면 비극인데, 이게 또 독자에게는 비극이라고 할 수 없는 연탄재 한 장 같은 그런 따스함을 우리에게 던져준다고나 할까.

다음 시리즈는 어떤 공통된 소재로 어떤 작가님들이 써주실까? 궁금해하며...
곽재식 작가님의 첫 문장을 다시 한번 읽어본다. 주문이다. 내 팔에 곧 돋을 goosebumps를 손바닥의 마찰열로 싹싹 비벼가며 다시 책장을 펼친다. 내가 놓쳤던 소름을 찾아 다시 한번 이 얼음 위를 위태롭게 걸어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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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시대 - 찬란하고 어두웠던 물리학의 시대 1900~1945
토비아스 휘터 지음, 배명자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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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시대
찬란하고 어두웠던 물리학의 시대 1900~1945
(토비아스 휘터, 흐름출판, 2023)


이 책은 1900~1945년대의 중요한 과학적 성취를 만들어가는 과학자들의 이야기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과학자들이 원자라면, 이들이 서로에게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논쟁하는지, 나 같은 독자들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이 과학자들의 활약상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과연 양자역학에서처럼 우리가 본 것이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feat. 내가 뭘 쓴걸까, 어디다가 올려도 되는 글일까 ㄷㄷ.)

이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양자를 최초로 등장시킨 과학자마저 자신을 믿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가장 첫 챕터에 나온다. “1900년 12월 14일 금요일 오후 5시”(p.27)“양자물리학의 탄생 시간”(p.29)을 탄생시킨 막스 플랑크는 “원자를 믿지 않는 보수적인 물리학자”(p.27)로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흑체가 원자로 이루어졌다는 가설(p.27)을 내세웠고, 이 발표 이후에도 “양자에서 다시 벗어나려고 수년간 노력했다”(p.29). 본인이 써놓은 공식에 등장하는 양자를 믿지 못했다. 이 사실은 양자역학을 째려보는 나에게 매우 위로를 주면서 이 책에 몰입이 되기 시작했다.

마리 퀴리에 대해서는 내가 어린 시절 읽었던 위인전 내용에 더해, 정말 위대한 여성 과학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학자이면서 막노동가였다, 그녀는. 그녀의 실험실에 대해 “독일 화학자 빌헬름 오스트발트는 ”헛간과 감자 창고의 교집합“(p.38)”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엉터리인 이 헛간에서 순수한 라듐을 얻기 위해 “뼈가 부서지는 작업-무거운 양동이를 끌다시피 가져와 용액을 골고루 붓고, 부글부글 끓는 용광로를 쇠막대로 저었다. 알칼리성 염, 산, 수백 리터 물로 피치블렌드를 씻어내야 한다. 퀴리 부부는 추출을 위해 ‘분별 작용’이라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들은 원료를 계속해서 끓이고 식히고 굳혔다”(p.39)-이 막노동을 통해 고작 “0.1g쯤 되는 순수 라듐을 손에 쥐었고(...)주기율표에 88번을 부여했다”(p.39)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게 된다. 그러나 “화상으로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인 피에르의 손가락. 그것은 언젠가 마리를 죽게 할 방사능 질병의 전조”(p.41)였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방사능으로 죽게 된다는 미래를 알았다면 그녀는 이 막노동에 가까운 실험을 계속 했을까? ... 했을 것 같다.(장갑이라도 끼지 않았을까?)
다른 챕터에 등장하는 아인슈타인이 특허청 말단 직원에서 상대성이론을 낸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어린시절, 앞서 마리 퀴리와 같은 위인전 전집에서 읽어 이미 알고 있었다. 여기서 눈에 띄었던 것은, 그래서 꼰대가 됐을 법도 한 그 높은 자리에서 아인슈타인이 보여준, 1927년 브뤼셀에서 있었던 솔베이 회의에서의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결투”(p.301)라고 표현을 하긴 하지만,) 어떤 진중한 태도였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말처럼 행동한 모습으로 보였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 강연을 제안 받았지만, 약간의 망설임 끝에 거절했다. 그는 ”그럴 능력이 안 된다“고 로렌츠에게 썼다.”(p.304) 우리나라라면 무조건 아인슈타인에게 강연시켰을 텐데. 21세기의 오늘날에도 말이다. 그렇다고 그가 꼬리를 내리고 겸손했느냐, 하면 그렇지 않았다. “1927년 10월 26일 수요일. 젊은 반항자들-보른과 하이젠 베르크가 “양자역학은 원자 물리학과 고전물리학의 중대한 차이가 불연속성이라는 직관을 토대로 합니다.””(p.308)라고 발표한다. 이후 아인슈타인도 계속해서 보어와 논쟁을 이어가지만 “양자역학을 반박하지 못한 채, 제 5회 솔베이회의는 끝났다”(p.322)라는 과학사의 논쟁이 뭐랄까, 학연과 지연, 혈연이 끼어들지 않는 매우 클린하면서도, 열띤 지구촌 과학자들의 회의를 구경한 느낌이었다.

이 책은 양자역학이 뭔지 궁금한 분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유투브로 양자역학 강의(약 10분짜리 영상)를 클릭해 본 분들에게 권하는 책이다. 우리의 김상욱교수님께서 각종 방송과, 여러 과학행사에서 양자역학에 대해 소개해주시지만 볼 때마다 처음 듣는 얘기인 것 같은 마음으로 양자역학을 접하는 시청자분들에게 권하는 책이다. 내 얘기다. 나의 경험론에 의거한 이성은 양자역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책을 만났다. 추천사를 써주신 이정모 과학관 관장님도 말씀하시지만 “이론이 어려울 땐 역사를 보는 법.”(p.4) 나 역시 유투브에서 힘겹게 알아낸 토막정보들 사이의 간극을 이 책이 메워주었다. 정확하게는 새로운 이름들이 메꾸어준 것이다. 어린이였을 때 위인전에 있었던 마리 퀴리와 아인슈타인의 이름만을 기억했던 나에게 1900년 에너지의 양자화를 발견한 막스 플랑크, 1913년 원자 모델을 제안한 닐스 보어, 1920년대의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고양이가 더 유명한 것 같은 에르빈 슈뢰딩거 등등의 이 책에 나온 과학자들의 이름들이 이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불리우는 양자역학에 대해 매우 연속적으로 매우 논리적으로, 일타강사처럼, 설명해준 고마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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