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가장 밝은 지붕
노나카 토모소 지음, 권남희 옮김 / 사계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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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심해에서 가장 밝은 해파리는 별이 되어
밤하늘을 별빛으로 물들인다

두 살 때 자기를 버리고 떠났다는 친엄마 덕분일까. 크게 혼낸 적 없는 아빠와 새엄마의, 무언가 인공적인 따뜻한(!!)지붕 밑에 사는, 츠바메. 그래서인지 유독 편안하게 느껴지는 밤하늘을 보기 위해 서예학원 옥상에 자주 올라간다. 어느 날, 밤. 바로 그 곳에서 짝사랑하는 옆집 오빠, 도오루에게 줄 생일 카드를 쓴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후회하는 츠바메는 답답한 마음에 옥상으로 올라간다. 그곳에서 라벤더색 머리칼에 요란한 옷차림, 껄렁껄렁한 말투의 별 할머니를 만난다. 그 할머니는 킥보드 타는 법을 자신에게 가르쳐 주면 그 카드를 되찾아주겠다고 약속하는데...

“얄팍한 함석지붕이어도 정성껏 손질한 집은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살고 있어. 지붕에 부담이 가고 무겁기만한 장식 기와를 올린 집은 어깨에 돈이며 속박, 무거운 것을 잔뜩 짊어지고 살지. 천창이 있는 집은 난 별로야, 만에 하나 휴식하다 들키기라도 하면 골치 아프거든.”(p.64) 미니멀라이프의 유행을 예견한 걸까, 별할머니는 츠바메에게 지붕이론을 설파한다.

“(...)지붕이 지켜주는 거다, 집이든 사람이든.”(p.65)라고 믿고 있는 별할머니는 츠바메네 지붕을 이렇게 표현한다.

“너희 집은 별로야. 뭐냐, 그 번쩍거리는 천박한 파란색. 기와가 아니라 플라스틱 같잖아. 태풍이라도 오면 다 날아가버려.”(p.64) 츠바메의 집은 겉으로 보기엔 그럴싸하지만 태풍이 오면 날아가버릴 위기의 재혼 가정이라는 것.

<우주에서 가장 따뜻한 지붕>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지붕'은 중요한 모티브다. 호시노 토요라는 이름을 가진, 별 할머니는 해파리처럼 자유롭게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츠바메가 별 할머니를 처음 만난 날, 그녀는 지붕 위를 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말은 다른 한편으로는 젊은 시절, 날아다니는 자유영혼으로 산 댓가로 지붕을 갖진 못했다는 의미가 된다. 나이가 든 지금 세월을 온몸으로 받아오며 살아왔을 이 분은 츠바메를 보자마자 가식이라는 둥, 독설을 퍼부으며 까칠한 성격을 보이는 게 아닐까. (그래서 별 할머니는 손자 마코토가 있는 선홍색 지붕을 찾으러 다닌다) 자유로운 해파리는 때로 독을 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에 비해 지붕 밑을 벗어난 적 없는 츠바메,

지붕을 벗어나 돌아오지 않은 츠바메의 엄마,

친엄마가 떠난 츠바메네 지붕을 아빠와 함께 “번쩍거리는 천박한 파란색”의 지붕을 지키는 새엄마,

지붕을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온 도오루의 누나 이즈미.

별 할머니와 함께 선홍색 지붕을 찾아주며 부모의 지붕 밑을 떠나는 연습을 하기 시작한 츠바메는 (이후는...반전이 있어 뭐라고 쓰진 못하겠고 읍읍)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나를 이 세상에 보내준 친엄마가 나와 내가 만든 간판을 발견할 수 있도록”(p.249)간판 가게에서 일하려고 마음먹으면서 이 소설은 끝난다.
나와 내가 만든 간판이라니. 원서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지만 이대로도 괜찮다. 따뜻한 지붕을 알기 전 엄마를 생각하며 그리기 시작한 서예하는 ‘나’와 별 할머니가 알려준데로 무게에 휘둘리지 않고 가라앉아도 좋으니 한 번 더 떠오를 수 있는 것을 아는 ‘내’가 만든 간판을 만드는, 성장한 츠바메일테니까.

p.s. 별 할머니의 껄렁함과 사사가와의 불량함이 똑 닮..소름 그리고 표지 제목을 해파리가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오르는 모습이 마치 하트의 윗부분같기도 하고.. 참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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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복수 안도현 선생님과 함께 읽는 옛날이야기 2
안도현 지음, 김서빈 그림 / 상상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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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는 네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그 중 제목으로도 쓰여진 <고양이의 복수>가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다. 요새 워낙에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동화, 그림책들이 쏟아져나오는터라 이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 옛이야기에 나오는 고양이를 잊고 살았구나를 새삼 확인했다. 

  유럽이나 영어권, 일본에 나오는 고양이와 달리 우리나라의 고양이는 유난히 요물로 묘사된다. 어린 시절 우리집 지하실에 새끼를 낳은 길고양이 덕분에 나도 고양이의 습성을 자세히 알게된 터이다. 울집 고양이 이름은 알롱이였다. 난 예뻐하기만 했지 밥 한번 준적이 없는데 맨날 밥주고 물주던 엄마와는 항상 전쟁이었다. 그때 우리집엔 화단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고추, 호박등을 심으셨기에 열심히 물을 주셨다. 고양이의 특성은 사람을 따르기보다는 그 자리를 지키고, 물을 싫어한다. 그렇기에 알롱이는 항상 물을 주기 위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엄마가 곱지 않았을 터이다. 게다가 가끔은 물을 주며 알롱이 꼬리를 밟았기에 알롱이도 엄마의 뒷꿈치를 꽉 깨물어 복수하기도 하고, 현관문이 열려있을때면 엄마의 슬리퍼만 그렇게 한짝을 물어다가 안보이는 구석탱이에 숨겨놓곤 했다 ㅋㅋㅋㅋ 그런 요물을 엄마는 곱게 볼 수 없었을테고 항상 엄마는 구박하고 알롱이는 항상 자기만의 방식대로 복수했다 ㅋㅋㅋ


  두번째 이야기인 <고양이의 복수>는 다들 알만한 이야기이지만, 안도현 시인님은 경상도 울진의 바닷가 마을에서 전해지는 이 에피소드를 쓰셨다. 마을을 위해 바다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음식을 만드는데 전 하나를 물고 간 고양이를 한 일꾼이 낫으로 등을 찍게 되고, 알고보니 고양이는 요물이 되어 그 마을을 해칠뻔하지만 지나가던 스님께 시주를 잘 한 덕에 개 네 마리의 희생으로 잘 넘어가게 된다..는 (죄송합니다 막 스포를)다들 아는 이야기이다.  전 하나 물고 도망간 고양이에게 낫을 휘두른 일꾼은 팍팍한 현대의 자본주의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와닿는 스토리이다. 그 고양이는 처음부터 요물이 아니라 낫에 찍혀 도망가다가 요물이 되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마지막 스님의 한 문장 "한갓 미물일지라도 생명은 소중한 것이지요"는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는 안도현 시인님의 유명한 시구와 맞물려있다. 꼭 고양이가 복수를 해서가 아니라 모든 생명은 다 소중하니 아껴줘야 하지 않을까 하고, 오늘 1200마리의 개 사체가 발견된 , 양평의 한 사람의 뉴스를 보며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이 특별한 건, 나 어렸을 적 보던 전래동화 스타일이 아닌, 우리 애 어렸을 적 보던 옛이야기 스타일이 아니라는 거다. 제목부터가 그 뻔한 전래동화 제목이 아니다. <구렁이와 결혼한 방울이>만 봐도 그렇다. 이 책의 첫번째 에피소드인데, 구렁이 새신랑 이야기이다. 옛날이야기지만 정말 있었음직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주인공들의 이름들도 생생하다. 그림은 웹툰 스타일이다.(K-pop 좋아하는 아이들이 읽어보고 싶게 생긴 그림체) 요새 옛날이야기는 이렇구나,감탄한다. 나 때 이런 책 많았으면 책 많이 읽었을 것 같은데 요새 스마트폰 보느라 책을 안 읽는 아이들 역시 안타깝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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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 - 분단의 나라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김성경 지음 / 창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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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잇는 가장 한국적인 다큐 에세이"라는 홍보 문구가 나를 사로잡았다. 벨라루시 출신 저자의 이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 버전도 가능할까? 궁금했더랬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으로 옛것은 초토화되었음에도 남존여비 의식은 끝내 살아남은 동아시아에 위치한 한국. 그래서 이 책에 담긴 유럽식의 서사가 그저 이야기로 읽힌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잇는 한국적인 다큐 에세이'라니. 더군다나 그렇게 '살아남은' 여성들이 '세계를 구한다'니!!!

이 책을 완독한 후, 느낀 점은...

그 동안 나는 북한 여성을 '이만갑'이라는 이름의 종편TV를 통해 접해왔다. 그들은 한결같이 고난의 행군 시절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고 남한에 와서는 하나원에서의 배부른 식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한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저런 일을 겪지 않도록 남한을 선택해주신, 얼굴모를 할아버지에 대한 감사했지만, PD의 자본주의적 렌즈를 통해 나타나는 그들의 모습이, 나는 상당히 불편했다.

이 책의 저자인 북한학자 김성경씨의 렌즈는 전문적이다. (이야기의 형식을 빌려 쓰긴 했지만) 그 시절을 겪은 북한 분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받아들여 쓰여졌기에 직선같은 글이어야 했다. 그러나 같은 한 민족으로서, 같은 여성인으로서 독자입장의 나의 눈은 어쩔 수 없이 팔이 안으로 구부러져, 볼록 렌즈가 되어 곡선으로 읽혔다. 저자 역시 그랬을 것 같다. 이 작은 나라에서 벌어진, 유례없는 분단국가의 비극은 우리를 묶이게 한다. 저자가 최대한 거리를 두고 사실적으로 들은 이야기를 묘사했겠지만 그 글이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고 아픈만큼 저자의 시선은 따셨다. 특히 순영할머니 이야기는, 인간이라면 모두 어머니에게서 태어나고, 여성이라면 어머니가 되는 일을 겪으며 그 끈이 서로 연결되고 있음이 느껴졌다.(그 와중에 아들에게 더 많이 송금한다는 이야기마저도)

이야기는 우리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그 양만큼 상대방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발판이 된다. 난민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이 나라에서도, 아프가니스탄의 미라클 작전이라는 서사는 국민의 공감을 이끌어 그 난민들을 포용했다. 나는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른 민족도 아니고 70년전에는 한 민족이었던, 탈북민들을 포함한 북한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좀 더 곡선이고 따수웠으면. 통일에 대해 적대적인 사람도, 관심없는 사람들도 이 책을 읽고 이념이나 정치색과 상관없이 한 인간으로서 그들을 응원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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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센디어리스
권오경 지음, 김지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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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은 ‘1장 윌’로 시작해서 ‘2장 피비’, ‘3장 존 릴’,이 세 명의 순서대로 이어져, 마지막 40장은 첫 장을 시작했던 윌의 이야기로 끝맺는다. 따라서 이 40장의 다이어리는 윌이 쓴 것으로 보인다. 신앙을 잃었던 윌, 피아노와 어머니를 잃은 피비, 그리고 북한 수용소 경험을 통해 신앙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주목하게 된 존 릴, 이 세 사람의 이야기는 이 소설에서 시한폭탄으로 제조된다.

‘incendiary’라는 단어는 ‘방화, 선동’ 이란 뜻으로 이 책의 원제 <The incendiaries> 라고 하면 ‘방화범들’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원제 단어 끝의 ‘diaries’라는 의미가 이 책의 40장 ‘일기’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이 이 챕터 40장을 읽는 동안 성경의 사순절이 갖는 상징처럼 고통 속에서 인물들의 부활(여기서는 갱생이란 단어가 더 적합하겠다)을 바라며 읽게 된다. 하지만 이야기의 끝은 폭발이다. 아니 의도를 가진 폭발, 방화이다. 기독교에서 세례는 물로 행해진다. 윌이 신앙을 가지고 있었을 때 어머니의 세례식을 떠올리는 장면을 보면 물이 이 작품에서 신앙의 순수함을 나타낸다. 이에 반해 존 릴은 물 위에 떠 있는 기름과 같이 존재한다. 물과 붙어 있지만 섞이지 않으며 물을 밑에 두고 그 위에 분리되어 존재한다. 여기에 피비라는 도화선이 합쳐지자 완벽한 방화를 일으키고, 그래서 이 소설은 이 것을 목격한 윌의 간증처럼 읽힌다. 이렇게 서사면에서도 불을 지르지만,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도 불을 질러버리는, 강렬한 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기 괴로웠다. 가독성은 좋지만 한 번에 읽어내기 힘들었다. 가뜩이나 개독교로 놀림받는 현 상황에서 이 작품은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내가 화살에 잔뜩 맞은 것 같았다. 하지만 분명 교회가 직면한 문제들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교회에서 주지 못하는 위로를 존 릴이 피비에게 주는 것을 보고 난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작가가 열 일곱에 신앙을 잃었다는 홍보 문구는 피비를 작가로 보이게도 했다. 하지만 나와 비슷했던 신앙경험은 대부분 윌에게 있었다. 읽고 나서는 피비보다 윌의 이야기가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여기까지는 기독교인으로서 읽은 감상문이다. 다시 객관적인 독자로 돌아가 글을 마무리하자면, 이 소설에서 컬트 종교(이단)의 테마도 크지만, 근대를 경험하지 못했던 피비의 부모들과 현대에 태어난 피비와 줄리언 노의 세대의 고민들도 크게 다가왔다. 단순히 이단에 빠진 자에 대한 소설로만 치부하기에는, 빠지게 된 경위부터가 너무나도 한국적이었다.

맺으며..

인센디어리스라는 제목이 주는 상징, 세 명이 끌고 나가는 다성악 구성, 인물 내면의 이야기들이 주는 몰입감까지 이 소설은 굉장히 잘 쓰인 작품이다. 이 전에 접한 <파친코> 이민진 한국계 미국인작가와는 완전히 결이 다르다. 권오경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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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해님
노석미 지음 / 창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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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봤을 때는 <Goodnight, moon>, 마가렛 와이즈 브라운의 그림책이 떠올랐다. 이게 뭐야, 이야기도 없고 그냥 방 안의 모든 물건들에게 굿나잇 인사를 하는 이 그림책은? 잠을 청하기 위해 양을 세는 행위와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베이비붐으로 육아에 한창이던 미국. 그림책 산업은 발전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재우려는 부모들과 그림책 출판사의 합작품일테지. 이 그림책에 대해 이런 편견을 가지고 2023년 노석미 작가님의 <굿모닝 해님>을 펼쳐들었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절벽의 시대에 이 그림책은 무얼 담고 있을까 궁금해하며.

굿모닝, 겨울부터 가을까지 내 주변의 새싹과 나무의 꽃들이, 채소와 열매가 된다. 우리에게 달걀을 주는 닭, 우유를 주는 소(코를 핥고 있는 소의 혓바닥 디테일, 짱), 보리의 낟알들이 해님에게 굿모닝 인사하면서 눈코입이 생긴다. 사계절 내내 그 많은 초록이들과 동물들이 해님에게 인사를 했고 그래서 우리의 식탁은 풍성해졌다. 마지막 페이지의 해님은 모든 자연의 엄마로도 보인다(눈코입이 다 닮았다, 진짜다)

<굿모닝 해님>은 그 동안 마스크를 쓰고 서둘러 지나가느라 들여다보지못한 자연과 인사하는 책이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가족들과 나들이를 갈 것이다.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도시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소풍도 갈것이다.  영문도 모른채 코로나를 겪어야했던 아이들, 특히 태어나자마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마주해야 했던, 작년에도 세 살이고 법이 바뀌어 올해도 세 살인 아이들에게, 이 책은 팬데믹으로 자유롭게 교감하지 못했던 자연들과의 새로운 인사이고, 마스크를 벗은 사람들과 대면의 시작을 알리는 선물이 될 것이다. 서로서로 유지해야했던 거리 따위는 집어치우고 자연에서 실컷 향기 맡고, 실컷 만져보고, 입안 가득 먹어볼 수 있는 자유를 누리기를.

*서평단으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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